#748.
그런데 이제는 이미 이들의 특허를 대부분 산 상황이었다.
‘그나마 남은 특허는 어쩔 수 없지. 지금 매입한 특허와 과거 위성 기술 때 얻은 특허를 가지고 작업을 진행하면 될 거야.’
깊은 고민에 잠긴 최민혁 실장.
조성돈 팀장은 말없이 사색하는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다가 얻은 한 가지 정보를 알렸다.
“아무래도 모건 스탠리의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시즈벨 인수에 대해서 안 것 같습니다.”
“그가 어떻게… 아,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정보를 흘렸나요? 아니면 시즈벨 내부 인력이 정보를 흘린 건가요?”
“시즈벨의 패트릭 호프만 이사가 직접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아, 제이미 이사가 언급한 그 돼지 말인가요?”
“네.”
최민혁은 혀를 찼다. 새삼 김현우 수석 부장을 떠올렸다. 후환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그래도 설마 모건 스탠리를 직접 찾아갈지는 몰랐다.
“가만, 혹시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설마 패트릭 호프만 이사를 보험으로 박아놓았던 건가요?”
“네, 시즈벨 내에 몇몇 사람을 사전에 포섭해 놓았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패트릭 호프만 이사인 듯합니다.”
“그러면 마이크 라이언 이사 쪽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세요.”
“…알겠습니다.”
* * *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꽤 꽉 막힌 인물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하지만 그도 폴 고슬링이 계속 경고를 하자 최민혁 실장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폴 고슬링은 더욱이 상황이 이상하다면서 에플 공매도 플랜을 계속 질질 끌었었다.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의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의 충고를 받아들인 덕에 최민혁 실장의 동선을 살폈고, 시즈벨에 대한 정보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시즈벨 내부 인력을 포섭했고, 심지어 시즈벨 이사회에도 손을 썼다.
그런데 솔직히 이때만 해도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이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탓이다.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 역시 어느 정도 선을 지킨 점도 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얻은 거라고는 섭외한 이들의 입을 통한 피상적인 정보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변화가 생겨났다.
벨린 투자가 나서서 시즈벨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심지어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앞세워서 말이다.
그로서는 황당한 일이어서 일단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만났다. 아니, 만나려고 했는데, 만날 수가 없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태국 바트화 핑계를 대고는 태국으로 튀었기 때문이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그제야 뭔가 좀 싸한 느낌을 받았고, 다시 섭외한 인물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행히 한 사람이 연락을 받았다.
그가 바로 패트릭 호프만 이사였다.
그의 입을 통해서 들은 사실은 뜻밖에도 MPEG-2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는 시즈벨이 가진 특허 중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MP3와는 많이 달랐고, 중요한 핵심 특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트릭 호프만 이사의 이야기를 무시했다.
그런데 폴 고슬링이 난리였다. 그는 이 정보를 그냥 무시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에플 주식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 에플 공매도 작업에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실은 놀랍게도 미쓰비시, 마쓰시타, 도시바가 보유한 MPEG-2 특허가 모두 한 회사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바로 시즈벨 말이다.
정작 시즈벨이 인수한 이 MPEG-2 특허들은 다시 한 회사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 회사는 이미 조각조각 찢겼다.
‘아니, 이게 뭐야?’
마이크 라이언 이사도 이제는 이 일을 그냥 덮어들 수가 없었다. 폴 고슬링에게 몇 사람을 아예 할당해서 일을 확인했다.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벨린 투자에게 이 MPEG-2 특허가 다 넘어가 버렸다.
“…도대체 이게 뭐지?”
폴 고슬링은 당연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MPEG-2는 일종의 동영상 표준입니다. 벨린 투자가 얻은 것은 바로 이 MPEG-2 원천특허입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해?”
폴 고슬링도 솔직히 뭐라고 확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했었다.
“이미 최민혁 실장은 MP3 특허 로열티로 재미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MPEG-2 특허를 모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이걸로 수익이 나?”
폴 고슬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MP3 로열티 수익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압니다.”
“그게 얼마나 되는데?”
“올해 MP3 로열티 수익은 모두 3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압니다.”
“뭐? 아니, 뭐가 그렇게 많아?!”
길길이 날뛰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모습에 폴 고슬링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도 조사만 했을 뿐이지 자세한 것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도 이번 일이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최민혁 실장이 이 특허로 하려는 것이 MPEG-2 관련 제품 개발이 아닐까요? 일테면 에플 차세대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정보는 들은 적이 없어!”
“뭐, 저도 아직 들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이 이 일을 단순한 의도로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도 굳이 이 일을 더 확인해야 싶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한 행동이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폴 고슬링도 문제였다. 자신이 그냥 덮으라고 지시해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언제까지 확인할 수 있겠어?”
“…가능한 빨리 확인해 보겠습니다.”
“후유, 일이 왜 이 모양인지.”
그는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 행보를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일은 이상하게 그냥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폴 고슬링은 에플 공매도 플랜을 책임진 사람답게 감이 좋았다. 그도 처음에는 MPEG-2 문제만 고민하다가 아차 싶었다.
바로 MP3 특허 로열티 말이다.
KM 전자의 작년 MP3 특허 로열티 수익은 올해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다.
심지어 올해는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 수익 규모가 너무 컸다.
그는 고민한 끝에 KM 전자의 MP3 로열티 수익 규모를 확인했다.
이를 위해 MP3 로열티를 가장 많이 낸 기업 중에 연락이 가능한 업체 하나를 선택했다.
그 회사는 다름 아닌 세한 정보였다.
세한 그룹의 계열사로, 기존의 시장과는 다른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 결과가 MP3 플레이어로 나타난 것이었다.
폴 고슬링은 모건 스탠리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투자 협상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있는 세한 정보 측의 안문원 본부장을 만났다.
그는 시차 때문에 피로를 무릅쓴 채 세한정보의 생산 공장을 방문했다.
세한정보가 보유한 공장은 오성 전자와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전형적인 중소기업의 공장이었다. 공장이 최근 신설된 터라 특이점은 없었다.
대신 있다고 한다면 MP3 플레이어.
카드 두 장을 합쳐놓은 두께로 일본 워크맨을 떠올리게 하는 제품이었다.
폴 고슬링은 투자를 받기 위해서 침을 튀겨가면서 설명하는 안문원 본부장의 이야기를 한 쪽 귀로 듣고는 다른 귀로 흘렸다.
“흠.”
안문원 본부장은 자신의 설득에도 영 관심이 없는 폴 고슬링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폴 고슬링에게 큰소리 한 번 치지 못했다.
“저기, 폴 고슬링님…….”
폴 고슬링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흥미로운 제품이군요. 그런데 이 제품 개발과 관련해서 특허료가 꽤 나간 것으로 아는데, 그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겠습니까?”
안문원 본부장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KM 전자에 뜯긴 특허료 때문에 이를 갈았다. KM 전자에 피 같은 돈을 다 뜯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제 물건을 막 생산하는 단계에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일본 쪽 업체와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이다.
“아, 특허료 말입니까.”
“네, 그 특허료 말입니다. 제가 조사한 바로 올해만 무려 50억이 넘는 것으로 압니다.”
“아, 올해 생산을 고려해서 책정한 금액입니다. 일본 유통 업체와 계약한 물량이 50만 대가 넘는데, 올해 중순과 하반기에 더 많은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KM 전자와 세한정보가 한 계약은 일시금으로 해서 처리한 것이었다. 덕분에 50억이라는 특허료를 내야 했는데, 어차피 해외 판매량이 급증한 이상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호오, 그래요.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까요?”
“아, 그건…….”
안문원 본부장도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영업 정보와 관련이 있다. 따지고 보면 세한 정보 역시 일본 시장을 공략한 덕분에 다른 내수 MP3 업체와는 차별화된 실적을 챙겼다.
그런데 걱정거리는 여전히 존재했다.
오성 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이 슬슬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개새끼들.’
거기에 다른 MP3 플레이어 업체도 문제다. 대다수는 국내 시장을 공략했는데, 설마 일본에서 대규모 주문을 받을지는 몰랐던 것이다.
이건 MP3 플레이어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폴 고슬링은 피식 웃었다.
“우리 모건 스탠리에 대해서는 잘 알 것 같고, 투자하는 규모가 천억 단위입니다. 세한 정보 미래 가치를 알아야 투자 규모를 정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안문원 본부장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결국 KMP-01, MP3 플레이어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한정보의 장점을 내세워서 말이다.
사실 안문원 본부장 처지에서는 세한 그룹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이번 투자를 꼭 받아야 했다.
폴 고슬링은 묵묵히 이야기를 듣다가 한 가지를 질문했다.
“하면 KM 전자의 기획실장인 최민혁 실장은 잘 알겠군요.”
안문원 본부장은 ‘최민혁’ 이름을 듣자 그 자리에서 풀쩍 뛰었다.
“최민혁 그 개새끼! 아, 죄송합니다. 크흠,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안면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클럽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폴 고슬링 입장은 좀 달랐다. 그는 내심 쾌재를 질렀다. 최민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말이다.
“최민혁 실장이 이 MP3 플레이어와도 관련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휴우, 뭐 대충 다 이야기를 듣고 오신 것 같은데, 제가 뭘 숨기겠습니까.”
안문원 본부장도 폴 고슬링이 부담스러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폴 고슬링에게 잘 보여서 투자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폴 고슬링은 애초에 세한정보에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왜 세한정보가 최민혁 실장에게 막대한 특허료를 내야 하는가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결과는 대충 예측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오디오 모바일 기기라는 이야기군요. 음원 압축 기술이 적용되었고요. 하면 비디오 압축 기술이 적용된 모바일 기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까?”
“네? 그건…….”
안문원 본부장도 선뜻 대답하지는 못했다. 지금 당장은 KMP-01을 베끼고, 그 특허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폴 고슬링은 미심쩍은 얼굴로 다시 몇 번이나 질문했다.
“전혀 짐작 가는 것도 없습니까?”
“잠시만요.”
* * *
안문원 본부장은 결국 이양구 수석 부장과 강민철 차장을 호출해서 질문해 봤다. 두 사람도 제대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소형팀장인 강민철 차장은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MP3 플레이어가 오디오 음원 압축이 필요한 제품입니다, 비디오 압축 기술이 있다면 비디오 모바일 기기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추측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쉽지는 않았다. 당장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장벽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폴 고슬링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 모바일 기기 개발이 가능합니까? 만약 성공한다면 시장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민철 차장은 역시 엔지니어답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양구 수석 부장은 좀 달랐다.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당장 모바일 기기 CPU 성능도 달라야 하고, 디스플레이 문제도 있을 겁니다. 거기에 배터리 소모도 생각해야 할 거고…….”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군요.”
안문원 본부장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래서 자금이 많이 필요합니다. 귀사에서 투자해 준다면, 원하는 제품을 얼마든지 설계해서 생산할 수 있습니다. 투자를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비디오 모바일 기기도 말인가요?”
“아,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