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
“그런가요?”
“네.”
조성돈 팀장은 더 뛰기 싫어서 입을 열었다.
“기자 회견 준비는 별 탈 없이 잘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기자들 반응은 어때요?”
“그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최근 돌았던 에플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 때문에 이번 협상 자리에서 뭔가 새로운 정보가 나오나 귀를 기울이는 중입니다.”
“딱히 특별한 것은 없잖아요?”
“물론입니다.”
최민혁은 그제야 피식 웃었다.
“참, 모토롤라 측에서 차세대 폰에 KMB-01을 적용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 시제품을 이번 계약 자리에서 보이라고 하세요.”
“네? 그건 좀 무리일 겁니다.”
“그걸 안 보여주면, 계약은 없던 것이라고 말을 박으세요. 사람들이 결과를 보여주지 않아서 믿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보여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아쉬운 것은 모토롤라 측입니다. 싫다고 하면 계약을 엎어버리면 됩니다.”
“…….”
조성돈 팀장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지금까지 모토롤라와 진행된 계약 과정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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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도 이 정도면 범죄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역시 모토로라다.
그들은 빨리 계약을 해야지 KM 전자의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차라리 강하게 나가는 것이 좋아요. 그래야 모건 스탠리도 적극적으로 나올 겁니다. 그들은 투자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겠죠. 필요하다면 한국 자본을 끌어올 수도 있고요.”
에플 공매도 규모만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KM 전자 계열사 주식도 포함할 수가 있었다. 차라리 그게 더 개연성이 높았다.
최민혁은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무래도 모건 스탠리 덩치가 있지 않습니까? 규모가 클수록 그들은 더 집착할 겁니다. 그럴수록 우리 이익은 늘어날 거고요.”
조성돈 팀장은 묵묵히 듣다가 불쑥 한 가지를 지적했다.
“괜찮을까요? 미국주식거래위원회에서도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글쎄요. 그게 왜 문제가 될까요? 모건 스탠리가 알아서 그쪽은 잘 처리할 겁니다. 그들이 욕을 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휴우, 알겠습니다.”
* * *
모토롤라는 갑작스러운 최민혁 지시에 분통을 터뜨렸다.
차세대 핸드폰에 KM 전자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시제품 단계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제품을 계약 현장에 내놓으라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변덕이 개같은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더 계약을 지연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모토롤라는 차세대 핸드폰 샘플을 일단 일정 안에 만들었다.
KM 전자도 덕분에 이번 행사를 소홀히 할 수가 없어졌다.
국내 언론만이 아니라 해외 언론에도 연락을 보낸 것이었다.
KM 전자 대강당 역시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범용구 기자는 동료 기자 세 명과 같이 KM 전자 대강당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200여 명이 넘는 기자가 와 있었다.
KM 전자 대강당은 마치 시장 바닥처럼 시끌시끌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에플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유언비어가 많이 돌았다.
“에플 차세대 제품이 정말 그렇게 좋은 것 맞습니까? 솔직히 지금까지는 그래도 이해를 했는데,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인공지능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듣기는 한 것 같아요.”
“인공지능 기술이 괜찮다는 이야기는 이미 10년 전에도 나왔어요. 하지만 실제로 구현되어서 성공한 사례 자체가 있습니까?”
“뭐, 그럴 수도 있죠. 투자은행에서도 요즘 에플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가 도니까.”
“요즘 시장에 에플 주식이 상당히 나온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실제로 모건 스탠리가 작업해서인지 에플 주가는 횡보를 거듭하면서 하락세를 보였다.
최근 6달러를 한 번 찍고 다시 상승해서 8달러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시장 수급이 좋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들 반응을 듣고 있는 범용구 기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모인 기자들의 숫자에만 혀를 내둘렀다.
“와, 정말 계약을 하기는 하는구나.”
최광수 기자 역시 외신 기자의 반응을 살피면서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그 역시 국내에 도는 에플 정보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계약은 좀 지긋지긋한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사람들도 믿지 않을 정도입니다.”
“최민혁 실장이 평범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최종 계약 자리에서 파투 내는 것은 아니죠.”
푸념을 털어놓은 이들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계약이 이제 체결되는 것이 신기했다.
최광수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에플을 둘러싸고 말이 많잖습니까. 아마 그 일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
“네? 아니, 그 일과 이번 기자회견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미국 쪽에 나가 있는 특파원 이야기로는 모건 스탠리가 움직이기는 하는데, 행동이 굼뜨다는 소리가 있으니까요.”
최광수 기자는 미국 내의 정보 몇 가지를 가지고 이런저런 추리를 했다. 그런데 뭔가 화끈한 정보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에플 주식 자체가 워낙에 이슈가 되니, 선뜻 먼저 움직이는 것이 망설여지겠지. 자칫 큰 손실을 볼 수가 있으니까.”
흐름 자체는 에플에 대한 불신이다. 그런데 지금 에플의 주가를 보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결국 자금이 적은 세력은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건 스탠리나 샐로먼 브러더스 같은 이들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기만을 원했다.
그런데 이들 역시 자신들이 손해를 먼저 볼 수만은 없었다.
일단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그 타깃으로 본 곳이 바로 한국 대기업 자본이다.
이들은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잘 알 테니, 그것을 본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 자본은 그들이 예상한 것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서로서로 몸을 사린 것이었다.
이건 절대로 최민혁 실장이 원한 그림이 아니었다.
결국 그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박상기 차장은 흡사 이런 최민혁 실장 마음을 속속들이 안 사람처럼 모여 있는 백여 명이 넘는 기자를 상대로 입을 열었다.
[우선 소개할 분이 있습니다. 모토롤라 아시아 시장을 책임진 다니엘 밀러 부사장님과 오영근 KM 전자 사장님입니다.]
두 사람이 나오자 관련 인물도 같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실무진 한 사람씩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그다음에 협상과 관련된 기술에 대한 소개 역시 뒤를 이었다.
K투스 관련 기술 부분은 좀 더 상세하게 다루어졌는데,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이 기술을 아는 전문가들은 그 내용을 받아 적기에 정신이 없었다.
질문하기보다는 이 기술이 어디에 적용될지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그때는 기자들을 제대로 호출도 하지 않은 비밀 계약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그 자리에서 계약을 뒤집어엎어서 당시 취재했던 기자들은 특종에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오늘 계약은 많이 달랐다.
공식적인 발표였다.
이미 KM 전자 측에서 일부 양보한 터라 모토롤라 측은 입을 쿡 다문 채 지켜보기만 했다. 그들은 설마 이번 계약도 쫑 나지는 않을까 염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상황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런저런 계약 조율을 마친 상황이니까.
박상기 차장은 계약과 관련된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 우리 회사가 가진 원천기술 중에 K투스, 무선랜 기술, 배터리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아 물론 배터리 생산 자체는 미래 기술에서 진행합니다. 뭐, 그 회사의 오너가 우리 최민혁 실장님이니, 사실 한 집안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박상기 차장의 구수한 화법은 뜻밖에 이곳에 자리한 이들에게 잘 먹혔다.
다들 멍하니 박상기 차장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런 중에도 모토롤라 측 실무진과 KM 전자 실무진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이미 사전에 검토가 끝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 계약서는 핸드폰 관련 원천기술 로열티와 미래 기술 배터리 공급에 대한 계약서입니다.]
그가 직접 보여준 것은 KMB-01이 적용된 모토롤라 차세대 폰이었다.
[이 모델은 모토롤라가 차세대 제품으로 보는 스타택이란 모델입니다. 보시다시피 사이즈가 상당히 작습니다.]
스타택은 최경량, 초소형 모델로 무게와 부피가 이전 모델과 비교해서 30% 가까이 줄어들었다. 원래 계획한 모델은 60분 통화를 보장했다.
[그런데 KMB-01이 적용된 이 모델은 무려 180분 연속 통화가 가능합니다!]
[……!!!]
기자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 저게 가능해?]
[맙소사 미래 기술 배터리에 관한 이야기가 말이 나오기는 했는데, 벌써 상용화가 되었다니.]
물론 아직 양산이 제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처리해야 할 문제가 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자리는 홍보 자리인 터라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이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 마음을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은 샘플 모델을 돌려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아날로그 방식의 이 신형 휴대폰은 기존 모델과 비교하면 월등하게 덩치가 작으면서도 오히려 사용 시간이 늘어났다.
심지어 무선랜, K투스까지 적용된 모델이었다.
“…이건 놀랍군요.”
최광수 기자는 입을 살짝 벌렸다. 그는 보면서도 잘 믿지 못했다. 사이즈가 줄어들었는데, 오히려 연속 사용 시간은 늘었기 때문이다.
박상기 차장은 웅성거리는 기자들을 보면서 방긋 미소 지었다.
[오늘 협상은 바로 우리 KM 전자 원천기술 협상이었습니다. 모토롤라 측은 MP3 특허까지 포함하는 계약을 진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자세한 계약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대략 대당 5달러 내외 특허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모토롤라를 잘 모르는 기자들조차 모토롤라가 세계 핸드폰 시장을 장악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모토롤라는 세계 전체 약 2억 대 시장 중에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장은 작년 기준이었다.
올해 핸드폰 시장 전체 규모는 대략 3억 대를 넘어섰다.
결국 단순 계산만으로도 무려 15억 달러를 넘어선다.
올해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
기자 회견장은 그제야 마치 화산이라도 터진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기자들은 서로 손을 들었다.
하지만 박상기 차장은 오히려 슬쩍 물러섰다.
[오늘 이 자리는 모토롤라와 KM 전자가 계약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미래 기술 지분 15%를 2,000억에 넘기는 계약까지 포함합니다!]
[……!!!]
모인 기자들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들 역시 미래 기술을 잘 안다. 이 회사 지분 5%를 먹은 회사가 바로 오성 전자이니 말이다. 그런데 무려 15% 지분 가치가 이제는 2,000억이란다.
다들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협상 자리 한 구석에 나타난 배종구 사장은 붉은 얼굴을 한 채 쉽게 흥분을 떨치지 못했다. 동행한 윤종수 전무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도 오성 전자에게 투자를 받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 반응이었다.
그런데 모토롤라에게서 무려 2,000억을 투자받을지는 정말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이 2,500억 자금이면 어지간한 배터리 업체를 다 인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배터리 공급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가 있었다.
박상기 차장은 몰려드는 기자들을 무시한 채 협상을 밀어붙였다. 그는 시장 바닥처럼 변한 기자회견장의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소란은 극에 달했다.
그제야 다들 최민혁 실장을 떠올렸다.
이제까지 흐지부지되던 계약이 성사되면서 이 일을 진행한 최민혁 실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박상기 차장은 혀를 내둘렀다.
‘역시 최 실장님이다.’
* * *
[모토롤라가 미래 기술 지분 15%를 2,000억에 사들이다!]
이 소식은 꽤 화제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미래 기술이 작년 매출이 고작 40억에 불과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회사 매출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원천기술 이야기로 시선을 끌었다.
놀라운 것은 그러자 오성 전자가 잽싸게 이 회사 지분 5%를 500억에 사들였다는 점이다.
이 당시만 해도 오성 전자가 미쳤다는 소리가 파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