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46화 (746/1,021)

#746.

하지만 시즈벨 입장에서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배신자에 해당했다.

시즈벨 대주주도 이런 자세한 내막까지는 몰랐지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굳이 자신이 740번지에 보유한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최민혁 실장에게 넘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가장 큰 목적은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호감을 사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해둔다면 새로운 고급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민혁 실장과 시즈벨 사이의 복잡한 정치 문제가 해결되자 나머지 일은 쉽게 해결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실제로 조성돈 팀장은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 법무 대리인과 같이 실무진을 만나서 꽤 고생했다.

“휴우, 정말 까칠하네요.”

안현수 법무팀장은 시즈벨 실무진이 왜 까탈스러운지 잘 알았다.

“저들은 특허만으로 밥을 먹고 사는 자들입니다. 한 구절 하나에 수백만 달러 이익을 보장받을 수도 있고, 수억 달러 이익을 날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협상 조문에 오탈자 가지고 시비를 걸 줄은 몰랐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러는 겁니다.”

“아니, 전 협상할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저자들은 이것만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른 베테랑입니다. 오히려 우린 뒤에 최민혁 실장님이 있기에 그나마 나은 겁니다.”

“하.”

조성돈 팀장은 줄리엇 회장 법률 대리인의 행동에 치를 떨었다. 그는 한편으로 무덤덤한 안현수 법무 팀장의 모습에도 혀를 내둘렀다.

그가 KM 그룹 법무 팀장으로 일할 때 안현수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만나서 협상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시즈벨 실무진도 더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주인 눈치를 보는 강아지처럼 조성돈 팀장의 눈치를 봤다.

“아니, 재들이 갑자기 왜 저럴까요?”

안현수 법무 팀장은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윗선에서 정리된 것 같습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님이 한 걸까요?”

“아마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최 실장님과 타협을 본 것 같습니다.”

“하, 일이 이렇게 되는군요.”

조성돈 팀장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 쪽의 실무진과 계속 겉돌기만 하던 협상이 갑자기 진행된 것에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영향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기사로만 본 사람이니까.’

말로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에 대해 많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투자자의 전설과도 같았다.

그런 그조차 최민혁 실장을 무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커진 영향력을 떠올리면서 혀를 내둘렀다.

‘최 실장님은 나날이 성장하시는 것 같구나.’

* * *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이 나서 준 덕분에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가진 시즈벨 지분 7%를 헐값에 사들였고, 이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지인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대리인을 통해서 지누스 드 상티스 이사에게서 지분 30%를 더 사들였다.

우영민 부장은 덕분에 중간에 껴서 별다른 무리수 없이 시즈벨 지본을 확보했다.

최종적으로 지누스 드 상티스에게서 30%를,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에게서 7%를, 나머지 다른 대주주 지분 18%를 말이다.

모두 55% 지분을 총 3억 달러 규모에 다 매입한 것이었다.

다소 과한 지출이었다.

하지만 최민혁으로서는 이른 시일 내에 정리를 해야 할 일이라서 무리수를 뒀다. 단순히 이익만이 아니라 시즈벨의 가치 하락을 부추긴 덕분에 일을 쉽게 풀 수가 있었다.

‘생각보다는 쉽게 해결되었잖아?’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 때문이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도 최민혁에게는 꽤 유리하게 적용되었다.

최민혁은 물론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을 믿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은 시즈벨보다 더 믿을 수가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블루투스, 무선랜, MP3, MPEG-2, CDMA, 인공지능, 위성 특허에 이르는 광범위한 특허를 전부 최민혁 자신이 먹었다는 것까지는 인지하지 못한 결과였다.

시즈벨은 이 시기에 한창 핵심 특허를 확보해서 기반을 쌓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결과였다.

‘뭐, 좋은 게 좋잖아. 일단 시즈벨은 이 정도로 그냥 두는 것이 좋겠어. 잘만 이용하면 굿캅 배드캅 놀이 주연으로 딱이니까. 이보다는 이제 못다 한 특허 정리를 마저 하는 게 더 좋겠어.’

* * *

최민혁 실장이 시즈벨의 지분 55%를 얻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존 대주주들에게 양해와 허락을 구하는 일이었다.

여전히 주식 일부를 들고 있는 시즈벨 대주주 대부분은 최민혁 실장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이 중재해 준 까닭이었다.

그가 시즈벨 주식을 다 넘겼나 싶었지만, 차명으로 가진 지분 8%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민혁은 내심 집요한 줄리엇 로버트슨 회장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정작 놀란 것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였다.

그는 가브리엘 대표이사 사무실 자리에 앉은 채 테니스공으로 벽치기 놀이를 하면서 짐을 싸고 있는 가브리엘 대표이사를 쳐다보았다.

가브리엘 대표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눈으로 볼 필요는 없어.”

“전 별소리 안 했습니다.”

“그래도 대단해. 설마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날 잘라 버릴 줄은 몰랐어.”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번 일은 시즈벨 대주주들이 나서서 한 일이었다. 때문에 자신도 그 내막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다만 그 최종 보스가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새로운 대표이사 축하해.”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배후에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해. 설마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지?”

그도 한숨을 내쉬었다.

“최민혁 실장님이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저도 시즈벨 이사회에서 결정 났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가브리엘 대표이사만이 아니었다.

패트릭 호프만 이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치 발정기가 난 멧돼지처럼 대표 이사실에 들어와서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멱살을 잡았다.

“야, 제이미, 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감히 네가 이사회를 충동질한 거야?”

“아, 난 몰라!”

“아니, 그러면 뭔데? 왜 갑자기 내가 회사에서 잘린 거야?!!”

그랬다.

패트릭 호프만 이사 역시 갑자기 사직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은 시즈벨 이사회가 제대로 절차도 받지 않은 채 일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이 개새끼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구멍가게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자르지는 않아. 그냥 출근하고 나서 이런 통보를 받는 게 말이 돼? 더욱이 지시를 내린 사람이 없다니!!”

“…….”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역시 한동안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변호사 군단으로 도배된 시즈벨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패트릭 호프만 이사도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가 건네준 서류를 받고는 파르르 떨기만 했다는 점이다.

패트릭 호프만 이사가 기존 몇몇 계약 과정에서 불법 로비 자금을 받은 증거 서류였다.

그녀는 굳이 떠나는 마당에 괜한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는 한동안 제이미 니콜라스의 잘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최민혁 실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했다.

“시즈벨을 잘 부탁해!”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의 짐을 들어주었다.

“가시죠. 제가 마중해 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

“아뇨. 그래도 가브리엘 대표이사님의 마지막을 배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입담에 피식 웃으면서 사무실을 나섰다.

그들의 뒤에는 패트릭 호프만 이사의 함성만이 사무실을 가득 남아 있었을 뿐이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역시 한 가지 사실을 이번에 철저하게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이 뒤끝이 장난 아니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 * *

최민혁이 보유한 비디오 특허는 오큘러스 프로젝트 과정에서 10개 정도를 출원했다. 여기에 더 추가한 특허가 있기는 하지만 핵심 특허와는 거리가 멀었다.

최민혁은 당시 비디오 핵심 특허로 15가지 정도를 더 고안했다.

여기에 위성 특허 25가지가 더 있었다.

다 합쳐서 모두 50가지다.

최민혁은 이 당시만 해도 25가지 특허만을 출원했고, 나머지 25가지는 홀딩시켰다.

굳이 시대에 앞서서 사용하지도 않는 특허를 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없었다.

시즈벨의 지누스 드 상티스 이사와 같은 인물이 얼마든지 탐욕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미쓰비시의 특허를 확보하기가 무섭게 25가지 특허를 추가로 출원시켰다.

사실 이 특허가 오히려 미쓰비시 특허와 비교하면 핵심 특허에 가까웠다.

다시 말해서 미쓰비시에서 매각하지 않은 특허가 핵심 특허란 의미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이런 부분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지시에만 집중했다.

이제는 시즈벨로 옮긴 이상 이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쓰시타와 도시바 MPEG-2 특허라면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쪽은 미쓰비시와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일본의 맹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해독이나 암호화 관련 특허만 해도 폐쇄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이쪽 엔지니어는 일본 대기업의 태도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마쓰시타나 도시바 이사회는 이런 실무진들의 불만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이 기술의 가치에 대해서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역시 이 기술이 앞으로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확신하지는 못했다.

단적인 예가 바로 오큘러스 프로젝트의 로열티 규모였다.

이 위성 기술에 사용된 원천기술은 여러 가지였지만 정작 로열티 수익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는 MPEG-2 원천기술 역시 다르지 않았다.

Encoder, Decoder에 사용되는 로열티라고 해봐야 고작 0.25달러 남짓이다. 이것도 수량 베이스로 수십만 개 이상 나가야 가능하다.

그런데 과연 이 MPEG-2 특허를 다 모은다고 해서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코다 도시히로 이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제안을 받아서 시즈벨 일본 지사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이게 과연 돈이 될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시즈벨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시즈벨이 지금까지 보인 행보를 본다면 이 특허를 이용해서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얼마든지 돈을 뜯어낼 수 있다고 봤다.

그건 일본 대기업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로선 마쓰시타나 도시바 임직원들의 생각이 다르지 않겠느냐고 봤다. 둘 다 서로 공감대가 같으니 말이다.

그는 때문에 무려 천만 달러,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이 추가한 이천만 달러 가치의 무기명 채권을 들고서는 마쓰시타와 도시바 임원을 만나러 다녔다.

“아, 게임기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이 특허를 사용해서 족쇄를 걸고넘어지는 겁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시즈벨이 이런 쪽으로 명성이 자자한 것 말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마쓰시타나 도시바 임직원들은 코다 도시히로 이사의 제안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것은 다르지 않았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넌지시 자신이 하는 일을 적당히 설명했다.

“아직도 절 의심하는 것 같은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OEM PC, TV, 인터넷 쪽에서 일부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다만 가입자가 기준입니다. 십만, 이십오만, 오십만, 백만 이런 식이 될 겁니다.”

각 사용자 대비 할당할 수 있는 로열티는 대략 25,000달러~100,000달러 규모였다. 글로벌적인 수요를 감안하면 더 큰 수가 될 것이다.

다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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