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3.
“…그건 가능합니다. 아마 2~3일 정도면 충분히 수정이 가능할 겁니다.”
최민혁은 이미 스티븐에게 이와 관련된 내용을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는 그저 확인 작업이었다.
“좋네요. 그놈들이 에플 주식에 수작을 부리는 그다음 날이면, 딱 타이밍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
스티븐은 씩 웃고 말았다. 최민혁의 말뜻을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그 역시 반등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음흉하게 웃었다.
“이왕이면 에플 대주주 쪽에도 한번 정보를 슬쩍 흘려보세요. 그들이 나서면 주가 반등 폭은 더 가팔라질 테니까.”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최민혁은 이걸로 끝내지 않았다.
“흔히 과장 광고라고 하죠. 굳이 지금의 애니 성능이 기준일 필요는 없습니다. 좀 더 자극적인 광고면 좋을 것 같네요. 할리우드 인력을 동원해서 연출력을 올리세요. 차라리 영화라고 생각될 정도면 좋을 듯합니다. 어차피 아직 시간은 있고, 이지수 박사의 능력이라면 최종 품질은 어느 정도 보장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스티븐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아직 에플 이사회에 애니에 대한 것을 보고하지 않았다.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아서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이 작업이 너무 짧은 사이에 진행되어서다.
그 자신도 하루 2시간씩만 자면서 매달렸으니, 정말 긴박하게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그런 상황에서 에플 이사회에 무슨 정보를 보내겠나.
‘아마 모건 스탠리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에플 주식을 정리하라고 할 텐데, 이것 참 골치 아프군. 내가 악역이라니.’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에플 이사회도 최근에 와서 자신에게 일일이 간섭하는 경향을 보여서다.
이 일의 배후에 모건 스탠리가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더욱이 이들 중에는 과거 자신이 에플을 떠나게 한 배후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힘이 없어서 그냥 두고만 봤다.
하지만 기회만 된다면 그들에게 단호하게 보복하고 싶었다.
이번 일을 잘만 활용하면 그 무대를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쳐다보았다.
‘정말 대단해. 설마 이런 식으로 에플 이사회까지 흔들 생각이라니.’
대주주 간의 힘겨루기.
어차피 한 번은 벌어져야 할 싸움이다.
다만 그 일정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을 뿐이었다.
최민혁은 뜨거운 스티븐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했다.
‘이젠 기다리는 것만 남았나. 이왕이면 샐로먼 브러더스가 에플 주식을 바로 처리하면 좋을 텐데, 아니, 진짜 그렇게 되도록 한번 슬쩍 그들에게 손을 써볼까?’
* * *
최민혁은 굳이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지 않았다. 그는 굳이 어렵게 일을 풀지 않았다. 샐로먼 브러더스를 자극할 방법은 많기 때문이다.
일단 장승일 실장에게 에플 주식 사건을 넌지시 흘렸다.
그는 모건 스탠리와의 갈등 역시 빼놓지 않고 포함시켰다.
둘 사이의 갈등은 조금만 조사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정말입니까?]
[저도 좀 갑갑합니다. 하필이면 모건 스탠리가 저에게 그렇게 부정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상하군요. 모건 스탠리가 왜 실장님을 상대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아마 에플 주식 때문이 아닐까 추론만 합니다. 그들은 제가 에플 대주주인 것이 배가 아픈 것 같습니다. 이번에 보복하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좀 있기는 하지만…….]
장승일 실장 역시 최민혁 실장의 이미지가 안 좋은 것을 안다. 정확히는 일반인이 아니라 이익집단들에게 말이다.
그들 대다수는 이질적인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인정하면서도 시기했다.
지금까지는 국내 이야기였는데, 그 판이 좀 더 커져서 이젠 미국으로 넓혀졌다.
그런 상황이니 모건 스탠리가 그중 하나가 되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최민혁은 물론 마지막으로 당부를 잊지 않았다.
[가능하면 이 일은 다른 분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회장님 귀에 말입니다. 잘 좀 부탁을 합니다.]
[…네.]
장승일 실장은 비밀로 해달라면서 구체적으로 일일이 자신에게 다 설명하는 최민혁 실장의 행동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뻔히 보이는 수작이기 때문이다.
‘회장에게 알리라는 말을 어렵게도 하네.’
한편으로는 최민혁 실장이 왜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곧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흘려 넘겼다.
그는 이 일을 우선하여 최용욱 회장에게 이 안건을 보고했다.
[…….]
보고받은 최용욱 회장은 한동안 기가 막혀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어이가 없어서 최민혁과 그나마 사이가 좋은 장녀 최영란 본부장을 호출했다.
“영란아, 내 생각은 어떠냐? 민혁이 이놈이 왜 이러는 것 같으냐?”
“…….”
그런데 최영란 본부장 역시 사정을 듣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사람이 미국에 가서 모건 스탠리를 상대로 깽판을 쳐? 뭐 그건 그렇다고 하자. 근데 그 일을 왜 장승일 실장님에게 다 이야기한 거야. 뻔히 회장님 귀에 들어갈 줄 알면서?’
기가 막혔다.
그녀는 최민혁이 한 말을 잊지 않았다. 거기엔 진실성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하는 짓을 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살고 있었다.
최용욱 회장과 장승일 실장은 최영란 본부장의 입을 주시했다. 두 사람은 최영란 본부장이 최민혁 실장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이 다시 한번 질문했다.
“내 생각은 어떠냐?”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민혁이가 왜 굳이 미국에까지 가서 모건 스탠리와 반목하는지 말입니다. 다만 추론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주식을 말하는 거냐?”
“네, 모건 스탠리는 제가 알기로 에플 대주주 중의 하나입니다. 에플 주가가 1달러 가격일 때, 주식을 꽤 사들였습니다. 지금도 보유 중이고요.”
“차익 실현 욕구가 강하다는 소리구나.”
“사실 에플 주가가 10달러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이 들어와야 합니다. 아마 그 문제는 간단하지 않을 겁니다.”
그랬다.
주가가 올라가는 것은 단순히 미래 가치만으로 산정하기 힘들다.
수급이 그보다 더 중요했다.
그런데 에플 주식은 1달러를 몇 년이나 맴돌았다.
이 인식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모건 스탠리가 에플 주식을 처분하는 것은 주식 투자의 정석이라고 봐야 했다.
“모건 스탠리의 행보는 단순히 민혁이와의 갈등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어쩌면 민혁이는 그런 사정을 사전에 짐작해서 선수를 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모건 스탠리가 주식을 매각할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최용욱 회장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는 문득 자신이 보유한 에플 주식을 팔아치워야 하나 그런 고민을 했다.
하지만 최영란 본부장은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민혁이라면 이걸 모를 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이 시기에 미국에 가서 장기 체류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겁니다.”
최용욱 회장은 흐뭇한 눈으로 장녀를 쳐다보았다. 그도 과거에는 최영란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 시기에 절묘한 추론을 하고 있었다.
그는 힐끗 장승일 실장을 보고 그의 표정이 바뀐 것에 더 만족했다.
“민혁이 그놈의 계획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민혁이는 아마 회장님도 믿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일도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정도에서 빠질 테면 빠져라, 그런 의미일 겁니다.”
“노선을 정하란 말이구나. 우군이냐, 적군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란 이야기겠지?”
“네.”
“하, 건방진 놈이네.”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을 타박하지는 않았다. 그 자신이 들고 있는 비자금이나 KM 그룹 주식 때문이다.
이걸 누가 가지냐에 따라서 KM 그룹의 주인이 결정이 난다.
만약 최문경 부회장이 지금이라도 이걸 다 잡으면 그가 승리자였다.
최민혁은 그걸 원하지 않는 것이다.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
“저라면 그냥 지켜만 볼 것 같습니다.”
“내가 혹시 에플 지분을 꽤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하는 소리냐?”
“…네.”
“호, 그래?”
“민혁이가 이렇게 미국에 가서 장기 체류 하는 것은 뭔가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일이 전혀 가볍지는 않을 겁니다. 구골 설립 이후에 한 행동을 보면, 제 생각이 그렇습니다. 저도 늦기는 했지만, 만약 이번 조정에서 에플 주가가 폭락하면 매입할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번 기회가 에플 주식을 헐값에 매입할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최용욱 회장은 호쾌한 최영란 본부장의 말에 무릎을 가볍게 쳤다.
“좋구나. 하면 내가 할 행동은 무엇이냐?”
최영란 본부장은 잠깐 머뭇거렸다. 그는 이 정보가 그냥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민혁이가 바보가 아닌데, 이 귀중한 정보를 그냥 흘렸을 리는 없어. 결국,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면 최문경 부회장을 빼놓기 어려워.’
“…그냥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요? 굳이 정보 통제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알 사람은 알 테니까. 그리고 자금 여력이 있다면 에플 주가가 폭락하면, 그때 들어가서 지분을 더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지금 에플 지분을 정리한 후에 다시 추가로 매집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구나.”
최용욱 회장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에플 주식을 일부 정리한 후에 다시 사들이는 방향을 고려했다.
애초에 에플의 차세대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이번 CES 기조연설이 타이밍이겠어.’
“가만, 장 실장, 그러면 송도연 사건도 이번 사건의 연장선이란 소리잖아?”
장승일 실장은 ‘송도연 이야기’가 나오자 움찔했다. 이미 이 사건은 다 끝났다. 언론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최민혁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도 에플 주식을 둘러싼 갈등 이후의 이야기다.
만약 이슈가 됐다면 그냥 넘어갈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 부분은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는 일련의 일을 봐서는 최민혁 실장님이 어느 정도 판을 만든 것 같습니다.”
“노이즈마케팅을 말하는 건가?”
“네. 모르기는 해도 이번 일이 최민혁 실장님이 의도한 대로 끝난다면 그렇게 될 거라 봅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국내 언론사를 이용한 광고를 한 것이니까요.”
“그렇지. 맞아. 정말 그렇다면, 그게 그놈이 송도연 사태를 꾸민 동기구나.”
“네.”
“…….”
최영란 본부장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최민혁 실장이라면 그보다 더한 짓을 벌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다만 그 동기가 좋지 않았다.
‘설마 이것도 최문경 부회장을 타깃으로 한 것일까?’
* * *
장승일 실장은 최용욱 회장에게 지시를 받은 이후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가 굳이 조심하지 않은 이유는 최민혁의 의도를 알아서다.
정말 기밀이었다면 자신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당연히 기획 조정실을 주시하던 최문경 부회장은 이 정보를 얻었다.
그는 에플 주식보다는 모건 스탠리의 행동에 더 혀를 내둘렀다.
“모건 스탠리? 아니, 여기에 모건 스탠리가 왜 나오는 거야?”
“아직 확인 중입니다.”
“아니, 기획 조정실에서 흘러나온 정보라면? 그러면 장 실장이 이미 확인한 정보 아냐!”
“그래도 몰라서 이중으로 다시 체크 중입니다. 모건 스탠리 사태는 우리 예상을 벗어난 일이라서 말입니다.”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평소와는 달리 크게 당황했다. 그는 최민혁이 미국에 가서 모건 스탠리를 상대로 분탕질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때마침 비서실 쪽에 확인했는데, 마침 정보 확인이 끝나 있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놀랍게도 최민혁 실장이 모건 스탠리와 긴밀하게 접촉한 사실이 확인됐다.
“…정말 사실인 모양입니다.”
“하, 기가 막히네.”
최문경 부회장은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최민혁이 한국에서 사고를 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미국이라니.
그것도 세계적인 투자 회사인 모건 스탠리를 상대로 강짜를 부린다니.
“…정말 민혁이 이놈은 하루도 의자에 앉아 있지를 않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