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01화 (701/1,021)

#701.

이 덕분에 오성 전자 역시 모든 일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핸드폰 사업부 연구원들은 주말에도 제대로 집에 가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은 그 결과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 한 지시 덕분에 오성 전자 내부 역시 폭탄을 맞은 것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권 실장이 확실히 일을 잘해.’

그는 솔직히 자신이라면 이렇게 일을 꼼꼼하게 챙길 수 없다고 확신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미래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니까.

그는 권태성 실장에게 바로 전화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작스러운 최민혁 실장의 전화에 권태성 실장은 일단 부담부터 느꼈다.

아니, 위화감이라고 해야 할까.

최민혁 실장이 굳이 자신에게 당장 전화할 이유가 없었다.

콜린스 사업부 매각은 에플 제품 출시 이후라고 추정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 가지 부탁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부탁이라면…….]

[다른 건은 서로 협의를 해야 하니 제외하겠습니다. 하지만 차세대 배터리 부분은 좀 다르죠. 우리 둘 다 서로 손을 잡은 상황이니까요. 5% 지분을 넘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니. 대주주로서 미래 기술을 좀 도와줬으면 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최민혁은 이미 이 시기에 오성 전자가 CDMA 단말기는 물론 배터리를 개발하는 것을 잘 안다. 심지어 배터리 생산 설비마저 갖추었다는 것도 말이다.

‘이미 확인까지 했고.’

[차세대 배터리, 정확히는 KMB-01 생산 설비를 이미 어느 정도 갖춘 것으로 압니다.]

권태성 실장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그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라이센스를 줬는데, 당연한 거 아닙니까? 어차피 시장에서는 핸드폰이 마구잡이로 쏟아지지 않습니까. 오성 전자가 핸드폰 시장을 공략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죠.]

[…그건 맞지만.]

권태성 실장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오성 전자를 지켜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원래 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혀를 찼다.

[부탁이 생산 설비와 관련된 겁니까?]

[네, 그 설비를 좀 빌렸으면 해요.]

[그건 좀…….]

권태성 실장은 우선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최민혁 실장이 혹시 이 일에 집착하지 않을지 기대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설마 제가 미래 기술 5% 지분을 오성 전자에 공짜로 넘겼다고 생각합니까? 전 그쪽에서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판단하에 지분을 넘긴 겁니다.]

[하.]

권태성 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 말이 틀리지 않았다. 5% 지분은 이전과는 달리 저렴하게 사들인 것이었다.

‘매출 40억 회사의 지분 5%를 500억에 넘겼는데도 저렴하다니.’

새삼 푸념이 나왔지만 말이다.

그는 동시에 최근 최민혁 실장의 행보 한 가지를 떠올렸다.

[설마 모토롤라에 공급할 배터리 물량 때문입니까? 미래 기술 생산량으로 커버가 어려우신가요?]

[솔직히 맞습니다. 예상했던 일이 아니라서 일이 좀 꼬여서 말이죠.]

당당히 약점을 털어놓은 최민혁 실장 되시겠다.

하지만 권태성 실장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아니, 그는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반대하지는 않았는데,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갔다.

[…혹시 모토롤라 물량을 우리 쪽에 OEM으로 주겠다는 말은 아니겠죠?]

[잘 아시는군요. 전 제조업 생산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압니다. 그건 오성 전자가 독보적이죠. 그러니 오성 전자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죠.]

[…….]

권태성 실장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라이센스를 받아서 생산하는 것과 외주는 이야기가 많이 달랐다. 더욱이 외주를 주려면 오성 전자가 미래 기술에 주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거꾸로 되었으니.

솔직히 다른 회사, 아니, 다른 대기업이 제안해도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것이다.

감히 오성 전자 생산 시설을 빌려서 이용하겠다니.

문제는 최민혁 실장 제안이라 거절하기가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에플도 있고, 구골 있으며, 심지어 KMBOOK도 있었다.

권태성 실장은 안 그래도 최근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을 분석하면서 M자 탈모를 경험 중이었다.

[이번 건은 최 실장님이 저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도 됩니까?]

[뭐, 그렇게 생각해도 좋고요.]

최민혁 실장은 말을 해놓고도 권태성 실장이 참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지간한 대기업 기획실장이라면 오히려 최민혁 실장에게 반발했을 테니 말이다.

화 한 번 내지 않는 것도 대단했다.

만약 제안을 거절하면,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일정상으로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권 실장과 같이 갈 수밖에 없어.’

[잠깐 내부적으로 이야기해 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은 대답 기다리죠. 시간이 없으니, 좀 더 서둘러 주세요.]

* * *

권태성 실장은 최민혁 실장과 전화를 끊고 나서는 우선 핸드폰 관련 사업부 현황부터 살폈다. 차세대 핸드폰 개발은 이미 막바지 단계였고, 이에 탑재한 배터리 생산 설비 역시 막 양산을 시작할 시점이었다.

다만 이 배터리 양산은 잘 진행되다가 최근 유보되었는데, 미래 기술과의 협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성 전자가 미래 기술의 지분 5%를 가지게 되면서 협상은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물론 오성 전자는 차세대 배터리 양산과 관련해서 굳이 미래 기술에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어차피 미래 기술도 오성 전자에 대해서 굳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라이센스 비용이었다.

여기에 핸드폰 사양 역시 개발 과정이 늘어지면서 일정은 그냥저냥 진행되었다.

여기까지는 최민혁 실장이 끼어들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도 크게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오로지 특허 로열티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오성 전자는 최민혁 때문에 미래 기술의 눈치를 자주 봤다.

때문에 갑질 따위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갑자기 최민혁 실장이 이 일에 끼어든 것이었다.

‘갑자기는 아닌가? 모토롤라 때문인가. 그런데 모토롤라 협상은 왜 이렇게 서두는 것일까?’

그가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모토롤라 핸드폰 판매량을 1억 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걸려 있는 협상이다.

이 정도 규모의 협상이 고작 몇 달 진행해서 끝날 수 있을 리가 없다.

모델별로, 판매량에 따라서 다양한 조건과 옵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태성 실장은 골치가 아파서 최민혁 실장 쪽에 대한 것을 일단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는 이보다 최민혁 실장의 요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안재운 전무에게 넌지시 이야기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안재운 전무는 기가 찼다.

“하, 이건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미래 기술이 양산 설비라도 갖추었다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그쪽은 아직 제대로 된 설비가 없지 않습니까. 이번 시제품 물량을 무리수를 둬서 만들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설마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들어줄 생각입니까?”

사실이었다.

아직 미래 기술은 제대로 KMB-01을 양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금 나온 샘플은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물량이었다.

불량 없이 잘 동작한다는 것이 기적인 수준이었다.

그걸 잘 아는 권태성 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 제안을 거절하면, 최민혁 실장은 다른 수단을 강구할 텐데, 그럼 다른 업체 쪽에 배터리를 외주로 돌릴 때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정확히는 콜린스 사업부 인수 문제가 복잡해진다는 뜻이었다.

안재운 전무가 그 뜻을 모르지 않았다. 그 역시 최근 잠적을 한 최민혁 실장 행동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악명이 자자한 최민혁 실장 이야기가 그저 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솔직히 지금에서는 굳이 콜린스 사업부를 인수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LCD 산업은 막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우리 쪽에서 무리하게 시장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권태성 실장도 그 부분은 잘 안다.

“하지만 LCD 산업이 어느 정도 성숙기에 가기까지는 적어도 10년은 족히 걸립니다. 그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콜린스 모델이 LCD와 비교하면 가지는 강점도 있습니다. 설사 LCD가 시중에 나와도 여전히 전문가 쪽에서는 콜린스를 찾을 겁니다.”

콜린스가 가지는 아날로그 감수성은 디지털이 절대로 따르지 못한다.

실제로 소니를 비롯한 일본 업체 역시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콜린스 타도를 외친 것이었다.

그건 오성 전자 역시 다르지 않았다.

거기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아직 최민혁 실장에게 받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K투스도 있고, MP3 로열티도 문제입니다. 거기에 MP4 로열티 역시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네? MP4 로열티는 또 뭡니까?”

“MP3는 음성과 관련된 영역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MP4는 바로 비디오 압축과 관련된 기술입니다.”

“그건 알겠어요. 하지만 최 실장이 MP4 특허까지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입니다. 잘못 아신 것 아닙니까?”

“이지수 박사가 MP4 특허권 일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지수 박사가 가진 특허는 MP4 특허 중에서도 핵심입니다.”

“네?!”

안재운 전무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권태성 실장 역시 놀랐던 건 매한가지다. 그도 이 정보를 불과 어제 알았으니 말이다. 이지수 박사를 조사하면서 안 사실이다.

“이지수 박사뿐만 아니라 그녀와 같이 일하는 헨렌을 비롯한 연구원 몇 명이 이 원천기술 특허권 소유자입니다. 그들은 모두 최민혁 실장이 설립한 KMBOOK의 핵심 연구원이고요.”

안재운 전무도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MP3 특허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MP4 특허권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는 상상도 못 했다.

단순히 운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저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만 사실입니다.”

“가만, 그렇다면 차라리 이지수 박사를 스카우트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게 더 나은 방법 아닙니까?”

권태성 실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확인한 바로는 이지수 박사를 끌어들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이지수 박사를 대체 어떻게 스카우트했는지 그게 더 궁금했다.

더욱이 지금은 배터리 문제 처리가 더 급했다.

“그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시죠. 중요한 건 최민혁 실장이 꿍쳐둔 기술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자칫 최민혁 실장과 대립각을 세웠다가는 큰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얻은 후에 손을 써도 써야 합니다.”

“끙.”

안재운 전무는 이를 갈았다. 그도 처음에는 최민혁 실장을 동생 정도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와 같이 있을 때는 화 한 번 내지 않은 호구였다.

끝없이 퍼주는 나무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발톱을 숨긴 야생 고양이었다.

권태성 실장 역시 좋은 얼굴이 아니었다.

“지금은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모토롤라 때문인가요?”

“네.”

정확히는 모토롤라가 이미 KMB-01을 채택했다. 이제는 오성 전자 역시 이 KMB-01을 무조건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시점에서 최민혁 실장과 대립할 수는 없었다.

권태성 실장 역시 골치가 아팠다. 미래 기술에 대해서는 아예 기획 팀을 할당해서 꾸준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설마 자신이 미국에 와 있는 동안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런데 설마 우리 둘이 이 일을 정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아, 기획 팀 통해서 이미 협의는 끝내 놓은 상황입니다. 사장 보고도 했습니다.”

“휴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안재운 전무는 어차피 권태성 실장 덕분에 안건민 회장에게 칭찬도 받았다. 그는 굳이 흔한 재벌 3세처럼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게 또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권태성 실장도 안재운 전무의 이런 점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안재운 전무가 망나니 재벌 3세 모습을 보였다면 일이 복잡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최민혁 실장이 왜 이러는지 그게 더 골치였다.

‘갑자기 일을 막 벌이는 것 같아, 무슨 다른 목적이라도 있는 것일까? 모건 스탠리와의 대립 때문일까? 아니, 애초에 미래 기술을 이용해서 우리 쪽을 압박하려는 것일까?’

그로서는 왔다 갔다 하는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대답은 당연히 Yes였다.

현재로썬 권태성 실장이 최민혁 실장의 어지간한 제안은 거절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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