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40화 (740/1,021)

#740.

미쓰비시가 나름 MPEG-2 표준화 작업에 참여해서 미래 가치를 안다고 해도 명확하게 언제 가치가 폭증한다라고는 확정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쓰비시 내부가 구조조정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말이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의 최측근 스즈키 타로 부장은 갑작스러운 코다 도시히로 이사의 말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즈벨에 대해서 조사했고, KM 전자와 최근 계약까지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모토롤라와 미래 기술 사이의 계약 말이다.

하지만 스즈키 타로 부장은 최민혁 실장의 배후설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최민혁 실장은 지금 뉴욕 부동산 매입에 미쳐 있습니다. 굳이 이 일까지 끼어들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굳이 따로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 행보를 둘러싼 이야기는 미국 언론에서도 연일 난리였다.

[KM 전자의 뉴욕 침공!]

좀 과장된 이야기가 파다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의 행보는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처럼 미친 듯이 740번지 부동산을 사들인 사례는 없었다.

더욱이 이전 부동산 소유자들이 자기 부동산을 팔았다는 것도 특이했다.

이들이 돈이 아쉬워서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매각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 딜이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다.

[벨린 투자의 740 펀드!]

그리고 740 펀드에 관한 이야기도 무성했다.

이제까지 벨린 투자가 한 투자 방식은 실로 독특했기 때문이다.

소문은 시간이 갈수록 무성해졌고, 결국 도마에 오른 곳은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였다. 에플 공매도 역시 말이 나왔고 말이다.

스즈키 타로 부장은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하나씩 지적했다.

“최민혁 실장이 지금 집중하는 것은 미국 부동산과 IT 주식입니다. 굳이 우리 일본 대기업 주식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일본의 내수 경제 침체에 따른 일본 대기업의 몰락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그제야 안도했다. 그는 혹시나 이 일에 최민혁 실장이 엮여 있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었다.

그래도 문제는 문제였다.

MPEG-2 관련 특허 매각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이 특허를 매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윗선에서 봤을 때 문제가 없도록 알아서 매각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스즈키 타로 부장 역시 이 지시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바로 미쓰비시 사내에 돌고 있는 대규모 정리 해고설 때문이다.

이미 몇 차례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정리해고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번 정리해고는 덩치가 제법 컸다.

그 잘나가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사업부 역시 포함하기 때문이다.

“…코다 이사님, 이런 말을 해서 그렇지만 사내 소문이 뒤숭숭합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의 안색이 바위처럼 굳었다. 그는 이미 이전의 구조조정 때문에 많은 측근이 갈려 나간 덕분에 원망을 많이 들었다.

“알아.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어쩔 수가 없잖아. 적자가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니까.”

“그렇다고 해도 인력을 강제로 구조조정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회사가 살기 위해서 인력을 줄이는데, 이대로 그냥 당하기만 할 생각입니까?!”

이건 단순히 스즈키 타로 부장의 의견이 아니었다.

그만 바라보는 마츠무라 히로유시 과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다 같은 주장을 펼쳤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즈키 타로 부장의 목소리는 더 올라갔다.

“아니, 심지어 자동화 사업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관련 사업부가 다 정리되면, 특허 사업부 역시 굳이 지금처럼 많은 인력이 필요 없습니다. 이 사업부는 수익성이 좋은데도 극단적인 조처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대로 당하기만 하란 말씀입니까?!”

“…마츠무라 과장을 비롯한 실무진을 한번 불러봐.”

“알겠습니다!”

* * *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중회의실에서 결국 갈등 끝에 마츠무라 히로유시 과장과 이야기를 해봤다.

그런데 마츠무라 히로유시 과장은 이미 미쓰비시에 돌고 있는 구조조정설이 단순한 설이 아니라는 정보까지 가지고 있었다.

미쓰비시 본사에 있는 동기를 통해서 정보를 사전에 얻은 것이었다.

마츠무라 히로유시 과장은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단단히 각오한 얼굴이었다.

“…솔직히 전 이미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런데 설마 부장님이 그런 제안을 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스즈키 타로 부장이 중간에 끼어서 마츠무라 히로유시 과장을 질책했다.

“마츠무라 과장,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딴 소리를 해?!”

하지만 마츠무라 히로유시 과장은 다른 실무진들의 대표인 것처럼 나섰다.

“요즘 우리 회사가 얼마나 잔혹한지는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봐 마츠무라!”

“아, 그만하십시오. 전 솔직히 이야기를 듣고 싶은 심정이 아니니까. 이 자리에 나선 것도 다른 이들을 대변해서입니다. 현실을 좀 깨달으십시오!”

코다 도시히로 이사도 처음에는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이게 미쓰비시의 현실이었다.

그는 스즈키 타로 부장을 막은 후에 현실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즈벨이란 회사는 어때?”

갑자기 나온 시즈벨 이야기에 다들 어리둥절했다.

마츠무라 히로유시 과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는 이 회사 이름이 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쪽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해왔어. 물론 나 혼자 갈 생각은 없어. 아마 다 같이 일본 시즈벨 지사 쪽으로 자리를 옮기겠지.”

“…….”

그제야 분위기가 바뀌었다.

뒤늦게야 코다 도시히로 이사가 한 말의 의미를 다들 깨달은 것이었다.

마츠무라 히로유시 과장은 이직 가능한 회사를 알아봤다. 그중에는 시즈벨도 있었다. 최근 일본 인력을 대거 뽑는 채용 공고를 본 것이었다.

“시즈벨이라면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원천특허를 꽤 보유한 회사 아닙니까. 그것만으로도 회사는 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시즈벨 일본 지사는 최근 일본 대기업의 원천기술을 다수 확보한 회사입니다.”

확실히 시즈벨 일본 지사는 꽤 매력적인 직장이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일본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분위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일본 대기업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이전처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수요가 넘쳐난다는 뜻이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가 그 분위기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술잔을 한 번 기울인 후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히타치 공작소의 IPS 특허 강탈 사건 때문에 난리가 났잖아.”

KM 전자가 먼저 특허를 발표한 일이 일본에서는 강탈 사건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일을 두고 딱히 바뀌는 것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슈도 오래가지 않았다.

일본 대기업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계속 소비세 인상과 같은 수탈에만 관심이 있지 일본 대기업 내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츠무라 히로유시 과장은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다가 격하게 소리쳤다.

“코다 이사님, 지금은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까지 미쓰비시만 쳐다봐야 합니까. 각자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시즈벨이 아니라 시렁벨이라도 저에게 일자리를 준다고 하면 그쪽에 충성을 다할 겁니다!”

마츠무라 과장의 격한 반응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다른 이들도 한숨을 내쉬었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차마 그들을 타박하지 못했다.

“그래, 그렇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여기 있는 사람들만의 비밀이야. 어차피 자네들 밥그릇이 달린 문제이니, 배신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미리 당부하는 걸세.”

“…네.”

반발은 없었다.

* * *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스즈키 부장이 자기 제안을 받자 굳이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는 내부적으로 할 일을 전부 끝내놓은 후에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다시 만나서 오케이라고 답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그 자리에서 500만 달러 상당의 무기명 채권을 내놓았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는 500만 달러 가치의 무기명 증권을 가지고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윗선에 로비를 시작했다.

물론 MPEG-2 관련 특허 매각도 포함해서 말이다.

당연히 딱 찍어서 이 특허만 언급하지 않았다.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멀티미디어 관련 사업부를 하나 만들고, MPEG-2 관련 특허를 이 법인에 다 매각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특허를 포함해서 미래 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을 언급했다.

아마 미쓰비시가 2년 전이었다면 이 보고서 자체는 윗선에 보고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중간에 관련 임원이 태클을 걸면, 성립될 사안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미쓰비시 내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임원진이 갈려 나갔다. 그들과 관련이 있는 실무진 역시 빼놓기 어렵다.

이들 중에 그냥 길바닥으로 내쫓긴 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윗선의 인정을 받은 이들은 관련 계열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것도 힘든 이들은 아예 법인을 하나 설립해서 나갔다.

미쓰비시 측도 이들을 무작정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니 말이다.

일테면 괜찮은 기술 몇 가지를 넘겼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가 한 일은 이런 방식을 따른 것이었다.

특히 코다 도시히로 이사가 아는 몇몇 미쓰비시 임원에게 뇌물을 준 덕분에 더 쉽게 계획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는 뇌물이 통할 만한 이들에게 뇌물을 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빛을 발했다.

다만 완전히 통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남아 있는 미쓰비시 임원들이 몸을 사린다고 해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었다.

예민한 MPEG-2 특허, 특히 다른 사업과 관련이 있는 특허는 넘기기 어려웠다. 당장 위성 산업에서 써먹을 수 있는 특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핵심 특허 몇 가지를 제외한 대략 36%에 가까운 특허를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

시즈벨이 한 일은 바로 이 법인을 1,000만 달러에 다시 사들이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MPEG-2 외에 불필요한 특허까지 다 포함한 것이었다.

MPEG-2 특허만을 매각하다가 문제 될 것을 염려해서 더미 특허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우영민 부장이 다시 이 법인을 시즈벨에서 1,3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최민혁 실장에게 이와 관련된 사실을 보고했다.

“…요구하신 핵심 특허 몇몇을 사들이는 데 실패했습니다. 다만 미래 기술 지분 문제는 이번 일에 넣지 않았습니다. 괜히 시선을 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네요.”

최민혁 실장은 자세한 과정보다는 1,300만 달러에 36%에 가까운 MPEG-2 특허를 사들였다는 사실에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가 이미 보유한 특허와 최근 추가한 것까지 합치면 50%는 족히 넘었기 때문이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죄송합니다.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로비로 들어간 자금까지 합치면 2,000만 달러 가까이 소진했습니다.”

“으음.”

여전히 최민혁 실장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좋아서 죽을 것 같지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자신의 속내를 알면 수수료를 더 요구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한 번 웃는 것으로 천만 달러씩을 더 내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이보다 이런 결과가 잘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상식으로 미쓰비시 직원이 MPEG-2 특허를 내놓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역시 타이밍이 좋았겠지. 이 시기가 아니었다면 이런 제안은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거야.’

“아, 코다 도시히로 이사와 그 측근은 시즈벨 일본 지시에서 받았다면서요?”

“네.”

몇 번의 매각.

최종적으로 법인은 산산조각 났다.

코다 도시히로 이사 일행은 그사이에 시즈벨 일본 지사로 냉큼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그는 혀를 내둘렀다. 설마 미쓰비시 직원이 미쓰비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일본 대기업에 충성하는 일본 직원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 역시 그 점을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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