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
[맙소사 최민혁 실장이잖아!]
[타임지 커버 사진하고 완전 판박이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에플 주가의 터무니없는 폭등 때문이었다.
이 일의 배후에는 최민혁 실장이 있다는 것을 알음알음 알려졌다.
당시 최민혁 실장이 에플 주식을 매집할 때 가격이 1달러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에플 주가를 불과 몇 달 사이에 무려 1,300%나 끌어올렸다.
설사 실제로 실적이 없다고 해도 최민혁 실장을 가볍게 볼 수는 없었다.
이제 최민혁 실장은 에플 주가만으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으니 말이다.
* * *
최민혁은 선 마이크로시스템 임직원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면서 차량에 올랐다.
옆자리에 곧 올라탄 조성돈 팀장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마쿨라 이사가 실장님 제안대로 한다면 에플 지분을 넘기실 겁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왜요? 손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에플에서 진행하는 우리 프로젝트 성과 때문입니까?”
“KMP-02B는 그렇다고 해도 아이컴은 무시하기 힘든 아이템입니다. 거기에 MP3 관련 특허풀 계약도 그렇고요. 에플 가치는 계속해서 오를 겁니다.”
KM 전자는 가지고 있는 특허 중에 몇 가지를 에플 쪽과 맞바꾸었다. 다만 핵심 특허는 로열티를 받는 선에서 결정했다.
두 회사 다 최민혁 실장이 오너이기는 하지만 법인에 손실을 입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배임이 될 수도 있었다.
최민혁이 그걸 모르지 않았다.
“이건 최악의 가정입니다. 만약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가 손절매하면 어떻게 될까요? 에플 주식을 다 정리하고 손 떼는 거죠.”
조성돈 팀장도 곰곰이 생각한 끝에 반문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그러면 손실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글쎄요. 끝까지 가면 손실이 이론적으로 무한대에 이릅니다.”
실제로 공매도 후에 에플 주식을 매집해야 했다.
그런데 만약 에플 주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가가 계속 오르면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아야 했다.
“지금 단계에서 이번 일에 손 떼면, 제가 보기에는 손실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겁니다. 고작 한 몇천억 정도 나오겠지만 딱 거기서 끝이 아닙니까?”
“몇 천억이 고작인 수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우리와 모건 스탠리가 바라보는 눈높이가 다릅니다. 그들에게 몇천 억 손실은 고작 몇천 억 손실일 뿐이죠.”
‘뭐, 우리 최문경 부회장님은 더하죠. 그 양반이라면 중간에 손절하고도 남으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곤란했다.
그러므로 미끼가 필요하다. 그들이 탐욕을 버리지 못하게 만들 미끼가 말이다.
공매도 세력도 에플 주식이 어느 정도 수중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에플 주가가 단기에 너무 올랐다는 점이다.
‘뭐, 그래서 나도 단기 차익 실현을 하는 것이니까. 현금이 두둑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아니,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지.’
이 문제는 결국 공매도 세력이 에플 주식을 목표한 대로 챙기지 못한 것 때문에 발생했다.
만약 상황을 이대로 둔다면 이들 세력도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죠. 실탄을 충분히 확보만 할 수 있다면, 에플 주가를 25달러, 아니, 27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요.”
“계획을 그런 식으로 수정할 때 13달러 가격에 에플 주식을 매입할 수 있다는 말이군요.”
“네. 그렇게 해도 그들은 큰 손해는 안 볼 겁니다. 공매도가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말이죠.”
“하지만 공매도를 중간에 접는다면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겠군요.”
“네.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공매도를 손절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끝까지 가야죠.”
“…….”
조성돈 팀장은 한동안 침묵했다. 손실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도저히 예측조차 하기 힘들었다. 다만 나스닥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에플 주가가 갑자기 폭락한다면 말이다.
블랙 먼데이니 뭐니 난리가 날 것이다.
미국 정부가 손가락만 빨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는 한데, 그러면 에플 공매도 사태가 너무 커지지 않을까요?”
“에플 주가 폭락 말입니까? 그거야 우리 알 바가 아니죠. 샐로먼 브러더스와 모건 스탠리가 정하는 것이니까요. 생각해 보면, 블랙 먼데이같은 사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 정말 그렇겠어요.”
“…….”
조성돈 팀장은 힐끗 차를 몰고 있는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김명준 과장은 백미러로 귀를 쫑긋한 채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중이었다.
얼핏 최민혁 실장의 이야기는 너무 극적이어서 개연성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마쿨라 이사의 행동을 보면 마냥 그렇게만 볼 수는 없었다.
그는 물론 아무런 의사 표현을 하지 않고 있었다.
조성돈 팀장은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는 차마 최민혁에게 질문하지 못했다. 공매도 세력은 최민혁 실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오히려 모건 스탠리, 샐로먼 브러더스를 탓해야 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이런 식으로 상황을 풀지 않았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최민혁은 그제야 넌지시 웃었다.
“이왕 전쟁할 것이라면 우리가 만든 전쟁터에서 싸우는 게 유리합니다. 그냥 기다리다가는 오히려 반격을 당할 수가 있어요. 사실 자금 규모만 놓고 본다면 모건 스탠리 하나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한 방에 몰아서 끝내야 합니다.”
“…네.”
조성돈 팀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 말이 옳았다. 이대로 그냥 있다가는 다른 방식으로 뒤통수를 맞았을 것이다.
차라리 싸울 거면 자신들이 만든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다만 지금의 장소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이 걸렸다.
‘괜찮을까? 하긴 이 일의 시작은 공매도 세력이니, 딱히 우리에게 태클을 걸기는 어려울 것 같아. 하지만 그래도…….’
* * *
사실 과거 에플이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 스티븐은 자금 확보를 하지 못했다.
거의 모든 투자자가 스티븐 제안에 대해서 노우라고 대답했다.
에플에 처음으로 투자한 이는 다름 아닌 마쿨라 이사였다.
그는 다른 투자자와는 달리 8만 달러, 17만 달러 대출 방식으로 에플 지분 30%를 챙겼다.
당연히 이런 투자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마쿨라 이사는 2차 투자 유치를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인맥에게 부탁해서 에플을 밀어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그게 에플이라는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런 그가 스티븐을 쫓아내는 데 일조하고, 다시 스티븐에 의해 쫓겨났으니.
마쿨라 이사는 최민혁 실장과의 만남 이후에 지난 시절을 계속 돌이켰다.
그는 솔직히 에플에 대한 집착을 관뒀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에플 주가가 폭등하면서 튀어나온 인공지능 애니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아는 지인을 통해서 알아보기도 했다.
애니에 대한 사연도 어느 정도 들여다보았다.
욕심이 안 생긴다고?
물론 기술적으로 아직 미흡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가짜 CF를 통한 허위 사실도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애니 완성도는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힘들다고 해도 3~4년 후라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애니를 이용해서 에플을 넘어뜨릴 수도 있다.
굳이 에플 공매도 세력에 끼어든 것도 에플 주식을 저가에 매입할 타이밍을 찾기 위함이었다.
에플 CES 이전에는 에플 주가를 폭락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니까.
다만 에플 주가가 13달러를 돌파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에플 주식을 매입할 자금이 부족해졌으니 말이다.
마쿨라 이사는 결국 자금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모건 스탠리의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모건 스탠리 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물론 일이 터지면 모건 스탠리 내부가 정신없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그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뭔가 산만했다.
오가는 임직원들은 ‘테일러 박사’의 난동극에 대해서 떠들었다.
테일러 박사가 모건 스탠리를 찾아와서 크게 소란을 피운 것이다.
심지어 모건 스탠리 이사회 회의장에 난입해서 난동을 피웠다.
그는 이지수 박사에게 당한 분풀이를 모건 스탠리 이사회에서 한 것이다.
황당한 일이지만 모건 스탠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경비원은 테일러 박사의 정체를 알아서인지 손을 대지 못했다.
그 덕분에 창피를 본 모건 스탠리 이사들도 많았다.
모건 스탠리 임직원으로서는 실로 황당한 일이었다.
마쿨라 이사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평소와는 다르지 않았다.
그는 꽤 즐거운 표정을 한 채 마쿨라 이사를 환영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자주 좀 봤으면 합니다.”
“뭐, 지난주 파티에서 만났지 않습니까?”
“파티에서는 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했으면 합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처지에서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의 내부 사정을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가 필요한 것은 역시 사내 정보였다.
하지만 마쿨라 이사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뱀 같은 기질을 잘 알았다. 그는 딱히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믿어서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물주이니까.’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개인 자산도 제법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배후 물주다. 그들이 가진 천문학적인 자금을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아니, 지금은 그 자금의 일부가 필요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굳이 마쿨라를 선 마이크로시스템 부회장으로 올리는 데 도움을 준 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마쿨라 이사가 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테일러 박사의 난동극에 지금 표정과는 달리 내심은 짜증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최민혁 실장이 절 찾아왔습니다.”
마쿨라 이사는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았다.
딱 한마디였지만 의사 표현은 그걸로 충분했다.
“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당황한 채 다시 앉았다. 그답지 않은 태도 변화였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거의 반사적으로 나타난 반응이었다.
테일러 박사가 최근 그를 찾아와서 계속 행패를 부렸는데, 테일러 박사 가문 때문에 그의 욕을 묵묵히 들어야 했다.
그 욕설 중에 과반수를 차지하는 말이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특히 자기 여자를 강탈당한 분노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 모든 일을 이번 에플 공매도와 싸잡아서 맹비난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아무리 그라도 테일러 박사가 지랄하는 최민혁 실장의 이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동양인 이름은 들어도 까먹는데, 최민혁 실장 이름만큼은 똑똑히 기억했다.
아니, 지긋지긋했다.
마쿨라 이사는 늘 영국 신사 같은 표정을 유지하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얼굴이 구겨진 휴지처럼 변한을 보고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최 실장, 진짜 보통 인물은 아니구나.’
그가 아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저렇게 당황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말이다.
늘 웃기만 했다.
“그,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마쿨라 이사는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에플 지분 매각을 제안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하지만 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에플 주가를 막 떠올린 것이었다. 오늘 에플 주가는 무려 15달러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다만 마이크 라이언 이사도 에플 주식 물량 확보에 문제가 생겼다는 보고를 세 시간 간격으로 보고받았고, 확인도 했다.
그는 결국 에플 주식을 가진 이들에게 연락해서 물량을 확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에플 투자자는 지금 에플 사태에 신바람이 나 있어서 에플 주식을 팔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15달러, 아니, 16달러에도 말이다.
“아, 아니, 지분 몇%를 넘기겠다고 했습니까?”
“최소 4%에서 최대 15%를 제안했습니다. 매각 단가는 13달러입니다.”
“13달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