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
최근 미국 증시에서 공매도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종목은 다름 아닌 에플이었다.
공매도 비중이 높다는 것은 주가 하락을 예상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에플 주가는 오히려 폭등에 폭등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12달러에서 잠깐 주춤하던 주가가 다시 13달러를 돌파해서 14달러에 도달한 것이었다.
투자자라면 주가가 오르면 좋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모건 스탠리 내의 에플 인수합병 팀은 이 상황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이 새끼들, 미친 것 아냐?!”
길길이 날뛰는 폴 고슬링.
케네스 최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 갑자기 에플 주식 매입 물량을 대폭 늘였습니다.”
“아무리 공매도 물량 확보 때문이라도 이건 아니잖아. 에플 주가가 14달러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1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에플 주가 차트는 마치 한국 코스닥 작전주보다 더 심한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1달러와 14달러.
말도 안 되는 주가 폭등이었다.
이 변화가 얼마나 황당한지 미국 언론에서도 연일 에플 주가 폭등을 다루었다.
당연히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결국 덩달아서 에플 투자에 자금이 몰릴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에플 주가에 관심이 없던 이들조차 에플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
케네스 최 역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회의에 참석한 에플 인수합병 팀 역시 별다른 이야기를 내놓지 못했다.
그들은 샐로먼 브러더스가 왜 이렇게 미친 짓을 하는지 잘 알았다.
이번 공매도 계획에 투자 자금을 더 늘어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투자 규모를 늘려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방법이니 말이다.
에플 주식 유통량은 정해져 있는데, 자금이 늘어나니 에플 주가 폭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모건 스탠리 에플 인수합병 팀 상황은 좀 달랐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폴 고슬링은 테일러 박사 측에 다시 확인 요청을 했다.
테일러 박사조차 에플 투자 자금 규모가 늘어나자 폴 고슬링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공매도 특성 때문인데, 위탁증거금만 있다면 실물이 없어도 주식을 팔 수 있었다.
지금 에플 주가처럼 단기 급등에 따른 하락세 확률이 높아지면 주식을 팔고, 다시 주가 하락이 시작되면 사들이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예측과는 달리 주가 상승을 이어갈 경우다.
만약 결제일이 지나서도 물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손실이 무한대로 늘어날 것이다.
확률이 낮다고 해도 이런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폴 고슬링은 에플 공매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마이크 라이언 이사 측에 다시 에플 내부 정보를 요구했다.
만약 제대로 된 에플 주가 리스크 확인이 없다면 자신은 손을 떼겠다고 벼랑 끝 전술을 사용했다.
그는 심지어 모건 스탠리 이사회를 직접 찾아가서 난동을 부렸다.
테일러 박사는 무리수를 둬야 했고, 확인되지 않자 KMBOOK을 찾아가서 행패를 부렸다. 이미 소송까지 진행된 마당에 굳이 일을 무리하게 벌인 것은 틈을 찾기 위함이었다.
폴 고슬링은 돌아가는 상황이 석연치 않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에플 주식 물량 확보는 어떻게 되었어?”
케네스 최는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30%가 채 안 됩니다.”
“나머지 목표량이 가능하겠어?”
“그게 문제입니다. 지금 에플 주가가 13달러를 돌파해서 자칫 일이 잘못되면 천문학적인 손실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공매도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에플 주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했다.
그래야 에플 주가 하락폭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건 스탠리 에플 인수합병 팀은 다들 전문가답게 에플 주가가 폭등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에플 주식을 매집했다.
그런데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 욕심을 부리면서 상황이 복잡해진 것이다.
에플 공매도 비중을 고려하면 실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에플에 대한 관심 때문이겠지?”
“네, 아무래도 CES 전시회를 앞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스티븐이 최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차세대 제품에 대한 기대치를 올린 부분입니다.”
최근 스티븐은 에플 매각설과 관련해서 꽤 분노했다. 그는 이미 만들고 있는 에플 CF 광고에 앞서서 남은 쪼가리 정보를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흘렸다.
그 정보 중에는 애니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뉴욕 포스트는 이 스티븐의 인터뷰를 맹비난했다.
[애니가 정말 인공지능 맞나? 스티븐은 글로벌 사기꾼인가?]
하지만 이 기사보다는 드러난 애니에 대한 기대 심리가 더 컸다.
폴 고슬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테일러 박사 측에서는 뭐래? 그쪽에서 손실이 생기면 자신들이 책임진다고 해? 아니면 그쪽에서 보험 상품이라도 만들어준대?”
“그건 아닙니다. 물론 기존에 연구하는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에플 인공 지능의 한계를 보여주고는 있습니다만…….”
“그거, 믿을 수 있어?”
“전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실이 단순히 테일러 박사 연구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전 세계적인 인공 지능 연구 역시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지수 박사 연구 팀 역시 그런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지금 스티븐이 말하는 애니의 수준은 이런 기준을 넘어섰다.
폴 고슬링은 이런 미묘한 부분을 최근에서야 확인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공매도가 한창 진행 중인 단계에서 말이다.
리스크는 이제 한없이 커지는 상황.
하지만 이번 일은 모건 스탠리 이사회에서 이미 결정이 난 사안이었다.
계획을 바꿀 수는 없었다.
“목표한 에플 주식 70% 물량을 다 확보하면, 에플 주가는 어디까지 오를 것 같아?”
“…적어도 20달러는 넘을 겁니다. 어쩌면 23달러 이상 봐야 합니다.”
“하, 씨발.”
폴 고슬링은 에플 주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어도 2배, 어쩌면 3배까지 늘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는 욕설을 내뱉었다.
공매도를 떠나서 자칫하면 최악의 손실을 볼 수 있었다.
“이거 만약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손실이 대충 예상 가능해?”
“…….”
케네스 최는 입을 다물었고, 다들 폴 고슬링의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다.
그들 역시 에플 지난 매출액 보고 이번 투자는 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에플 현황을 살펴보니,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에플 관련 파생 상품은 더 심각했다.
마치 협곡에 몰려 있는 최악의 군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야, 정말 그렇게 나올 거야!”
그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회의에 참석한 이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들 시선을 피했다. 그들 역시 폴 고슬링과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
이미 모건 스탠리 이사회 측에 이번 일은 무리라고 몇 번이나 보고했다.
다들 아니라고 할 때는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꼰대 기질이 다분한 모건 스탠리 이사회도 문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정신 나간 샐로먼 브러더스가 미친 짓을 한 것이었다.
폴 고슬링은 이를 악물었다.
“이번 일에 샐로먼 브러더스 외에 추가로 들어온 투자금액도 만만치 않다면서?”
“한국 증권 회사를 통해서 들어온 자금이 있습니다. 아직 규모가 작아서 정확히 다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무시할 정도는 아닙니다.”
폴 고슬링은 골치 아파서 더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케네스 최를 쳐다보았다.
“이봐, 케네스, 이번 일이 실패하지는 않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런 점입니다. 이렇게 애매한 투자는 하지 않는 것이 정석입니다.”
“휴우, 그렇지. 하지만 인제 와서 어쩔 수가 없잖아. 일단 무리수를 두지 말고, 최대한 에플 주식을 매집하는 데 집중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일단 지시를 받은 이상 이 일을 어떻게 해서라도 성공하게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폴 고슬링은 최근 들어온 에플 매매 현황을 보면서 툴툴거렸다.
“정 안 되면, 단기 매매라도 해서 일단 이익을 챙겨. 다른 곳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 하란 법은 없잖아.”
“그건 어느 정도 에플 주식 물량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우리도 단기로 사들인 에플 주식이 있잖아. 단타를 쳐서라도 수익을 올리면 되잖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케네스 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에플 인수합병 팀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 역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이 특히 염려하는 부분은 이번 에플 공매도에 끼어서 재미를 보고 있는 세력들이었다.
샀다, 팔았다를 계속 반복하는 세력 말이다.
이들은 에플 주식을 꽤 많이 들고 있었는데, 이 주식으로 장난질을 쳤다.
그런데 그 규모가 이제는 단순한 장난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무리수를 두면서 이 상황은 더 극단적으로 흘러갔다.
‘개새끼들, 중간에 끼어서 하루살이처럼 계속 장난치는 놈들이 문제야. 다른 것을 떠나서 샐로먼 브러더스가 미친 짓을 하면서 상황이 너무 복잡해졌어.’
* * *
한국 코스피와는 달리 미국 나스닥은 덩치 자체가 전혀 달랐다.
하지만 나스닥이라고 해서 전혀 다른 세상이 아니었다.
결국에는 주식을 사고, 파는 시장일 뿐이니 말이다.
벨린 투자가 이런 나스닥 주식을 그냥 둘 리는 없었다.
이들은 특히 에플을 비롯한 KM 전자 계열사 주식을 따로 관리했다.
에플 주식은 최근까지는 별다른 요동이 없었다.
그런데 에플 공매도 사태 이후에 상황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
에플 주식을 계속해서 매집하는 세력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단순히 한 방향으로 에플 주식을 매입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계속 에플 주가를 흔들어서 폭락시키기도 했다.
6달러 선까지 내려간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벨린 투자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6달러 선까지 밀리면 에플 주식을 매집해서 8달러에서 팔아치우는 수법을 사용했다.
에플 주가가 계속해서 꾸준히 상승한다는 것을 알아야 가능한 투자 기법이다.
그런데 벨린 투자는 이 방식을 사용해서 꾸준하게 이득을 봤다.
최근 4억 달러 가까운 순이익을 본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다만 에플 주식을 정리할 때 어느 정도 마진을 뒀다.
8달러 선까지 상승한다고 해도 단기 물량을 다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찔끔찔끔 파는 구간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에플 주가가 폭등하면서 매각 타이밍을 놓쳤다.
10달러, 11달러, 12달러, 13달러를 돌파한 것이었다.
우영민 부장 처지에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아니, 이게 웬 횡재야?’
그런데 알고 보니 에플 공매도와 관련이 있는 일이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에플 주식을 단방향으로 매집한 것이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보고할 타이밍마저 놓쳤다. 다행히 허겁지겁 주식을 조금씩 정리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번 수익이 모두 7억 달러를 훌쩍 넘긴 셈이다.
“…이건 좀 황당하네요.”
갑자기 우영민 부장 연락받아 벨린 투자를 찾은 최민혁은 크게 당황했다. 단기 매매로 무려 7억 달러 수익을 올릴지는 상상도 못 했다.
우영민 부장 역시 당혹감을 쉽게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공매도 물량이 늘어나면서 주식 매수세가 늘어났습니다. 특히 샐로먼 브러더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샐로먼 브더러스가 미친놈처럼 에플 주식을 매집하자 눈치를 보던 이들도 같이 달려든 것이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최근 스티븐이 갑자기 애니와 관련한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CES 전시회를 통해서 내놓은 차세대 제품에 대한 광고를 늘어놓았다.
CF에 앞서서 시간이 남자 어쩔 수 없이 한 조처였다.
안 그래도 에플의 4분기 매출 손실과 관련된 의혹이 많았다.
에플 주주는 이런 점을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