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7.
현재 미국 정부는 샐로먼 브러더스를 믿지 않는 상태다.
따라서 중간에 정보 하나만 가지고 장난질 쳐도 샐로먼 브러더스가 휘청할 수도 있다.
‘아니면 희생양으로 써먹어도 되고.’
하지만 존 맥커니 사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 일이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최민혁 실장이 이곳저곳에 손을 써놓은 탓에 무리수를 둘 수도 없었다.
“…국무부가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어 보여?”
“벌써 진행된 결과만 봐서는 국무부에서 따로 최민혁 실장에게 철저하게 손을 쓴 것 같습니다.”
“…그런 일에는 귀신이라니까.”
실상 최민혁 실장의 행적에 대해서는 따로 조사 중이었다.
지금까지는 대충 넘어갔지만 구골 역시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직 야후 나스닥 상장도 전에 벌써 그 약점을 보완한 구골 엔진이 나왔다.
다행스러운 일은 최민혁 실장이 야후 나스닥 상장에 재를 뿌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일테면 야후 검색 엔진과 구골 엔진의 벤치마크와 같은 자료다.
‘의도적이겠지.’
야후에 상당한 투자를 한 모건 스탠리 입장에서는 최민혁을 가만히 내버려 둬서는 곤란한 일이었다.
‘아니면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걸까? 설마 이걸로 뒤통수를 치려는 걸까?’
하지만 굳이 최민혁 실장에게 매달려야 하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모건 스탠리라면 이 점을 최대한 악용할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야후에 공매도를 걸어놓고, 야후 주가 엔진을 날려 버리는 방법 말이다.
‘어마어마한 수익이군.’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과연 이런 방식을 모를까.
그가 가진 자산의 일부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모건 스탠리를 향해서 손을 쓸 방법이 생각보다는 많았다.
‘심각하네.’
모건 스탠리 이사회가 왜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는 유독 지켜보기만 하는지도 밝혀진 셈이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반응을 봐서는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아.’
존 맥커니 사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이 한 제안을 이제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어서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선을 선택했다.
“그 바트화 조건이 아니면 아예 우리 이야기를 안 들어주겠다고 하던가? 아니, 다른 조건도 있잖아. 우리 회사에 옵션 상품도 많아. 그중에 확률이 높은 것만 제안해도 되잖아.”
“네, 소용없었습니다. 최민혁 실장은 생각보다는 바트화에 집요했습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에플 투자만 놓고 봐도 얼마든지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바트화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존 맥커니 사장도 답답해서 툴툴거렸다.
“바트화만 보면 그렇지.”
“네?”
그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다 피한 채 쓸데없는 이야기만 이사회에서 나불거린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떠올렸다. 그자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그와 손을 잡은 다른 이사회 세력들도 말이다.
모르는 이들은 모건 스탠리 사장인 자신이 막강한 권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모건 스탠리 내부에는 여러 종류의 이합 집단이 있다.
자신은 그들을 중재하는 실무진일 뿐이다.
“아, 나도 자세한 것은 몰라. 그래도 바트화를 이용한 선물 투자라면 나쁘지 않잖아. 정보를 잘만 이용하면 수백 배의 이익을 볼 수 있으니까.”
“선물을 말씀하시는군요.”
물론 이건 바트화 거래의 미래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 정보는 당연히 얻을 수가 없다.
여러 가지 이해집단이 엮여 있어서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진다.
‘다만 그 이해집단의 일원이면 상황이 좀 다르겠지.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정보가 그것일까? 하지만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반응을 봐서는 어려울 거야.’
스탠리 로버트 이사도 바보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뭘 노리는지 금방 깨달았다.
하지만 이건 최민혁 실장에 대한 오해다.
최민혁은 굳이 바트화와 관련된 선물로 돈 벌 생각은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정확한 바트화 정보였다. 정확한 타이밍을 알아야 그 정보로 최문경 부회장과 샐로먼 브러더스 세력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존 맥커니 사장은 고심에 들어갔다. 그는 문득 최민혁 실장이 주겠다고 한 결과물을 떠올렸다.
“최 실장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지?”
스탠리 로버트 이사도 갑자기 최민혁 실장이 정보를 제한적으로만 알려줬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 부분과 엮어서 자신이 얻은 정보를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로는 미래 기술, 구골, KMBOOK 지분, 필요하다면 에플 정보까지 다 내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갑자기 에플 이야기가 나온 것이 의아했다.
“잠깐만, 에플 정보라면 어떤 정보를 말하는 건가? 이미 다 보고를 했지 않아?”
“미국에 와서 뭔가 더 진행한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이번 CES 기조연설을 말하는 건가? 일반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따로 준비한다고 들었지만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전 생각이 다릅니다. 스티븐이 이번 일에 자기 목을 걸었습니다. 그냥 연례적인 행사가 아닐 겁니다.”
“스티븐이라…….”
그도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이번 최민혁 실장 건은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와 연결된 부분 역시 빼놓기 어렵다. 아차 한 번 실수하면 수천만 달러는 그냥 훅 날아간다.
‘어쩌면 수억 달러가 될지도 모르지.’
“결국 에플 지분이 문제가 될 것 같은데, 기존에 분석한 대로라면 큰 문제가 없잖아?”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너무 철저하게 정보를 은폐해서 내막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관련 직원 출퇴근 내역조차 통제한 상황입니다.”
“그래?”
존 맥커니 사장은 영문을 몰랐다. 지금 이 시점에서 무슨 정보를 통제한다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CES 전시회를 통해서 얼마나 큰 쇼를 벌이려고 하는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어설퍼 보여도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준 정보는 사실과 과장이 교묘하게 섞여 있어서 일방적으로 믿기도 곤란합니다. 실상 중요한 일과 관련된 정보는 이런 식으로 통제하는 듯합니다.”
그랬다.
최민혁 실장은 실상 돈이 되는 정보도 많이 넘겼다. 다만 그게 어떻게 돈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단편적인 정보만 믿기에는 최민혁 실장의 태도가 너무 모호했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이 있는 마당에 말이다.
그 협상이 끝나지 않으면 최민혁 실장과는 계속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냥 이렇게 시간만 끌 수는 없었다.
“…물론 그 정보가 헐값이어서는 곤란해.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이사회에서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이사회 내에는 최민혁 실장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혹시 마이크 라이언 이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마이크 라이언 이사라…….”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마이크 이사는 모건 스탠리 이사회 내에서도 힘이 막강할 뿐 아니라 성격 자체가 개같았다.
특히 소시오패스 같은 그의 성격 때문에 모건 스탠리 내에서도 마이크 이사를 다들 두려워했다. 가끔은 기름 장어 같아서 혐오감마저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야 최민혁 실장 문제가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사회에서도 최민혁 실장에 대한 의견은 통일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
“…의미 없는 정보는 아닐 겁니다. 최민혁 실장이 지금 뭔가 꾸미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도 저희 모건 스탠리를 노려서 말입니다.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잘 보면 바트화 정보를 위해서 계속 수작을 부린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됩니다. 그쪽에서도 합리적인 금액을 요구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솔직히 나쁜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민혁 실장이 일방적으로 요구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이사회의 태도가 더 수상쩍습니다. 굳이 바트화 정보를 그렇게까지 끼고 도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존 맥커니 사장도 구질구질한 바트화는 이제 손을 떼고 싶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도 일부 관련된 일이라서 관심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의 제안 때문에 이 바트화 문제를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차세대 배터리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래 기술.
차세대 검색 엔진이나 마찬가지인 구골.
거기에 이보다 앞선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KMBOOK까지.
거기에 에플과 뭔가 또 꾸민 일까지 포함하면 뭐 하나 놓칠 것이 없었다.
그는 고민한 끝에 결국 스탠리 이사와 최민혁 실장과의 협상을 위한 여러 가지 논의를 거쳤다. 일단 최민혁 실장이 줄 수 있는 것 위주로 말이다.
‘물건이 괜찮다면, 이사회에서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되는 것은 역시 마이크 라이언 이사인데, 이건 모르겠어. 결국, 무리수를 둬야 할까.’
* * *
존 맥커니 사장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집요하게 최민혁 실장과의 동맹을 반대하는 이사회에 말을 꺼내기보다는 우선 중도 노선 쪽에 있는 자들에게 호소했다.
최민혁 실장이 가진 것들을 나열하면서 말이다.
특히 에플 차세대 제품에 적용될 기술을 과장스럽게 언급했다.
[굳이 최민혁 실장이 스티븐의 CES 기조연설 일정을 앞두고, 넉넉한 일정으로 미국을 찾은 것도 미리 손을 쓰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지수 박사와 손을 잡은 것도 말이 됩니다. 에플 차세대 제품에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존 맥커니 사장이 다소 과장해서 하는 이야기였다.
아직 에플 내에서 그런 움직임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정보가 한 가지 폭탄이 된 것은 사실이다.
모건 스탠리는 최근 에플 주식을 꽤 많이 매집했는데, CES 이후에 에플 주식을 대거 정리할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모건 스탠리 이사회도 대부분 수긍했다.
에플 주가가 단기에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플 주가가 10달러를 넘기 위해서는 그만한 자본이 모여야 한다.
때문에 그 확인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시기에 갑툭튀로 튀어나온 인공지능 기술은 모건 스탠리 이사회 전체를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설마 우리가 에플 주식을 대거 던진 후에 반등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이 질문에 확실하게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역시나 침묵하던 마이크 라이언 이사가 슬쩍 끼어들었다.
[정확히 그 인공지능 기술이 뭡니까?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이 상용화가 가능하기는 한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면 아직 확인된 정보는 아니란 말입니까?]
[하지만 스티븐이 에플 연구소 내의 엔지니어 수십 명을 KMBOOK 연구소로 호출해서 이지수 박사 팀과 작업 중입니다. 그만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인공지능 연구 수준이 대체 어느 정도란 말입니까? 막연하게 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로 혼란을 주지 마십시오. 상업적으로 써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겁니까?!]
[그건…….]
존 맥커니 사장도 이 부분에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을 상업화한 제품은 현재까지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본 내용을 떠올려서 말할 수도 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될까는 자신하지 못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존 맥커니 사장을 비웃었다.
[이봐요, 존 사장, 지금 인공지능 기술을 제대로 알고 떠드는 겁니까?!]
시크한 질문이었다.
불행히도 존 맥커니 사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의 지적이 현실적으로 맞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마이크 라이언 이사는 회의실로 연구원 한 사람을 호출했다. 그는 연구원을 통해서 테일러 박사가 이미 사전에 검토해서 보내준 자료를 보여주었다.
[인공지능은 참 그럴듯합니다. 인공신경망 이론이 첨예하게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CNN, RNN과 같은 다양한 신경망 모델도 나왔습니다. 연구, 연구, 정말 죽어라 연구만 했습니다.]
회의실 한쪽 벽면에는 이 인공신경망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