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4.
오죽하면 한영 일보 내에서도 나중에 최민혁 실장이 분노해서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소리가 나겠는가.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마치 저축은행에 저축하듯이 기사를 하나씩 쌓은 채 단 한마디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자까지 쳐서 공격하려는 것일까?’
두 사람은 침묵한 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범용구 기자는 세쿼아 캐피탈에 대한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정확히 어떤 투자회사인지까지는 잘 몰랐다.
“…으음, 저도 돌아가는 내막을 잘 몰라서 판단하기는 그렇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최광수 기자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범용구 기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제야 최광수 기자의 시선에 범용구 기자는 아차 싶었다.
대답은 물론 최경진 편집장이 했다.
“야, 범 기자, 너 생각이 있는 놈이야? 세쿼아 캐피탈이 어떤 투자회사인지 몰라? 그 유명한 시스코에 초기 투자를 했고, 야후를 지금의 야후로 만든 전설적인 투자 업체잖아!”
최광수 기자는 범용구 기자가 알아듣기 쉽게 예를 들어주었다.
“세쿼아 캐피탈 쪽은 단순히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에 직접 참여해서 필요한 조언을 해줍니다. 특히 인재가 필요하다면 인재를, 기술이 필요하다면 기술 조언까지 해주는 곳이죠.”
세쿼아 캐피탈은 공격적인 경영 간섭으로 유명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접근이 이제까지 초대박을 갱신했다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야후였다.
야후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미국 언론사가 가장 많이 찾는 이가 바로 세쿼아 캐피탈이었다.
그런 세계적인 벤처캐피탈이 무려 지분 10%에 1억 달러를 퍼부었다.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범용구 기자는 그제야 세쿼아 캐피탈이 무려 1억 달러를 투자해서 지분 10%를 확보했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그제야 지금까지 자신들이 쓴 최민혁 실장에 대한 가짜 뉴스를 떠올렸다.
그야말로 실리콘 밸리 내에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최민혁 실장이다. 아마 야후 나스닥 상장 이후에는 그 명성이 국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그러면 큰일 아닙니까?”
“이 새끼가 돌겠네. 그걸 잘 아는 놈이 최민혁 실장을 스폰남으로 몰아갔어?!”
그는 최경진 편집장 눈치를 보면서 억울한 얼굴로 하소연했다.
“…그거야 저희 언론사만 그런 기사를 내보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저만…….”
‘솔직히 최 편집장님이 직접 구체적으로 지시까지 했지 않습니까?’란 말까지 하지는 못했다. 그랬다간 정말 재떨이가 진짜 날아올 것 같았다.
최경진 편집장이 이를 으드득 갈았다.
“아, 그래서 지금 말하잖아. 계속 최민혁 실장 스폰남 시나리오로 갈 거냐고?!!!”
“아.”
범용구 기자는 그제야 썩은 표정을 한 채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번 세쿼아 캐피탈 투자 뉴스는 짤막하게 다루어져서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있다고 하면 미국 경제에 관심이 많은 경제지 소수였다.
언론사들이 알아서 그 뉴스를 다른 마약 조직과 연예인 기사로 덮어버렸다.
이런 부분에 있어선 언론사도 참 흐뭇했다. 일반 시민들을 자기 입맛대로 몰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막은 좀 달랐다.
다들 모여서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광수 기자는 겉으로는 풋내기 기자 같아도 나름 경제 전문가였다.
“이번 일은 그냥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최경진 편집장을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보는 이유가 뭐야?”
“야후와 시스코 투자로 초대박을 친 세쿼아 캐피탈이 지분 10%를 1억 달러에 사들인 경우를 전 처음 봤습니다.”
“확실히 투자금이 세지. 구골 법인 설립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었다는 황당한 소리도 있으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세쿼아 캐피탈은 굳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할 투자 회사가 아닙니다.”
“세쿼아 캐피탈이 그렇게 대단해?”
“네. 그쪽에서 손을 대서 투자에 실패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기업들에게도 시작부터 이렇게 파격적으로 투자하지는 않았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배후에 있잖아. 그래서 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아.”
그는 실리콘 밸리 투자와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따로 놓고 봤다.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 배후에 있다고 해도 말이 안 됩니다. 이건 구골이란 회사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입니다.”
“하긴 세쿼아 캐피탈이 야후에도 투자했지? 그런데도 구골에 저렇게 투자하다니. 나쁜 놈들이잖아. 혼자 다 해처먹으려고 하다니. 그렇게 보면 그런 놈들을 상대로 1억 달러를 뜯어냈으니, 최 실장 이 새끼는 더한 놈이지.”
막상 그들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서야 이 상황이 석연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최경진 편집장은 소름 돋은 표정이었다.
“이번 일은 자칫하면 우리 한영 일보 신뢰성에 타격을 줄 수가 있어. 그러니 아무래도 조심을 해야겠어.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기사는 앞으로 내보내지 마.”
범용구 기자가 깜짝 놀랐다.
“아니, 벌써 몇 개월 동안 취재한 기사를 다 폐기하란 말입니까?”
“어, 어쩔 수 없어. 아니다 싶으면 손을 털어야지. 으음, 좋아, 이렇게 하자고. 요즘 오성 전자가 콜린스 사업부 인수에 적극적이라는 소리가 있어. 안재운 전무가 굳이 미국에 간 것도 그 일 때문이란 소리가 있으니까. 최문경 부회장에게 그 정보를 흘려봐. 그 양반이라면 펄쩍 뛸 테고, 뭔가 해보려고 할 테니까. 그 과정을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범용구 기자 입이 불만으로 툭 튀어나왔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최광수 기자 역시 최경진 편집장에게 받은 자료를 살피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늘 조용히 물밑에서 일을 정리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는 최민혁 실장이 손댄 일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알려졌다.
그런데 세쿼아 캐피탈 관련 소식은 투자금이 오간 시점의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왔다.
‘확실히 이상하긴 이상하구나. 최민혁 실장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본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이라도 터진 것일까?’
* * *
최민혁도 언론사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눈치를 챘다.
일단 자신을 마녀사냥 하던 기사의 상당수가 슬그머니 사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를 대신한 것은 최민혁 실장의 지난 행보들이었다.
아예 신문 일면을 가지고 KM 전자 광고를 노골적으로 했다.
그들은 특히 모토톨라를 비롯한 핸드폰 업체가 KM 전자와 K투스와 무선랜 특허 협상을 시작했다는 것을 집중 조명했다.
이 일은 KM 전자 기획 팀이 알아서 진행하는 일로, 그렇게 소문이 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KM 전자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런 광고는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해도 언론이 허락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쉽네.”
조성돈 팀장은 박상기 차장을 통해서 들은 내용을 보고하면서 최민혁 눈치를 봤다.
“스캔들 기사 때문입니까?”
“솔직히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네요.”
물론 아직은 최민혁 실장의 스캔들 기사가 주류였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감지된 것은 썩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 자신이 한국 언론사를 박살을 내려 해도 명분이 필요하니 말이다.
“이 분위기를 봐서는 제가 한국에 돌아갈 때는 ‘최민혁 용비어천가’ 기사가 장식돼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보복을 못 하죠?”
“…그래도 조용히 끝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뇨. 어설프게 할 바에는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최경준 과장에게 연락해서 좀 더 푸시를 해보세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네,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스캔들을 부추겨야 하는 이 상황이 황당했다. 이런 일은 정말 이전에는 없었다.
‘최훈열 전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게 잘하는 짓인지 정말 회의스러웠다.
* * *
최문경 부회장은 최근 최민혁 스캔들을 퍼뜨리면서 어지간한 한국 언론사와는 다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정확히는 접대를 좀 많이 했다.
무려 로비 비용만 100억이 넘는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이니.
그가 실제로 언론사 오너를 상대로 한 로비가 절대 작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좋아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최민혁 실장의 자산은 어떻게 할 수 없어도 평판만 나락으로 떨어뜨려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KM 그룹 본사 임직원들에게 영향을 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이번 작업은 효과가 있었다.
최민혁 실장의 자질에 대해서 의심하는 이들이 나왔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자산이 혹시 최용욱 회장 비자금까지 양지를 끌어올리는 과정이 아닌가 추론했다.
다만 가짜 뉴스를 믿지 않은 사람들의 반발이 많아서 그렇게 퍼지지는 않았다.
지난 국세청 사태도 있고 해서 말이다.
최문경 부회장은 한영 일보에서 흘러나온 정보를 듣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전처럼 길길이 날뛰지 않았다.
“이거였구나.”
“…….”
권재홍 비서실장은 침묵했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미국으로 간 이유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최민혁 실장이 스폰 사태에 무대응으로 나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결국 최민혁 실장은 미국에서 딴짓을 하는 중이었다.
사실 한국 사람은 대다수 실리콘 밸리 투자에 대해서 잘 모른다. 세쿼아 캐피탈이 어떤 회사이고, 검색엔진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말이다.
실제로 아직 야후가 나스닥에 상장하기도 전이라서 피부로 느끼는 이는 흔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IT 종목이 높은 관심을 받는 것은 사실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곰곰이 고민했다. 그는 비서실에서 허겁지겁 만들어서 올린 자료를 보지 않아도 구골의 가치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 덕분에 미국 관련 주식에 대한 정보를 듣기 때문이다.
‘야후 투자는 아쉽지. 병문이가 살아 있었다면 알아서 잘 처리했을 텐데…….’
그의 자금 대다수는 최병문이 관리해서 덩치를 키운 것이다.
그 자신이 굴려서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 일은 그냥 고민만 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이 손을 쓰려고 해도 조카 최민혁은 이전과는 달리 철벽을 쳤다.
보안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도대체가 내부 정보를 빼 올 수가 없었다.
그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머리를 굴렸고, 마침 대안을 괜찮은 떠올렸다.
“장 실장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기획 조정실로 찾아간다고.”
“…알겠습니다.”
* * *
기획 조정실 역시 뒤늦게 안 세쿼아 캐피탈 투자 때문에 난리가 났다.
이번 일은 이전 건과는 달리 최용욱 회장이 특별히 관심을 둔 일이라서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최용욱 회장이 에플 투자로 재미를 단단히 봤기 때문에 구골 투자 정보에 집착한 것이었다.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손자 최민혁 실장이 넌지시 제안한 에플 투자 덕분에 이제는 자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봤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제는 그도 손자 최민혁의 동선을 꼼꼼히 감시할 지경이었다.
최민혁 실장이 어지간해서는 직접적인 정보를 주지 않아서였다.
그러니 애가 타서 결국 기획 조정실을 열심히 갈구었다.
장승일 실장은 너무 황당해서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꼭 최용욱 회장의 질책 때문만이 아니라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가 없어서다.
그도 그럴 것이 구골 설립 과정은 무슨 페이퍼컴퍼니 만들 듯이 진행되었다.
아무리 기업 설립이 자유로운 미국이라도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었다.
“미국 정부기관이 이렇게 허술하게 기업 설립을 허가할 리가 없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구길모 차장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을 밀어주는 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실상 미래 기술만 해도 그렇습니다. 차세대 배터리 관련된 부분은 미국 정부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가 내놓은 자료는 미국 정부가 차세대 배터리와 관련해서 투자한 내역이었다.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미래 기술 사태가 미국 정부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론했다.
‘최 실장님이라면 그러고도 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