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43화 (643/1,021)

#643.

“이상하군요. 제가 알기로 미래 기술의 가치는 생각보다 큰 것으로 압니다. 얼마든지 이익을 더 볼 수가 있는데, 고작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적당한 미끼를 줘야 그들도 절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들과 척을 질 생각은 없습니다.”

최민혁 생각은 좀 달랐다. 그는 헤지펀드 세력이 누구인지 안다. 다만 문제는 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있었다.

태국 바트화 폭락을 주도하는 세력에게 가서 ‘나도 태국 금융위기 기획에 참가하고 싶다!’란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안이 철저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알았는지 추궁부터 하겠지.’

그러니 한 다리 건너서 소통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심지어 중간 브로커 역할을 미국 국무부가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들도 최민혁을 적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다만 조시 아태 차관보는 영문을 몰라서 최민혁의 눈치만을 봤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정확히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 역시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라인이 조시 아태 차관보와 엮여 있는지까지는 사실 알지 못했다.

자칫하면 자신의 정보를 조시 아태 차관보가 그냥 넘길 수가 있기 때문에 미래 기술 지분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뿐이다.

조시 차관보가 원하는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미끼를 끼워서 말이다.

최민혁은 솔직히 IMF나 미국 국익 따위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잘만 하면 이번에 우리 첫째 큰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미국 세력을 없애 버리거나 최소한 약화시킬 수 있어. 그러려면 먼저 적과 아군을 구분할 필요가 있지.’

헤지펀드 세력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최민혁이 그들 모두를 적대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최민혁은 조시 아태 차관보의 태도가 미지근하자 피식 웃었다.

“벨코어사 쪽에 투자한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뭐, 그쪽과 연관된 쪽이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조시 아태 차관보는 그제야 몇 개의 투자회사를 떠올렸다. 다만 그는 여전히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최민혁 역시 딱히 누군가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지금까지 에플을 비롯해서 여러 회사에 투자했다.

싫든 좋든 미국 헤지펀드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내가 한 투자의 가치를 안다면, 누군가 관심을 두겠지. 그게 아니면 그쪽을 통해서 다시 소개를 받으면 될 테니까.’

여러 경로를 거쳐야 할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연결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 * *

최민혁은 조시 아태 차관보와 헤어진 후에 한국 상황을 확인했다.

그런데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그는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 마케팅 팀에 신호를 보냈다.

[작전을 시작할 것!]

최준형 과장은 오성 전자 동향을 살피는 중에 최주호 팀장에게서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자 곧바로 아는 기자 몇 사람에게 정보를 보냈다.

[작업할 때 최민혁 실장님 나이를 삼십대 초반 정도로 간접적으로 묘사할 것.]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최민혁은 송도연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이 사귄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관점 나름이다.

[요즘 방송사가 슈퍼모델 선발대회 입상자인 미성년자를 쇼, 오락 프로에 가끔 출연시킨다. 과연 여고생의 이런 활동이 바람직한가.]

댄스 그룹 중에 여고생 출신이 있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이런 기사들이 이후에 나간 기사가 바로 최민혁 실장과 송도연, 두 사람의 스캔들 기사다.

특히 두 사람이 오붓하게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장면에서 한 면을 강조해서 마치 연애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심지어 고급 스포츠카에 같이 타는 장면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십 대 후반의 최민혁 실장이 마치 미성년자를 상대로 스폰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고, 기사 역시 그런 뉘앙스를 담았다.

[KM 전자는 가수 연습생을 고용해 연예 기획사에 도전 중이다. 그런데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과 연예인 연습생 송도연 사이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스폰’, ‘성 접대’ 이야기는 기사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말을 빙빙 돌려서 그렇다는 뉘앙스를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이 기사는 9시 뉴스를 통해서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

오성 전자가 뒤에서 손을 쓴 것이었다.

거기에 음원 저작권협회 인터뷰를 통해서 최민혁 실장을 맹비난했다.

[KM 전자는 MP3 불법 파일이 PC 통신을 통해서 돌도록 조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게 혁신의 기업이란 KM 전자가 할 일입니까?!]

음원 협회, 언론사, 심지어 KM 전자의 마케팅 팀이 서로 힘을 합쳐서 단합한 결과는 생각보다는 그럴듯했다.

처음에는 KM 전자를 옹호하던 이들조차 흠칫 놀란 것이었다.

그들 사이에서도 역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KM 전자도 대기업이 되는 순간 다른 대기업과 다를 바가 없구나. 도대체 연예 기획사 매출이 얼마나 된다고 이 열악한 시장을 파고드나.]

전부 다 최민혁이 원한 시나리오였다.

아니, 그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나았다.

최민혁은 물론 송도연의 휴대폰과 노트북 일체를 압수했다.

“앞으로 있을 이벤트를 앞두고 산만해져서는 곤란해.”

“하지만 실장 오빠, 꼭 그게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잖아요.”

“사람 일은 몰라. 넌 지금 전쟁을 앞둔 군대야. 그러니 지금부터는 어떻게 전쟁을 치를지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것이 좋아. 괜한 언론 기사 보고, 마음 상하면 곤란해.”

“하.”

송도연은 최민혁 실장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영문을 몰라서 황당했다. 그녀는 왜 최민혁 실장이 핸드폰까지 압수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인터넷까지 아예 접속할 수 없도록 경호원을 이용해서 감시까지 했으니.

“정말 너무하세요!”

“나중에 다 나에게 고맙다고 할 거야. 지금은 좀 참아 봐.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잖아. 지금은 컨디션 유지가 중요해.”

“하지만 전 에플 이벤트 무대만 준비하면 되잖아요?”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잠깐 고민했다. 그러고 나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가만, 송도연이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면, 투자자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지금 기사대로라면 두 사람은 스폰 관계다.

결국 송도연의 실력이 제대로 인정받을 리가 없다.

그는 씩 웃었다.

“좋아, 이렇게 하자. 이번에 투자 미팅 갈 때 너도 같이 가자. 이번 일이 관계가 있으니, 아마 큰 도움이 될 거야.”

“네? 저도요?”

“그럼.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알았어요. 하지만 전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송도연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최민혁 실장이 수상했지만 차마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못했다. 지금 이 기회를 마련해 준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민혁은 그녀 생각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모든 게 잘될 테니까.”

“…….”

송도연은 도대체 뭐가 잘된다는 건지 최민혁 실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빠는 다 좋은데, 가끔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한다니까.’

* * *

조시 아태 차관보는 최민혁과 헤어진 후에 그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사람을 바로 특정하지는 못했다.

그는 아직 미 국무부 쪽으로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벨코어사 투자자 중에 국무부 쪽에 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니, 손에 꼽는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특히 외국에 투자까지 할 수 있는 후보를 추리면 더 적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게 누구인지를 특정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는 결국 미국 국무부 로비스트 쪽에 부탁해서 연락을 취했다.

그가 한 연락을 최종적으로 받은 이는 다름 아닌 스탠리 로버트 이사였다.

모건 스탠리 내에 기업 인수합병을 담당하는 모건 스탠리 기업 펀드 조직의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국무부 로비스트를 통해서 연락을 받고 나서는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다만 이 일의 배후가 벨코어사와 관련이 있는 미래 기술 실소유주인 최민혁 실장이라는 알고 나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한 투자 리스트 중에서 가장 0순위로 관심이 있는 회사가 다름 아닌 벨코어사였다.

그런데 미래 기술이 뜬금없이 차세대 배터리 특허를 찍어내면서 큰 손실을 봤다.

심지어 벨코어사 특허출원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의 처지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몇 년 전에 록히드와 마틴마리에타 합병 건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아서 고속 승진 했는데, 이번 벨코어사 투자 때문에 오히려 따가운 눈총만 받았다.

때문에 그 역시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는 꽤 조사했고, 예의 주시했다.

최민혁 실장이 한 투자는 절대로 무시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인정해서 KM 전자에 대해 투자도 했다. 무려 7%에 가까운 KM 전자 지분을 확보해 둔 것이다.

‘최민혁 실장이라…….’

다만 최근 최민혁 실장의 동향은 황당 그 자체였다.

스폰 때문에 연습생을 임시로 고용해서 따로 회사 내에 조직을 만들었다.

이게 그냥 개인의 취향 때문에 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 대상이 고2였다.

그는 순간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믿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최소한 지금 자신이 투자한 최민혁 실장 관련주에 대해서 다시 검토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이 송도연 일 때문에라도 최민혁 실장을 만나야 했다.

약속 장소는 굳이 멀리 가지 않았다.

최근 모건 스탠리의 신사옥이 위치한 뉴욕 타임스 스퀘어로 정했다.

41층 건물 입구 외벽은 띠 모양의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다.

모건 스탠리 본사로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 전광판의 위용에 기가 죽는다.

스탠리 로버트 이사는 최민혁 실장이 모건 스탠리 본사 건물을 보고 위축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수행원 몇 사람을 데리고, 모건 스탠리 본사 건물 앞을 구경하면서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송도연만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광경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이곳이 처음이라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었다.

“실장 오빠, 정말 멋져요!”

“글쎄.”

뉴욕 마천루.

처음 보는 사람은 이에 위압감을 느낀다.

동시에 이곳에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 환상을 가진다.

그런데 막상 그들도 월급쟁이라는 점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인생 2회 차를 사는 최민혁 실장은 지금 뉴욕의 모습이 썩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무려 20년 후의 뉴욕 모습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송도연은 심드렁한 최민혁 실장 모습에 혀를 찼다.

“치, 오빠가 놀라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가?”

그는 어깨를 으쓱한 채 송도연에게 모건 스탠리에 관한 이야기를 주섬주섬 해주었다. 송도연은 아, 하고 매우 놀랐다. 그녀도 말로만 들어봤던 월가에 대해서 이제야 제대로 안 것이다.

물론 최민혁이 그녀를 이 자리에 데려온 이유가 있다.

“인식의 폭을 넓혀야 해.”

송도연은 고2답게 고개를 갸웃했다.

“가수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한국 내수용 가수라면 그럴 필요가 없어. 하지만 세계적인 가수가 되려면 도연이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어.”

“이곳을 본다고 그렇게 될까요?”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단순히 구경하는 것만으로 어렵지. 하지만 직접 세계를 누비는 사람을 만나면 도움이 될 거야. 지금 만나려는 사람이 그런 이들 중의 하나니까.”

“대단한 사람인가 봐요?”

“글쎄,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알겠어요.”

최민혁은 송도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그래도 모건 스탠리 쪽의 인물을 본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아니면 말고.’

애초에 송도연의 관심은 중요하지 않았다.

핵심은 모건 스탠리 쪽 인물의 태도이니까.

* * *

최민혁은 모건 스탠리 본사에 들어가는 중에 안재운 전무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벌써 미국에 도착한 것이었다.

[지금은 안 됩니다.]

[잠깐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안 됩니까?]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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