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6.
조성돈 팀장은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최문경 부회장 쪽이 침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최민혁 실장에게 보고했다.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박재광 과장 일은 장 실장이 사전에 알았으니,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지는 몰랐습니다.”
“우리 부회장님을 얕잡아 본 것은 맞는 것 같네요. 쉽게 포기할 양반이 아닌데 말이죠.”
최민혁은 문득 박재광 과장에 대해서 생각했다. 과장 정도 직급이면 알 만큼 아는 이다. 이제까지 회사 생활을 잘해오다가 왜 갑자기 무리수를 둔 것인지 의아했다.
한편으로 골치가 아팠다.
최문경 부회장과의 대립 과정에서 유탄을 맞은 이가 계속 늘어날까 말이다.
하지만 그는 곧 부정적인 생각을 접었다.
자신을 믿는다면 굳이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는 이보다 최문경 부회장을 선택한 후에 KM 그룹의 미래를 떠올렸다.
전생의 기억을 말이다.
‘사소한 것은 잊어야겠지.’
최민혁은 이 정도 고민했으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꼼수가 있겠죠. 하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번 일에 대해서 한번 검토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KM 전자 내에서도 어느 정도 사실을 알아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 * *
조성돈 팀장은 박상기 차장에게 관련 자료를 보냈다.
[이번 부동산 매입과 관련해서 기획 팀에서 홍보 팀과 최종 확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박상기 차장은 요즘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콜린스 판매량이 신기하게도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최민혁 실장 이름이 뜨면서 KM 전자 브랜드가치가 커져서 벌어진 일이었다.
특히 2조 6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이익 이후에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이 콜린스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콜린스 판매 자체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철저한 품질 관리를 기준으로 한 대를 팔아도 원칙과 규칙을 지켰다.
만약 불량이 생기면 1:1 교환이 원칙이었다.
더욱이 현금 거래를 베이스로 해서 대리점 역시 콜린스 품질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생산, 유통, 판매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꽤 투명하게 다루어졌다.
그러니 콜린스 판매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급증했다는 것이 정확했다. 주문 요청도 국내만이 아니라 동남아, 중동, 유럽, 심지어 미국에서도 러브 콜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한국의 다른 유통 기업과 손을 잡고 물량을 공급한다는 점이다.
국내 생산까지는 책임지지만 해외 판매는 유통 업체에 떠넘긴 것이었다.
거래 기준은 물론 현금이었다.
그럼에도 콜린스 판매는 계속 증가했다.
KM 전자 내에 현금 유보금이 급증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건 콜린스에만 해당하지 않았다.
KMP-01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AS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나라는 AS 자체가 불가능한데도 주문이 계속 들어왔다.
박상기 차장은 이런 다양한 문제를 일일이 다 검토해야 했다.
그런 차에 들어온 요청은 실로 황당한 것이었다.
“초고가 펜트하우스라니.”
뒤늦게 조성돈 팀장에게 연락을 받은 홍보 팀 이용식 부장은 담배부터 물었다. 그는 처음에 최민혁 실장이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KM 전자 자금으로 한 일이 아니란 겁니다.”
하지만 박상기 차장은 평소와는 달리 쓰게 웃고 말았다.
“정말 그럴까요? 부동산이라면, 나쁜 투자는 아닙니다. 더욱이 장소를 보세요.”
그가 보여준 것은 파크 애비뉴 740번지 지도였다. 거기엔 지금까지 사들인 호환 펜트하우스가 구체적으로 마크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매입한 펜트하우스 수량은 놀랍게도 무려 100채가 넘었다.
가격대는 500만 달러~8,000만 달러로 다양했다.
아니, 지금 계약이 오가는 건물 중에는 무려 1억 5천만 달러 건물도 있었다.
이용식 부장 역시 잘 안다. 하지만 그는 국내 홍보 팀 팀장답게 이 사실을 부정적으로 이용할 방법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 실장님이 2조 6천억의 투자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사들이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부정적으로 바라볼 겁니다. 최문경 부회장이라면 사치와 낭비란 점을 부추겨서 최민혁 실장님 이미지를 끌어내릴 겁니다.”
박상기 차장은 잠깐 놀랐다. 하지만 그는 자기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글쎄요. 투자로 몰고 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사 입장에서 썩 좋은 뉴스도 아니고 말입니다. 한국 자본의 뉴욕 부동산 침공과 같은 이미지가 아닐까요?”
이용식 부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최문경 부회장이 손을 쓰기 전에 먼저 움직이자는 말이군요.”
“다행히 그쪽은 아직 지켜만 보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최용욱 회장님 시선을 의식했겠죠. 그러니 이 타이밍을 노리면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용식 부장은 잠깐 고민했다. 그는 박상기 차장의 제안이 문제가 됐을 경우의 대응 방법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다시 말해서 문제가 터지기 전에 방향 자체를 한쪽으로 몬다면, 그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더욱이 스피커가 국내 언론이 아니라 미국 언론이라면 말이다.
굳이 미국 언론사를 선동할 필요가 없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이 한 투자 행보를 보면 딱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걔들이 최 실장님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국내에서는 오히려 대리 만족이 되겠지. 부정적인 이미지보다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 커.“
“괜찮네요.”
두 사람은 그제야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는 바라보는 시점이니 말이다.
한국 언론에서 아무리 투자라고 떠들어봐야 큰 의미가 없을 수는 있다.
그런데 미국 언론이 파크 애버뉴 초호환 펜트 하우스를 한국이 매입한 것을 달갑게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대상이 2조 6천억 투자 수익으로 주목을 받은 최민혁 실장이라면 말이다.
박상기 차장은 물론 조성돈 팀장이 원한 바를 충족시킨 것 같아서 내심 웃을 뿐이었다.
그는 다만 첨부된 저택의 리스트와 사진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1억 달러 저택이라니.’
* * *
조성돈 팀장은 박상기 차장에게 온 최종 보고서를 확인한 후에 최민혁 실장에게 보고했다.
최민혁 실장은 ‘시점’ 문제를 보고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으음, 이건 꽤 흥미로운 소잿거리네요. 이 정도라면 우리 최문경 부회장도 미쓰비시 쪽은 신경도 안 쓰겠네요.”
“최영란 본부장 쪽 역시 그렇게 주목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오히려 더 괜찮은 소재일 테니까요.”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 역시 최문경 부회장에게 방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기획 팀에서 잘 판단한 것이었다.
그도 최문경 부회장이라면 그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다고 확신해서 조성돈 팀장에게 이 기획안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조성돈 팀장은 우선 미국 언론에 정보를 흘렸다.
[2조 6천억의 투자 천재 최민혁 실장이 미국 740번지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먹다!]
이 기사 내용은 단순히 740번지만 지적하지 않았다.
벨린 투자에서 계속 꾸준히 매입한 빌딩과 부동산을 일일이 다 언급했다. 건물 하나하나가 다 위치가 꽤 좋은 곳이었다.
뉴욕, 실리콘 밸리를 비롯한 미국인이라면 다 아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CNN를 비롯한 미국 메이저 방송국에서도 앞다투어 내보냈다.
2조 6천억 투자 수익 이후에 나온 최민혁 실장의 최근 행보였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의 부동산 투자 방향 자체는 꽤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초호화 펜트하우스는 누구라도 관심을 둘 만한 사안이었다.
그리고 이 기사는 곧 국내 언론에도 알려졌다.
정확히는 KM 전자 홍보 팀이 국내 언론에 슬쩍 흘린 것이었다.
사실 가장 놀란 이는 다름 아닌 KM 전자 임직원이었다.
“세상에 파크 애비뉴라니.”
“정말 신기하다. 저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얻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한영 일보 역시 이 정보를 얻자 일단 사전 팩트 체크에 들어갔다.
그들은 언론사답게 이곳 주변에 대형 투자 은행이나 증권사가 많다는 것을 잘 알았다.
파크 애비뉴 자체에 양방향 도로가 있다는 점도 특이했다.
그만큼 교통이 편하고, 길이 넓게 뚫려 있다는 얘기다.
최광수 기자는 역시 상식이 많은 기자답게 이 사실을 몇 차례나 확인했다. 그는 심지어 미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서 알아봤다.
[어, 맞아. 내가 아는 친구 통해서 알아보니, 벨린 투자가 그쪽에 있는 펜트하우스를 많이 사들였어. 정확한 숫자는 나도 잘 모르겠어.]
황당한 이야기였다.
범용구 기자 역시 미국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미국 뉴욕에 있는 고가 펜트하우스에 대해서는 제법 들은 바가 있었다.
“도대체 이 건물은 어떻게 매입한 것일까요? 이거 진짜 사실일까요?”
최경진 편집장 역시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도 처음 최문경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 정확히는 벨린 투자가 한 것이 맞았다.
다만 고민스러운 것은 이 기사를 부정적으로 내보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기에는 미국 CNN를 비롯한 미국 언론에서 나온 기사가 문제였다.
그쪽은 최민혁 실장의 미국 뉴욕 침공이라고 설레발을 떨었다.
이걸 사치와 향락으로 몰고 가면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뭐, 일단 파크 애비뉴 펜트하우스에 대한 사실 기사를 우선으로 한 후에 벨린 투자가 매입한 건물을 구체적으로 체크해.”
기사 내용은 단순히 과장이 아니었다.
740 파크 애비뉴 지도를 기준으로 해서 벨린 투자가 확보한 건물을 표시하는 것이 그 기준이었다. 1,000만 달러에서 많게 2억 달러까지 하는 초호화 건물 수량은 생각보다 많았다.
한국 강남의 카페처럼 들어서 있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이제 막 소유권이 흘러간 펜트하우스도 있었다.
아직 소유권 등기가 마르기도 전이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펜트하우스 소유주가 능동적이지 않으면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거 사실 맞지?”
최광수 기자는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제가 다섯 곳을 확인해 봤는데, 맞는 것 같습니다.”
“…진짜 대단한 인간이네.”
그는 고민하다가 결국 이동수 부사장실을 찾아가서 보고부터 했다.
그런데 이동수 부사장도 최문경 부회장을 만났을 때와는 태도를 달리했다.
“그냥 남들 하는 대로 가자.”
“광고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지금 광고가 문제가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최경진 편집장은 입맛을 다시면서 부사장실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최문경 부회장도 요즘 매일 까인다는 소리가 있던데, 많이 위축되었나 봐. 하려면 좀 빨리 움직이든지, 어설프게 수동적으로 움직이니, 타이밍만 놓쳤잖아.’
* * *
[최민혁 실장의 취미는 미국 파크 애비뉴 펜트하우스 모으기인가?]
한영 일보를 시작으로 해서 나온 이 파크 애비뉴 관련 기사들은 다른 언론사에서도 마치 경쟁하듯이 내놓았다.
심지어 9시 뉴스에서도 미국 특파원이 직접 파크 애비뉴를 찾아서 최민혁 실장의 취미 활동 대상인 건물을 가상 환경에 표시했다.
마치 파크 애비뉴의 고가 펜트하우스 전체가 최민혁 실장 소유인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나마 저렴한 700만 달러 펜트하우스 안에 들어가서 그 내부를 보여주었다.
화려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전망이 아주 좋았다.
특히 건물 곳곳에 있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주목을 받았다.
뉴스에서 왜 이곳이 조명을 받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이 뉴스를 본 많은 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재벌가가 일반인의 삶과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그런 재벌가도 쉽게 얻지 못하는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무슨 레고 수집하듯이 모은 최민혁 실장의 행보가 신기했던 것이다.
이건 단순히 시기하고 질투할 수준이 아니었다.
격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아.]
다들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뉴스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기만 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