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
하지만 안재운 전무는 역시 최민혁 실장에 대한 불만을 쉽게 추스르지 못했다. 그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가 버럭 소리쳤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번에 제대로 한 방 먹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권태성 실장은 성급한 안재운 전무의 행동에 크게 실망했다.
“지금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최민혁 실장을 건드릴 필요는 없어요. 정보만 넘겨줘도 되니까 말이죠.”
“네?”
“모건 스탠리 말입니다. 요즘 최민혁 실장과 대립한다는 이야기를 아는 지인에게 들었어요.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문제는 있을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모건 스탠리 측에 가서 한번 이야기를 해보죠. 분명히 뭔가 반응을 보일 겁니다. 아니면 그냥 정보를 준 것으로 만족할 테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흠.”
권태성 실장도 처음에는 안재운 전무의 말에 실망했지만,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바로 들어주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니 말이다.
‘다시 독촉이 들어오면, 그때 가서 이야기를 해도 늦지는 않으니까.’
그는 결국 안재운 전무의 제안을 수긍하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 * *
권태성 실장은 안재운 전무와 같이 모건 스탠리 본사를 방문했다. 오성 전자의 기획실장과 오성 전자의 황태자 신분 때문인지 만남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이 만남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타난 이는 뜻밖에도 에플 인수합병 팀의 폴 고슬링이었다.
“폴 고슬링입니다.”
“오성 전자의 궈, 권태성 기획실장입니다.”
“안재운 전무입니다.”
그는 솔직히 크게 당황했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모건 스탠리 내의 주요 인사에 대한 자료를 받았다. 그리고 폴 고슬링은 모건 스탠리 이사회 중에서도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측근이었다.
그가 다루는 금액은 무려 200억 달러를 넘었다.
절대로 가볍게 볼 인사는 아니었다.
다만 폴 고슬링은 권위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그의 태도에서 별다른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인간적인 그 모습은 언뜻 놀라운 것이었다.
덕분에 대화는 순조로웠다.
폴 고슬링은 뜻밖에도 최민혁 실장과 에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요즘 에플에 관심이 많아서 말입니다. 그러니 에플 최고 대주주인 최민혁 실장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아, 최민혁 실장 말입니까.”
그도 이번 용건 자체가 최민혁 실장 때문이지만 상대 입에서 먼저 최민혁 실장의 이름을 듣자 황당했다.
모건 스탠리가 설마 최민혁 실장을 주시할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안재운 전무는 ‘최민혁 실장’의 이름을 듣고는 질투했다.
다행히 그는 권태성 실장 때문에 심호흡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사실 폴 고슬링이 담당자가 아닌데도 이 자리에 나온 것도 권태성 실장 자신이 최민혁 실장을 잘 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권태성 실장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민혁 실장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특히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폴 고슬링은 화들짝 놀랐다.
“가만, 그러면 모토롤라와의 계약은 단순히 그냥 계약에 불과하다는 말입니까?”
권태성 실장은 몸을 들썩이는 폴 고슬링 행동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역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모건 스탠리가 이 정보에 저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일지는 몰랐다.
“네. 스타택 판매는 아마 출시일보다는 몇 개월 더 늦어질 겁니다.”
“호, 그래요. 그건 정말 흥미로운 정보군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부탁합니다.”
폴 고슬링도 최근 최민혁 실장과 에플을 조사하면서 깊은 번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쉽게 상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같아서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권태성 실장의 이야기를 듣자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는 뒤늦게야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하긴 현실과 이상은 틀린 법이겠죠.”
“최민혁 실장도 비슷할 겁니다. 그 역시 양산의 어려움을 잘 모를 겁니다. 차세대 배터리 원천기술이야 확보했지만 그걸 양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권태성 실장은 쾌재를 불렀다.
안재운 전무 역시 옆에서 내심 최민혁 실장 욕을 바가지로 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최근 최민혁 실장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늘어놓았다.
아주 사소한 정보였다.
그 정보는 폴 고슬링에게도 꽤 귀중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 본진이 한국에 있는 만큼 자세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참, 이지수 박사에 대해서는 혹시 아는 것이 있습니까?”
“자세한 것은 저희도 모릅니다. 다만 MP4 원천 특허를 포함해서 꽤 귀중한 특허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MP3 원천 특허 말입니까?”
“네. 저희도 조사하면서 우연히 안 겁니다. 이지수 박사의 실적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폴 고슬링은 크게 당황했다. 그도 이지수 박사에 대해서는 간과했다. 정확히는 테일러 박사가 설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다.
권태성 실장도 나름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하자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우리도 간접 투자는 하는 편이니까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안재운 전무는 권태성 실장과 시선을 마주한 채 폴 고슬링이 허겁지겁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쾌재를 불렀다. 이 정보가 제법 모건 스탠리에게 자극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한 방 먹이네.’
* * *
권태성 실장과 안재운 전무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폴 고슬링 역시 KMB-01 양산 가능성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 역시 최민혁과 모건 스탠리가 협상했다고 하지만 아직 시장에 제품이 바로 나올 것으로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최소로 잡아도 몇 개월은 걸리니 말이다.
그런데 양산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당장 미래 기술 매출이 급등할 테니 말이다.
그건 당연히 에플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차세대 배터리가 KMP-02B에 적용될 것이고, 다른 MP3에 비해서 비교 우위가 될 테니 말이다.
‘진짜 만만한 인간은 아니네.’
더욱이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통해서 최민혁 실장과의 미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둘 사이의 갈등은 이제 점점 벌어져서 쉽게 회복될 수준이 아니었다.
‘이거 심각한데.’
* * *
폴 고슬링은 위기감을 느끼자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찾아갔다.
“에플 공매도 계획은 다시 한번 검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안색은 마치 변온동물처럼 바뀌었다.
“폴, 그 자리에 있기가 싫은 겁니까?”
“하지만 에플 상황이…….”
“상황이 만만치 않은 것은 압니다. 하지만 대안을 찾으면 답이 나옵니다. 설마 이제까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할 겁니까?”
부드러운 어조.
그런데 눈빛은 달랐다. 마치 파충류처럼 차갑게 번들거렸다. 지금 저 모습이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차가운 태도에 폴 고슬링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제대로 분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일러 박사에게 압력을 받은 건가? 하면 더 윗선이 얽혀 있다는 이야기네.’
그로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알았다고 말만 하고서는 곧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에플 인수합병 팀을 모두 불러 모았다.
[문제가 생겼어.]
* * *
에플 인수합병 팀은 다년간의 인수합병을 경험한 전문가였다.
과거 펀드 매니저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들이다.
그들은 폴 고슬링이 지금 상황에 대해서 말해주자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벌였다.
다행히 방법은 꽤 나왔다.
[다른 것을 떠나서 최민혁 실장은 투자자입니다. 그렇다면 에플 지분을 얼마든지 매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일이 힘듭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상황이 다릅니다.]
그 대안이 바로 작년 에플의 실적이었다. 특히 4분기 순손실 부분은 간과하기 힘든 부분이다. 거기에 대규모 구조조정도 말이다.
스티븐이 다시 CEO가 된 이후에 갈려 나간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 부분은 많은 미국 대형 언론사에서 우려하는 부분이다.
[물론 KM전자의 원천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무시하기 힘듭니다. 그 덕분에 에플 주가가 8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욱이 MP3와 데스크톱 아닙니까? 아무리 잡아도 나올 매출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매출만으로 에플이 부활할 수는 없습니다.]
맞는 이야기였다.
에플의 드러난 성과는 최악이었다.
어디까지나 에플 미래 가치 때문에 8달러까지 올랐다.
이걸 흔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모건 스탠리는 수십 건의 인수합병을 진행하면서 한 일이었으니까.
즉 에플 미래 가치를 흔들면 에플 주가는 폭락할 것이 분명했다.
“흠.”
폴 고슬링도 집단지성의 결과에 꽤 만족했다. 들어보면 정말 그럴듯했다.
물론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핵심 인물인 케네스 최는 차가운 어조로 자기 주장을 피력했다.
“굳이 진실을 다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편적인 사실만으로도 얼마든지 에플을 흔들 여지가 많습니다. 일단 시작은 최민혁 실장입니다. 그가 주식을 매각하겠다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간단합니다. 에플에 관심이 많은 이를 부추기면 됩니다.”
“누굴 말하는 거지?”
“선마이크로시스템입니다.”
“선이라…….”
‘하긴 선은 이미 수십 차례 에플 인수 의사를 밝혔지.’
폴 고슬링은 고트 맥밀리 회장이 과거 에플 인수에 실패하는 것을 한탄한다는 이야기는 마이크 라이언을 통해서도 들었다.
“좋아, 한번 기획안을 올려봐.”
“알겠습니다.”
* * *
최민혁 실장이 에플 지분을 인수하기 전에만 해도 IBM, HP, 선마이크로시스템은 에플과 인수 협상을 벌였다.
결과는 가격 합의에 실패.
결국 일본 기업이 뒷순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최민혁 실장이 툭 튀어나와서 에플 지분을 쓸어 담았다.
솔직히 에플 인수 기업 입장에서는 최민혁 행보는 황당한 일이었다.
그들은 뒤늦게야 자신이 막타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최민혁 실장에게 계속해서 연락해 보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아예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 빼놓을 수가 없는 기업이 바로 선마이크로시스템이다.
그들은 에플을 인수해서 자신의 소프트웨어와 시너지를 최대한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에플 상황이 나빠서 어차피 내일 당장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업이니까.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KM 전자 기술을 앞세워서 에플 주가를 끌어올렸다.
1달러 아래를 맴돌던 에플 주가가 무려 10달러까지 치솟았다.
비록 지금은 조정장을 거치면서 8달러에 도달했지만 말이다.
선마이크로시스템은 이제 에플 인수를 포기해야 할 단계였다.
그런데 모건 스탠리 측에서 갑자기 에플 인수에 서로 손을 합치자는 제안을 해온 것이었다.
[에플 인수에 손을 합치죠!]
선마이크로시스템의 고트 맥밀리 회장은 갑작스러운 모건 스탠리 주장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역시 알음알음 모건 스탠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의도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에플은 꽤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그는 결국 실무진을 통해서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했다.
[에플 지분과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 * *
최민혁 실장은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 들어온 선마이크로시스템 제안에 듣지도 않고, 그냥 거절했다.
“에플 매각은 전혀 생각이 없으니, 관심을 끄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선마이크로시스템의 행보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 회사는 에플에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스토커처럼 계속해서 전화한 것이었다.
[일단 만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