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9.
심지어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반대편에 선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불과 며칠 사이로 다시 조사를 해봤고, 인공지능 사업이 얼마나 상업적으로 가치가 없는지 확인했다.
설사 최민혁 실장이라고 해도 그렇다.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기술만을 노렸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같은 불확실한 분야를 이제까지 노린 적은 전혀 없었다.
다만 이지수 박사가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역시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
테일러 박사가 견제한 덕분에 이지수 박사의 진정한 능력을 알지 못한 것이었다.
존 맥커니 사장은 갑자기 바뀌어 버린 상황에 기가 막혀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난 도저히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오히려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회의는 점점 산으로 갔다.
[허 참, 존 사장, 당신 미친 것 아닙니까. 지금 시대가 무슨 22세기라고 착각하는 거니까? 지금 시대에 무슨 인공지능입니까.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맞는 이야기다.
지금 시대에 인공지능 상업화는 분명 앞선 이야기다.
하지만 제한된 영역 내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더욱이 특정 영역으로 제한한다면 아예 논할 수 없는 논지는 아니었다.
특히 존 맥커니 사장은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이 토사구팽당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결국 무리수를 던졌다.
[최민혁 실장이 상업적인 인공지능 기술을 이지수 박사와 손을 잡고 어느 정도 완성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거짓말이었지만.
놀랍게도 진실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히려 악수였다.
모건 스탠리 이사회가 존 맥커니 사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최민혁 실장’ 이름과 이지수 박사 프로필을 뒤늦게 확인한 모건 스탠리 이사회가 다시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존 맥커니 사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렇게 된 마당에 차라리 최민혁 실장 편을 들었다.
[사실입니다. 이건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다시 살짝 바뀌었다.
모건 스탠리 이사회도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의 기술로는 인공지능 상업화가 아주 어려웠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이지수 박사의 능력에 대한 거다.
꽤 능력이 있다고 알려졌기는 하지만 인공지능 상업화까지 가능하냐는 좀 다른 이야기였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은근슬쩍 현실적인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좋습니다. 존 사장이 그렇다고 하는데, 무시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에플 주식 정리와 멕시코 투자입니다!]
[하면 최민혁 실장 문제는…….]
[그건 좀 더 지켜봅시다. 지금은 일의 우선순위가 더 중요합니다!]
존 맥커니 사장은 집요한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태도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분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던 것이다.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는 어렵게 되었다.
다만 에플 지분과 관련해서는 역시 의견 다툼이 있었다.
존 맥커니 사장이 하도 최민혁 실장을 과대포장 해서인지 에플 지분 정리에 대해서 회의적인 이들도 나왔다.
결국 모건 스탠리 이사회는 서로 편을 나누어서 미친 듯이 싸웠다.
하지만 존 맥커니 사장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식은땀을 닦았다. 그는 온몸이 폭우에 맞은 것처럼 푹 젖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일단 내가 할 바를 다 했으니, 이후에 문제가 생겨도 내 책임은 아니니까.’
다만 그는 마이크 라이언 이사와 그 측근이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끼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젠장맞을.’
* * *
“정말입니까?”
“…….”
존 맥커니 사장은 집요하게 달라붙는 스탠리 이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따가운 관리자층의 시선도 느꼈다.
그들은 불만이 많았다. 사장이 실무진에게는 제대로 된 이야기는 하지 않아서다.
모건 스탠리 이사회에서 다루는 의견을 실무진이 모르고 있다니.
황당한 일이었다.
그들이 정보를 안 것은 스탠리 이사 밑의 실무진을 통해서다.
그쪽은 최소한 뭔가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는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태국 바트화 플랜은 꽤 보안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모건 스탠리 내에서도 이 정보를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아는 이들조차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정말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존 맥커니 사장과 모건 스탠리 이사회뿐이다.
존 맥커니 사장은 사장실에 들어와서도 자신의 수행원과 비서를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갑자기 내쫓긴 그들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하지만 그도 짜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일을 자신이 직접 다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사장실 밖에는 수천 명의 임직원이 자신의 지시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들을 쓸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끼어들면서 생긴 사태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태국 바트화 정보만을 요구했는데 말이다.
뭐 그 과정을 지금 와서 다 따질 수는 없다.
이제는 정말 일단 갈 때까지 가야 할 입장이었다.
“다들 걱정이 많아.”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담배까지 꺼내서 베어 물었다. 그도 이 상황이 정말 짜증이 났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자신들과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렇게 집요하게 달라붙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필 이 시점에 최민혁 실장이 우리 쪽을 건드린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멕시코 쪽은 어때?”
“그쪽 상황도 안 좋습니다. 독일에서 당장 7억 달러 투자를 받았고, 대운, 오성, LC와 같은 한국 기업 투자도 검토 중입니다. 특히 일본 대기업의 반응이 가볍지 않습니다.”
일본 대기업의 투자 배후에는 당연히 일본 정부가 있었다.
“그놈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사실 일본 정부가 멕시코를 노리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멕시코는 미국을 공략하기 위한 중간 거점으로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일종의 멀티다.
멕시코의 값싼 인력으로 제품 단가를 낮추면, 그만큼 이익이었다.
미국 정부가 나서서 때리고는 있지만, 멕시코 내의 미국 여론이 영 좋지가 않았다.
멕시코 페소화 폭락 배후에 미국 정부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정부는 미국 헤지펀드가 한 짓이라고 부인하고는 있다.
“하긴 우리 정부 이미지가 좋을 수는 없겠어.”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헤지펀드 하나를 희생양으로 삼을지 모른다는 소문도 돕니다.”
“설마 그렇기야 할까?”
“아니, 사실일 겁니다. 그래서 국내 투자도 무시하기 힘듭니다. 일정 지분은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에플 장기 투자도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하긴.”
존 맥커니 사장은 가슴이 답답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무실 내를 빙빙 걸었다. 최근 강력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은 후에 최민혁 실장 문제가 결코 하순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정말 최우선 순위 그 이상이었다.
“다만 바트화 문제는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어.”
“그래도 이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으로 들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아예 안 된다는 쪽이었지 않습니까?”
“그거야 모르지.”
모건 스탠리 이사회 내부도 세력이 복잡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건 스탠리 자체가 세계적인 투자 은행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자본이 얽혀 있는데, 그게 한 세력만의 자금일 리가 없었다.
존 맥커니 사장은 엄밀히 말해서 그저 월급쟁이 사장에 불과했다.
그도 중요한 결정은 멋대로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당장은 어렵다고 해도 일을 풀어가야 해. 우선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어봐. 최민혁 실장에게 추가 정보도 내놓으라고 요구해. 그러다 보면, 실마리가 생길 거야. 바트화 문제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로버트 이사도 혀를 내둘렀다. 그조차 바트화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뭘 노리는지 얼핏 알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이너서클이니까. 그 세력에 낄 수만 있다면 돈 버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니까.’
* * *
최민혁은 캘리포니아에서 매입한 초호화 저택에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는 드디어 스탠리 이사가 다시 연락해 오자 즉각 최근 벨린 투자가 매입한 초호화 저택에 초대했다.
“어, 이게 웬일입니까? 정신없이 바쁘다던 그 스탠리 로버트 이사님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윗선에서 이 안건이 중요해서 검토가 늦게 끝난지라…….”
“하면 지금은 결론이 난 겁니까?”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차마 구골 지분부터 시작해서 최민혁 실장이 가진 카드를 전부 다 검토하고 싶다는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최민혁도 굳이 집 앞에서 그런 얘기를 떠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벨린 투자가 투자한 초호화 저택 안으로 이들을 안내해 주었다.
“괜찮죠? 돈이 좀 남아돌아서 미국 국내에 있는 부동산 쪽에 투자를 늘렸습니다. 이곳도 뉴욕 아파트 못지않죠.”
물론 뉴욕 아파트와 비교해서는 수준이 좀 떨어졌다.
다만 면적은 그 열 배 이상이었다.
“…….”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딱히 매우 놀라지 않았다. 간혹 미국 내에 모임이 있을 때 이런 장소도 드물게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보다 미팅에 더 집중했다.
다만 구골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시작은 물론 대화를 환기하기 위해서 이전과는 달리 이머징 마켓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머징 마켓 투자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칫하면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알거지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스탠리 이사가 굳이 이머징 마켓 투자 얘기를 꺼낸 것은 최민혁 실장이 가진 자산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첫 만남 이후에 최민혁 실장이라면 자기 이야기에 솔깃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민혁은 실제로 흥미를 드러냈다. 그는 특히 중국 쪽과 인맥을 꽤 쌓았다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중국 쪽의 미래는 잘 알기 때문에 장기로 투자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단기 투기로 재미를 보기에는 나쁜 곳은 아니었다.
그런 정보도 알아둔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중국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최민혁은 바보가 아니었다.
“자꾸 말을 빙빙 돌리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IP 시티폰이 그 좋은 예이니까요.”
자연스럽게 CCIC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최민혁도 달달한 주제를 그냥 넘기지는 않았다.
“샐로먼 브러더스도 CCIC를 통해서 IP 시티폰에 투자한다는 말입니까?”
“아무래도 그게 중국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대안 중의 하나니까요.”
CCIC 대주주 중에 중국인민건설은행은 중국 공산당과 관련이 있다.
아무래도 IP 시티폰 사업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중국 공산당의 도움을 얻지 않고서야 IP 시티폰 사업을 중국에서 영유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모건 스탠리를 계속 압박한 이유 중에 하나가 이거다. 모건 스탠리가 이 안건을 꺼내기만을 기다렸다.
자신이 먼저 제안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의심을 사기 때문이다.
모건 스탠리 쪽에서 자신이 샐로먼 브러더스를 노린다는 것을 알아서는 곤란했다.
‘이걸 빌미로 요구하는 것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그러면 협상이 곤란해진다.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최문경 부회장이 이 일에 끼면 변수가 더 생긴다.
‘다행이라면 미리 풀어둔 이야기에 속아서 이번 일은 손 뗀 것으로 아니까.’
한 가지 걱정이라면 안재운 전무 옆에 달라붙어 있는 권태성 실장이다. 최근 안재운 전무 때문에 권태성 실장이 미국에 와 있다는 것을 안 것이었다.
‘이것도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어.’
최민혁은 그제야 머릿속을 다시 원점에서부터 하나씩 정리했다. 샐로먼 브러더스를 날릴 계획을 하나씩 다듬었지만, 곧 털어버렸다.
지금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타이밍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1회 차 기억 중에 삐삐와 관련된 부분을 떠올렸다.
‘삐삐에서 핸드폰으로 바로 넘어간 이유가 중국 공산당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