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스타택 샘플을 살펴보았다. 그는 이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솔직히 이 샘플은 그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이 하는 일 자체가 기업 인수합병과 현물 투자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실제로 그 회사 내부를 실사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못 볼 것을 자주 봤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양산.
양산은 단순히 계획한 대로 쉽게 진행되는 일이 아니었다.
차세대 배터리.
말은 좋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회사가 파산하니까.
그런 회사를 정리해서 인수합병하는 것이 자기 일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다시 검토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좀 이상합니다.”
하지만 폴 고슬링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도 펀드 매니저 생활이 몇 년인데, 스타택의 가치를 모를 수가 없었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지금이라도 모건 스탠리 이사회 쪽에 말해서 차라리 최민혁 실장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떨까요?”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모건 스탠리 이사회 내부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이미 결정이 난 일이다. 이제 와서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그건 어려울 겁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 때문입니까?”
“꼭 그쪽 라인만이 아닙니다. 그 반대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이번 일을 실패하면 책임을 질 사람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 쪽이니까.”
폴 고슬링은 자신이 똥 밟았다고 확신했다. 이런 일은 아차 잘못하면 결국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기 때문이다.
“회사 손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겁니까?”
“…이익만 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손실이 생겨도 그렇게 크지 않고.”
폴 고슬링도 이번 일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도 처음에는 멋모르고 최민혁 실장을 우습게 봤지만 아니었다.
이번 일은 자칫하면 깊은 수렁으로 빠질 일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공매도를 위한 물량 확보 금액만 해도 10% 기준으로 볼 때 대략 30억 달러 가까이 필요합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손실이 얼마나 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건 너무 앞서 나간 생각일 뿐입니다.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안 됩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지금 에플 주식 매집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큽니다.”
실제로 폴 고슬링은 에플 공매도를 위한 물량 확보에 들어갔다. 에플 주가가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 것도 다 그런 것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에플 매집 세력이 강력하다는 거다. 어지간한 루머에 이들이 휩쓸린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모토롤라 로열티 협상 이후에 상황이 또 많이 달라졌다.
에플 주가 분위기 자체가 점점 변하는 중이었다.
에플 투자자는 저가 에플 주식이라면 얼마든지 매집하겠다는 태도였다.
“상황이 이전과는 다릅니다. 에플 주식에 대한 투자자들의 대응이 달라졌어요. 모토롤라 분위기를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합니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자칫 시장에 역행하다가는 모건 스탠리 역시 손실을 피하기 어려웠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그런 점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모건 스탠리 이사회의 분위기를 다시 떠올리고는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지금은 방법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하, 이거야 원.”
폴 고슬링은 자신이 최악의 선택을 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 역시 폴 고슬링의 충고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새삼 자신이 놓친 미래 기술 지분을 떠올렸다.
‘아직 상황이 끝나지는 않았어. 꼭 바트화가 아니더라도 방법은 있을 거야. 최민혁 실장 행동도 석연치 않아.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모토롤라 계약을 서두른 건지도 이상하니까.’
“저도 한 번 다시 검토해 보겠습니다.”
* * *
미래 기술 계약 건 때문에 외부적으로 조용한 모건 스탠리는 내부적으로는 그렇지가 못했다.
차세대 배터리 관련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는 이미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벨코어사에 대한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과 손을 잡았다면 계획대로 밀어붙이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모건 스탠리는 미래 기술을 주시했다.
다른 수작은 미래 기술 오너가 최민혁 실장이라서 자제했다.
기술을 빼 오거나 아니면 기술을 베끼거나 그것도 아니면 사람을 빼 오는 방식 말이다.
이 세 가지 중에 그 어느 것도 미래 기술에는 먹히지 않았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도 정보를 얻는 데 한계를 느끼자 일단 최민혁 실장에게 다시 찾아갔다.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나발을 불던 최민혁 실장은 어느덧 캘리포니아 저택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저택 근처에 인접한 바닷가에 초호화 요트를 대여했다.
그 배 안에는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금발 미인과 신비한 동양 미인이 같이 자리했다.
동양 미인의 모습은 한 폭의 유채화 같았다.
눈부시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녀 옆에서 깔깔 웃는 금발 미인 역시 무시하기는 힘들다.
늘씬한 몸매는 도저히 시선을 떼기 힘들었다.
요트 주변을 오가는 남자들의 시선은 모두 이 두 사람에게 가 있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아예 두 사람을 보지 않았다.
정확히는 금발 미인이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시선을 막았다.
세 사람이 대화하는데, 그게 좀 묘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조차 전혀 예상을 못 한 최민혁 실장의 모습에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아, 제가 투자한 회사 경영진입니다.”
“…네.”
최민혁 역시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갑자기 찾아온 두 사람에게 요트 여행을 권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지수 박사는 수영복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무슨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지 최민혁 제안을 받았다.
헬렌은 덤이다. 그녀는 자신이 경호원이라도 된 양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요트를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막상 또 그렇지도 않았다.
최민혁은 헬렌이 끼어들자 이지수 박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웃기는 것은 헬렌이 계속 끼어들어서 그녀의 적나라한 몸매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또 웃기는 일이었다.
최민혁은 KMBOOK 업무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모건 스탠리 반응입니다. 그쪽의 대답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말로는 잘 지낸다고 하지만 실제 행동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번 모토롤라 계약도 그 연장선 아닙니까. 미래 기술 지분을 굳이 모톨로라에게 넘긴 것 말입니다. 우리와 싸우겠다는 것 아닙니까?”
최민혁은 오히려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모토롤라 측에서 로열티 협상이 들어왔습니다. 일괄 거래로 비용을 줄이겠다는 제안인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아니, 계약 시점이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는 말입니다!”
최민혁은 길길이 날뛰는 스탠리 로버트 이사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있으니, 초조하겠지. 더욱이 이번 계약 통해서 차세대 배터리 가치가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니.’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의도적으로 모토롤라를 건드려서 우리 쪽을 압박하려는 의도를 잘 압니다. 하지만 블러핑이라는 것도 압니다. 아직 배터리 공급이 진행된 것도 아니고, 양산조차 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언론에는 마치 대규모 양산이 진행된 것처럼 말씀하시더군요.”
“과연 그럴까요?”
“제가 알기로 미래 기술은 작년 매출이 고작 40억에 불과합니다. 그런 회사가 어떻게 모토롤라가 원하는 물량을 다 공급합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스탠리 이사님을 만난 시점에서는 그랬을 겁니다. 지금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성 전자는 이미 500억을 투자했고, 모토롤라에서 이미 2,000억을 투자했습니다. 2,500억을 투자해서 생산 설비를 늘리면 모토롤라가 원하는 물량을 공급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양산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트화 문제는 당장 필요한 정보이니, 별 의미가 없는 행동입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원하는 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벨코어사도 삽질을 많이 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최민혁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사실이기도 했다.
최민혁이 스탠리 로버트 이사가 새삼 깐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까지 그가 상대한 적과는 대응 자체가 많이 달랐다.
‘뭐, 그렇다면 일을 좀 더 키우면 되겠지.’
애초에 그가 하려는 방식은 이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알기로 오성 전자는 차세대 배터리 양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심지어 이미 배터리 생산 설비에 투자했다는 것도 말이다.
‘KMB-01 생산 설비는 이미 가동한다고 했지.’
굳이 그 일을 내버려 둔 것은 건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오성 전자에게 로열티를 받으면 상관이 없으니까.’
이보다는 KMB-01 생산을 통한 홍보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못 믿겠다면 제가 직접 증명을 해야겠군요. KMB-01 양산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
“말이 되는지 아닌지는 제가 직접 보여주면 되겠지요?”
“저, 정말 KMB-01 양산에 성공했다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결과로 증명해 드리죠.”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최민혁 실장을 한동안 째려봤다. 그는 새삼 모건 스탠리 사무실에서 꼬박 밤을 새워가면서 야근한 자신을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렇게 고생하는 사이 최민혁은 유유자적 쉬고 있었다.
그것도 초호화 요트에서 초미인들과 같이 말이다.
속사정은 겉으로 보는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리하다가는 결국 손실을 보게 될 겁니다!!!”
“두고 보면 알겠죠.”
최민혁 실장은 떠나가는 스탠리 로버트 이사의 모습을 보다가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어지간한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은 이지수 박사 역시 헬렌과 비슷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입니다. 모건 스랜리에서 일하는 친구입니다.”
헬렌이 슬쩍 끼어들었다.
“설마 모건 스탠리와 싸우는 겁니까?”
“에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좀 의견 대립이랄까?”
최민혁을 늘 견제하는 헬렌은 흠칫 놀랐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건 이지수 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쳐다보았다.
다행이라면 조성돈 팀장이 허겁지겁 나타나서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는 보고서를 보는 척하면서 두 사람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일이 좀 꼬이네. 어쩔 수 없나. 일단 KMB-01 양산을 서둘러야겠어.’
* * *
최민혁은 스탠리 로버트 이사가 떠난 후에 한동안 고민했다.
일단 세부 계획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다행이라면 KMB-01 생산은 다른 일과는 좀 달랐다.
오성 전자가 엮인 덕분에 일정을 대폭 줄일 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구골이나 KMBOOK이 나온 이상 KMB-01이 후순위였기 때문이다.
그는 조성돈 팀장에게 지시해서 오성 전자 내의 배터리 생산 현황을 확인했다.
조성돈 팀장은 다행히 이 정보를 이전보다는 쉽게 얻었다.
“생각보다는 빠르게 진행되었군요.”
“모토롤라의 스타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성 전자는 이미 사전에 정보를 얻었고, 그 대안으로 차세대 모델 개발 속도를 올렸습니다. KMB-01 양산에 투자를 대폭 늘린 것도 그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랬다.
최민혁 실장이 KMB-01을 가지고 모토롤라 측과 협상을 한 덕분에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모토롤라도 초소형 핸드폰의 가장 큰 문제점인 배터리가 해결되자 굳이 일을 미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이미 개발 팀에서 막바지 단계인 스타택에 적용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