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6.
과연 최민혁 실장을 신경 써야 할까.
‘그건 아니군.’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그제야 자신의 걱정이 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구골, KMBOOK, 미래 기술, 에플에 대한 걱정을 털어냈다.
“하면 이번 이사회에서는 그 이야기가 나오겠군요.”
“그렇지.”
* * *
존 맥커니 사장은 다시 모건 스탠리 이사회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최민혁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결국 바트화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그런데 이 바트화 문제는 모건 스탠리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일테면 그들은 조연에 가까웠다.
다시 말해서 메인 스토리를 모건 스탠리 이사회에서 떠벌릴 수는 없었다.
즉, 바트화 문제에 최민혁 실장을 끌어들일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개인적으로 넌지시 이 일을 헤지펀드 쪽에 꺼내기는 했는데, 조롱만 당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측에서는 최민혁 실장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산 관리 측면에서는 풋내 나는 애송이라고 봤다.
결국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주도권을 잡았다.
[솔직히 전 이 문제를 가지고 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최민혁 실장을 두려워할 이유가 뭡니까?!]
일테면 감성에 호소했다.
그런데 이 주장이 뜻밖에도 잘 먹혔다.
다들 뒤늦게 최민혁 실장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자신들의 처지가 웃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모건 스탠리를 움직이는 이사회 주역 중의 하나였다.
고작 아시아 기업가 한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역시 문제가 있다면 최민혁 실장의 본진을 공격하기 쉽지 않다는 거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꺼냈다.
[굳이 우리만이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최민혁 실장을 싫어하는 친구들은 제법 많으니까. 특히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이를 간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설마 샐로먼 브러더스가 우리와 손을 잡겠다는 말입니까?]
[최민혁 실장을 흔드는 일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 좋은 기회가 있어요. 스티븐이 이번 CES 기조연설에서 뭔가 보여준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과연 상업적으로 가능성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최근 조사한 한국 기업의 가치에 대한 차트를 보여주었다.
이 차트에서는 한국 경제 성장과 규제 완화를 바탕으로 앞으로 성장하게 될 한국 기업의 가치를 수치로 표현했다.
[한국 증시는 앞으로 20년 가까이는 꾸준한 성장을 거듭할 겁니다. 특히 중국 시장이 개방된 덕분에 이 중간 기지도 가속이 붙을 겁니다.]
중국 개방과 더불어서 수혜를 볼 가장 첫손에 꼽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이에 비해서 일본은 미국 정부의 견제와 압박 때문에 계속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된다면 그 사이에 낀 한국은 두 가지 요인 때문에 무섭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증시에 대한 투자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 사전 정지 작업으로 에플을 흔들어서 KM 전자에 타격을 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다음에 KM 전자 주주들을 부추겨서 최민혁 실장의 자리를 뒤흔드는 겁니다!]
이건 단순히 투자만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 주식을 헐값에 사들이겠다는 뜻도 있다.
그에 대한 플랜은 좀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이미 모건 스탠리 이사회 핵심 실세는 어느 정도 염두에 둔 계획이 있었다.
[다행이라면 최민혁 실장의 적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KM 그룹의 최문경 부회장도 있습니다. 그에게 손을 내민다면 우리 제안을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흠.]
중도 노선을 걸으면서 침묵했던 모건 스탠리 이사회 일부는 이전과는 달리 침묵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석에 가까웠다. 그들은 늘 그래 왔으니까.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그제야 모건 스탠리 이사진들의 표정이 바뀐 것을 보고 내심 미소를 지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반대 파벌들조차 고민하는 것을 봤다.
‘됐다.’
존 맥커니 사장은 이사회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크게 당황했다.
[자, 잠깐만요. KM 전자와 에플의 분위기를 알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는 겁니까?]
[존 사장, 좀 실망입니다. 주가가 단순히 회사의 미래 가치 때문에 오를 거로 생각합니까? 수급이 없다면 그건 불가능합니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우리와 손을 잡는다면 다른 자본도 최민혁 실장과 스티븐의 편을 들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존 맥커니 사장은 여전히 보험으로 반대 의견을 슬쩍 내비쳤다.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최민혁 실장의 과거 행보를 보면, 기적적인 성과를 도출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타격을 받은 이들이 속출했습니다. KM 그룹의 최문경 부회장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슬쩍 목소리를 낮추어서 존 맥커니 사장을 다독거렸다.
[존 사장의 걱정은 잘 압니다. 신중하자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번 일은 도저히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은 우리 모건 스탠리를 상대로 협박했습니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합니다.]
[만약 문제가 되면…….]
[존 사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야.]
존 맥커니 사장은 그제야 슬쩍 한 걸음 물러났다.
모건 스탠리 이사회 분위기도 존 맥커니 사장을 탓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계획대로라만 흘러간다면 KM 전자와 에플 주식을 헐값에 사들일 길도 열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번 계획이 성공한다는 전제하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모건 스탠리와 샐로먼 브러더스가 가진 에플 주식을 한 번에 던져서 폭락시킨다면 말이다. 물론 사전에 그 정보를 흘려서 다른 에플 주주들을 흔드는 것도 중요했다.
[…….]
존 맥커니 사장은 만약을 위해서 한마디 더 하려고 했지만 차가운 모건 스탠리 이사진의 시선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자신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더 이상 없었다.
실상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방식이 이제까지 모건 스탠리가 해온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최민혁 실장을 흔들기에는 소재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인공지능 기술.
과연 이게 상업적으로 의미가 있을까.
거기에는 다들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이건 현실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최민혁 실장조차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무리하게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KM 전자와 에플 주식 정리 일정을 좀 더 당기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합시다!]
[…….]
존 맥커니 사장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눈에 떠올라 있는 탐욕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지금 바트화 이슈에는 관심이 없었다. 에플을 최대한 이용해서 이번에 한몫 단단히 챙길 생각뿐이었다.
다른 이사회 임원들 역시 이미 탐욕에 맛이 가버렸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최근 자신을 상대로 한 협박 때문에 찜찜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제는 뭘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일에 관한 책임을 나에게 묻지는 않겠지.’
* * *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스탠리 로버트 이사와 안면이 있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킬리언 시몬스 이사를 다시 따로 만났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샐로먼 브러더스와 손을 잡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전과는 달리 공적인 약속이었다.
그런데 샐로먼 브러더스는 딱히 그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이들은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저 그가 준 정보를 계획 검토에 활용했을 뿐이다.
물론 이 정보는 최민혁 실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문경 부회장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최문경 부회장에게 조언을 구하다 보니 얘기가 나온 것이었다.
이번에는 이전 만남에서 하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포함되었다.
바로 애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술까지 포함된 이야기였다.
최문경 부회장으로서는 도대체 최민혁 이 새끼가 ‘이야기’를 가지고 무슨 짓을 하려는 알 수가 없어서 한창 고민하던 시기였다.
“인공지능이라니.”
조금은 생뚱맞은 주제였다.
아마 샐로먼 브러더스 측에서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비웃고 말 주제다.
아무리 조카 최민혁이 대단한 인간이라고 해도 인공지능 상업화는 너무 나간 이야기였다.
그는 이전 만남에서 에플 차세대 제품 정도로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분명히 이전 경험을 통해 뭔가 있다는 것 정도는 추론했다.
다만 그게 뭔지 몰라서 비서실만을 계속 괴롭혔는데, 답을 찾지 못했다.
그 정보를 이제야 안 것이었다.
에플이 최근 CES 기조연설을 빌미로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고 있었고, 그 덕분에 에플 주가와 KM 주가가 요동을 쳤다.
이게 다 인공지능 이슈 때문이었다.
“인공지능 전문가를 호출하게.”
“…알겠습니다.”
* * *
최문경 부회장은 인공지능 전문가를 찾는 일에만 집중했다.
장승일 실장은 당연히 이 정보를 얻었고, 즉각 최민혁 실장에게 보고했다.
최민혁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는 장승일 실장이 생각보다 자신을 너무 걱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번 일은 사전에 부회장님이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걱정 말래도요.]
[정말 괜찮겠습니까? 최문경 부회장, 샐로먼 브러더스, 모건 스탠리, 심지어 다른 에플 대주주까지 최민혁 실장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세상이 절 적대해도 이번 일만큼은 제가 이깁니다. 그들 모두를 이번에 밟아 버릴 테니,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의 단호한 승전 의지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결코 이 일을 모르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적에 대한 대응책이 있다는 의미다.
[혹시 인공지능 기술 상업화에 정말 성공하신 겁니까?]
[우리 장 실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네, 그게…….]
머뭇거리는 장승일 실장. 그로서도 인공지능 상업화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지금 이 시대에 인공지능이라니.
최민혁도 장승일 실장 고민을 순순히 인정했다.
[저라도 그렇게 못 합니다. 하지만 제 스승(?)님은 좀 달라요. 그분이라면 인공지능 기술을 세상에 보일 수 있습니다.]
[네? 스, 스승님이라니요? 설마 최 실장님에게 스승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하하하, 그러면 기존에 제가 했던 일이 순전히 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 이유가 있었던 거죠.]
[…놀랄 이야기입니다.]
[뭐, 그 이야기는 더 할 수가 없고요. 너무 걱정하지 말란 이야기만 해드리겠습니다. 이왕이면 장 실장님도 이번에 에플 주가가 폭락하면, 주식을 사들여 보세요. 그거 꽤 돈이 될 겁니다.]
[…일단 에플 주가가 폭락은 할 거란 말씀이군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다음은 좀 다르겠지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네.]
장승일 실장은 한동안 전화를 끊고 나서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최민혁의 이야기는 그만큼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스승이라니.’
최민혁 실장에게 스승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이보다는 최민혁의 배후에 다른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이 돌았으니.
그는 곧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 말해도 믿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용욱 회장에게 지금 최민혁 실장이 하려는 일은 보고해야 했다.
‘회장님도 걱정이 많겠어. 그나저나 부회장은 앞으로 어쩌려는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이번 일은 최민혁 실장님이 최문경 부회장을 노린 것도 같으니.’
* * *
장승일 실장의 추론은 다르지 않았다.
아마 과거라면 최문경 부회장도 자기 처지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는 모건 스탠리와는 달리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 안다. 그는 당연히 인공지능과 음성 인식 전문가 여러 명을 호출했다.
[거의 모든 음성 인식 시스템은 특이성을 기준으로 잡습니다.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필터를 사용하는데, 다양한 필터가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