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42화 (642/1,021)

#642.

임권수 부장은 얼굴에 기름기가 빤질빤질한 인물로, 겉으로 보면 꽤 건방져 보였다. 다만 오성 전자 기획3팀 부장이라는 타이틀만큼은 이와 잘 어울렸다.

강덕수 실장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설마 오성 전자에서 자신을 찾아올지는 몰랐다. 아니, 사실 왜 그가 온 것인지는 알 것 같았다.

‘오 협회장 이 양반이 제대로 사고를 쳤구나.’

최근 협회장 내의 열린 회의에서 동맹군 이야기가 나왔다.

그 과정에서 오성 전자의 이름도 나왔고, HY 전자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군 이름이 거론되었다.

이들이라면 KM 전자와 싸울 때의 동맹군으로 적합했던 것이다.

다만 강덕수 실장은 이 계획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초대형 변종 늑대를 쫓으려고, 야생 호랑이를 불러오는 형국이라고 봤다.

그런데 설마 야생 호랑이가 자기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은 몰랐다.

‘최 실장의 영향력이 이렇게 대단한가?’

다행인 게 있다면 임권수 부장이 길게 이야기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일에 도움을 달라는 것과 앞으로 일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서만 간단히 질문했다.

“오 협회장을 만나서 이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서울 프로덕션에서 이번 일에 대해 따로 준비하는 것이 있다고 말입니다.”

“아, 네. 그, 그렇죠. 마, 맞습니다. 이번 일은 제가 주도합니다!”

“…그게 뭐죠?”

임권수 부장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왜 서울 프로덕션 실장과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강덕수 실장은 오히려 만족했다. 일단 최민혁 실장에 대한 한국 음원 저작권협회의 공동 노선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할 만하지 않을까?’

다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눈치를 보던 도경준 과장 역시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기에 지금까지 검토한 의견을 내밀었다.

“으음, 이건 어떨까요?”

그가 내놓은 것은 다름 아닌 송도연이 페라리 F50에 타는 사진이었다.

이미경이 혹시나 해서 찍어 놓은 사진이었다.

임권수 부장은 눈살부터 찌푸렸다. 그 역시 언론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이걸로 뭐 어쩌자고?”

“…그, 그게 말입니다. 이 사진을 이용해서 언론에서 기사를 내게 하는 거죠. 조건 만남으로 몰아가는 겁니다.”

임권수 부장은 어이가 없어서 소리쳤다.

“아니, 최 실장 나이가 몇 살인지 압니까. 두 사람 나이 차이가 몇 살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고요!”

도경준 과장은 처음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가 뒤늦게야 기사 내에 찍혀 있는 최민혁의 나이를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를 고려하면 정식으로 사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애초에 조건 만남은 말이 되질 않았다.

“두 분, 제정신입니까?!”

“제 계획은 그게 아니라…….”

하지만 임권수 부장은 이미 최민혁 실장 때문에 정신 병원을 찾아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어설픈 계획을 듣자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 길길이 날뛰었다.

미친놈처럼 폭주하는 임권수 부장의 모습은 평소 보이던 모습과는 달랐다.

옆에 동행한 황광수 차장도 이번만큼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이 새끼야, 생각을 좀 하고 살자. 최민혁 실장이 그렇게 만만한 인간이었다면, 우리가 너희를 만날 이유가 없잖아!!”

확실히 오성 전자 기획 팀 부장이어서 그런지 분노가 심해지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두 사람을 그저 고개만 조아렸다.

화가 난 임권수 부장은 두 사람을 상대로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고 나서는 그대로 떠나고 말았다.

* * *

강덕수 실장 역시 임권수 부장이 떠나자 길길이 날뛰었다. 그는 도경준 과장이 이제까지 협상하던 내용을 제대로 검토도 안 하고 내뱉어 버린 것에 분노했다.

“…너, 기획사 문 닫게 할 생각이냐?!”

“솔직히 제 이야기는 다 들어보지도 않고 결론을 내렸지 않습니까. 전 오성 전자가 이번 일을 제대로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야, 이번 일이 잘못되어서 최민혁 실장의 분노가 우리를 향하면, 우리를 매장할 거야. 그것 때문에 한국 저작권협회까지 끌어들였잖아!”

도경준 과장은 실상 강덕수 실장이 아니라 한국 저작권협회를 믿고 있었다.

“설마 최 실장이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하지만 강덕수 실장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최민혁 실장과 대립하더라도 선을 넘을 생각은 없었다. 적당한 선에서 협상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성 전자의 인사가 찾아왔을 때는 쾌재를 불렀다.

다만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무리수를 둔 것이 큰 실수였다.

“야, 너 최 실장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기는 한 거야? 그 인간이 얼마나 지독한지 오성 그룹도 벌벌 떤다는 소리가 있어. 사내에 현금이 넘쳐나서 주체를 하기도 힘들어. 그 돈으로 대형 로펌에 의뢰하면, 우리 같은 기획사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흠.”

도경준 과장은 설마 최민혁 실장이 그렇게 막 나갈까 싶었다.

하지만 강덕수 실장은 이미 자신의 인맥을 통해서 어느 정도 최민혁 실장의 한 짓에 대해서 들었다. 그 내용은 상상 초월이었다.

KM 그룹을 손에 다 넣었다고 알려진 최문경 부회장조차 최민혁에게 밀려서 빌빌거리는 것이 그 증거였다.

게다가 그는 애초에 권재홍 비서실장을 믿지 않았다. 그가 굳이 자신에게 의뢰를 맡긴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리스크를 파악했다.

솔직히 여기서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기들 밥그릇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권 실장 그 새끼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알고 보니, 최 실장 이 새끼는 완전히 복마전이야. 최 실장은 한 대 맞으면 백 대로 보복하는 놈이야. 어설프게 설쳤다가는 우리가 박살이 나!!”

반면 도경준 과장은 이미경을 비롯한 자기 측근들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다. 때문에 그는 최민혁 실장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강덕수 실장의 말을 들어보니, 최민혁 실장을 건드리는 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 방법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원래 제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송도연을 이용해서 뭘 하려는지 확실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송도연은 연습생이란 거죠. 결국 어떤 형태로든지 송도연을 데뷔시킬 겁니다. 이걸 막는 것은 어떨까요?”

강덕수 실장도 그제야 흠칫했다.

“…가만, KM 전자가 유령 기획사를 내세워서 음반 시장에 끼어든다, 이런 식으로?”

“네, 아마 다른 기획사가 이걸 알면 절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아, 생각해 보니, 과거에 이런 문제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강덕수 실장은 연합 전선이 미래 기획사가 날아가면서 흐지부지되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게 소용이 있을까?”

“최 실장에게는 의미가 없겠죠. 하지만 송도연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멘탈이 약하지 않습니까. 언론사를 부추겨서 부정적인 기사를 막 찍어내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그러면 송도연이 하는 일도 영향을 받을 겁니다.”

“난 잘 모르겠어.”

“이번 일은 한국 협회 소속 회원, KM 그룹, 오성 전자가 다 나서서 도와줄 겁니다. 이들의 힘을 다 합친다면 KM 전자에게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도경준 과장이 말한 계획은 이미경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실제로 이미경은 재능은 나쁜 편은 아닌데, 멘탈이 아주 약했다.

간혹 무대에 내보내면, 연습할 때와는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였다.

고만고만한 재능에, 멘탈이 쓰레기인 덕분에 서울 프로덕션도 골치가 아팠다.

그런데 이미경만 그렇지는 않았다.

소위 연습생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약점이다.

“하긴 루머가 마구잡이로 퍼지면, 연습생 멘탈은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지.”

“조건 만남도 좋은 소재입니다. 정확히는 조건 만남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조건 만남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식의 기사면 되지 않겠습니까?”

“…명예훼손에 걸리지 않도록 말이야?”

“네. 법무 팀의 도움을 얻어서 문제가 없도록 하는 거죠. 대신에 최민혁 실장이 아니라 송도연 측을 노리는 겁니다. 지금 미국에 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인을 통해서 한국에서 난 소문을 들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멘탈이 와르르 무너질 겁니다.”

실제로 루머 때문에 이성을 잃는 연예인도 제법 있기는 하다.

그들이 연예가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가수도 악성 루머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전혀 경험이 없는 송도연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좋아, 이거 괜찮네. 한번 판을 짜봐. 난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컨펌을 받을 테니까. 오광수 협회장에게도 사전에 도움을 청해놓겠어.”

“…알겠습니다.”

* * *

권재홍 비서실장은 강덕수 실장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최문경 부회장 역시 이번 일에 꽤 만족했다.

“이거 진짜 멋진 계획이잖아!”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다.

최민혁이 도통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손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최문경 부회장의 추측과는 달리 정작 당사자인 최민혁은 맨해튼에서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와 좀 늦어진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뉴욕 호화 아파트는 보안도 허술하지 않았다.

다만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조금 당황했다. 그는 설마 최민혁이 자신을 이곳으로 초대할지는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협상하고서야 최민혁의 의도를 깨달았다.

“하면 오성 전자가 미래 기술 지분 5%를 500억에 사들였으니, 그 이상의 가격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빡빡하게 제안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500억 정도면 나쁜 선택은 아니죠. 다만 거기에 따른 옵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옵션이라.”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그제야 고민에 빠졌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것이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를 압박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알다시피 미래 기술 지분을 원하는 업체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바로 차세대 배터리 라이센스 때문인데, 미래 기술 지분을 소유한다면, KMB-01를 생산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더욱이 이 특허 라이센스를 가지면, 추가 연구도 할 수 있었다.

차세대 배터리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지분이 있어야 했다.

사실 일본 배터리 업체가 원래 원했던 그림이기도 했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이 문제로 국무부 내부가 시끄러운 것을 잘 알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헤지펀드 쪽에 다리를 좀 놓아주세요.”

“네? 그거야 최 실장님이 직접…….”

“아뇨, 공개된 헤지펀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정부 측과 연결 고리가 있는 헤지펀드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무슨 오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 정부는 헤지펀드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거야 겉으로는 그렇죠. 그런데 미국 백악관 인물 중에는 헤지펀드 쪽과 관련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민혁이 말하는 헤지펀드는 단순한 금융 자본이 아니었다.

미국 정부와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는 이들을 말한 것이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최민혁의 이야기에 크게 당황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미래 기술 지분을 원하는 세력이 그쪽 아닙니까?”

“아니, 그건 최 실장님이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미래 기술 지분을 원하는 기업은…….”

“아, 유령 회사 명칭은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 배후에 있는 원주인을 말하는 겁니다. 그쪽과 직접 만나게 해주면, 미래 기술 지분을 저렴한 가격에 넘기겠습니다. 필요하다면 라이센싱도 원하는 대로 해드리죠.”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가 원한 것은 차세대 배터리 시장 선점이 아니었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에게 빌붙어 있는 애들에게 손을 쓸 필요가 있어. 아니, 최소한 그들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야 해.’

지금 이 일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또한 최민혁은 최문경 부회장과 연결된 헤지펀드 세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단순히 샐로먼 브러더스가 아니다. 그들의 물주를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정체를 알아야 앞으로의 싸움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내막을 잘 모르는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로서는 최민혁의 제안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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