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18화 (718/1,021)

#718.

스티븐으로서는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최민혁은 물론 애니 완성도가 기대치에 도달했기에 이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에플 주가와 공매도를 둘러싼 환경 자체가 너무 극단적으로 흘러가서 이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혹시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서 이번 일과 관련해서 태클 걸지 않던가요? 이거 엄연히 내부 정보와 관련이 있지 않습니까?”

우영민 부장은 울상을 지었다.

“아뇨. 특별한 연락은 없었습니다. 주식을 사고판 것이 문제가 될 수가 있습니까? 6달러 선에서 에플 주식을 사들인 것이 저희만 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기는 하죠.”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 사태의 원인은 결국 최문경 부회장이 갑자기 에플 공매도에 뒤늦게 끼어든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최문경 부회장 자금을 쓰면서 투자금액을 더 늘렸을 테고 말이다.

‘이런 상황을 유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7억 달러 수익은 너무 컸다.

우영민 부장이 그런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어차피 계획한 대로 진행되는 일이죠?”

우영민 부장은 이번 에플 공매도와 관련된 시나리오 한 부분을 직접 지적했다.

“계획은 4~5달러 정도였죠. 설마 13달러 선을 돌파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건 정말 거품이니까요. 미래 가치로 볼 수만은 없죠. 이보다는 에플 수급 때문에 주가가 폭등했으니.”

“…공매도 말씀이시죠?”

최민혁은 에플 주가 차트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맞습니다. 모건 스탠리도 이번에 한몫 단단히 잡으려고 할 테니까. 중간에 이 일을 멈출 수는 없었을 겁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탐욕을 떨치지 못하니, 결국 에플 주가가 폭등할 수밖에 없죠.”

우영민 부장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어떻게 할까요?”

“일단 남은 단기 지분을 다 정리하고, 굳이 추가 매집은 하지 마세요. 13달러 이후는 매집하는 것이 아닐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남은 물량을 다 정리하면, 그 차익도 꽤 되죠?”

우영민 부장은 씩 웃었다.

“아마 정산을 다 해봐야 알겠지만, 세금까지 다 고려하더라도 10억 달러는 족히 넘을 겁니다.”

10억 달러.

단기 매매로 이 정도 이익을 본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벨린 투자가 그만큼 에플 주가를 관리한 것도 있지만 단기 에플 주가의 등락 폭이 그만큼 무시무시하다는 뜻이었다.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가 이번 에플 공매도에 목숨을 걸었다는 뜻이다.

“휴우.”

최민혁도 혀를 내둘렀다. 이런 주가 변동은 코스피나 코스닥에서나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에플 주가에 일어나는 일은 딱 그 판박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샐로먼 브러더스나 모건 스탠리는 한국 기관이고, 벨린 투자가 헤지 펀드 역할을 한다는 것뿐이다.

진정 아이러니한 점은 아직 에플 공매도는 진행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10억 달러를 넘어가는 순이익이라니.

단순히 10억 달러 문제만이 아니었다.

만약 이대로 공매도가 진행되었을 때 생기는 상황이 더 문제였다.

‘지금 에플 주가 추세를 봐서는 20달러를 넘어설 거야. 22달러 정도에서 폭락해서 5달러까지 내려꽂히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는 결국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 선을 그었다.

“혹시 모르니, 에플 주가를 과도하게 흔들지 마세요. 단기 차익 실현 후에는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 하죠. 20달러 이상은 말이 안 되는 주가입니다.”

“…알겠습니다.”

우영민 부장도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의 우려가 마냥 근거 없는 우려만은 아니었다. 물론 한편으로 억울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에플 공매도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야. 아무래도 몇 가지 상황을 점검해 봐야겠어.’

* * *

공연 기획은 물밑 작업으로 흔히 진행되는데, 개런티와 같은 다양한 문제가 있다.

날짜와 장소 때문에 문제가 되는 때도 있다.

특히 공연 업체 내부 상황에 따라서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이건 모타운 레코드의 윌리엄 고디 실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는 마이클의 공연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시행착오를 많이 경험했다.

세계화 명분이 나올 때에는 그 이익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송도연의 공연은 딱히 이런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차후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다.

그건 송도연의 자질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준비한 음원 때문이다.

I believe I can steer란 음원 역시 I'll be missing you와는 다른 부분에서 강점이 있었다.

‘좋은데, 아니, 너무 좋은 건가?

이번 일을 맡은 제이콤 홀랜드 역시 당황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윌리엄 고디 실장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받은 음원 수준이 예상한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정말 윌리엄 실장님은 모르는 겁니까?”

“음원과 가수를 제공한 곳은 KM 전자 쪽이었다. 이들은 애초에 기획과는 무관한 전자 제조 회사잖아. 다른 것은 아예 생각도 못 했어.”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창 리허설에 빠져 있는 송도연 모습 때문이다.

송도연도 처음에는 버벅거리면서 과연 무대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했다.

비록 에플 이벤트로 일반적인 콘서트와 차이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이 무대를 준비한 일들은 최소한 어느 정도 정점에 오른 전문가였다.

무대를 준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글로벌 콘서트를 해 본 사람들이니까.

에플이 원하는 요구 조건을 충분히 만족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송도연은 달랐다. 그녀는 한국에서도 무명 수준이었다.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수준은 딱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리허설을 준비하면서 송도연은 차분하게 자기 경험을 쌓았다.

그녀는 절대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윌리엄 고디 실장이나 제이콤 홀랜드가 요구하는 것을 묵묵히 따랐다.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I'll be missing you는 펑키한 노래잖아요. 연주할 때 너무 가벼워서도, 너무 무거워서도 곤란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흘러가서도 안 되고요. 아, 아뇨.]

그녀는 직접 본인이 나서서 밴드에 한 두 가지씩 충고했다.

이게 초짜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는 이는 흔치 않았다.

송도연은 이상할 정도로 리허설 흐름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대 리허설 현장에 나와서 이 광경을 봤다. 그는 크게 당황한 윌리엄 고디 실장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이번 리허설 실무 책임자인 제이콤 홀랜드에 슬쩍 상황을 확인했다.

“어떻습니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제이콤 홀랜드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아, 최, 최고입니다. 솔직히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송도연은 무대 연출 담당자와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신호를 보냈다.

에플이 원하는 특수 효과 이벤트와 노래를 같이 맞추어야 해서다.

처음과는 달리 송도연은 이제 자신이 감독이라도 된 것처럼 하나씩 지시를 내렸다.

리허설 처음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최민혁도 혀를 내둘렀다. 송도연의 자질이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그게 국내가 아니라 국외에서도 통할 줄은 몰랐다.

“혹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습니까?”

“전혀요. 딱 이 분위기대로만 간다면 이벤트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혹시 과장하는 것은 아니겠죠?”

“아니, 제가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당당한 제이콤 홀랜드. 그는 가수 출신 제작자로 꽤 명성이 있는 인물이다. 모타운 레코드 내에서도 정평이 나 있으니 말이다.

그는 이보다 송도연이 들고 있는 음원 4가지에 대해서 질문했다.

“도대체 이 곡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I'll be missing you가 샘플링 곡이라는 것은 아시죠? 다른 곡도 비슷합니다. 작곡 자체가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하지만 운만으로 그런 곡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 곡의 완성도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곡 하나하나가 명반 수준입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제이콤 홀랜드는 윌리엄 고디 실장의 눈치를 봤다. 그는 이 곡을 작사, 작곡한 사람이 최민혁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이 곡을 작사, 작곡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님 맞습니까?”

“왜, 제가 이 음원을 만들면 안 되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송도연이 들고 온 음원은 성격 자체가 각자 아주 달랐다.

당장 I'll be missing you는 펑키하면서도 가볍게 흘러가는 곡이지만 다른 곡은 저마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으니 말이다.

송도연이 지금 막 리허설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그 증거였다.

깊은 음색이 담겨 있었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미국 유명 가수가 불러도 음원 자체를 완전히 살리기 쉽지 않다.

그만큼 곡의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다.

최민혁은 덕분에 크게 만족했다.

“뭐 제가 더 도와 드릴 일은 없겠습니다.”

“…아, 네.”

다만 윌리엄 고디 실장이 송도연 리허설 모습을 보면서 슬쩍 말을 바꾸었다.

“저기 실장님, 차라리 기존 방식대로 한번 앨범을 내는 것은…….”

최민혁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미 몇 번이나 사전에 이야기한 것이지만 KMP-02B에 탑재할 겁니다. 굳이 제가 이번 일을 주도하는 목적이기도 하고요. 만약 기존의 앨범 발매 방식이라면 제가 이 일에 끼어들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곡은 정말 좋습니다. 아니, 단순히 좋다는 말로 끝낼 수가 없습니다!”

윌리엄 고디 실장의 집착은 단순히 그 자신의 의견만은 아니었다.

제이콤 홀랜드가 뒤늦게 윌리엄 고디 실장을 설득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윌리엄 고디 실장 말에 이어서 끼어들었다.

“이 네 가지 노래는 단순한 노래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만든 노래가 명품 앨범이라고 알려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도 MP3 플레이어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방식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자칫…….”

최민혁은 격정적으로 나선 제이콤 홀랜드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아, 모릅니다. 저희는 기획사가 아닙니다. 제조 업체입니다. 이 음원은 결국 판매를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입니다.”

“아니,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이곡은 마케팅 취급을 받을 음원이 아닙니다! 전 정말 가슴이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음원을 사랑하는 제이콤 홀랜드로서는 이번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건 윌리엄 고디 실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긴가민가했지만, 실무진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두 사람은 최민혁 실장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 네 가지 음원은 MP3 플레이어에 들어가는 소모품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최민혁은 단호하게 일축했다.

“안 됩니다. 원래 계획한 대로 일을 진행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두 분이 해야 할 일은 이번 CES 무대 기획이고, MP3 플레이어를 이용한 음원 발매입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우리 KM 전자는 음반 기획사가 아닙니다!”

제이콤 홈랜드는 황당한 최민혁 실장의 요구에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가만, 그러면 이번 CES 공연 이후에 송도연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1년 정도는 도와주기는 할 겁니다만 각자 자기 길을 가야죠.”

“가만, 그러면 송도연의 매니지먼트가 없다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정 원하면 그쪽에서 도연을 잡아도 됩니다. 그쪽이라면 믿을 만하니까.”

“……!!”

두 사람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들이 본 송도연의 재능은 결코 가볍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이번 CES 공연 이후에 송도연이 명성을 얻을 확률이 높았다. 비록 동양인 여가수라는 한계가 있어도 곡 자체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태도는 아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한 채 한창 무대 리허설에 빠져 있는 송도연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면 전생의 빚을 다 갚았다고 봐야겠지?’

물론 서로에게 이익이었다.

아니, 최민혁 자신에게 더 큰 이익이라고 봐야 했다.

‘일단 도연이 상황은 확인했어. 그다음 확인해야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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