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
지금 당장 로열티 적용이 가능한 범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즈벨은 이런 범위에 해당하는 기업을 상대로 로열티 강탈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마쓰시타와 도시바의 임직원들은 그제야 수긍했다.
허황한 이야기보다는 구체적인 수익 규모가 더 이해하기 좋았다.
그렇다면 더 걱정할 일은 없었다.
“…적은 수익은 아니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큰 이익이 되는 사업은 아닙니다. 틈새죠. 하지만 우리 시즈벨이 보유한 다른 특허에는 시너지를 줄 겁니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너무 크지도 않으면서도 적당한 수익이 날 것 같으니 말이다.
마쓰시타와 도시바가 변혁에 앞서서 미래 가치를 본다면 이 말이 얼마나 허황한지 알 수는 있는 부분이다.
불행히도 마쓰시타와 도시바에서 나온 이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건 설득을 하는 코다 도시히로 이사조차 다르지 않았다.
사실 이런 애매한 협상이 가능한 것은 로열티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권리 범위도 애매하고 말이다.
아직은 이 신 사업이 막 태동하는 시점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불과 1년만 지나도 상황이 전혀 달라지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 의미까지 알 수는 없었다.
만약 당사자가 최민혁 실장이었다면 마쓰시타나 도시바 측에서 나온 임직원도 인원을 더 투입해서 검토하겠지만, 불행히도 상대는 미쓰비시에서 이직한 코다 도시히로 이사였다.
심지어 설립한 법인도 조각내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 본인은 시즈벨 일본 지사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다들 눈치껏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해야 했다.
“…좋습니다.”
“좋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이번 협상만 잘되면, 우리 측에 자리를 만들어 두겠습니다. 사실 전문 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거야말로 그들이 원하던 대답이었다.
“…반드시 거래가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밝은 미소를 한 채 그들과 손을 잡았다. 어차피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물며 마쓰시타나 도시바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도 아니었다.
“저 역시 당신이 일해야 할 사무실을 사전에 꾸려두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과거 3년 전이라면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 할 대화였다.
하지만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아니, 20년에 접어든 대기업 임직원들 처지에서는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었다.
누구도 그들의 욕망을 비난하기는 쉽지 않았다.
* * *
잘 알다시피 최민혁 실장을 주시하는 세력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많았다.
특히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는 아예 의뢰까지 맡겨서 주시했다.
하지만 이들은 초호화 펜트하우스 소동 때문에 다른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오히려 최민혁 실장이 어떤 펜트하우스를 매입하나 거기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 언론조차 관심의 초점이 될 일이라서 이쪽을 더 팠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최민혁 실장이 시즈벨을 동원해서 MPEG-2 특허를 매입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펜트하우스에 가려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최민혁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이번 일은 정말 잘한 것 같아.’
그도 솔직히 MPEG-2 원천특허 확보는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언제 할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었다.
최민혁조차 지금의 일본 사정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었다.
사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대해서 일본 내부에서는 제대로 그 원인을 인식하지 못했다.
일본이 새로운 변화에 대해 얼마나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했는지 잘 보여주는 결과다.
그건 마쓰시타나 도시바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MPEG-2 원천특허를 나름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입해서 확보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 보겠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마쓰시타나 도시바 내의 윗선 경영진의 태도 자체였다.
그들은 기존의 타성에 젖어서 실무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따라서 이들이 MPEG-2 특허의 가치를 평가절하해서 보고해도 그 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럴듯했으니까.
더욱이 미쓰비시가 이미 MPEG-2 특허를 새로운 계열사를 만들어서 매각한 것도 고려 대상이었다.
여기에 이 MPEG-2 특허를 책임진 임원들이 적당히 거짓말까지 더했으니 일은 별탈 없이 진행됐다.
심지어 실무진들은 더했다.
그들은 자신 앞에 떨어진 콩고물에 눈이 돌아갔다.
이번 일만 잘하면 자신 앞으로 아파트 한 채 값이 떨어질 것에 미쳐 있었다.
결국 마쓰시타와 도시바가 가진 MPEG-2 원천특허는 시즈벨에 넘어갔다.
각각 1,300만 달러와 1,200만 달러에 말이다.
MPEG-2 특허를 전체적으로 볼 때 대략 35%가 조금 넘었다.
이 특허 중에는 뜻밖에도 핵심 특허가 포함되어 있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가 로비를 제대로 한 성과였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아니라 일본인 코다 도시히로가 처리한 덕분에 성과가 더 좋게 나온 셈이었다.
최민혁조차 이 보고서를 받아 보고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이건.”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칭찬을 바라는 고양이처럼 침을 튀겨가면서 셀프 칭찬을 했다.
“이번에 저희 쪽에서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마쓰시타나 도시바 쪽 임원을 상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단순히 돈이 아니라 성접대까지 했다. 일본의 소위 잘나가는 톱스타까지 동원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돈이 제법 깨졌다.
최민혁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태도에 피식 웃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따로 하겠습니다.”
“아, 이왕이면 돈보다는 펜트하우스를 매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지금 자신이 있는 건물 내부를 돌아보았다.
유럽 왕가식으로 만들어진 이곳 펜트하우스는 다른 펜트하우스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격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더욱이 이 펜트하우스에서 15분만 걸어도 뉴욕 도심에 접어든다.
위치만 놓고 봐도 투자 가치가 높은 곳이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뭐 그 정도는 해 드려야죠. 이왕이면 리스트도 보여 드릴까요?”
조성돈 팀장이 마치 집사라도 되는 양 최근 추가로 매입해서 200채가 넘는 펜트하우스 리스트를 쭉 보여주었다.
“…….”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혀를 내둘렀다. 그가 놀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시즈벨에서도 740 펜트 하우스를 매입하려고 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민혁이 보여준 곳은 740번지 펜트하우스 중에도 특별한 곳이었다.
“아, 물론 공짜로 줄 수는 없습니다. 매입가 대비 20%는 더 주셔야 합니다.”
“섭섭합니다.”
“이런, 이것도 제이미 이사님이라서 허락한 겁니다. 전 애초에 팔 생각이 없어요. 제가 뭐가 아쉬워서 이 펜트하우스를 팔겠습니까?”
“…알았습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피식 웃고 말았다.
최민혁 역시 같이 씩 웃어주었다.
“이제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가만, 나머지 특허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건 저희 쪽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니까요.”
“네. 그런데 최 실장님, 제가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렸다. 그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 정말 중요한 정보는 최민혁 실장이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민혁도 이번 일에서 최대 공을 올린 이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심지어 이미 MPEG-2 관련 특허권은 벨린 투자로 다 넘어온 상황이었다.
“말씀해 보세요.”
“이 MPEG-2 특허 말입니다. MP3와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MP3 플레이어처럼 쓸 수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랬다.
MP3 플레이어 기기는 오디오 기기라서 그나마 모바일 기기에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MPEG-2 모마일 기기는 현재 나온 것이 없었다.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상업적인 가치가 거의 없었다.
당장 CDMA 모바일 기기만 자체로만도 버벅거리는 시점이니까.
그런데 여기에 비디오 모바일 기기는 넘어서기 힘든 기술적인 장벽이 있었다.
최민혁은 굳이 이 시점에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에게 정보를 제한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디테일한 부분까지 말해줄 생각도 없었다.
“그거 어렵죠. 그리고 지금부터 제가 할 일이 그 기술 장벽을 넘는 겁니다.”
“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잘해야죠.”
“…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하지만 최민혁이 장난스럽게 하는 말을 그냥 한 귀로 흘려듣지는 않았다.
‘정말 가능하기는 한 걸까?’
최민혁은 자세한 답변은 해주지 않았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지적한 것처럼 지금 특허만으로는 조금 한계가 있었다.
지금까지 확보한 MPEG-2 특허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실상 이 시장이 열린 후에 생겨나는 MPEG-2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까지 확보한 MPEG-2 특허는 그야말로 기본이라고 봐야지. 아직 시장에 MPEG-2 핵심 특허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 * *
최민혁은 우선 이번에 사들인 모든 MPEG-2 특허를 검토했다.
그는 이 특허 분석 검토를 시작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최영란 본부장에게 CMOS 이미지 원천기술을 50만 달러에 확보했다는 이야기도 보고받았다.
사실 연구 가치로만 보면 딱히 적게 준 금액은 아니었다.
‘사실 CMOS보다 이 MPEG-2 원천특허가 더 중요하지. CMOS 이미지 센서 기술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니까.’
그는 굳이 이번 연구를 자기 명의로 다 올리지는 않았다.
최영란 본부장에게 자료를 보낼 때 그런 점을 명시했다.
가칭 KM 센서가 이 CMOS 이미지 특허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한 가지 일을 더 고민했다.
바로 MPEG-2 나머지 원천특허.
소위 말하면 비디오 특허다.
MPEG-2 표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 특허는 화면이 잘리는 단점이 있다.
작년에 발표된 이 특허는 IEC 표준 규격으로 승인되었다.
흔히 말하는 MPEG-2라고 한다.
MPEG-1만 해도 당시 시점에서 본다면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동영상 압축에 매크로 블록을 적용했으니 말이다.
이런 기술 기반이 후일 동영상 압축에 도움을 줬다.
이지수 박사가 박사 과정에서 연구한 이미지 압축 코덱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다만 이 압축 방식은 스트리밍에서 큰 취약점을 가졌다.
화질을 보다 중요시했기에 일어난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만한 기술 특허는 아니었다.
여기에 사용된 원천특허는 몇 년 후에 핸드폰이 활성화되면서 나올 MPEG-3, MPEG-4에도 영향을 주니까 말이다.
최민혁은 이 특허를 바탕으로 한 여러 가지 변조 코덱이 나온다는 것을 잘 알았다. 상세하게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아쉬운 점은 그도 이 비디오 원천기술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MP3와는 달리 MPEG-4는 이미 사전에 점유한 이들이 제법 있었다.
가장 큰 세력은 역시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마쓰시타, 도시바였다.
‘LC 전자나 MS도 무시하기는 힘들지만 주류는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