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22화 (722/1,021)

#722.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솔직히 이렇게 황당한 제안을 듣고 있는 자신이 슬프기만 했다.

그 자신이 기억하는 에플 주가는 1달러였다.

지금 8달러다 뭐다 하지만 다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에플의 실적이 없기 때문이다.

에플 차세대 제품에 대한 거품이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경험한 바로 제품 몇 개로 그 회사 가치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거품이 낄 때야 이 회사는 화성까지 간다는 개소리를 하지만 말이다.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가 그럼에도 화가 나는 것은 그런 것에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태 때문이다.

지금 자신은 에플 주식이 필요했다.

그것도 가능한 한 많이.

에플 주식 한 주에 13달러 제안도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리죠.”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마쿨라 이사가 자리를 떠나는 모습에도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새삼 최민혁 실장에 대한 분노를 쉽게 추스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마디도 최민혁 실장에 대한 욕설을 꺼내지 않았다.

‘씨발.’

* * *

마쿨라 이사는 굳이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책망하지 않았다.

에플 지분 블록딜 거래는 나쁘지 않았다. 더욱이 에플 공매도 플랜이 한창 진행 중인 데다 안 그래도 에플 주식 매입 목표량이 부족했으니.

다만 에플 주가가 문제였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폴 고슬링을 호출했다.

폴 고슬링은 당연히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대로는 에플 주식 목표량을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에플 공매도를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뭐, 손해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13달러 정도면 그렇게 나쁜 가격은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에플 주가를 바라보는 투자자는 에플 주식 가치가 13달러도 절대 비싸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게 모두 애니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은 꽤 매력적인 소재이니까요.”

“아직 애니 성능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잖아?”

“그게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인공 지능 상용화가 되었다는 거죠. 더욱이 애니 원천기술 보유자는 다름 아닌 KMBOOK입니다.”

KMBOOK에 대한 소문 역시 만만치 않았다. ICQ와 POWWOW 인수 후에 더욱 말이다. AOL과의 협업도 이슈였다.

AOL이 최근 KMBOOK과 MOU까지 체결했기 때문이다.

KMBOOK은 인공지능을 핵심 원천기술로 하여 자기 PR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상장되지 않은 KMBOOK은 투자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 기술을 최초로 적용한 에플 주식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폴 고슬링은 이 문제 때문에 에플 주가 매집이 더 어려웠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사실 전 이번 공매도 플랜이 예상한 대로…….”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말을 가로챘다.

“…쓸데없는 소리는 마. 중요한 것은 3달 에플 평균 주가가 4달러가 안 된다는 사실이야.”

“저도 압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고려해도 지금 에플 주가는 거품도 아니고, 초 거품입니다. 지금 에플 주식을 매집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하지만 공매도를 유지하려면 실탄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합니다.”

에플 주가를 끌어내리는 데 필요한 실탄을 말하는 것이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진지한 얼굴로 반박했다.

“지금 주식으로도 가능성은 있을 텐데?”

“물론 평범한 주식이라면 당연히 됩니다. 그런데 스티븐이 계속 가짜 뉴스를 찍어내서 다른 주식처럼 에플 주식을 취급하면 안 됩니다. 심지어 그 뉴스가 근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 CES에서 제품을 출시하니까요. 거기에 에플 CF를 찍은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이상한 소문이 많아서 확신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런데 애니 성능에 대한 것은 테일러 박사가 확인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그게 또 정확하냐 하는 건데…….”

횡설수설하는 폴 고슬링.

그 역시 이런 상황이 짜증스럽기만 했다.

뭐 하나 제대로 알려진 것은 없고, 온갖 루머와 가짜 뉴스만 기승을 부렸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평소와는 달리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직도 애니 성능 확인은 안 된 건가?”

폴 고슬링은 처음 접하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표정 변화에 움찔했다.

“그, 그 일을 책임진 이가 이지수 박사입니다. 그런데 이지수 박사는 동선이 집과 회사 딱 두 곳뿐입니다. 심지어 경호원도 붙었습니다. 어떻게 할 대안이 없습니다.”

테일러 박사의 난동극 이후에 이지수 박사에게 경호원을 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것도 무려 네 사람이나 말이다.

심지어 이지수 박사 주변은 거미줄 같은 감시 라인이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지수 박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테러범으로 몰릴 판국이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다소 당황했다. 그도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에플 주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4%에 13달러면…….”

“한화로 대략 1조 3천억입니다.”

“하면 8%에 2조 6천억이란 말이군요.”

“……네. 생각해 보면 만만한 금액이 아닙니다.”

컸다.

아무리 모건 스탠리 입장이라도 절대로 무시할 금액이 아니었다.

그는 힐끗 폴 고슬링을 쳐다보았다.

심각한 안색.

폴 고슬링 역시 이번 에플 공매도에 대해서 크게 염려하고 있었다.

당연히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갑작스러운 에플 주가의 폭등 때문이었다.

8달러 정도였다면 지금 말하는 금액의 반에 불과했다.

그 정도라면 무시할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을 진행할 수는 있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도 이번에는 그냥 독단적으로 결정하기 힘들었다. 마쿨라 이사가 여길 찾아온 것은 에플 블록딜 자금 지원 때문일 테니까.

“폴,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 건가?”

폴 고슬링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냉큼 한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이번 일은 굳이 우리가 독단적으로 진행할 일이 아닙니다. 리스크도 너무 큽니다. 그렇다면 샐로먼 브러더스 측의 도움을 얻으면 됩니다.”

“우리 4%, 그쪽 4% 말인가?”

폴 고슬링은 푸념을 하다가 다른 해결책을 곧 떠올렸다.

“네. 아니면 헤지 펀드 쪽에도 손을 벌리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아, 차라리 최민혁 실장과 지금이라도 바트화 협상을…….”

“그만! 이미 결정이 난 일이야!”

폴 고슬링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뭐, 당장은 에플 주가가 13달러 밑으로 폭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13달러 블록딜 거래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모건 스탠리 자신이 에플 주가를 폭락시키지 않으면 13달러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냉큼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비서에게 마쿨라 이사를 호출했고, 그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입을 열었다.

“마쿨라 이사님, 그러면 우리 쪽과 샐로먼 브러더스가 지원하면 블록딜로 에플 주식 8%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모 펀드나 헤지펀드 지원을 받았다고 하면, 최민혁 실장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헤지펀드’라는 말에서는 다시 고민했다. 그들은 지금 태국 바트화 사전 정지 작업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뜻밖에 태국 정부의 반응이 완고했기 때문이다.

그도 솔직히 최민혁 실장을 이 일에 끌어들일까도 생각하다가 곧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지금 최민혁 실장이 태국 바트화 작업에 끼어들면, 재주는 자신이 부리고 이익은 최민혁 실장이 다 챙겨 가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내부적으로 한번 이야기를 해봐야 합니다.”

“네.”

마쿨라 이사는 쾌재를 불렀다. 그 역시 자기 자금으로 지금 에플 주식을 매집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지원을 받으면 상황이 다르다고 확신했다.

‘만약 우리가 에플 지분 8%를 얻는다면 최민혁 실장은 32%에 불과해. 더욱이 에플 주가를 떨어뜨리면, 좀 더 매각하려고 할 거야. 그렇게만 된다면, 에플 이사회를 장악해서 스티븐을 끌어내릴 수 있어!’

마쿨라 이사 눈에는 오직 스티븐에 당한 복수라는 감정뿐이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처지에서는 에플 공매도를 이용해서 최대한 이익을 보려는 것이고.

폴 고슬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들어가는 자금 규모가 생각보다는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일단 통과될 것 같아.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난 끝이잖아. 젠장맞을. 이 무슨 도박도 아니고, 투자를 이따위로 하는 거야!’

* * *

[최민혁 실장, 에플 지분 8%를 2조 6천억에 선 마이크로시스템에 매각.]

한국 메이저 언론사에서 발표한 뉴스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뉴욕 포스트 1면에 발표된 진짜 뉴스였다.

기사 한 명을 장식하는 사진에서는 최민혁 실장과 마쿨라 이사는 서로 악수를 한 채 웃었다. 두 사람은 마치 가장 친한 친구 같았다.

사실 블록딜 거래는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나 마쿨라 이사 둘 다 이 뉴스가 알려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플 주가는 용트림을 시작했다.

이 기자 회견장에 모인 미국 기자는 미친 듯이 최민혁 실장에게 손을 들어서 질문했다.

[최 실장님, 이번 에플 지분 매각은 에플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의미입니까?!]

[이미 에플 매각은 없다고 한 스티븐 주장과는 반대되는 일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혹시 나머지 에플 주식도 매각할 생각입니까?!]

[스티븐과는 사전에 이 일을 협의해서 진행한 것입니까? 에플 이사회에서도 이 일을 알고 있는 겁니까?!!]

[혹시 에플 애니 성능이 기준보다 떨어져서 이렇게 주식을 매각한 겁니까?!]

기자들의 질문 어조는 사뭇 공격적이었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에게 반감을 품은 모습이었다.

마쿨라 이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무려 2조 6천억이란 천문학적인 자금을 동원한 것 때문에 기자들의 비웃음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는 마쿨라 이사에게 ‘잘 부탁합니다!’라고 바통을 넘긴 후에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몰려온 기자들은 최민혁 실장을 향해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뒤를 막은 것은 2m에 육박하는 흑인 경비원이었다.

기자들은 그 경호원을 밀어내면서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쳤다.

김명준 과장을 비롯한 경호원이 최종 방어선을 지켰다.

기자들은 마치 시체 더미처럼 서로 얽혀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치 좀비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만큼 이번 블록딜 거래는 의외였다.

사실 나스닥에 에플 주가가 13달러, 14달러 그러고 있지만, 이걸 현실적으로 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주가이니까.

그냥 그러다가 말겠지.

뭐 그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무려 8% 지분 가치가 13달러로 박제가 된 셈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 사실을 처음 접한 기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최민혁은 빠져나가면서 그 모습을 봤다. 그는 지금 기자 분위기는 상상도 못 했다. 다소 흥미를 보이겠지만 그 정도일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몬스터 러시처럼 달려들고 있으니.

그도 질린 표정을 한 채 이미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랐다.

물론 건물 밖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이 다시 차를 막았다.

그들은 차량을 사면에서 에워싼 채 ‘최민혁 실장’ 이름을 소리쳤다.

다행히 차는 아슬아슬하게 기자를 밀어내면서 잘 빠져나갔다.

최민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오늘 에플 주가는 어때요?”

“1, 18달러를, 아니, 지금 19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도 혀를 찼다.

에플 지분 8%가 13달러에 매각되었으니.

에플 주가가 폭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 역시 벌써 20달러 밑까지 바짝 쫓을지는 몰랐다.

“마쿨라 이사의 자금 배후에는 샐로먼 브러더스도 끼어 있죠?”

“네, 최 실장님 예측대로 최문경 부회장 자금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쪼개지기는 했지만, 최문경 부회장의 자금이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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