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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44화 (744/1,021)

#744.

저전력 웨이크업 기능은 모바일 시스템에 적용하려면 꼭 필요한 기능이었다.

IP 시티폰에서는 당연히 이런 기능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덫으로 빼놓은 건데, 그것참.’

“하.”

최민혁은 한동안 예상을 벗어난 일에 충격을 받아서 입을 열지 못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조용히 침묵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설마 시즈벨을 부추겼을지는 몰랐다.

‘아니, 그게 맞겠지.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가 양아치는 아니라고 했으니까. 오히려 시즈벨 이사회가 협박했다는 쪽이 더 말이 되겠지.’

“조 팀장님, 계약서를 확인해 보세요.”

“네.”

조성돈 팀장은 시즈벨과 한 계약서를 꺼내서 다시 하나씩 살폈다.

“계약 조건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계약을 뒤틀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최민혁은 위약금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시즈벨이 아무리 현금이 많은 기업이라도 이 정도 위약금을 무는 건 그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신뢰를 잃어버릴 일은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 가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즈벨의 동기도 알았고,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의도도 알았다.

그런데 둘 사이의 연결 고리가 보이지 않았다.

“둘이 갑자기 친해질 수가 없는데,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네요.”

조성돈 팀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시즈벨 소유주라면 어떨까요? 그쪽이라면 모건 스탠리 쪽과 연결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맞아요!”

최민혁은 그제야 앞뒤가 다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라면 시즈벨 오너 측과 연락해서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를 만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뒤통수를 치려고 말이다.

‘모토롤라 협상에 시즈벨이 나섰다는 것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 정도면 알 수 있는 정보지. 시즈벨 오너를 통해서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 측을 설득할 수도 있잖아. 뭐, 거기에 협박까지 더한다면 딱 나쁘지 않지. 안 그래도 무선랜 원천특허도 나에게 뒤통수를 맞은 상황이었으니.’

그렇다고 해도 결과까지 인정하지는 않았다.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요.”

조성돈 팀장은 푸념을 털어놓는 최민혁 입만 쳐다보았다. 그는 새삼 감탄 어린 눈빛으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최민혁의 감이 아니었다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최악의 경우 MPEG-2 원천특허와 관련된 정보가 마이크 라이언 이사에게 다 넘어갔을 수가 있다. 만약 그가 이 정보를 얻었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껏 조용한 것을 봐서는 계약 때문에 MPEG-2 특허는 다 넘기지 않은 것 같아. 다만 무선랜 사이드 특허는 계약과는 좀 다르니까.’

이제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혹시 시즈벨 지분 내역 조사한 것은… 여기 있군요.”

그는 시즈벨 지분을 소유한 오너에 대해서 살피다가 곧 덮고 말았다.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기억에서는 없는 내용이었다.

“으음, 이렇게 하죠. 일본 일은 조성돈 팀장님이 한번 처리해 보세요. 시즈벨 지분 소유주를 한번 확인해 보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지분 확인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지분 인수까지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가 인수합병 전문가는 아니었다.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겁니다. 정 안 되면 미국 전문 로펌 쪽과 계약을 해보세요.”

조성돈 팀장 최민혁 이야기를 알아듣기는 했지만 한 가지를 지적했다.

“시즈벨에서 만약 사실을 안다면 문제 삼지 않을까요?”

“그러니 지금 당장은 시즈벨 눈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죠. 이번 일은 보안과 인내가 중요한 일입니다. 조성돈 팀장님의 전문 영역 아닙니까?”

그는 자신의 성정을 이용하는 최민혁 실장 지시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아뇨. 가능한 한 서둘러 주세요.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야 바로 손을 쓸 수 있습니다. 지금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는 시즈벨 일은 이 정도에서 끝냈다. 시즈벨 지분을 최대한 확보한다면 뒤통수에 대한 보험으로 딱 괜찮을 것이라 봤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어.’

최민혁 실장은 자리에 앉자 시즈벨을 통해서 확보한 MPEG-2 원천특허와 무선랜 특허를 하나씩 살폈다. 이번 일은 시즈벨이 내부적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치려고 할 정도로 괜찮은 내용이었다.

‘…이거 확실히 그냥 둘 수가 없겠어.’

아무리 다른 일이 바빠도 확실히 짚고 넘어갈 일이었다.

특히 기존에 작업한 무선랜 특허에서 핵심 특허라 할 수 있는 전송 관련 부분 특허를 추가하고, 좀 더 보완하기 시작했다.

칼텍이 만든 특허에서 몇 단계 더 발전된 특허였다.

‘후후후, 이건 소송을 하더라도 이심에서 이길 수가 없지. 이제 남은 것은 시즈벨 지분이 문제인가. 그런데 시즈벨 오너는 대체 누구지?’

* * *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자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시즈벨 내에서 가장 우군이랄 수 있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찾아가서 시즈벨 지분을 소유한 오너의 정보를 얻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겁니까?”

“으음, 이유를 말해야 합니까?”

“꼭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조 팀장님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서요.”

조성돈 팀장은 집착을 부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집요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은 그만큼 이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제이미 니콜라스 처지에서는 살짝 걱정되었다.

조성돈 팀장은 고민한 끝에 최민혁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민혁 실장은 스피커폰으로 돌리라고 말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는 제이미 이사님은 믿습니다!]

[네? 그게 무슨…….]

[제이미 이사님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킬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자세한 대답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조 팀장님, 그 사진을 보여주세요.]

조성돈 팀장이 내놓은 것은 가브리엘 아담스와 마이크 라이언의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사진과 대화 녹취 내용이었다.

[…마이크 이사님, 너무 과한 요구를 계속하시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일이 모건 스탠리 쪽의 투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관련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잘 보면, 시선을 한쪽으로 돌린 후에 따로 일 처리를 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도 우리 공매도를 막을 히든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허, 몇 번이나 말했는데, 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지금 미쓰비시에서 사들인 MPEG-2 특허는 에플과는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아니죠. MPEG-2 원천특허는 모바일에 적용 가능합니다. 즉 핸드폰에도 쓸 수 있는 기술이란 말입니다.]

[정말 몇 번이나 설명했는데, 이해를 전혀 못 하시는 군요. 원천특허가 있다고 해도 당장 상용화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까? KM 전자에는 우수한 인력이 제법 많습니다. 그들을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상용화가 가능할 겁니다. 정 안 되면 오성 전자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설마 오성 전자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건 너무 나간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에플 공매도와 이게 무슨 관련이 있다고 이렇게 집요하게 매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절 협박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협박이라? 과연 그럴까요. 무선랜 원천특허에 욕심을 부린 것은 시즈벨이었습니다. 그건 저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그 내막을 알았다면 과연 조용히 있을까요?]

[지금 절 협박하는 겁니까?!!]

[이건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제가 지누스 드 상티스 이사님을 통해서 어렵게 연락을 한 것은 다 서로 좋자고 하는 일입니다. 이대로 최민혁 실장에게 끌려다니기만 할 겁니까? 솔직히 시즈벨 이사회에서도 불만이 많지 않습니까? 그들은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님을 끌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이게 다 그 일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도 압박을 받아서 이번 일에 나서기는 했다. 하지만 그녀도 무선랜이나 MPEG-2 특허에 관심을 떨치지 못했다.

정확히는 욕심을 말이다.

특히 이번 일은 주도적으로 진행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였다.

사실 최민혁 실장만 없었다면 MPEG-2 미쓰비시 원천 특허는 자신들이 먹어야 했다.

“…….”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로서는 두 사람의 대화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이사는 절대로 저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조성돈 팀장이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위로해 주었다.

“시즈벨 이사회가 문제가 되었을 겁니다.”

“아마 지누스 드 상티스 이사가 손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최민혁은 스피커폰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지누스 드 상티스 이사는 누구죠?”

전혀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전혀 예상 못 한 일이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눈치가 빨라서인지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잘 알았다. 그는 설마 최민혁 실장이 벌써 손을 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누스 드 상티스 이사는 시즈벨 지분 40%를 소유한 실소유주입니다. 애초에 MP3 특허를 매입하기 시작한 것도 지누스 이사의 입김이 작용했으니까요.]

사실 처음에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과거 지누스 이사의 지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MP3 플레이어가 시작에 나오기 시작한 후에야 깨달았다.

결국 MP3 특허는 단순히 이 특허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었다.

멀티미디어 관련 특허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은 모바일을 비롯한 핸드폰 역시 포함한다.

MPEG-2 원천특허는 이런 연장선에 있었다.

그도 아직 긴가민가한 이유는 MPEG-2 원천특허를 핸드폰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지금까지는 그저 그랬는데, MP3 특허풀 수익이 나오고 나서는 시즈벨 내부 분위기가 달라졌으니까.’

조성돈 팀장은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조언을 듣고는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지누스 드 상티스 관련 정보는 보험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 진지하게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당장 큰일은 없을 겁니다.”

“…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최민혁 실장과 만나면서 자주 본 적이 있는 조성돈 팀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당시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도 조금은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았다.

당장 무리수를 두진 않을 것 같지만 일 처리 방식을 봐서는 그렇게 보이지도 않았다.

‘하긴 아깝기는 하지.’

그 역시 자신이 넘긴 MPEG-2 항목 리스트를 떠올리면서 입맛을 다셨다. 이는 분명 최민혁 실장의 지시에 따라서 나온 결과였다.

그런데 막상 그 자신조차 MPEG-2에 대한 탐욕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최민혁 역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탓하지 않았다.

[이번 일은 제이미 이사님과는 무관하게 진행될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극단적인 조처를 하지 않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조성돈 팀장은 그런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눈빛을 보면서 혀를 찼다.

‘확실히 최민혁 실장님 안목이 보통이 아니야.’

하지만 그로서도 확보한 MPEG-2 리스트를 확인하면서 이 일을 안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누스 드 상티스 이사부터 파야겠어.’

* * *

지누스 드 상티스 이사에 대한 정보는 외부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얼핏 봐서는 쉽게 일이 진행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은 의외로 싱겁게 결론이 났다.

시즈벨의 경영 상황이 좋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시즈벨 매출은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영역에서 큰 폭으로 발생했다. 시즈벨 기준에서도 수익이 제법 많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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