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67화 (667/1,021)

#667.

“최 실장님 말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왜 우리 쪽에 아예 연락조차 하지 않는 지 말입니다.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더욱이 송도연 무대도 그렇고요. 아무리 자질이 괜찮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뭔가 생각이 있겠지. 모타운을 믿든지, 아니면 날 믿든지.”

다만 스티븐도 일부 몇 가지 부분에서 마크 실러의 지적을 인정했다. 그 역시 최근 최민혁 실장의 동향에 관한 보고는 받았다. 차세대 배터리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일을 잔뜩 벌이는 중이었다.

‘구골이라니.’

특히 구골 설립은 황당 그 자체였다.

그조차 처음에는 이번 최민혁 실장의 미국행이 CES 이벤트 행사 사전 준비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스티븐은 이 일로 최민혁 실장에게 연락할까 망설이다가 결국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먼저 찾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뜻밖에도 존 맥커니 모건 스탠리 사장이었다.

“존 사장님?”

“반갑습니다. 미리 사전에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제가 좀 급합니다.”

“…네.”

그는 수행원도 없이 홀로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역시 구골 때문일까?’

* * *

스티븐은 리허설 연습장에서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그는 신기한 눈으로 존 맥커니 모건 스탠리 사장을 쳐다보았다.

모건 스탠리 자체가 투자은행인 만큼 그도 모를 수가 없었다.

이미 수십 차례 만난 적도 있었고, 이런저런 일로 많이 싸우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에플에도 투자를 꽤 한 덕에 사이가 다시 좋아졌지만.

스티븐도 대주주 중의 한 사람인 존 맥커니 사장을 무시하지는 없었다. 아니, 그는 존 맥커니 사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아니, 어쩐 일로 이렇게 절 찾아오신 겁니까?”

존 맥커니 사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역시 에플의 대주주 중의 한 사람이니까. 더욱이 스티븐과는 과거 이런저런 일로 많이 만났다. 다만 그가 이렇게 스티븐을 개인적으로 찾은 적은 흔치 않았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존 맥커니 사장은 꽤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전 모건 스탠리 사장과는 그 스타일부터가 달랐다.

“사실 이게 말하기 좀 곤란한 부분도 있는데,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티븐도 처음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한참이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주로 인수합병과 관련한 얘기였다.

앞으로 에플이 새로운 회사를 인수할 때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말도 있었다.

“스티븐이 원하는 조건은 다 들어주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스티븐은 일방적인 저자세에도 존 맥커니 사장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자신이 일을 잘못하면 뒤통수에 가장 먼저 칼을 꽂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존 맥커니 사장 역시 스티븐의 눈치를 보면서 넌지시 한 가지 금융 시장의 변곡점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잘 아시겠지만, 부실채권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일본을 제외하고, 미국과 유럽 금융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금융 산업 재편으로 탄생한 초거대 은행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들 거대 은행은 새로운 수익원으로 동유럽, 남미, 아시아권을 노리는 중이었다.

“남미 국가의 각종 민영화나 통신 인프라 구축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 투자 금액의 일부가 모건 스탠리 쪽에도 들어온다.

이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는 일이 쉬울 턱이 없다.

존 맥커리 사장이 단적인 예로 든 것은 역시 샐로먼 브러더스가 밀어붙이는 IP 시티폰 사업이다.

특히 중국 시장을 예로 들면서 앞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언급했다.

“중국이 이머징 마켓이라는 점은 잘 아실 겁니다. 그쪽에 대한 투자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중이고, 앞으로는 더 급증할 겁니다.”

“…….”

스티븐은 묵묵히 말을 들었다. 그는 이 이야기가 결코 앞으로 할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긴 매머드 금융 회사가 동남아 쪽에도 기웃거린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태국 바트화 쪽에 무슨 수작을 부린다는 설이 있기는 한데…….’

굳이 그 부분은 질문하지 않았다.

스티븐은 이보다 원론적인 부분을 걸고넘어졌다.

“혹시 은행 업무 제한을 인정했던 맥퍼든법과 은행권과 비은행권 업무를 구분한 글래스 스티걸법 폐지 움직임을 말하는 겁니까?”

“알고 계시는군요. 뭐, 그 일이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걸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존 맥커니 사장은 두 가지 법안 폐지와 관련된 구체적인 부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 일의 배후에 있는 세력 중의 하나가 모건 스탠리이기 때문이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이 법안 폐지 이후를 목표로 발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이 가능한 것은 역시 미국 정부의 자신감 때문이다. 그들은 일본, 아시아, 유럽 금융 시장과 비교하면 자신들이 절대 우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강점을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런 움직임은 투자은행과 이해관계를 같이했다.

태국 바트화 사태는 그 사전 정지 작업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티븐은 바보가 아니기에 존 맥커니 사장이 말을 빙빙 돌렸지만, 그 의도를 다 파악했다. 때문에 그는 알맹이 없이 계속되는 장황한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정확히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존 맥커니 사장은 충분한 배경 설명을 했다고 생각하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쪽으로 막대한 자본이 유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결국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데, 야후와 같은 아이템을 검토 중입니다.”

말은 야후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야후에 들어가서 먹을 것은 별로 없었다.

아니, 이미 어느 정도 투자를 끝냈을 것이다.

오히려 차익 실현 후에 나갈 타이밍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야후와 비슷한 다른 종목을 타깃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스티븐은 뒤늦게야 존 맥커니 사장이 최민혁 실장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구골 투자 때문입니까? 설마 최민혁 실장을 설득해 달라는 부탁입니까? 이상하군요. 최민혁 실장은 대화가 되는 사람입니다. 모건 스탠리 쪽에서 투자 제안서를 낸다면 굳이 배척할 사람이 아닙니다.”

존 맥커니 사장은 이상을 찡그렸다.

“…그게 좀 복잡합니다.”

“구골 가치에 대한 평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확실히 구골 투자라면, 그 가치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겠군요.”

지금 야후는 나스닥 상장 전에도 난리였다.

야후 주식을 가진 이는 야후 나스닥 거품을 계속해서 부추겼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야후 가치에 대한 장밋빛 광고를 일삼았다.

그걸 다 믿기에는 어렵다.

그 역시 지금 하는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검색 엔진 쪽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물론 보고를 받기는 하지만 말이다.

다만 이게 존 맥커니 사장이 직접 자신을 찾아올 정도의 일인지는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존 맥커니 사장은 구골 투자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혹시 최민혁 실장과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비슷합니다. 우리 쪽에서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을 당장 들어주기가 곤란합니다. 월가 내부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협상하기 어려우니까요.”

“아.”

스티븐은 그제야 최민혁 실장이 모건 스탠리의 밥그릇 중에 일부를 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 실장이라면 그러고 남았다.

둘은 결국 상호 원하는 것이 있다.

문제는 그 가치가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모건 스탠리 쪽에서는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을 줄 상황도 아니었다.

“…설마 저보고 중재해 달라는 겁니까?”

“그렇게만 해준다면 그만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사실 다른 협상안을 내면 충분히 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그렇게 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넘기지 않으면, 아예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흠.”

스티븐은 잠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단 대화를 여기서 끝냈다.

“그 부분은 제가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단순히 이 자리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존 맥커니 사장은 아쉽지만, 스티븐을 독촉하지는 않았다.

“제가 내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 *

스티븐은 굳이 고민을 깊이 하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일단 전화를 걸어서 존 맥커니 사장의 제안을 알렸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최민혁 반응은 그의 우려와는 많이 달랐다.

그의 목소리는 허탈했다.

이제까지 계속 미끼만을 물기를 기다렸는데, 정작 다른 놈의 미끼를 물고 있으니 말이다.

[하, 설마 스티븐을 찾아갔을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아니라고는 말을 못 하겠습니다. 그런데 스티븐이 설마 저에게 먼저 연락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민감한 소재라서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가요? 이거 스티븐을 다시 봐야겠군요.]

하지만 이건 스티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존 맥커니 사장을 만나서 정보를 얻고서야 최민혁 실장에게 오해를 받아서는 곤란하다고 확신했다.

최민혁도 그 점은 순순히 인정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존 맥커니 사장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그거면 됩니까?]

[이왕이면 저를 설득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전 모건 스탠리의 스탠스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의 부탁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저 지금은 최민혁에게 신뢰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 좋았다.

이 정도면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상당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사전에 먼저 말하기를 잘할 것 같아.’

* * *

스티븐은 존 맥커니 사장이 한 이야기를 기준 삼아서 모건 스탠리와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다행히 존 맥커니 사장의 입장도 파악했다.

처음 만나서 자신에게 한 이야기는 장황한 배경 설명에 불과했다.

그제야 월가에서 무서울 것이 없다는 존 맥커니 사장이 변비 걸린 강아지처럼 끙끙 앓는 이유를 알았다.

‘확실히 지금의 최민혁 실장은 월가도 건드리기가 쉽지 않지.’

다시 만난 스티븐의 태도에서 미묘한 변화를 읽은 존 맥커니 사장은 스티븐이 자기 의도를 알아챘다고 판단하자 넌지시 한 가지 정보를 거론했다.

“…KMBOOK 관련 건도 있습니다.”

스티븐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지금 CES 기조연설 준비 때문에 최민혁 실장의 최근 행보까지는 몰랐다.

“KMBOOK이라뇨? 그건 또 뭡니까?”

존 맥커니 사장도 자세한 의미까지는 몰랐다. 최민혁 실장이 그냥 갑자기 이지수 박사를 앞세워서 만든 회사이니까.

이 회사는 구골과는 달리 정확히 뭘 하겠다는 이정표도 없었다.

“제가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일종의 메신저 서비스입니다.”

“메신저라면? 그 채팅 애플 말하는 겁니까? 설마 모건 스탠리가 채팅 프로그램에도 투자하는 겁니까? 그건 좀 과한 것 같은데…….”

“…그보다 좀 발전된 개념입니다. 인공지능 아바타 기능까지 들어갔으니까.”

스티븐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인공지능 아바타라면, 정확히 뭘 말하는 겁니까. 설마 사용자와 대화까지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말하는 겁니까?!”

존 맥커니 사장은 안색을 굳히고 말았다. 이런 쪽은 그도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미국 국방성 산하 연구 과제는 무인 드론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다인지도 확실치 않아.’

“…그것도 가능할까요?”

스티븐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도 이 분야에는 꽤 관심이 많았다. 다만 굳이 이쪽을 직접 살피지 않은 것은 그만한 기술이 아직 없고, 여력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이미 에플 내부 조직 일부를 할당해서 사전 검토 중이었다.

“그게 더 쉽지 않겠습니까? 물론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가만, 국방성 프로젝트라면…….”

하지만 존 맥커니 사장도 여기서 굳이 더 언급할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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