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55화 (655/1,021)

#655.

장승일 실장은 솔직히 미래 기술 때문에 미국 정부가 최민혁 실장을 밀어준 것이 아닌가 추론했다.

‘딜을 했다면 가능하지. 최 실장님이라면 미래 기술로 미국 정부를 압박하고도 남을 분이니까.’

그렇게 보면 갑툭튀로 나온 미래 기술 투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최민혁 실장은 이미 미래 기술 지분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물러서 보면, 당장 에플 주가만 해도 이제는 최민혁 실장이 가볍게 다룰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커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잘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구골 설립 핵심 연구진이었다.

‘미래 기술에 이어서 검색엔진 회사인 구골 설립이라.’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전형적인 스탠퍼드 천재들이었다.

이들은 돈으로 스카우트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존심 때문에 차라리 차고에서 스스로 일어날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최민혁 실장의 제안을 받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구길모 차장도 꾸준히 KM 전자를 조사하고 있었다.

“강준석 팀장이라고, 이번에 기획 팀에 들어간 친구 솜씨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그는 이전에 가진 의문 몇 가지를 이제야 풀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따로 실리콘 밸리 인물을 관리했다는 소리야?”

“네. 사실 자세한 것은 아닌데, 그 친구는 KM 전자 기획실 소속이면서도 독자적으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구골 설립도 그 친구가 실무를 주도했고, 최민혁 실장이 그 계획을 승인해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 정보는 그가 KM 전자 신입을 조사해서 안 사실이다.

신입 사원 사이에서 나도는 정보 일부를 취합해서 파악한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굳이 실리콘 밸리에 가서 벨린 소프트를 설립하고, 건물을 매입한 것도 다 이번 건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이미 실리콘 밸리 투자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충분히 해둔 셈이었다.

“그러면… 그나마 말이 되네.”

장승일 실장도 나름의 조직 관리 전문가답게 간혹 엉뚱한 친구가 대박을 터뜨린다는 것을 경험했다. 강준석 팀장이 그런 친구였다면, 지금의 일도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설사 그걸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도 결과마저 공감하지는 않았다.

“강준석 팀장 이 친구 능력이 그렇게 대단한가?”

구길모 차장은 이전과는 달리 사뭇 놀란 얼굴이었다.

“솔직히 강준석에 관한 조사는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봐서는 특별한 것이 없는 친구입니다.”

29살에 졸업한 강준석은 학창 시절 성과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KM 그룹 기획 조정실이 인사 팀과 같이 강준석에 대한 것을 조사했는데, 결과는 물음표였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이 대체 강준석 팀장의 어떤 점을 보고 인재라고 파악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장승일 실장은 피로에 지쳤지만 강준석 팀장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보고하는 기획 조정실 직원들의 표정이 다들 좋지 않았다. 일이 쌓인 것도 문제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기획 조정실 직원들은 다들 피로에 젖은 채 장승일 실장의 눈치를 봤다. 그들은 며칠 밤을 꼬박 새운 채 제대로 퇴근도 못 했다.

최용욱 회장의 직접적인 관심사 때문이다.

장승일 실장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 채 강준석의 인사 프로필을 보고 또 봤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이 마침 연락과 동시에 회의실에 강제로 들어왔다.

장승일 실장의 비서가 최문경 부회장실에서 온 연락을 막 알리려고 했지만, 갑자기 일어난 일에 크게 당황해서 그들을 말렸다.

[부 회장님, 안 됩니다! 지금 회의 중입니다!!]

곧 회의는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도 이미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해서인지 별다른 반응 없이 침묵했다.

그저 최문경 부회장을 막는 직원만 따로 뗐다.

장승일 실장은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다행히 최문경 부회장의 차분한 태도를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주먹다짐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구길모 차장을 비롯한 측근 몇 사람만 남겨두고 다들 회의실에서 내보냈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이전처럼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회의실 의자 하나를 당겨서 장승일 실장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장 실장, 내가 지금 지난 일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어. 하지만 이거 하나만 좀 짚고 넘어가자. 민혁이 그놈이 하는 일은 결국 KM 그룹에서 알고 있어야 하는 일 맞지?”

형식적으로 KM 전자와 KM 그룹은 완전히 분리된 기업이다.

그런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둘 다 ‘KM'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최민혁도 KM 그룹 임직원을 흔들 목적이 있기 때문에 굳이 사명을 바꾸지 않았다.

장승일 실장은 눈치껏 이 미묘한 문제를 슬그머니 넘어갔다. ‘KM 전자’란 브랜드네임 덕분에 KM 그룹이 단단히 재미를 보기 때문이다.

당장 KM 그룹 주가만 해도 무려 20% 이상의 이익을 봤다.

때문에 좋은 게 좋다고 서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맞습니다.”

최문경 부회장도 잘 안다. 그 역시 KM 전자를 최대한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러면 말하기 쉽겠네. 구골 투자 관련된 소식은 들었지?”

“…네.”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허탈하게 웃으면서 툴툴거렸다.

“아니, 다 좋아. 뭐, 날 따돌리려고 하는 것도 넘어가자. 그런데 그 정보를 내가 어떻게 뉴욕 타임스 기사를 그대로 베낀 한국 기사를 통해서 알아야 하지? 그게 정상인 거야?!”

장승일 실장은 최문경 부회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며칠 전에 호들갑을 떨던 최용욱 회장의 전화를 떠올리면서 머리가 깨질 듯 아파서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자신이 지금도 집에 못 가고 남아서 야근하는 이유가 최문경 부회장이 지적한 일 때문이다.

웃기는 사실은 외신을 베낀 곳이 바로 스포츠 신문 기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사를 가지고 짜깁기해서 소식이 돌았다.

그리고 그 뉴스를 보고 지금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았다.

이게 말이 되나.

침묵한 장승일 실장의 태도가 그 정답이었다.

“…….”

“장 실장, 설마 내 말이 고깝냐?”

“…아닙니다. 제가 최근 두통이 좀 심해서요.”

그는 다 포기한 듯 두통약을 다섯 알 꺼내서 한 번에 삼켰다.

그러고선 400㎖ 컵에 든 물을 한 번에 전부 들이켰다.

그러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의 면전에서도 눈치를 보지 않았다.

솔직히 이제는 최문경 부회장이 지긋지긋했다.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말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툭하면 기획 조정실장실에 쳐들어와서 사람 속을 뒤집었다.

최민혁 실장은 무섭고, 최용욱 회장은 부담스러우니, 만만한 자신이 그 희생양이었다.

자신이야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기획 조정실 직원들은 무슨 죄가 있나.

그들은 다들 토끼 눈을 한 채 두 사람의 갈등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중이었다.

“…….”

최문경 부회장은 두통약 통 겉을 힐끗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도 장승일 실장이 최민혁 실장의 동선을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혁이 이 새끼는 도대체 꿍꿍이가 뭔지 모르겠어. 하긴 일이 벌어진 지 불과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고 했으니.’

이번이 기회였다.

“그러면 말하기 편하겠네. 자네가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서 민혁이 그놈에 대한 보고만 듣고 있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직접 미국에 있는 민혁이 그놈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확인해야 하는 거야?!”

장승일 실장은 잠깐 고민했지만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후자입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나름 만족했다. 그는 장승일 실장 이놈이 참 합리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니 아버지가 중용하겠지. 사실 아까운 놈이야. 일 하나는 정말 잘하니까. 특히 자기 관리 능력은 이놈보다 더 대단한 인간은 본 적이 없어.’

“좋아. 내가 길게 더 말하지 않겠어. 지난 일은 이 자리에서 넘어가자고, 대신 분명히 할 것이 있어. 최소한 자기 일은 해야 할 것 아냐? KM 그룹 실세 중의 실세인 장승일 실장이라면 최소한 자기 일을 해!!!”

“…알겠습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일단 최용욱 회장에게 보고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를 으드득 갈았다.

‘저놈만으로 부족해. 일단 오성 그룹도 자극할 필요가 있어. 이번 일은 병신같이 자리만 지키지 않을 거야. 그놈들은 나보다 탐욕이 더 심하잖아. 뭐를 해도 할 거야. 그때 기회를 보자고.’

***

최민혁 실장도 장승일 실장이 미국에 온다는 보고를 받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이 배후에 최용욱 회장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했다.

“뭘 알고 싶다고 합니까?”

조성돈 팀장은 며칠 전에 있었던 쿨 거래를 떠올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10% 지분을 1억 달러에 주고받는 일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은 눈치입니다.”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글쎄요. 1억 달러 지분 매각이 중요하지 않다니요.”

“어차피 그 지분 실소유주는 벨린 투자죠. KM 전자와도 관계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귀찮네요.”

솔직히 그는 다른 인간들의 움직임은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모건 스탠리와 최문경 부회장, 딱 그 둘이면 충분했다.

‘문제는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중상모략을 좋아한다는 말이야.’

오성 그룹은 왜 끼지 않아도 될 일에 탐욕을 부리는지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민을 좀 했다. 장승일 실장은 확실히 믿을 만한 이였다.

오히려 최용욱 회장보다 더 말이다.

“이렇게 합시다. 장승일 실장에게 구골 본사 안내를 좀 해주세요. 필요하다면 실리콘 밸리 투자 현황도 보여주시고요.”

조성돈 팀장은 깜짝 놀랐다.

“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장승일 실장을 믿었다. 아니, 사실 그는 장승일 실장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미 계획은 9부 능선을 넘어서 새로운 페이지 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와서 누가 끼어든다고 해서 훼방받을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세요. 그게 차라리 낫습니다. 장승일 실장도 우리 역량의 일부를 안다면 최문경 부회장과 대립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의 마음 씀씀이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최영란 본부장과 장승일 실장 두 사람을 이용해서 최문경 부회장을 압박할 생각이시겠지. 아무래도 욕심을 부리는 세력에 대한 대응으로 나쁘지는 않아.’

***

사실 이제까지 최민혁 실장이 지금까지 보인 행보는 적극적인 면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소극적이었다.

사건을 공격적으로 풀어가지 않았다.

때문에 일이 최종적으로 알려지는 것은 이미 쌀이 익어서 퍼질 시기였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보복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얄짤 없이 당한 당일에 당장 처리했다.

그 외엔 지금까지는 대놓고 투자를 받거나, 대놓고 언론에 정보를 흘리지 않았다.

특히 미국 언론사와 직접 만나서 다 떠벌리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안건민 회장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전략 기획실이나 사장단 회의를 통해서 보고는 받았지만,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심지어 안재운 전무가 아직도 최민혁 실장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보다는 오히려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결국 오성 전자 내에서 요즘 몸을 사리고 있는 권태성 기획실장을 자기 서재로 직접 호출했다.

“권태성입니다.”

“으음, 앉지.”

권태성 기획실장은 겉으로는 크게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심은 좀 달랐다. 그는 설마 안건민 회장이 자신을 직접 호출할지는 몰랐다.

온갖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묘사되는 안건민 회장은 딱히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일에 그만큼 애착이 있었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단적인 예가 지금 이 서재의 분위기였다.

서재 한쪽 테이블 위에는 시장에 나온 모든 MP3가 전부 다 분해된 채 놓여 있었다.

안건민 회장은 그중에 KMP-01을 가져와서 보여주었다.

“진짜 잘 만들었어.”

“…네.”

“권 실장, 자네 생각은 어때? 이 KMP-01 말이야.”

그는 잠깐 머뭇거렸다. 비서가 내 온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다. 그저 갑자기 안건민 회장이 자신을 호출한 이유만을 추론했다.

‘역시 세쿼아 캐피탈 투자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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