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
그는 에플에서 경험한 일의 흑막이 최민혁 실장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최민혁의 나이는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아니, 정말 흑막 맞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돈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에플 주식 40% 지분을 들고 있는 실소유주는 최민혁 실장이었다.
마쿨라 이사는 에플에 대한 집착을 관두지 못해서 에플 주식을 매집할 때를 떠올렸다. 그때 사들인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쯤 수천 억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짐작하는 일이지만 그것도 다 최민혁 실장이 한 짓 때문이다.
마쿨라 이사는 자신이 투자한 에플 미래와 에플 주식에 대한 집착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성질 같아서는 최민혁 실장의 멱살을 잡고 욕설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니, 지금 자신 앞에서 웃고 있는 최민혁 실장의 얼굴에 한 방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 실장의 뒤에 서 있는 경호원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차가운 눈빛.
자신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사실 최민혁 실장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에 기가 죽어서 큰소리 한 번 치지 못했다.
마쿨라 이사는 결국 최민혁 실장과 얽힌 지난 일을 떠올렸다. 그도 당시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직접 보고 나서도 믿지 못했다.
에플 내부 상황이 너무 정신없이 돌아가서 미처 간과한 최민혁 실장이다.
‘정말 날 쫓아낸 배후는 이 친구라고 봐야 하나?’
생각할수록 황당한 일이다.
이게 그가 굳이 약속도 없이 자신을 찾아온 최민혁 실장을 만난 이유다.
최민혁 실장은 복잡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마쿨라 이사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인생 1회 차에서는 이렇게 만남을 요청해도 만나지도 못한다.
마쿨라 이사는 자신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랑 사전 약속도 없이 전화만으로 이렇게 만났으니.
그는 새삼 현생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의 일도 좀 더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마쿨라 이사 표정을 보면서 그의 속내를 읽었다.
‘후후후.’
화가 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저렇게 멍하니 있는 것만으로 인내심에 합격점을 줘야 했다.
“지난 일은 아쉽게 생각합니다.”
“아쉽다라…….”
마쿨라 이사는 딱히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둘이 사이좋게 지내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자신은 선 마이크로시스템의 부회장이었다.
굳이 에플에서 있었던 악몽을 굳이 꺼내서 최민혁 실장과 겉으로 척을 질 이유는 없다. 그러니 표면상으로라도 웃어야 했다.
그러니 분위기는 당연히 어색했다.
최민혁은 느긋하게 승자의 즐거움을 누렸지만 마쿨라 이사는 패자의 자세를 깨달아야 했다.
그는 괴이한 마쿨라 이사의 웃음에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마쿨라 이사는 과거 에플 자본금 유치부터 시작해서 에플의 터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는 스티븐과 손을 잡고 에플을 초고속도로 성장시켰다.
IPO의 성공적인 런칭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럼으로써 수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스티븐이 기업계의 록 스타가 되었을 때, 마쿨라 이사 역시 스티븐 매니저로 명성을 누렸다.
그런데 과거의 그 노력은 이제 마쿨라 이사에게 추억일 뿐이었다.
최민혁은 굳이 마쿨라 이사 자존심을 건드려서 협상을 깰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저도 마쿨라 이사님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 자신이 키운 회사가 에플이니까. 그런데 동료에게서 쫓겨났지 않습니까?”
마쿨라 이사는 스티븐을 이미 한 번 내쫓은 적이 있었다.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어도 뒤에서 스티븐 추방에 한 표를 행사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오히려 에플에서 쫓겨났으니, 딱히 그 일을 가지고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다 지난 일입니다.”
“아니, 제 생각은 다릅니다. 벤처 신화의 주인공인 스티븐이 록 스타였다면, 스티븐의 매니지먼트 신화를 이룩한 분은 마쿨라 이사님입니다.”
마쿨라 이사는 자기 칭찬에 쓰게 웃었다. MP3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최민혁 실장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당시 마쿨라 이사님의 역할이 아니었다면 에플은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요. 전 스티븐보다 마쿨라 이사님의 역할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탁월한 안목으로 에플이란 회사의 초석을 쌓은 분입니다.”
“하하하,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마쿨라 이사도 최민혁 실장의 아부에 호탕하게 웃고 말았다.
그는 사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반감이 컸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마쿨라 이사 그릇이 그렇게 작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시작이 좋다고 생각하자 대놓고 마쿨라 이사 찬양에 들어갔다.
“20대부터 스티븐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온갖 문제를 계속 만들었습니다.”
“스티븐이 문제가 좀 많았습니다.”
마쿨라 이사는 새삼 지난 일을 떠올렸다. 에플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스티븐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 이야기에 다시 현실을 떠올렸다.
“스티븐은 독재자로 에플을 지배했습니다. 그런 스티븐을 옆에서 도와준 이가 마쿨라 이사님입니다. 만약 마쿨라 이사님이 없었다면 에플의 성공은 없었을 겁니다. 절대로 가볍게 볼 일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마쿨라 이사는 잠깐 최민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칭찬은 좋았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호감도 생겼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이 자리에 온 이유가 궁금했다.
“일단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혹시 오늘 이 자리에 온 용건을 들을 수 있을까요?”
최민혁은 스티븐의 단점을 씹으려다가 마쿨라 이사의 냉정한 눈을 보자 어깨를 으쓱했다. 딱 여기까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쉽네. 하긴 마쿨라 이사가 바보는 아닐 테니까. 하지만 주식은 어떨까?’
“제가 알기로 마쿨라 이사님의 에플에 대한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얼마 전까지 에플 주식을 매집한 것이 그 증거죠.”
마쿨라 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 매각했습니다.”
최민혁은 슬쩍 상체를 마쿨라 이사 쪽으로 틀면서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압니다. 하지만 상황이 좋게 풀린다면 마쿨라 이사님은 에플 주식을 다시 사들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
묵묵히 듣기만 하던 마쿨라 이사는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이 그냥 에플 주식 타령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에플의 대주주는 최민혁 실장이 아닌가.
“설마 저에게 에플 지분을 넘기겠다는 제안을 하는 겁니까?”
최민혁은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에플 주가가 단기에 너무 올라서 말입니다. 마쿨라 이사님이라면 에플 대주주가 되기를 원하실 것 같습니다.”
마쿨라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에플의 주가였다.
“허허허, 무슨 말인지는 압니다. 하지만 지금 에풀 주가는 거품이 너무 많이 끼었습니다. 14달러라니. 작년 4분기 순손실을 본 회사의 가치로는 말도 안 됩니다!”
최민혁은 부정적인 태도에도 마쿨라 이사가 자기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 모습에 씩 웃었다.
“제가 가진 에플 지분 일부를 13달러에 넘길 수 있습니다. 으음, 4% 지분이라면 충분히 매입 가능한 액수이지 않겠습니까?”
마쿨라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계산해보았다.
“…대략 달러로, 아니, 한화로 1조 3천억 정도입니까?”
“그 정도 될 겁니다.”
“4%에 1조 3천억이라…….”
마쿨라 이사는 최민혁 실장의 제안에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몇 달 전이었다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곤란했다.
지금 에플 상황이 미묘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에플 주식의 유통량이 너무 적어서다.
솔직히 지금은 자금이 있어도 13달러에 4% 지분을 매입할 수는 없었다. 에플 유동 주식이 줄어들어서 에플 주가가 폭등하기 때문이다.
그는 굳이 에플 공매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에플 지분이다.
사실 선 마이크로시스템의 에플 인수와 관련된 가짜 뉴스 배후에는 그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에플과 선 마이크로시스템의 시너지를 언급했다. 에플 대주주가 된다면 스티븐에 대한 복수를 할 수도 있다.
그 당시 스티븐은 발끈했고, 기자회견까지 열어서 가짜 뉴스를 씹었다.
실상 그 기자회견에서 대놓고 욕한 이는 마쿨라 이사를 포함한 이번 일을 기획한 이들이었다.
더욱이 선 마이크로시스템의 분위기는 마쿨라 이사의 제안에 긍적적이었다.
만약 에플을 인수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면 스티븐을 에플 CEO에서 끌어내릴 수가 있다.
‘8%라면 대략 2조 6천억인가?’
몇 달 전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액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은 이 에플 주가 폭등에 자신이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이다. 공매도 사전 정지 작업으로 에플 지분을 마구잡이로 인수한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에플 주식 인수 대금을 고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에플 주식이 더 필요해.’
정확히는 에플 공매도 때문이었다.
에플 주가를 끌어내릴 수 있는 탄알이 필요했다.
최민혁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마쿨라 이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지금 마쿨라 이사의 머리가 얼마나 복잡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머리가 터지겠지. 그놈의 탐욕을 떨치기 어려울 테니까. 에플 공매도만 아니었다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오늘 에플 주가가 15달러를 찍었으니.’
샐로먼 브러더스와 모건 스탠리가 작업한 에플 공매도와 가짜 뉴스.
그것 때문에 오히려 에플의 투자자의 주목을 받았다.
록스타 스티븐이 인터뷰를 통해서 계속 선동질 중이었다.
더욱이 이 선동은 그저 소스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소스는 존재했다.
에플 CF 찍는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루머가 나돌았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에플 CF에 대해 가짜와 진짜 뉴스가 같이 나돌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설사 알려진다고 해도 듣는 사람 처지에서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니 각자 알아서 정보를 얻어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 에플 공매도를 주도하는 세력 장 중의 하나인 마쿨라 이사는 정말 머리가 폭발할 정도로 최민혁 제안에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에플 주식은 필요하고, 자금은 부족했으니.
“…으음, 지금 당장 결정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혹시 에플 지분 중에 최대 몇%를 매각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최대 15% 정도는 매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매각 대금이 맞아야 합니다.”
15%라면, 대략 4%의 4배로 무려 5조 2천억이 필요했다.
실로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마쿨라 이사도 15%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공매도 용도의 총알이면 충분하니까.
‘대략 4%에서 8% 정도일까. 하지만 에플 주가가 너무 높아.’
“…알겠습니다. 이른 시일 내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기다리죠.”
최민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자신의 제안은 터무니없는 강매였다. 한 달 전이라면 마쿨라 이사가 분노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쿨라 이사는 최민혁의 제안을 신중하게 생각했다.
마쿨라 이사가 고민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기 때문이다. 장내 매수로는 목표한 에플 지분 할당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문제 때문에 내부적으로 이틀 단위로 협의를 거듭했다.
최민혁은 마쿨라 이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옵션이나 파생까지 고려하면 충분히 이익이 될 정도로 플랜을 짤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실제로 모건 스탠리 혼자도 아니고, 샐로먼 브러더스와 다른 헤지펀드까지 붙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물론 자신이 방해를 안 할 때 이야기다.
최민혁 자신이 손을 쓰면 상황이 좀 달랐다.
‘애니의 진정한 성능을 본다면 에플 주식을 매각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이 기회라면 우리 최문경 부회장 비자금 일부를 날려 버릴 수 있어.’
* * *
최민혁은 경호원과 조성돈 팀장을 거느린 채 선 마이크로시스템 본사를 나섰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을 오가는 이들조차 힐끗 최민혁 실장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도 최근 스티븐 못지않게 주목을 받는 최민혁을 알아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