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05화 (705/1,021)

#705.

[하지만 공장 쪽 반응은 다를 겁니다. 그쪽에서는 이 일을 용납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권태성 실장도 은근히 짜증이 났다. 그는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에게 잔소리를 들어서인지 어조를 계속해서 높였다.

[그걸 중재하는 것이 자네 일이야. 그리고 내가 굳이 전화한 이유고!!]

임권수 부장은 움찔 놀랐다. 그도 권태성 실장의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서 크게 당황했다.

[하, 하지만 그쪽은 제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권태성 실장은 이전과는 달리 버럭 소리쳤다.

[이번 기회에 한번 공장 쪽과 밀당을 해 봐.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어. 그리고 지시에 불응하겠다는 거야? 그러면 회사를 때려치워!!!]

[…네.]

임권수 부장은 내심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권태성 실장 반응인 이전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 * *

임권수 부장은 여전히 할 말이 많았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고서를 보냈다고 하니, 그건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그는 보고서를 확인한 후에 프린트까지 해서 황광수 차장에게도 넘겼다.

황광수 차장은 눈만 끔뻑거리면서 이 보고서가 뭔지 계속 읽어봤다.

“이, 이거 진짜입니까?”

“그래. 권태성 실장님이 직접 내린 지시에. 이미 사장 보고까지 다 들어갔다고 하니, 일단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말이 됩니까. 미래 기술에 배터리 생산 설비를 대여하라니. 아니, 그리고 이게 뭡니까? 감사까지 하겠다니.”

“하, 나도 몰라. 지시가 내려왔으니,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어. 사장 승인까지 받은 사안이니, 방법이 없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말도 안 돼!”

황광수 차장은 계속해서 푸념을 털어놓았다. 그가 오성 전자로 이직할 때만 해도 자기 격이 한 단계 올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KM 전자도 아닌, 그 계열사 사장의 지시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이 이러려고 오성 전자로 이직했나 싶었다.

‘젠장.’

* * *

수원 내에 최근 설립된 배터리 생산 공장은 최근 배터리 산업이 첨예하게 대두하자 기존 공장 설비를 바꾸어서 설립된 곳이었다.

이제 막 시작된 사업부임에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오성 전자가 판매하는 모바일 제품에 들어갈 배터리를 공급하니까.

따라서 수요는 꾸준했다.

실적이 앞으로 어지간해서는 계속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이 사업 자체는 워낙에 미래 가치가 높아서 지원자도 많았다.

핸드폰 사업부에 있다가 이 사업부를 맡은 전영수 실장은 이 배터리 사업부의 미래 가치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이건 기회야. 이번 일만 성공하면 위로 계속 올라갈 수 있어!’

배터리 사업부가 커지는 만큼 그의 위치도 올라갈 것이라 기대다.

실제로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자신을 따라서 이 사업부에 합류한 윤상수 수석 부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은 오성 전자 기획실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배터리 생산 설비를 대여하라는 지시 말이다.

처음에는 이게 장난인지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나타난 임권수 부장은 전영수 실장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죄송합니다만 권태성 실장님이 직접 지시한 안건입니다. 이미 안재운 전무님도 다 아는 사실이고, 사장 보고까지 마쳤습니다.”

전영수 실장은 마른 몸이기는 하지만 190㎝가 넘는 장신이다. 그는 마치 분노한 호랑이처럼 임권수 부장을 괴롭혔다.

“지금 농담합니까? 미래 기술이 이 생산 설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우라니!!”

“…압니다.”

그는 임권수 부장을 비웃었다. 그가 KM 그룹 출신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 오성 전자 내의 내부 대립이 얼마나 심한지 알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알기는 뭘 압니까. 그쪽 기획 팀은 생산 설비가 뭔지나 압니까. 사무실에 앉아서 그냥 기획안만 올리면 그게 다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 생산 설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나 압니까?!!!”

목이 찢어져라 외치는 전영수 실장 태도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사업부에 합류한 임직원 중에 이번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물론 미래 기술이 최근 2,500억 투자를 받은 것은 안다.

하지만 미래 기술은 작년 매출이 고작 40억에 가까운 회사다.

회사 직원이라고 해 봐야 불과 30명 내외다.

그런 회사 임직원의 지시를 받으라니.

한국대 전자공학을 나온 전영수 실장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지시였다.

“이건 저만 가지는 불만이 아닙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임권수 부장도 공장 분위기를 느꼈다. 하지만 이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권태성 실장의 이전과는 다른 반응 때문이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어요. 일단 지시대로 해주십시오.”

전영수 실장은 몇 번이나 이야기해도 반복되기만 하자 결국 태도를 바꾸었다.

“좋습니다. 제가 권 실장님에게 연락을 직접 해보죠.”

“네.”

* * *

전영수 실장을 결국 미국에 있는 권태성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시차 때문에 전화를 안 받을 줄 알았는데, 권태성 실장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권태성 실장은 상대가 전영수 실장이라는 것을 알자 상대 행동을 충분히 이해했다. 배터리 사업부는 단순히 하나의 사업부가 아니었다. 불과 2~3년 이내에 계열사로 분리될 정도로 미래 사업성이 좋은 사업부다.

그런 사업부를 노린 전영수 실장을 무시하지 않았다.

전영수 실장은 이번 배터리 사업부에 모든 것을 걸었으니 말이다.

권태성 실장도 말을 돌리지 않았다.

[회장님 지시 사안입니다.]

전영수 실장은 전혀 예상도 못 한 인물이 튀어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네? 아, 아니, 거기에 회장님이 도대체 왜 나옵니까?]

권태성 실장 역시 내심 혀를 찼다. 이번 일은 안재운 전무 때문에 안건민 회장에게 직접 보고를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회장님 지시 사안이니, 그렇게 알아주세요. 정 궁금하면, 회장님이게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도 됩니다.]

물론 안건민 회장에게 실제로 전화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실장 나부랭이가 오성 그룹 회장에게 직접 전화해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저, 정말 회, 회장님이 지시 내린 것 맞습니까?]

권태성 실장도 전영수 실장의 내심을 깨닫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세한 내막을 밝히기는 곤란합니다. 하지만 안 회장님이 승인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장 보고까지 다 올라갔고 말이죠.]

[…….]

전영수 실장은 전화를 끊고 나서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임권수 부장 역시 당혹스러웠다. 그도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절대 간단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이 도착했다.

[미래 기술 배종구 사장이 도착했습니다.]

* * *

사실 미래 기술 배터리 생산 설비는 대체로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무인 공정으로 일부 생산 설비를 교체하기는 했지만 가야 할 길이 멀었다.

놀라운 것은 오성 전자 내의 배터리 생산 설비가 완전 자동화되었다는 점이다.

배터리 생산 설비로는 국내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영수 실장은 미래 기술 실무진 모습을 힐끗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국내 최초 설비답게 불량률을 대폭 개선했습니다. 이미 KMP-01 시제품 생산을 진행했는데, 나타난 불량률은 고작 1% 안팎입니다.”

자동화 공정답게 배터리 생산 장비는 계속해서 동작했다.

윙윙 소리는 마치 심장의 맥동 소리 같았다.

공장 설비 전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진동했다.

전영수 실장은 마치 자신의 자식을 보는 듯이 설비를 보면서 손으로 쓰다듬었다.

“모두 200억을 들여서 만들어진 이 설비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

배종구 사장은 전영수 실장의 목소리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비록 자동화 설비라고 해도 곳곳에 오성 전자 직원이 설비를 확인 중이었다. 그런 그들도 차가운 눈으로 배종구 사장을 쳐다보았다.

‘하긴 좋아할 리가 없지.’

그도 이곳에 오기 전에 최민혁 실장에게 이미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자신조차 자신의 공장을 외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오성 전자는 더할 것이다.

하지만 윤종수 전무는 미처 그런 분위기까지 읽지는 못했다.

“와, 이거 장난 아닙니다. 자금이 있어도 이런 설비를 갖추는 게 만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연했다.

양산 기술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아니, 오히려 원천기술보다 더 까다로울 수가 있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경험으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새로운 장비를 이용해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하루 이틀 걸린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전영수 실장은 굳이 아주 새로운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다.

기존에 이미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장비를 바탕으로 작업했다.

미래 기술은 오성 전자에게 500억 투자를 받았을 때도 나름의 생산 설비에 대해서 고민하기는 했다. 그들 나름 공장 증설도 했다.

하지만 오성 전자는 아예 자체 사업부를 만들고, 자동화 공장까지 만들었다.

두 회사의 역량 차이가 어떤지 잘 보여주는 결과였다.

실제로 미래 기술은 시제품을 만들고는 있지만, 문제가 계속 나왔다.

하지만 오성 전자는 좀 달랐다. 이쪽은 양산까지 무난히 끝냈으니까.

다만 KMB-01과 관련된 많은 문제가 산적해서 그걸 쉽게 풀지 못했다.

당연히 태반은 최민혁 실장과 관련이 있다.

최민혁 실장이 라이센스까지 가지고 깽판을 치면서 양산을 하기 힘들었다.

배종구 사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왜 이런 방식을 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오성 전자에게 배우라는 것일까?’

그의 예측처럼 허종진 팀장은 새삼 배터리 생산 설비를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오성 전자의 저력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그는 미래 기술에 들어가서 만족하고 있었던 자신의 현실을 깨달았다.

왜 오성 전자, 오성 전자 하는지 이제야 안 것이었다.

그럴 그럴 것이 전자 부품 연구소는 단순히 연구만 하는 곳이다.

실제로 양산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러니 경험이 없을 수밖에.

전영수 실장은 미래 기술 임직원이 못마땅했지만, 자신들의 생산 설비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들 모습을 보자 그나마 피식 웃었다. 그는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목소리를 올렸다.

“이 배터리 자동화 생산 설비는…….”

배종구 사장은 전영수 실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눈치를 봤다.

‘그런데 괜찮을지 모르겠어. 우리는 최민혁 실장님과 입장이 다르잖아.’

약간은 걱정스러운 시선.

그건 미래 기술 임직원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뒤늦게 공장 분위기를 느낀 것이었다.

‘하, 일을 빠르게 진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최 실장님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 * *

최민혁은 딱히 오성 전자를 압박할 생각이 아니었지만, 권태성 실장이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자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는 더욱이 에플 매각과 관련된 가짜 뉴스를 보고선 권태성 실장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서 일을 밀어붙였다.

다만 일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까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조성돈 팀장이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는 특히 한 가지를 더 걱정했다.

“아무래도 오성 전자 생산 팀이라면 자부심이 꽤 클 겁니다.”

“우리 쪽 공장 근로자보다 더 심하겠죠?”

“말도 못 할 겁니다. 설사 위에서 지시를 내렸다고 해도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훼방을 놓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래 기술 임직원이 실수해서 생산을 중단했다고 하는 방법도 있고, 방법은 많습니다.”

공장 근로자의 텃세는 어떤 회사를 가도 있는 이야기였다.

그건 같은 공장 근로자 내에서도 존재한다.

특히 노조가 대표적이다.

근로자의 이익을 위한다고 하지만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폭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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