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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10화 (710/1,021)

#710.

“그렇죠. 그런 점을 잘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네? 무슨 말씀입니까?”

“안 전무님은 IT 사업에 관심이 많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결과는 다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비슷하게 일을 진행하는데, 결과가 다르지 않습니까.”

안재운 전무는 뜬금없는 권태성 실장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권 실장님도 IT 사업에는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권태성 실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최 실장의 행보를 보면서 저도 느낀 바가 많습니다. 안 전무님이 과거에 한 말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안재운 전무도 이제 IT 사업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렸다. 그런데 권태성 실장이 은근히 자신을 칭찬하자 염두에 둔 한 가지 계획을 말했다.

“하면 이 기회에 최민혁 실장에게 한번 반격을 해보는 것은 어때요?”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일전에 말한 이지수 박사 말입니다. 그녀를 스카우트한다면 최민혁 실장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계속 이대로 모건 스탠리의 행보를 지켜볼 수만은 없어요. 우리도 뭔가 하기는 해야죠. 물론 권 실장님의 조언은 잘 알지만, 이번 일은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더욱이 스카우트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제가 오성 그룹 후계자라는 점을 내세울 수도 있으니까요.”

“글쎄요.”

‘결국 미남계를 쓰겠다는 말인데, 과연 그게 통할까?’

권태성 실장도 안재운 전무의 제안에 대해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모건 스탠리를 비롯해서 다들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계획을 진행 중이다. 자신 역시 그 기회를 이용하는 것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이번 일은 한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네.”

* * *

권태성 실장은 안재운 전무의 제안이 딱히 나쁜 계획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일단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 김진석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김진석 이사는 전화를 받자마자 질문부터 했다.

[거기 한 사람이 이미 찾아갔지 않습니까?]

[혹시 케네스 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아, 설마 김 이사님이 그 친구를 보낸 겁니까?]

[정확히는 전략 기획실에서 보낸 친구입니다. 모건 스탠리 내에서도 주목받는 친구라서 꽤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회장님도?]

[당연히 윗선에서 지시했으니, 모를 수가 없는 일입니다.]

권태성 실장은 혀를 찼다. 케네스 최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셈이다. 전략 기획실에서 미리 안재운 전무를 위해서 전문 인력을 파견한 것이었다.

[하면 사전에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가능하면 안 전무님이 몰랐으면 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권태성 실장은 안건민 회장이 배후에서 안재운 전무를 챙겨준다는 것을 알고는 쓰게 웃고 말았다.

[혹시 이지수 박사에 대한 정보도 있습니까?]

[이지수 박사라면, 혹시 KMBOOK 경영진을 말하는 겁니까?]

[네.]

[이지수 박사 관련 자료는 있습니다. 다만 아직 미비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 자료라도 보내면 됩니까?]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곧 보내죠.]

권태성 실장은 새삼 전략 기획실에서 안재운 전무를 위해서 발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일단 이지수 박사를 만나는 것에만 집중했다.

‘아, KMBOOK 경영진이니, 일단 업무 차원에서 미팅을 요청해도 되겠어.’

* * *

안재운 전무는 권태성 실장이 정리한 이지수 박사의 프로필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재미 교포 중에 이렇게 뛰어난 인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상하군요. 이런 천재에 대해서 왜 지금까지 몰랐던 것일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권태성 실장 역시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지수 박사의 실적이 보통이 아니었다. 써 놓은 논문만 수백 편이 넘었다. 심지어 원천기술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경악할 정도였다. 이 정도 인물이라면 미국 학계를 통해서 국내에도 명성이 알려져야 했다.

‘마치 누군가 이지수 박사의 기록을 다 지운 걸까. 에이, 아니겠지.’

고개를 갸웃했지만 설마 하고 넘어갔다.

안재운 전무는 이번 일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일단 방향을 잡자 오성 전자 가전에 인공 지능 솔루션 도입과 관련한 명분으로 KMBOOK에 자문을 요청했다.

상대측 대답은 오케이였다.

오성 전자가 가지는 영향력이 KMBOOK에도 통한 셈이다.

이후 안재운 전무는 이지수 박사와 어떻게 손을 잡을지 고민했다.

그는 권태성 실장과 같이 KMBOOK 본사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런저런 대안을 강구했다.

자신은 오성 그룹 황태자라는 점을 내세우기로 권태성 실장과 협의했다.

일테면 협상 자리에서 우연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부분은 동행한 실무진에게 역할 분담을 시켰다.

그들은 알아서 안재운 전무의 손발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안재운 전무는 KMBOOK 대회의실에서 나타난 이지수 박사의 모습을 보자 지금까지 계획한 모든 일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

바로 이지수 박사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미모와 분위기 때문이다.

거기에 헬렌이 슬쩍 같이 나타나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권태성 실장 역시 꽤 충격을 받았지만 그나마 정신을 가장 빨리 차렸다. 그는 팔꿈치로 안재운 전무를 일깨웠다.

“전 오성 전자에서 나온 권태성 기획실장이라고 합니다.”

“이지수입니다.”

“헬렌이에요.”

이지수 박사는 역시 그런 쪽으로 둔해서인지 크게 안재운 전무 행동을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헬렌 역시 자신이 마주한 남자가 넋이 나가 버린 경험이 많아서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오성 전자 가전제품에 우리 인공지능 솔루션 도입을 검토 중입니까?”

“아, 그, 그게…….”

권태성 실장은 뺨이 홍시처럼 붉게 달아오른 안재운 전무를 대신해서 나섰다.

“네. 차세대 제품에 대하여 인공지능형 가전 솔루션을 검토 중입니다. 그래서 두 분이 인공 지능 쪽으로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헬렌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성 가전에 우리 인공지능 솔루션을 도입한다면 우리로서 거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우리 쪽 인력이 부족해서 한국에 있는 오성 전자에 직접 인력을 보낼 여력은 안 됩니다.”

“괜찮습니다. 필요하다면 국내 시제품을 미국에 직접 보낼 수도 있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합니까?”

헬렌으로서는 의아했다.

오성 전자가 굳이 차세대 제품을 미국에 보내서 테스트할 이유는 없었다.

“아, 실리콘 밸리 측에 오성 그룹 연구소도 있죠. 혹시 그곳을 통할 생각인가요?”

정확히는 아니었다. 실리콘 밸리 오성 전자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일은 몇몇 제한적인 분야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가전과 같이 대규모 양산 제품은 한국 연구소에만 그 기반이 있다.

권태성 실장은 굳이 그런 점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 오성 전자는 두 분의 인공 지능 기술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두 분의 요구에 최선을 다해서 맞출 생각입니다.”

“그렇습니까.”

권태성 실장이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자 협상은 쉽게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안재운 전무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안재운 전무의 시선은 이지수 박사에게서 떨어지질 않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헬렌을 향하기는 했는데, 그때 역시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침만 꼴깍 삼키기만 했다.

‘미치겠군. 하지만…….’

권태성 실장도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그도 비현실적인 두 여인을 앞두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없었다면 안재운 전무보다 더했을 것이다.

이지수 박사가 최민혁 실장과 만나서 긴밀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것은 이미 파악했다.

다만 그 이지수 박사의 외모가 미스코리아 진을 압도할 줄은 몰랐다.

단순히 외모가 아니라 분위기 그 자체 때문이다.

그로서는 최민혁 실장이 두 사람을 어떻게 상대했을지 그게 더 궁금했다.

* * *

안재운 전무는 협상 자리에서 정신을 못 차렸지만, 협의가 끝나고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지수 박사와 어떻게 해서라도 한마디 나눠보려고 했다.

심지어 오성 그룹 황태자인 점을 내세웠다.

“제 아버님이 오성 그룹 안건민 회장님입니다. 오성 그룹 총수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오성 그룹은 대한민국 내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대기업입니다. 저는 그분의 아들로서…….”

이지수 박사의 반응은.

“그렇습니까.”

이게 다였다.

헬렌 역시 안재운 전무를 굴러다니는 돌 취급했다.

두 사람은 안재운 전무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냉정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사실 집요한 남자는 너무 경험이 많아서 대수롭지 않았다.

이보다는 오성 그룹이 계획한 인공지능 가전에 더 관심을 가졌다.

안재운 전무는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한두 번은 ‘여보세요’였다.

그런데 세 번째부터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재운 전무는 참다 못해서 KMBOOK 본사를 찾았고, 무조건 회사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경비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2m 덩치의 흑인 경비원은 마치 마피아 행동대장 같았다.

그 기백에 질려서 안재운 전무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권태성 실장이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는 허겁지겁 중재에 나섰지만, 다시 약속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 다음 주 목요일쯤에 가능합니다.”

KMBOOK은 생각보다 바빴다.

권태성 실장은 이 상황이 잘 믿기지 않았다. 그는 발정난 개처럼 칭얼거리는 안재운 전무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안 전무님!”

“…죄송합니다.”

“자기 잘못을 아시는 겁니까?”

“네. 하지만…….”

“저도 이해는 합니다. 안 전무님 나이에 그런 여자를 봤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안 회장님도 이번 일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케네스 최 그 친구를 우리 쪽에 보낸 것은 안 회장님의 배려입니다!”

“휴우, 그래요.”

안재운 전무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이번 일을 안건민 회장이 실시간으로 확인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두 미녀에 대한 감정을 쉽게 추스를 수가 없었다.

“제 마음이 그렇게 잘 안 됩니다. 전 그런 미녀를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차라리 클럽에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별로요.”

안재운 전무는 아직도 두 여인의 모습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대로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설마 KMBOOK에 아무런 용건도 없이 또 찾아갈 겁니까? 그러다가 만약 최민혁 실장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르기는 해도 미국 경찰을 이용해서…….”

“아, 아닙니다. 그러지 않을게요.”

안재운 전무는 기겁했다.

다만 말은 그렇게 해도 안재운 전무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권태성 실장은 기가 찼다. 그는 자칫하다가 최민혁 실장이 두 미녀를 이용하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미인계를 쓰지는 않겠지?’

* * *

최민혁은 당연히 이지수 박사에게서 안재운 전무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받았다.

이지수 박사의 인공지능은 여러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전 쪽은 지금부터라도 그 씨앗을 뿌려놓는다면 꽤 괜찮은 일이다.

이 인공지능 솔루션 기반이 깔리면 아이컴과도 자동으로 연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이 보고를 듣는 중에 헬렌에게서 짜증이 난 불만도 들었다. 안재운 전무가 집요하게 달라붙는 것 때문이다.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솔직히 그 자신조차 전생에 그런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그나마 그 경험이 있어서 자제할 뿐이었다.

‘하긴 이 기회에 미인계를 한번 써봐?’

당연히 이 방법은 불가였다.

사실 전생에서 이 방법을 썼다가 헬렌에게 찍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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