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94화 (694/1,021)

#694.

“그렇지. 권태성 기획실장이라면 믿을 만한 친구지.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자금이 많이 필요하잖아. 좋은 기회일 수 있어. 더욱이 우리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는 어디까지나 단역에 불과해.”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번 일을 주도하는 세력은 미국 투자 은행이다. 이미 모건 스탠리, 샐로먼 브러더스가 나왔다. 더 많은 투자 세력이 끼어들 것이 분명했다.

“저도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이번 일이 무리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투자 규모다.

아무리 DL 그룹이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해도 당장 굴릴 자금은 꽤 있다. 무리수를 둔다면 적어도 5천억에서 6천억까지는 가능했다.

물론 비자금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늘어난다.

다만 손실을 보았을 경우를 고려하면 신중할 필요는 있다.

DL 그룹이 파산하지는 않겠지만, 외부 충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은 꼭 그런 부분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현탁아, 네 생각은 어때?”

묵묵히 침묵만 하던 김현탁 사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지난 경험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당했는데, 이번에 또 당하면 정말 병신이었다.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솔직히 안재운 전무가 정보 출처라고 해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샐로먼 브러더스나 모건 스탠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 물론 그들이 정말 세계적인 투자 회사란 거 압니다. 그들 능력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최민혁 실장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얕잡아 봐서는 안 됩니다!”

침묵이 감돌았다.

사실 항상 당할 때는 최민혁 실장의 꼼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지나서 보니, 다 최민혁이 준비해 둔 함정이었다.

특히 DL 그룹 구성원이 느끼는 위기감은 다른 기업과는 많이 달랐다.

KD 통신, KD LCD 계열사는 겉으로 봐서는 멋져 보인다.

대다수 증권 회사들이 장밋빛 미래를 선포했다.

그런데 DL 그룹의 처지에서는 숨이 막혀서 미칠 지경이었다.

특히 KD 통신은 단순히 국내만이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 시장을 보는 중이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자금은 대주어서 위험을 줄었다고 해도 DL 그룹의 손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말이다.

DL 그룹 딴에는 이런 상황을 바꾸고 싶어도 KD 통신 이사회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따라서 쉽게 경영권에 간섭하기 힘들었다.

김현탁 사장은 대답하고 나서도 권태성 실장처럼 뭔가 찜찜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KD LCD만 해도 이 흐름만 탄다면 2~3년 후에는 꾸준한 수익을 낼 것이라 봤다. KD 통신은 더했다. IP 시티폰 중국 산업이 대박을 터뜨린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지금 위기 상황을 잘 넘긴다면 말이다.

‘설마, 아니겠지. 당장 2~3년 이내에 무슨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천재지변에 가까운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때는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을 터였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에플 공매도라.

그것도 6천억이 넘는 천문학적인 자금은 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6천억, 아니, 1조, 2조 이상의 이익을 챙길 수도 있어.’

그렇게만 된다면 DL 그룹은 앞으로 30년은 자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리스크, 탐욕.

두 가지 감정을 쉽게 떨치기 어려웠다.

김상구 회장이 입을 열었다.

“현탁아.”

김현탁 사장은 머리가 복잡해서 김상구 회장의 말을 듣지 못했다.

김상구 회장이 다시 소리쳤다.

“현탁아!”

“아, 죄송합니다.”

그는 잠깐 머뭇거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인 것이다. 그래도 최악은 고려해야 했다.

“솔직히 최근 KD 통신, KD LCD 때문에 DL 그룹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것 압니다. DL 화재가 특히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김상구 회장도 이번 일이 꽤 중요한 정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번 에플 정보에만 집중해!”

“아뇨. 제 생각은 다릅니다. 만약 2~3년 동안 별일이 없다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면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당장 지금도 작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고요.”

“우성 건설 부도 말하는 거냐? 하지만 이미 지방 건설 쪽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우려한 것처럼 연쇄도산으로 흘러가지 않을 거야. 정부가 그걸 그냥 둘 리가 없다.”

“네. 압니다. 지금은 다행히 위기 상황을 수습했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항상 지금만 같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까칠까칠한 김현탁 사장.

김현탁이 DL 정보 통신에 본부장으로 있을 때와는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KD 통신 이사회를 중재하면서 쌓은 경험 때문이다.

어떤 플랜을 짜면, 반발하는 세력이 늘 있다.

그러니 작은 프로젝트 하나도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김상구 회장은 뜻밖에 따스한 눈으로 ‘위기’를 계속 강조하는 김현탁 사장을 쳐다보았다.

김희찬 부사장의 장남인 김현탁 사장은 다른 후계자와는 좀 다른 태도를 보였다.

한때는 불안해 보였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위기 대처 능력까지 갖추었으니 말이다.

‘지난 일은 차라리 잘된 것일 수도 있겠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이다.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잘 끝내는 것이 좋았다.

“현탁이 네 말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서 유동 자금을 마련하자는 거냐?”

“네. 그렇게 보면 에플 공매도는 나쁜 투자는 아니잖습니까. 다만 리스크를 고려해서 단기 투자 형식이 된다면 말입니다.”

“계속해 봐.”

“그래서 저도 에플 공매도 투자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테면 손실을 본다는 것 말입니다.”

김상구 회장은 김현탁 사장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하자 혹독하게 밀어붙였다.

“그게 가능하냐? 이번 일은 결국 에플 주식 수급 문제잖아. 그건 에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 더욱이 이를 주도하는 세력은 모건 스탠리다. 우리는 그들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그들은 그걸 원하기도 해.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최민혁 실장을 견제할 의도 같으니까.”

“…네.”

김현탁 사장도 순순히 수긍했다. 그게 사실이다. 정보 출처 자체가 모건 스탠리였고, 이를 확인한 곳이 오성 그룹이니까.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 대단해도 이 문제는 쉽게 극복할 수 없다.

‘자기 주식을 매각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겠지.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말이야. 최민혁 실장이 왜 이런 도박을 하는 것일까? 정말 이제까지의 성공에 취한 것일까?’

김상구 회장은 그제야 피식 웃었다.

“민혁이 그놈 실력은 이제 인정해야겠지. 하지만 그놈은 나이가 문제야. 실패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 자기가 하는 일은 무조건 성공한다고 착각할 수가 있어. 그게 한편으로 당연하겠지. 그러니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거야.”

“…….”

김현탁 사장은 반박하지 않았다. 김상구 회장 말은 틀리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저게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래서 더 불안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생각에 잠긴 김희찬 부사장을 비롯한 다른 임원진을 쳐다보았다. 그들 역시 비슷한 의견을 피력하기는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은 비약인 것 같아. 민혁이 그놈이 정말 지금 상황에 대한 판을 다 짜놓은 것일까?’

김현탁 사장은 고민을 거듭했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김상구 회장도 과거라면 독단으로 밀어붙이겠지만, 이번 일만큼은 김현탁 사장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일단 그룹 계열사별로 운용 가능한 자금 여부를 확인해 봐. 단기 투자 형식이 될 테니, 무리수를 둬도 괜찮으니까. 다만 이번 정보는 가능한 많은 곳에 알려 봐. 어차피 자금 규모가 크면 클수록 리스크는 줄어드니까.”

“…알겠습니다.”

* * *

사실 최민혁은 이미 이전에 자신이 던진 미끼를 물고 허덕이는 물고기를 경험했다. 그는 이번 에플 주식 작전도 잘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미처 간과한 문제가 있었다.

현재의 에플 실적이 좋지가 않았다.

에플 주가만 봐서는 장밋빛인 것이 맞다.

그런데 에플 내부를 한 꺼풀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에플 이사회가 바뀐 후에 고위 임원 수십 명이 사임했다.

심지어 전 직원 중에 무려 20% 가까이 갈려 나갔다.

스티븐이 장밋빛 기대감을 부추기는 했지만 에플의 현실은 차갑기만 했다.

이런 에플의 현실과 인공지능이라.

도저히 설득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최민혁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았지만, 탐욕을 쉽게 떨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때문에 이번이 최고의 기회라고 확실했다. 게다가 DL 그룹 내부가 에플 정보와 관련해서 어수선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장승일 실장이 KM 그룹, DL 그룹, 오성 그룹 내부 상황을 조사해서 최민혁 실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이 뭘 꾸미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꾸미다뇨? 전 계획대로 밀어붙일 뿐입니다.]

최민혁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는 애니의 가짜 CF 기술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지금도 기술적으로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날 믿어달라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역시나 먹히지 않았다.

‘흠, 날 의심하는 걸까? 아니면 과거에 너무 많이 당해서 그런 것일까?’

둘 다라고 봐야 했다.

DL 그룹은 에플 정보를 알고 나서 곧바로 투자를 하나 싶었는데, 다시 중단했다. 그리고 에플 내부를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성 그룹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안재운 전무가 정보를 오성 그룹에 보고했지만, 선뜻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최민혁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자신이 노린 최문경 부회장, 오성 그룹, DL 그룹이 불구경만 하면서 그저 사태를 지켜보는 것에 놀랐다.

‘아니, 확실히 바보는 아니니까. 모건 스탠리 쪽하고는 입장이 다르지.’

그는 결국 고민 끝에 가짜 CF와 관련된 인공지능 관련 자료를 장승일 실장에게 추가로 보내줬다.

‘아무래도 반응 보고 나서 다른 계획을 추가로 진행해야겠어.’

* * *

장승일 실장은 결국 최민혁이 보낸 추가 자료를 분석한 후에 기획안을 들고 다시 최용욱 회장을 찾아갔다.

최용욱 회장은 에플 정보와 인공지능 관련 자료를 보고 나서는 깊은 번민에 빠졌다. 그 역시 인공지능 전문가를 불러와서 자문했는데, 그다지 좋은 소리는 없었다.

그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고민 끝에 친구이자 KM 그룹 대주주인 최두진을 찾아가서 에플 정보를 털어놓았다.

“DL 그룹도 심상치 않지만 한부 그룹 최명진 회장 행보가 평소와 달라.”

최두진 사장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DL 그룹은 이해가 되는데, 최명진 회장은 어떻게 에플 정보를 얻은 건가?”

“최명진 회장만이 아냐. 안재운 전무 그 친구가 동네방네 다 퍼뜨리고 다니니까.”

“이상하군. 오성 그룹이 이런 소극적인 행보라니. 민혁이 그 녀석을 못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이거 아무래도 리스크를 줄이려는 것 같은데?”

“그렇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하지. 에플 주식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에플의 명성은 굳이 논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세상이 과거와 같지 않았다.

그 잘나가던 에플이 지금은 작전주 같은 꼴을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두진 사장은 힐끗 최용욱 회장 눈치를 보면서 에플 정보 기획안을 살폈다. 그도 최용욱 회장이 왜 이 자리에 온 것인지 잘 안다. 이번 에플 정보 투자는 나쁜 기회가 아니었다. 아니, 분명 좋은 기회다. 원래 투자는 이런 정보를 이용해서 하는 것이니까.

솔직히 이번 일도 모건 스탠리가 메이저인데, 굳이 패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난 잘 모르겠어. 자네 손자 능력은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달라.”

“그렇겠지.”

두 사람의 목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이번 일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한데, DL 그룹과 오성 그룹의 태도가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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