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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37화 (737/1,021)

#737.

다름 아닌 최문경 부회장이었다. 그는 권재홍 비서실장을 불러 기획 조정실의 박재광 과장에 대한 처리부터 우선 확인했다.

“박 과장, 그 친구는 어때?”

권재홍 비서실장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쪽 아버지 섬유 공장 때문에 일단 제 말을 따를 겁니다.”

“지금 5억을 넘겼지? 그 돈만으로는 힘들지 않아?”

“아예 불가능합니다. 사실 돈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영업입니다. 그쪽을 제가 잡고 있는 이상 배신하기 힘들 겁니다.”

“은행에 대출받을 수도 있잖아?”

“그 어떤 은행도 개인에게 그렇게 큰 대출을 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사내 대출을 받으려면 제 허락을 받아야 할 겁니다.”

“좋네. 너무 박 과장 그 친구를 무리하게 벼랑 끝으로 몰지는 마.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금처럼 정보만 얻도록 해봐.”

“…알겠습니다.”

“우리 회장님에게 방문하겠다고 연락해!”

“네.”

* * *

최문경 부회장은 박재광 과장이 꽤 매력적인 첩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박재광 과장을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하면서 최용욱 회장을 찾아갔다.

“아버지, 이거 보셨어요?”

“…안다.”

최용욱 회장 역시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이미 2조 6천억 사건으로 골치가 아팠다. 그런데 그 이슈가 제대로 가라앉기도 전에 펜트하우스 사건이 터져서 머리가 아팠다.

‘가만, 아니잖아. 벨린 투자 이익금을 이용했다고 했으니.’

2조 6천억과 이번 펜트하우스 매입은 전혀 다른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조차 같은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착각했다.

즉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여기도록 조작했다고 봐야 했다.

‘설마 민혁이 이 녀석이 의도한 것일까?’

처음에는 최민혁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자기 앞에서 최민혁을 맹비난하기 시작한 최문경 부회장을 보자 알 것 같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질투심에 집착해서 완전히 광인처럼 보였다.

자신을 상대로 삿대질까지 할 정도였으니.

“아버지, 이번에는 민혁이 이놈을 옹호하실 겁니까? 부동산 투자? 하, 이걸 어떻게 투자라고 보는 겁니까? 이건 방종입니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펑펑 쓰는 겁니다!”

정확히는 틀린 표현이었다.

이번 투자 대부분은 최민혁 실장이 자기 자본으로 한 것이니 말이다.

최용욱 회장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이 저렇게 설치는 것을 보고서야 손자 최민혁의 의도가 이미 성공했다고 확신했다. 최소한 최문경 부회장에 대한 신뢰도가 당장 떨어졌으니 말이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이 딱해서 화도 내지 않았다.

“문경아.”

“아버지, 정말 이걸 그냥 내버려 둘 겁니까! 이건 진짜 아닌 겁니다. 그놈의 공정은 왜 민혁이 이놈에게만 잣대가 다른 겁니까?!!”

“최 부회장!”

격한 최용욱 회장의 반발.

평소라면 최문경 부회장도 듣는 척이라도 할 텐데, 한껏 흥분해서인지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최용욱 회장의 말을 아예 무시했다.

“아니, 민혁 이놈이 이제는 해야 할 경영은 하지 않고, 땅이나 건물 장사나 하고 있단 말입니다. 설마 이것마저 옹호할 겁니까?!”

“최문경!!!”

최문경 부회장은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미친 듯이 자기 의견을 분출하다가 최용욱 회장의 차가운 눈빛을 접하자 움찔 몸을 떨었다.

그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최용욱 회장은 기가 막혀서 한동안 최문경 부회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못난 놈!”

“하, 아버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 정신 나간 놈아, 아직도 모르겠냐?!!”

“아니, 뭘 말하는 겁니까? 아버지 치매라도 온 겁니까. 도대체 제 말을 왜 그렇게 듣지 않는 겁니까?!!!”

핏대를 내세우던 최문경 부회장은 냉랭한 최용욱 회장 표정을 보자 그제야 움찔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다 최민혁 실장의 꼼수라는 것도 말이다.

그는 그제야 권재홍 비서실장이 자신의 오른팔을 잡고 강하게 말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갑게 굳어 있는 최용욱 회장 표정은 덤이고 말이다.

뒤늦게야 자신이 최용욱 회장을 상대로 한 폭언도 떠올렸다.

‘씨발!!!’

하지만 다행히 최용욱 회장이 장남 최문경 부회장이 한 말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쯧쯧쯧, 이놈아, 도대체 왜 그런 거냐. 민혁이 그 녀석에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어. 왜 그 녀석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렇게 미친놈처럼 날뛰는 거야?!!”

“…죄송합니다.”

“내가 사과받자고 하는 말이 아니잖아. 네놈의 경영 평가도 나쁘지 않아. KM 산업의 지난 성적이 그 증거이니까. 누가 뭐래도 KM 그룹 부회장은 너다. 그런데 민혁이 이름만 나오면 흥분해서 그렇게 길길이 날뛰어서 점수를 깎아 먹어!”

“…과했습니다.”

그런데 최용욱 회장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그간 최문경 부회장이 보수적으로 움직인 덕분에 임직원들은 주도권을 가지고 적극 나섰다.

이런 결과 덕분에 KM 산업 매출과 영업 이익률이 급증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최문경 부회장이 나서지 않는 덕분에 KM 산업은 작년에 훨훨 날았다.

최용욱 회장은 차마 그런 진실까지 다 말하지는 못했다.

“할 말이 더 있어?”

“그게… 아닙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지금 자신이 한 행동 말이다. 감정이 격해진 탓에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최영란이 지금 진행하는 일마저 말이다.

최용욱 회장은 차마 안타까워서 한 가지를 말해주었다.

“영란이, 그 녀석 보통이 아니더구나. 나도 CCD 이미지 센서 기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CMOS 이미지 센서로 방향 전환을 하면서 어느 정도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었어. 이건 결코 가볍게 볼 성과가 아니다.”

“…알, 알고 있습니다.”

“그게 다가 아냐. 여기서 뭔가 더 진행하는 것 같았으니까.”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민혁 그놈은 지금 펜트하우스 사들인다고 정신이 없을 텐데요?”

최용욱 회장은 딱하지만, 굳이 자신이 아는 정보까지 언급할 생각이 없었다.

“나머지는 네놈이 알아봐.”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착잡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늦게라도 아니, 다행이다. 그걸 아는 놈이 고작 민혁 그놈이 얻은 고가의 펜트하우스 소식을 가지고 이렇게 달려들어?!!”

“…….”

최문경 부회장은 차마 더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최용욱 회장의 잔소리를 더 듣고 나서야 서재를 가까스로 나올 수 있었다.

최용욱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렇게 야심많고, 신중하기만 하던 장남이 왜 저 모양이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민혁이 때문이라는 것은 알아. 그래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 역시 채윤집 집사가 파악한 파크 애비뉴 건물 소유주와 목차를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라고 해도 저 건물을 매입하기가 어려웠다.

채윤집 집사 역시 평소 보이지 않던 감탄사를 터뜨렸다.

“도련님 능력에 대해서 이제 보니 저도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자네가 그런 말을 다 하다니, 별일이야.”

“단순히 이 파크 애비뉴 펜트하우스를 매입한 것 때문이 아닙니다. 건물 소유주 중에는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같은 인물도 있습니다. 이건 아예 작정하고 노린 거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일로 최문경 부회장 속을 저렇게 뒤집는 능력 말하는 겁니다.”

“줄리엇 로버트슨이라, 확실히 민혁이 그놈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문경이 그놈은 계속 삽질만 하는 중이니.”

“네, 이건 다시 확인 중입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봐도 영란이 그 녀석을 도와줄 의도였을 거야. 아마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겠지.”

“그러게 말입니다.”

두 사람은 TV 화면에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최민혁 실장의 펜트하우스 모으기 취미 뉴스를 보면서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뉴스 화면에 나온 장면은 740번지 건물을 3D로 표현해서 그것을 최민혁 실장이 가방에 다 집어넣는 그림이었다.

뉴스 역시 이번 사건이 얼마나 특이한지 계속 최민혁 실장을 조명하기에 바빴다.

[이번에 건물 매각자 중에는 헤지펀드로 명성이 자자한 타이거 펀드의 줄리엇 로버트슨 같은 인물도 포함됩니다. 이들이 굳이 최민혁 실장에게 펜트하우스를 넘긴 것은 뭔가 서로 공감대가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심지어 펜트하우스의 전주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거론하면서 말이다.

이번 일에 어지간한 미국인 억만장자들이 알게 모르게 다 엮여 있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 역시 의문이 많았지만, 굳이 최민혁에게 전화 걸지 않았다.

‘어쩌면 저것도 하나의 포석일지 모르겠구나.’

* * *

줄리엇 로버트슨이 굳이 최민혁 제안을 받은 것은 큰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 역시 최민혁의 이름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기에 한 번쯤 서로 안면을 트고 싶어서일 뿐이다.

실제로 거래는 대리인 통해서 진행되었을 뿐,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두 사람을 얼굴을 맞대지는 못했다.

대신에 줄리엇 로버트슨은 자신의 아내 명의로 해서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최민혁은 쿨하게 이 제안을 받았다.

“거래 감사합니다.”

그 역시 지금 당장은 헤지펀드의 양대 큰손 중의 하나인 줄리엇 로버트슨과 공감대를 만들어둬서 나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 은근히 밀당을 하면서 먼저 나서지는 않았다.

최민혁 역시 뒤늦게 큰 맥락을 짚은 결과를 확인하고는 만족했다.

“이거 좋네요. 아, 우리 부회장님은 어때요? 설마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미친 듯이 항의한 겁니까?”

“…네. 다만 최용욱 회장님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고받았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말하면서도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최문경 부회장도 바보가 아니라면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최 실장님이 의도한 대로 했다는 말은 그만큼 분노했다는 거지.’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 재미없네요. 우리 할아버지도 신념 하나는 변함이 없어요. 뭐, 그 정도면 의도한 대로 되었다고 봐야겠군요. 다른 안건을 말해보세요.”

조성돈 팀장은 우영민 부장과 검토한 내용을 하나씩 말해주었다.

“생각보다는 벨린 투자에 호감을 느낀 인물이 많았습니다. 타이거 펀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아마 우리 쪽 투자 정보를 알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이 우리의 영원한 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조성돈 팀장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헤지펀드 쪽과도 손을 잡을 생각입니까?”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아군이 될 수도 있죠. 그들을 이용하면 앞으로 일을 풀어가기에도 많은 점에서 유리할 겁니다. 당장 구골이나 KMBOOK이 좋은 예죠.”

“시즈벨처럼 말이군요.”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인생 2회 차를 살고 있는 덕분에 앞으로 일어날 큰 맥락은 다 안다. 비록 디테일한 부분은 자신이 한 일 때문에 바뀌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네, 앞으로 투자를 위해서라도 꼭 그들과 잘 지낼 필요가 있어요.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적당한 선에서 이익을 만들어주면 나쁠 것도 없죠.”

“…명단을 다시 검토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너무 작은 이익에 집착해서 큰 이익을 놓치면 안 됩니다. 고작 몇천만 달러에 매달릴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뢰니까요.”

“…네.”

조성돈 팀장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최민혁 실장은 지금 뉴욕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 옥상에서 선팅을 즐기면서 주스를 홀짝이고 있었다.

미모의 마사지사에게서 마사지를 받으며 말이다.

조성돈 팀장은 꼭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보고해야 하나 싶었다. 사실 그의 성격상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그 어떤 불만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최민혁 실장의 능력과 안목은 진짜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펜트하우스 협상 과정에서 조성돈 팀장조차 말로만 들어봤던 거물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최민혁 실장님은 우리와는 사는 세계가 다른 걸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우영민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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