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93화 (693/1,021)

#693.

제임스 감독은 다시 촬영에 들어갔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나선 최민혁 실장이 한 이야기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애니 인공지능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했기 때문이다.

사지마비 주인공이 한 이야기를 애니는 완벽하게 알아들었다.

마치 친구처럼 말이다.

촬영 스태프조차 촬영하면서 깜짝 놀랐다. 그들은 마치 SF 영화에서나 가능한 기술을 직접 경험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컷은 생각보다 많이 났다.

사지마비 해병대원이 촬영하면서 애니 성능에 놀라서 계속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맙소사.”

같은 인공지능이어도 조금 전과는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모터 시스템이 연결된 곳은 완벽하게 잘 동작했다.

차창을 여는 것도, 커튼을 닫는 것도 말이다.

심지어 음악은 더 놀라웠다.

말을 통해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필요한 음원을 내려받을 수 있었다.

제임스 감독을 촬영하면서도 애니 기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이게 정말 가능한 기술입니까?”

최민혁은 물론 솔직히 인정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지금처럼 완성도가 높은 것은 해병대원 역할을 하는 분의 목소리 정보가 사전에 충분히 분석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만, 그러면 다른 사람은 이전 촬영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말입니까?”

“아뇨.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래도 오류가 제법 나옵니다.”

“그러면 목소리 업데이트 양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까?”

“네. 그것 외에도 제약이 제법 있습니다. 당장 영어에만 국한되는 것도 있고, 그것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임스 감독은 그럼에도 이 정도 기술이라면 충분히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지금 촬영한 CF 정도만 해도 쇼킹한 기술 수준이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다행이라면 이 정도 기술이면 기술 장벽이 된다는 거죠.”

다른 제품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아이컴이 다른 윈도우 PC에 비교해서 기술 우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최민혁은 물론 자세한 내용을 굳이 제임스 감독에게 하지는 않았다.

제임스 감독도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굳이 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CF 촬영을 하면서 애니 기술 수준이 좀 애매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기술 수준이 아슬아슬하네.’

* * *

인공지능 기술 수준은 확실히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애니 인공지능은 딱 이런 한계선에 도달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었다.

이지수 박사가 이 연구를 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의 도움이 있기에 그나마 여기까지 온 셈이다.

따라서 지금도 애니 기술은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 중이었다.

최소한 상업적으로 팔아도 충분히 팔아먹을 수준은 된다는 거다.

다르게 보면, 이걸 알고 있지 못한 상태라면 오히려 최민혁 실장이 연출한 인공지능 기술이 현실적이었다.

안재운 전무가 본 기술은 사실 가장 합리적인 수준에 가까웠다.

따라서 그가 한 이야기를 믿지 않기는 오히려 힘들었다.

안재운 전무는 특히 이 아이컴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 수준을 국내에 있는 아는 지인을 통해서 가감 없이 뿌렸다.

이 정보를 얻은 이 중의 하나는 다름 아닌 김용만 전무의 장남 김기범이었다.

김기범은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다행히 2심에서 집행 유예 선고를 받았다. DL 그룹이 뒤에서 충분히 손을 쓴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 실장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최민혁 실장이 하늘 높이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복수의 길이 요원해졌다.

그런 차에 아이컴 인공지능 기술에 문제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으니.

그는 다급하게 자신이 아는 지인을 전부 불러 모았다.

그들 대다수는 소위 말하는 재벌 3세 라인이었다.

이들은 김기범에게 정보를 얻자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서 다시 크로스체크에 들어갔다.

그들 역시 다들 최민혁 실장에게 된통당한 터라 이 정보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재운이 형이 직접 CF 촬영장까지 확인했다고 했잖아? 이 정보가 문제가 있기는 어렵지 않나. 더욱이 인공지능 기술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기술이야?”

다들 인공지능 기술 자체를 믿지 않았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라서 이리저리 아는 지인을 통해서 정보를 얻은 것이었다.

“가만, 그럼 결국 에플 공매도도 가능하다는 소리잖아?”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이 각자 다룰 수 있는 자금은 적지만 인맥은 제법 있기 때문이다. 그 인맥을 최대한 이용한다면 이번에 한탕 크게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기범 역시 우선 아버지 김용만 전무에게 보고했다.

김용만 전무는 딱히 장남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원한이 있었다. 차남 김재열은 아직도 감방에 있었고, 재판을 받는 중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신중했다.

이번 일은 자신 혼자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몇 차례 사실 확인을 끝내자 지금 KD 통신 사장으로 있는 김현탁 사장을 찾아가서 이 정보를 털어놓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글쎄요.”

김현탁 사장은 깊은 고심에 빠졌다. 그는 솔직히 이 뜬금없는 정보를 믿어야 할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출처가 오성 그룹 황태자인 안재운 전무라서 부정하기도 힘들었다.

늘 소극적인 김용만 전무도 이번 일만큼은 다르게 생각했다.

“최민혁 그놈에게 복수해야 하지 않겠냐? 사실 억울한 것만으로 치면 현탁이 네가 제일 심하지. 감옥까지 갔잖아.”

“감옥, 네, 억울하죠.”

김현탁 사장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도 이제는 과거 모든 사태의 배후가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기회만 노렸다.

이대로 지난 일을 덮어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기회가 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자금 사정이 좋은 DL 그룹이 KD 통신, KD LCD 법인 설립 이후에 조금씩 흔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두 계열사 미래가 좋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아직 수익이 나지 않아서 문제였다.

특히 KD LCD에 들어가는 자금 수요가 끝없이 이어졌다.

아무리 DL 그룹 자금 상황이 좋아도 이를 무조건 지지할 수는 없었다.

김현탁 사장은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일단 계열사 차원에서 검토는 해보겠습니다. 어느 정도 합리적인 판단이 서면 회장님에게 제가 직접 보고하겠습니다.”

“알았어.”

김용만 전무도 이 정도로 만족했다. 그 역시 DL 그룹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설마 민혁 그놈이 이런 사정을 예상한 것일까? 아닐 거야. 아무리 그놈이라지만 그런 미래까지 어떻게 예상해?’

* * *

최민혁이 물론 DL 그룹의 미래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KD 통신, KD LCD 미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잘 안다.

이 두 계열사는 당장은 결코 수익을 낼 수가 없다는 점을 말이다.

물론 미래에는 좀 다르다.

이 두 계열사는 살아남기만 한다면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할 테니 말이다.

최민혁이 굳이 이 두 회사를 DL 그룹과 최문경 부회장에게 넘긴 이유다. 물론 다른 회사도 같이 걸쳐서 말이다.

그는 DL 그룹이 이 두 계열사 때문에 자금 압박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했다.

다만 그 부분은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안재운 전무와 권태성 실장의 동선에 더 집중했다.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으니, 이상한 점을 곧 발견했다.

김기범을 포함한 재벌 3세 패거리가 이 정보를 얻은 사실 말이다.

‘결국 DL 그룹에 정보가 흘러갔구나.’

최민혁은 만약 DL 그룹이 이 정보를 얻지 않으면, 그 자신이 정보를 흘릴 생각이었다.

“DL 그룹의 동향은 어때요?”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 눈치를 보면서 혀를 찼다.

“아무래도 자금 압박을 심하게 받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당장 문제가 되는 곳은 경북 섬유 업체입니다.”

섬유 업계 불황은 역시 과도한 설비 투자가 한 원인이었다.

채산성 악화, 품질 경쟁력 상실이 큰 요인이었다.

다른 요인이라면 역시 중국의 섬유 산업 진출이었다.

이쪽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면 악성 재고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인다.

따라서 이들 섬유업체와 거래하는 지방 은행 역시 타격이 불가피했다.

이런 부실은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되는 요인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태는 DL 그룹에도 영향을 줬다.

특히 DL 화재는 이들 섬유 업체에 꽤 많은 투자를 했다.

덕분에 부실 규모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DL 그룹이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아서 무리수를 뒀다가 오히려 제대로 덫에 걸린 꼴이었다.

이 사태는 지방 은행 사정이 나빠지면서 더 상황이 나빠졌다.

최민혁은 DL 그룹 자금 현황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욕심을 많이 부렸군요.”

조성돈 팀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탐욕 때문이 아니라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KD 통신에 무리한 투자를 한 것이 가장 큽니다.”

“그렇군요.”

최민혁은 만족했다. 자신이 이중 삼중으로 쳐놓은 덫에 DL 그룹이 빠졌으니 말이다.

“하면 DL 그룹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군요. 일테면 에플 공매도 같은 이벤트라면 더더욱 빠지기 어렵겠어요. 빚을 내서라도 할 것 같네요.”

“…아마 그럴 겁니다.”

조성돈 팀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손발 노릇을 했기 때문에 DL 그룹이 왜 저 모양이 된 것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아 물론 당시에 알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그도 왜 최민혁 실장이 저러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야 알았으니.

그는 힐끗 최민혁 실장 얼굴을 살폈다.

‘…정말 무섭구나.’

“좋네요. 그러면 우리 애니의 문제점을 슬쩍 한번 흘려보세요. 아, 이왕이면 ETRI 쪽을 통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투자 정도면 딱 좋을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 * *

최민혁이 흘린 정보는 결국 ETRI 쪽에 들어간 후에 다시 이쪽저쪽으로 샜다.

애초에 보안 관리를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정보가 샐 수밖에 없다.

이 정보는 DL 그룹 기획실에도 흘러들어 갔다.

김현탁 사장은 결국 자신이 한 보고 때문에 DL 그룹 본사를 찾았다.

회장실에는 이미 아버지 김희찬 부사장, 김상구 회장을 비롯해서 인공지능 전문가 몇 사람이 같이 자리해 있었다.

그들은 이미 김상구 회장과 김희찬 부사장을 상대로 아이컴 기술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서 심층 있게 다루는 중이었다.

결론적으로 아이컴 인공지능 기술은 문제가 많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안재운 전무가 흘린 정보는 이미 몇 차례에 걸쳐서 확인했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아이컴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었다.

물론 아이컴 자체가 가지는 강점이 있어서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세계 최초 인공지능 컴퓨터 마케팅은 쓸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점은 얼마든지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즉 인공지능으로 사기를 치려 하는 에플의 시나리오에 직격타를 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모든 것이 다 과장이었다고 밝혀진 상황에서 에플 차익 물량이 쏟아지면, 에플 주가는 폭락할 수밖에 없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김상구 회장은 역시 한국 대기업 회장답게 아는 지인을 통해서 에플 공매도 현황에 대한 정보를 이미 얻었다.

“김 부사장은 어때?”

깊은 생각에 잠긴 김희찬 부사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보고서를 살피면서 확실히 최민혁 실장이 무리수를 뒀다고 생각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이 지금까지 해온 성과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이게 정말일까?’

“김 부사장!”

“아, 죄송합니다. 으음, 솔직히 잘못된 정보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지?”

“기술적인 정보라면 솔직히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떠나서 안재운 전무와 권태성 기획실장이 직접 확인한 내용입니다. 그것까지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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