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09화 (709/1,021)

#709.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이었구나.’

그도 폴 고슬링에게 듣고 나서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다.

“그룹 후계자를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안재운 전무는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어요. 케네스 최 당신의 능력을 인정해서 지원한 것뿐이니까.”

담담한 대답.

하지만 그의 내심은 달랐다. 그는 설마 오성 그룹 장학생이 모건 스탠리 내의 에플 인수합병 팀에서 일하고 있을지는 몰랐다.

다만 이건 당연한 일이다.

오성 그룹이라고 해서 오성 장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

더욱이 모건 스탠리와 같은 조직 내의 인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닙니다. 저는 오성 그룹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습니다.”

실제로 케네스 최는 그렇게 부유한 집안이 아니었다. 유학은 꿈도 못 꾸는 집안이었다. 그가 하버드 대학에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석사까지 가능했던 것도 전부 오성 그룹 지원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결코 은혜를 잊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이 자리가 예상과는 달라서 좀 불편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건 스탠리 내부의 정보를 가감 없이 풀었다.

“차세대 배터리 양산이라…….”

안재운 전무와 권태성 실장은 둘 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 일의 발단을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

차세대 배터리 이슈가 모건 스탠리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사전에 폴 고슬링과 상의했으면 다른 대안을 찾았겠지만 이미 늦어버린 셈이다.

지금은 최민혁 실장에게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안재운 전무는 탄식하고 말았다.

“요즘 들어서 느끼는 사실이지만 우리 오성 그룹이 하청업체 같은 기분입니다.”

권태성 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뇨, 권 실장님을 탓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하는 푸념입니다.”

이번에 터진 배터리 이슈 사태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아니, 갑자기가 아니지. 최민혁 실장이 의도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

한편 권태성 실장 역시 모건 스탠리 내부가 궁금했었기에 케네스 최에게 바로 질문했다.

“그렇게 모건 스탠리 내부가 시끄럽습니까?”

케네스 최는 어깨를 으쓱했다.

“전 에플 인수합병 쪽이라서 자세한 사안은 모릅니다. 다만 이머징 사업부에서 차세대 배터리와 관련해서 꽤 많은 투자를 한 것으로 압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버텼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모토롤라가 이미 미래 기술 지분을 확보했고, 배터리 공급까지 받았다. 이제는 벨코어사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어진 셈이었다.

결국 벨코어사에 몇 년에 걸쳐서 투자한 모건 스탠리는 지금까지 차세대 배터리와 관련해서는 삽질만 한 셈이다.

“이 일을 책임진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이미 사장 보고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모건 스탠리 이사회에서 최민혁 실장과 갈등하면서 이 문제가 생겼으니까요. 결국 이 사태를 만든 이는 모건 스탠리 이사회인 셈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책임을 존 맥커니 사장에게 돌릴 겁니다.”

케네스 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비록 단기간이지었만 이 사태가 전부 최민혁 실장과 ‘바트화 이슈’ 때문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런데 바트화 사태가 왜 미래 기술과 엮이는지는 알다가도 몰랐다. 웬만한 내부 정보를 다 알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성 그룹 황태자 안재운 전무와 오성 전자 실세인 권태성 실장의 표정을 살피면서 두 사람 입에 집중했다.

안재운 전무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끼어든 것은 역시 권태성 실장이었다.

“자네 생각은 어때? 존 맥커니 사장은 도박판을 키운다고 했잖아? 잘될 것 같아?”

“저 말입니까? 저야 일개 직원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자넨 이 바닥의 전문가 아닌가. 그래서 묻는 거야. 최민혁 실장의 꿍꿍이를 사실 난 잘 모르겠어. 왜 굳이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지 말이야.”

“아마 자신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인공지능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차피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 기술이니,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서 보완할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그 인공지능으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건가?”

케네스 최는 어깨를 으쓱했다. 수석 펀드 매니저 입장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대안 역시 생각보다 간단했다.

“에플이 뭔가 보여 주는 데에는 끝판왕이 아닐까요?”

“자세히 좀 말해봐.”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에플 주가에 거품이 낀 것은 사실입니다. 더욱이 에플의 지난 4분기 손실은 수치로 나온 결과입니다.”

“하긴 그런 면도 있어.”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뭐든지 결과가 나올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에플은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시기는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에플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스티븐이 지금까지 그런 분위기를 잘 연출했습니다. 아, 최민혁 실장도 빼놓기 어렵겠군요.”

“계속해 보게.”

“그래서 저희도 에플 매출을 걸고넘어져서 벼랑 끝으로 몰려고 했습니다. 에플 매각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차세대 배터리 때문에 실패했군.”

“…….”

두 사람은 새삼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특히 권태성 실장은 자책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자신의 동선을 어떻게 안 것인지 이제야 알았다. 최민혁 실장과 모건 스탠리의 대립을 봐서는 아예 따로 모건 스탠리 측에 레이더로 감시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휴우, 이게 무슨 꼴인지. 신중했어야 했어.’

* * *

최민혁은 당연히 모건 스탠리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사람을 보내서 지켜봤다.

그도 거의 도청 수준으로 모건 스탠리를 감시한 것이었다.

물론 권태성 실장과 안재운 전무의 행보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일은 김명준 과장이 맡았는데, 그 과정에서 특이한 인물 한 사람을 파악했다.

“오성 장학생 케네스 최라…….”

그로서는 전혀 예상도 못 한 인물이었다.

조성돈 팀장조차 혀를 내둘렀다.

“이상하군요. 이런 인물이 있었다면 굳이 모건 스탠리를 직접 방문할 이유가 있습니까?”

“몰랐을 수도 있죠.”

“네?”

“오성 그룹 장학생이 한두 명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한국이라면 그나마 파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넓은 미국에서 유학생 하나하나를 다 살필 수는 없죠.”

“하면 지금 움직인 것은 모건 스탠리 내부 사정과 관련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일단 차세대 배터리 투자는 끝장난 상황입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말이 나왔겠죠. 케네스 최란 이 친구도 그 사실을 알고서야 오성 그룹의 행보를 파악했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조성돈 팀장은 새삼 최민혁의 추리에 혀를 내두른 채 보고서를 살폈다.

최민혁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모건 스탠리의 내부가 갑자기 조용해진 것도 KMB-01B 양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권태성 실장이 모건 스탠리 내부 행보를 잘 몰랐겠지. 지금은 알았겠지만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일 거야.’

그렇다면 이들이 도출할 답은 아주 간단했다.

대안을 찾는 것이다.

최민혁은 모건 스탠리가 무슨 수작을 부릴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딱히 마땅한 대안은 없구나.’

조성돈 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안재운 전무가 머무는 호텔에 도청 장치를 달까 고민할 정도였다.

그는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으음 도청 장치는 그렇고, 이들 행보를 면밀하게 지켜보세요. 마지막으로 뭔가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이들이 포기하지는 않을까요?”

“포기할 리가 있습니까.”

“…네.”

조성돈 팀장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도 최민혁 실장의 주장에 순순히 공감했다. 이 도박판에 걸려 있는 판돈이 장난 아니었다.

모건 스탠리가 계속해서 판돈을 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Die'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 * *

케네스 최도 권태성 실장과 이야기하고서야 자신의 실책을 알았다. 그도 사전에 권태성 실장과 알았다면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차세대 배터리 양산을 막지는 못해도 일정을 늦출 수는 있었는데…….’

권태성 실장이 만약 사실을 알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되니까.

그런데 이제는 KMB-01B 양산이 이미 시작된 상황이다.

이제 와서 최민혁 실장에게 뭐라고 한들 들을 리가 없었다.

케네스 최는 결국 이제까지 모건 스탠리 내에서 일어난 일을 가감 없이 말해주었다. 그 내용 중에는 모건 스탠리 이사회에 관한 것도 있었다.

차분한 말은 흔들림이 없었다.

“모건 스탠리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조직은 아닙니다. 효율적인 조직이고, 덩치가 큰 조직일 뿐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자금 규모가 다릅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똑같습니다.”

모건 스탠리 내에서 경험을 쌓은 자의 말이었다.

듣는 사람은 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권태성 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연락을 받기 전까지 케네스 최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당장 이 자리에서 오성 그룹 장학생이라는 것을 보고받았다.

‘놀랍구나.’

오성 그룹이 재능이 뛰어난 인재에 대해 투자를 한다는 것은 잘 안다. 다만 그런 이가 모건 스탠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야 알았다.

케네스 최는 피식 웃었다.

“두 분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최민혁 실장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최민혁 실장이 확실히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모건 스탠리 내에도 괴물은 많습니다.”

“그렇지.”

그도 순순히 수긍했다.

이제까지 참고 있던 안재운 전무가 그제야 소리쳤다.

“자네 이름이 케네스 최라고 했지?”

“네, 전무님.”

“가만, 그러면 모건 스탠리 퇴직 이후에는 설마 전략 기획실로 자리를 옮기는 건가?”

그는 쓰게 웃었다.

“이미 제 자리는 준비된 것으로 압니다.”

“그렇구나.”

둘 다 혀를 내둘렀다.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이 얼마나 준비가 철저한지 말이다.

다만 그들이 아쉬워한 점은 한 가지다.

케네스 최 같은 인재가 구름같이 많은 모건 스탠리가 최민혁과 싸워서 벌써 1패를 했다는 점이다.

‘설마 계속 지지는 않겠지.’

* * *

두 사람은 케네스 최와 헤어진 후에 케네스 최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특히 안재운 전무는 안건민 회장이 이런 준비를 해놓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버지가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권태성 실장은 안건민 회장을 떠올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재에 투자를 해야 할 테니까요.”

“그렇게 보면, 마음이 불편해요. 사전에 정보를 줄 만도 한데…….”

권태성 실장은 안재운 전무를 힐끗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우선 직접 일해보기를 원한 것일 겁니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잘 알기 어려우니까요. 만약 안 전무님이 직접 모건 스탠리와 대응해 보지 않았다면 그 사이에 놓인 어려움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

안재운 전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권태성 실장의 도움을 크게 입었다. 그런 일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케네스 최 같은 사람의 도움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새삼 최민혁 실장과 갈등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래도 최 실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새삼 느끼네요.”

“당연합니다. 그게 보통 사람이면, 한국 대다수는 평균 미달일 겁니다. 특히 모토롤라를 상대로 협상한 것은 신의 한 수입니다.”

“그렇겠죠. 배터리 원천기술만으로 벌써 2,500억을 챙겼으니.”

지금 지분 기준으로 본다면 최민혁 실장이 들고 있는 미래 기술 지분 45%는 무려 7,500억 가치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모토롤라가 그 지분 소유자라는 것을 고려하면, 1조는 가볍게 넘어가게 된다.

앞으로 핸드폰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래 기술 지분 가치는 더 올라갈 테니.

안재운 전무는 새삼 최민혁 실장의 능력에 질려 버리고 말았다.

“2,500억 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최민혁 실장은 정말 돈을 쉽게 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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