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56화 (656/1,021)

#656.

확신했다.

‘하긴 그건 정말 쇼킹한 일이었어. 내가 알기로 이미 전략 기획실에서 실리콘 밸리 투자를 진행했다가 실패를 맞봤으니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오성 그룹은 나름 실리콘 밸리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다.

물론 실패한 성과는 아예 기록에서 지웠고, 언론의 입을 막았다.

그런 차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오성 그룹은 그룹 전사적으로 움직여서 노력했는데도 죄다 실패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미국에 가서 불과 일주일 남짓한 시간에 이런 성과를 냈다.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이 발칵 뒤집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황당한 사실은 전략 기획실에서 따로 최민혁 실장을 조사하는데도 이런 정황을 미리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정보가 새어 나온 통로는 정말 뜬금없는 스포츠 신문이었다.

덕분에 난리가 난 전략 기획실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무슨 마법을 썼기에 야후 검색엔진보다 더 낫다는 평이 나오는 구골 검색엔진 원천기술을 확보한 것인지 말이다.

심지어 구골이란 법인회사까지 바로 설립했다. 심지어 이 회사는 실리콘 밸리에서 나름 난다 긴다 하는 검색 엔진 전문가를 다 흡수하는 중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인재가 자발적으로 구골에 합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세쿼아 캐피탈 투자 소식 때문이었다.

이게 단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얼핏 보면 쉬운 일 같아도 절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결국 전략 기획실만 웃긴 꼴을 당했다.

안건민 회장이 어지간해서는 분노하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전략 기획실 핵심 인사들을 불러서 2시간 가까이 정신교육을 했다.

‘하긴 정말 황당하기는 황당해.’

권태성 실장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 일도 최민혁 실장이 배후란 사실을 알자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안건민 회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하반기 광고 기획안을 손짓했다.

‘명품의 조건’이란 광고였다.

글로벌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오성 전자의 포부가 담겨 있었다.

그 대표 모델로 선정한 것은 역시나 2.5R 초평면 브라운관이었다.

뚜렷한 영상과 인공위성용 고감도에 대해서 이어지던 설명이 마지막으로 명품 오디오를 강조하면서 끝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안건민 회장은 썩 마음에 든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옆에 놓인 TV 샘플의 위아래를 툭툭 건드렸다.

“너무 뚱뚱해.”

“하지만 그게 최선입니다.”

“콜린스 모델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그가 다시 손짓한 것은 24인치 콜린스 모델이었다. 명품 TV 광고용 오성 전자의 샘플과 비교해 불과 50% 정도의 두께밖에 되질 않았다.

“이건…….”

“권 실장, 변명할 생각은 마. 우리로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기술이지.”

그런데 이건 오성 전자만 해당하지 않았다.

소니를 비롯한 일본 가전 업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KM 전자 타도를 외쳤지만, 콜린스에 비견되는 제품을 만드는 데 결국 실패했다.

비슷한 두께로 만들 때 화면 노이즈에 너무 취약했던 것이다.

안건민 회장은 굳은 얼굴을 한 채 한참 동안 물끄러미 콜린스 24인치 모델을 살폈다.

하지만 그는 곧 권태성 실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전략 기획실은 아직도 이 콜린스가 가지는 파괴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에 비한다면 이를 사전에 안 권태성 실장은 실로 믿음직한 인재였다.

“권 실장, 자네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네? 아, 아닙니다.”

“아니, 나도 인정해야지. 최 실장 그 친구를 우습게 본 거 말이야.”

그조차도 최민혁 실장의 나이 때문에 배후가 최용욱 회장이라고 생각했다.

최용욱 회장이 손자 최민혁을 위해서 판을 다 깔아놓았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한 일은 최용욱 회장이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안건민 회장은 이제까지 최용욱 회장의 바지 자락만 붙잡고 이야기했다.

정작 일을 벌인 당사자는 따로 있었는데 말이다.

‘내 꼴이 우습게 되었어.’

그런데 그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영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최민혁 실장의 나이를 기준으로 볼 때 그의 행동은 불가사의했다.

게다가 막상 최용욱 회장과 만나서 한 이야기를 잘 돌이켜 보면 최용욱 회장이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안건민은 회장은 그제야 최용욱 회장 일을 떨쳐 버린 채 TV 주제를 벗어나서 구골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

“뭐, 확실하지 않아서 지금 당장은 의견을 제시할 것이 없다고?”

“…죄송합니다.”

안건민 회장은 깍지를 낀 채 권 실장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는 조인용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내놓게 했다.

“…….”

권태성 기획실장은 영문을 몰랐지만 안건민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묵묵히 파일철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있었다.

특히 최근 자료들에는 강준석 팀장에 대한 것까지 따로 내용을 추가했다.

강준석 팀장은 놀랍게도 아무런 경력이 없음에도 신입 사원 교육 과정에서 인정을 받아서 미국으로 파견 나간 경우였다.

그는 벨린 소프트에 둥지를 튼 채로 한국과 미국 계열사 간의 정보를 중재하는 자리에 있었다.

필요하다면 벨린 투자를 통해서 인수합병에도 직접 관여했다.

‘하, 이게 무슨…….’

권태성 기획실장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결과였다.

그는 힐끗 안건민 회장을 쳐다보았다.

안건민 회장은 그제야 비서에게 요청해서 브리핑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

안건민 회장 서재에 나타난 이들은 다름 아닌 전략 기획실 직원이었다.

모두 열 명이 나타나서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자료를 내놓았다.

브리핑 주제는 최민혁 실장이 태어난 이후에 일어난 모든 것에 관해서였다.

최민혁 실장의 연애관도 적나라하게 나왔다.

한창 시절에 최민혁이 엇나가서 사고를 친 일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도 처음 접하는 정보였다.

‘저 정도였어?’

망나니 재벌 3세의 정석을 보여준 것이 바로 최민혁 실장의 학창 시절 모습이었다.

그것도 고등학교 시절이었으니.

하지만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가 KM 전자로 출근한 이후부터 달라진 것을 확인했다.

하루 단위로 일어나는 일은 그저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최민혁 실장은 분 단위로 자기 일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자신이 직접 공장에 내려갔다.

그리고 곧 믿기 힘든 불가사의한 일이 터져 나왔다.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도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안건민 회장 역시 계속 고개를 갸웃했다. 그로서도 최민혁 능력의 본질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등장한 존재였다.

[정말 알 수가 없는 친구야. 언제 지금과 같은 능력을 갖춘 것일까?]

권태성 실장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일까?”

조인용 비서실장은 권태성 실장의 의문에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모두 사실입니다.”

그는 특히 최민혁 실장이 KM 그룹에 합격한 이들을 모두 받아들인 결과와 강준석 팀장에 관한 내용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강준석 팀장, 아니, 강준석 씨는 직장 생활 경력이 이제 1년이 채 안 된 것 같은데…….”

“그 부분은 특이한 점이라서 따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강준석 팀장의 대학 선배를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모두 사실입니다. 물론 강준석 팀장이 다소 특이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 성과를 내놓을지는 몰랐습니다.”

‘실상 최민혁 실장에 비하면 강준석 팀장 그 친구는 애교 수준입니다. 진짜 문제는 최민혁 실장 그 자신이니까’란 말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그가 권태성 실장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이런 내막도 잘 모르는 사람이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태성 실장은 전략 기획실에서 사전 조사가 없이도 최민혁 실장에게 나름 잘 대응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은 인사 팀과 함께 강준석 팀장의 경우가 하도 이해하기 경우라서 따로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최민혁 실장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강준석 팀장을 발굴한 사람도 최민혁 실장이고, 그를 미국 벨린 소프트에 보낸 것도 최민혁 실장이며, 강준석 팀장이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기반을 잡아준 사람도 최민혁 실장입니다.”

그 성과가 가리키는 결과가 바로 구골 설립이었다.

안건민 회장도 한쪽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친 채 보고서를 살폈다. 그는 보면 볼수록 그저 놀랍기만 했다. 아니, 그가 가장 황당하게 생각한 것은 지금에서야 진실에 접근했다는 거다.

“으음.”

권태성 실장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이름이 나오자 이 이상한 일도 이럴 수 있다고 납득하고 말았다.

조인용 비서실장이 다시 말했다.

“사실 그룹 차원에서 강준석 팀장을 따로 만나서 스카우트 제안을 했습니다. 아파트, 인센티브, 필요하다면 가족의 오성 그룹 입사 제안까지 말입니다.”

“거절했나 보군요.”

“네. 솔직히 성과도 성과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그걸 알고 그 친구를 발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겁니다. 아, 아닙니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따가운 안건민 회장의 눈빛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자료를 다 확인하고 나서야 안건민 회장의 말을 다시 들었다.

“권 실장, 자네도 고민이 많은 것 알아.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펴본 바로 자네 능력은 나쁘지 않아. 다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어.”

“그게 어떤…….”

“자네는 눈치를 너무 많이 봐. 그러니 앞으로는 좀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면 좋겠네.”

“네?”

“지금처럼 누구 눈치를 보면서 움직이지 마. 최민혁 그 친구도 다르지 않더라고. 최용욱 회장이 정확히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아. 최민혁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 것 말이야.”

안건민 회장이 이제까지 분석한 자료의 결과였다.

내용에 좀 틀린 점이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 때문에 꽤 많은 것을 고민했다.

“나라고 못 할 것도 없지. 난 권 실장 자네를 발탁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으니까.”

“…….”

권태성 기획실장은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야 안건민 회장이 최민혁 실장에게 완전히 꽂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히 최민혁 실장의 모든 것을 일일이 보고, 조사를 한 것이었다.

안건민 회장은 피식 웃었다.

“내 말이 우습게 들리나 본데, 구골을 일단 잊어보자고. 그걸 제외하고 딱 하나만 고르자면 역시 K투스를 들 수가 있어. 이 근거리 통신 방식은 핸드폰에는 꼭 필요해. 업체는 쓸 수밖에 없지. 이 시장을 장악한 모토롤라가 KM 전자를 찾아가서 고개를 숙였어. 이것만 놓고 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건 그렇습니다.”

그도 순순히 인정했다. K투스는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주목받지 않았다. 그런데 에플 차세대 제품에 적용된 기술이 일부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모바일 제품이라면 반드시 적용해야 할 기술로 말이다.

“지금처럼은 곤란해. 재운이 그 녀석이 최민혁 그 녀석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문제야. 그러니 자네 같은 친구가 잘 돌봐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전 권한이…….”

“내가 사장급 권한을 주지. 그러니 자네도 강준석 그 친구처럼 마음대로 움직여 봐.”

권태성 기획실장은 그제야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그는 안건민 회장이 필요하다면 자신을 사장으로 승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 오성 전자 내에서 하는 일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사장급으로 진급시키고, 권한을 몰아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교 대상은 창피스럽지만, 강준석 팀장이었다.

하지만 안건민 회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탄식하고 말았다.

“구글 검색엔진의 지분 가치 10%가 1억 달러야. 그 회사는 고작 이제 법인 설립해서 시작한 건데 말이야. 이걸 믿을 수 있겠나? 봉이 김선달도 그러지는 못했을 거야. 솔직히 난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아. 그래서 누군가 최민혁 실장 그 친구를 깊숙이 들여다봤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아, 텍사스행 비행기는 이미 끊어놓았으니, 바로 미국으로 가보게. 그 일이 시작이네. 이전처럼 사무실에 앉아 있을 생각은 말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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