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40화 (640/1,021)

* * *

한국 저작권협회 회원들도 처음에는 권재홍 비서실장의 제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들도 시간이 흐르자 송도연 문제가 음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점은 왜 최민혁 실장이 그녀를 굳이 미국으로 데려갔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에서 음원을 만들어서 국내에 배포할 생각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치가 맞았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 MP3 음원 불법 파일 현황을 자세히 조사했다.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그들이 어어 하는 순간에 이미 200만 대 이상의 MP3 플레이어가 시장에 쏟아졌다. 그 수요에 따른 MP3 음원 파일 역시 PC 통신에 넘쳐났다.

두 번째 회의에서는 저작권회원 중 한 사람이 노트북을 꺼내서 하이텔의 멀티미디어클럽으로 들어갔다.

멀티미디어클럽의 자료실 목차가 곧이어서 주르르 나왔다.

MP3 파일 듣기 프로그램부터 시작해서 MP3 관련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MP3 엔코더, MP3 컴프레셔와 같은 프로그램 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그다음은 역시 WAV파일, MP3 파일이 등재된 자료실이었다.

그러고선 노트북 화면을 돌려서 협회 회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자료실 상황을 보세요. 몇 달 전과는 올라온 MP3 파일 숫자가 다릅니다.]

그나마 아직은 국내 음원 파일과 비교해서 외국 팝송 파일이 더 많았다.

냅스트 여파다.

냅스트를 통해서 외국 음원 파일은 쉽게 구할 수가 있었고, 그 자료가 올라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컴퓨터 유저는 한국 음원도 대수롭지 않게 올렸다.

이건 한국 저작권협회에서도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하이텔이나 유니텔과 이야기해서 MP3 음원 유료 서비스를 협상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침묵이 감돌았다.

기획사 사장들은 다들 쉬쉬하면서도 돌아가는 사정을 이미 알았다.

다만 그들이 상황을 안다고 해도 손을 쓸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더욱이 최근 시장에 마구잡이로 쏟아지기 시작한 MP3 플레이어가 문제다.

자기 아들조차 이 MP3 플레이어를 구해서 음악을 듣기 때문이다.

한국 MP3 플레이어 업체도 그들에게는 적이었다.

설사 소송을 건다고 해도 이제는 쉽게 자기 권리를 찾기도 힘들었다.

오광수 협회장은 그제야 긴장했다.

[하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이대로 그냥 불구경만 할 겁니까?!]

[…한 가지 대안이 있기는 한데, 일단 서울 프로덕션을 밀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쪽에서 이미 대안이 있어서 오 협회장에게 이야기한 것 아닙니까. KM 그룹 쪽에서 은밀한 제안을 받았으니, 차라리 그게 낫죠. 우리가 암묵적으로 돕겠다고 나서면, 그쪽에서도 진지하게 일을 밀어붙이지 않을까요?]

다만 이 부분에는 의견이 조금 달랐다. KM 전자와 척을 지는 것이 다들 부담스러웠다. 괜히 KM 전자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눈치를 본 이들 중에 한 사람이 슬쩍 손을 들었다.

[우리끼리 힘을 합친다고 해서 KM 전자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다른 이의 도움을 얻는 것은 어떨까요?]

[누구 말입니까?]

[KM 그룹 쪽은 이미 우리를 도와주기로 한 것 같은데, 그들만으로 부족합니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성 전자 정도 되면 KM 전자의 상대가 되지 않을까요?]

[…그게 효과가 있을까요?]

[최소한 우리끼리 힘을 합치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오광수 협회장은 곰곰이 오성 전자의 처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오성 전자는 KM 전자와 적이나 마찬가지다. 적의 적은 친구였다. 자신들이 오성 전자를 밀어준다면, 그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도 있었다.

최소한 자기들끼리 달려드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휴우. 그럽시다.]

오광수 협회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들이 전부 최민혁 실장에게 겁먹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하긴 최 실장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지. 어쩔 수 없나. 일단 강 실장을 밀어줄 수밖에 없겠구나.’

* * *

권태성 기획실장도 최민혁 실장이 미국으로 튄 것을 들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그는 설마 최민혁 실장이 이런 방식을 취할지는 몰랐다.

문제는 아쉬운 이가 오성 전자란 점이다.

‘너무 눈치를 봤나.’

그는 솔직히 짐을 챙겨서 최민혁 실장 뒤를 쫓아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대로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결국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 슬쩍 이 상황을 흘렸다.

김진석 이사가 아니나 다를까 쪼르르 오성 전자 기획실을 찾아왔다.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상대가 미국에 가서 손을 쓸 수가 없다니. 사장단 회의에서 권 실장님 이야기가 얼마나 나오는지 압니까? 다들 부정적이란 말입니다!”

뭐, 김진석 이사의 이야기는 실제로 좀 달랐다.

전략 기획실도 최민혁 실장이라는 고양이 앞에 가기 싫었다.

때문에 그들이 대신 내세운 이가 바로 권태성 실장이다.

이제까지 권태성 실장은 최민혁 실장이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잘도 달았다.

권태성 실장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김 이사님도 잘 알겠지만, 최민혁 실장의 성정이 보통이 아닙니다. 멋모르고 덤벼들었다가는 수백억의 손실을 봅니다!”

특히 콜린스 사업부는 인수 금액 자체가 수천억 단위였다.

최민혁 실장과 말 한마디 잘못하면 수천 억이 휙휙 차이가 난다.

권태성 실장이라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김진석 이사의 입장은 좀 달랐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 계속 손가락만 빨고 있자는 말입니까?!”

얌전한 고양이 같았던 김진석 이사는 펄쩍 뛰었다.

사실 콜린스 사업부 인수와 관련된 사안의 시일이 너무 많이 지났기 때문이다.

콜린스 사업부 인수 이야기는 계속 나오는데, 실제로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최소한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나.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

권태성 실장도 심한 정신적 압박을 느끼자 정말 이대로 계속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얼마 전에 봤던 안건민 회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놀라운 것은 오히려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한 치하를 받았다는 점이다.

다만 안건민 회장도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주변에 알리기를 원치 않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게 당연하지 않겠나.

‘최민혁 실장의 행보는 이제 대한민국 대기업 회장들도 무시하기 힘드니까. 어쩌면 그래서 나도 그 덕을 본 것이겠지.’

자신의 행보는 신중했다. 그럼에도 최민혁 실장과의 협상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 그런데 그런 점이 되레 최민혁 실장에게 호감을 줬다.

한국 10대 대기업 중에는 자신만큼 최민혁 실장과 좋은 관계인 인물이 없었다.

권태성 실장은 자신이 마치 최민혁 실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위치 같아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최 실장의 행보를 봐서는 절 피하는 눈치입니다. 제가 미국으로 최민혁 실장을 쫓아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늘에서 사과가 떨어질 때까지 이대로 한국에 죽치고 앉아 있을 겁니까?!”

유달리 공격적인 김진석 이사였다.

도대체 전략 기획실에서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김진석 이사의 태도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필사적이었다.

권태성 실장은 김진석 이사의 태도를 통해서 전략 기획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점을 어느 정도 추론했다. 진짜 웃기는 일이지만 자신은 인정받고 있었다.

그 대단하다는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서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김진석 이사의 행동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권태성 기획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이대로 계속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장 최민혁 실장과 소통하는 인물 중에 마침 적당한 사람이 있었다.

“참, 이건 어떨까요? 안재운 대리, 아니, 전무님은 최민혁 실장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요? 어차피 이번 일은 경영 승계 문제로 본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안재운 대리는 오성 전자에서는 경영 기획실 과장이지만 e오성에서는 전무로 있다. 그래서 권태성 실장이 직급을 올려서 말한 것이다.

“안재운 전무님 말입니까?”

“네. 이번 일같이 애매한 경우도 차라리 그게 낫지 않겠습니까?”

김진석 이사도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e오성이 출범할 수 있었던 동기를 제공한 이가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안재운 전무는 그 때문에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는 꽤 호감을 보였다. 그 자신의 위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내놓았다.

‘하긴 안재운 전무님이 최민혁 실장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하니.’

“…제가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음원 저작권협회 쪽에서도 우리 쪽과 공동 노선에 대한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슬쩍 내민 것은 음원 저작권협회 쪽에서 요청해온 협상에 대한 기획안이었다.

이 제안을 받았을 때는 처음에 무시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에 대한 협상 카드 중의 일부로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 하는 제안은 오성 전자 차원이 아니라 오성 그룹 차원에서 검토해 달라는 이야기다. 음원 서비스 쪽은 오성 계열사 이쪽저쪽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KM 그룹 최문경 부회장은 덤이다.

하지만 굳이 그 부분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김진석 이사는 힐끗 협상안을 살펴보고는 기획안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안재운 전무는 e오성 전무로서 별달리 하는 일이 없었다.

영상 사업단이 발족하기는 했지만, 운영 자체는 단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금을 수천억이나 퍼부은 것에 비해 소소한 행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위성 방송 쪽은 이미 시스템이 다 만들어진 상황이다.

최민혁 실장이 고안한 오큘러스 프로젝트 완성도는 세계 최고였다.

얼마나 뼈대가 잘 만들어져서인지 큰 수정도 필요가 없었다.

이 작업을 전담한 전문가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 바탕 위에서 콘텐츠 담당 PD가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한다.

심지어 주문형 비디오 위성 방송 관련 아이템은 담당자가 다 처리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부가가치가 높은 아이템을 선별하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이것 자체가 다 그의 실적이었다.

간혹 비디오 사업과 관련해 삽질을 해서 손실을 입힌다고 해도 그건 큰 논란거리도 아니었다.

삭제해 버리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은 다 손실 처리해서 자신과는 무관하다.

잘되는 아이템만 자신의 실적으로 슬쩍 바꾸면 된다.

심지어 그 일도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 준다.

오성 전자 사업부의 리스크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달리 하는 일이 있다면 최근 지역 유선 방송국을 인수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인수 작업 역시 e오성 내의 전문가들이 알아서 한다.

이들 역시 대다수는 오성 그룹에서 파견 나온 이들이 태반이었다.

안재운 전무 자신은 그저 가서 오성 그룹 황태자로서 얼굴만 한 번 보여주면 된다.

다만 조금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있다면 30대 재벌이 우후죽순으로 이 사업에 끼어드는 부분이다.

이들과의 경쟁에는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렇다고 이게 또 그렇게 리스크가 큰 것은 아니었다.

결국 e오성 위성 사업부 수익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늘어났다.

초반에 퍼부은 수천억의 투자금은 2~3년 안에는 충분히 메꾸고도 남는다. 그 이후 수익은 다 흑자일 뿐이었다.

안재운 전무는 자신이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고안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새로운 캐시 카우를 창출했다.

이 수익률은 오성 그룹 그 어떤 계열사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안재운 전무는 그냥 회사 가서 놀다가 퇴근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안건민 회장에게 인정을 받았다.

‘하, 나에게 이런 날도 있구나.’

안건민 회장에게 무능한 재벌 3세로 찍혀서 일본으로 쫓겨날 뻔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처지에 있었다.

그러니 이런 기회를 준 최민혁 실장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렇다 보니 최민혁 실장이 그에게 모든 것을 다 주는 충신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안재운 전무는 때문에 김진석 이사와 권태성 기획실장이 자신을 찾아와서 한 제안을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최 실장이라면 잘 압니다. 그 친구는 우리 오성 그룹에 있어 동맹이나 마찬가지죠. 생각 같아서는 제 처남으로 만들고 싶어요.”

두 사람은 입맛을 다시는 안재운 전무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권태성 기획실장은 최민혁 실장의 처세에 경탄을 넘어서 탄복하고 말았다. 그가 아는 바로 최민혁 실장은 오큘러스 프로젝트로 수천억을 챙겼기 때문이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오큘러스 프로젝트 시작한 것도 몇 달 되지 않았어. 거기다 한 거라고 해 봐야 시스템 수정 일부가 다였잖아.’

사실 오큘러스 프로젝트의 뼈대를 만들고, 노가다로 생고생한 이는 바로 ETRI의 연구원들이었다. 그들이 보상을 다 받아야 했는데, 그 이익의 태반을 가로챈 사람이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런데 ETRI 쪽은 오히려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숭배했다.

“…….”

권태성 실장은 한동안 오큘러스 프로젝트와 관련된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입을 쿡 다물었다.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냉정하게 최민혁 실장을 바라보았다.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평한 성과 배분이 되었냐 하는 부분에서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최 실장이 위성 관련 원천기술을 다 고안하긴 했지만 말이야.’

김진석 이사가 넋을 놓고 있는 권태성 실장의 옆구리를 쿡쿡 건드렸다.

권태성 실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합니다. 그러면 부탁을 해도 될까요?”

“미래 기술과 콜린스 사업부 인수를 말하는 거죠?”

“일단은 미래 기술의 차세대 배터리 지분이 중요합니다. 비록 5% 지분은 인수했지만, 너무 부족합니다. 안 회장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워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인가요?”

안재운 전무도 처음 듣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그도 권태성 실장이 안건민 회장을 독대했다는 이야기는 듣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인 줄은 몰랐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역시 놀라 있는 김진석 이사의 얼굴을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다들 이제 고작 매출이 50억 남짓한 미래 기술 지분 5%를 500억에 사들였다고 부정적이었습니다만, 안 회장님은 좀 달랐습니다. 왜 미래 기술의 지분을 좀 더 얻지 못 했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역시 핸드폰 배터리 때문인가요?”

“네, 미래 기술의 지분을 얻음으로 우리 계열사에서 일부라도 KMB-01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양은 아닙니다.”

지분 인수에는 생산 라이센스 협상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 수량이 한정적이다.

일정 수량을 넘어가면 로열티를 내기는 내야 했다.

만약 미래 기술 지분이 더 많았다면 로열티는 더 작아진다.

이건 최민혁 실장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당장 오성 그룹 내의 KMB-01 수요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안재운 전무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미래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는 들었다. 이 부분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더욱이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가지고 재미를 단단히 봐서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어떻게 보면 미래 기술 지분은 콜린스 사업부 인수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어.’

당장 오성 그룹 계열사 내에서 배터리를 사용하는 모든 계열사는 영향을 받는다.

그런 것을 고려하면 5% 지분 인수는 결코 무리한 수가 아니었다.

다만 권태성 기획실장은 안재운 전무가 IT 사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넌지시 콘텐츠 사업과 관련된 음반 저작권협회에서 한 제안을 이야기했다.

“이들 쪽은 제가 손을 쓰겠습니다. 그러니 안 전무님은 최 실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풀어갔으면 합니다.”

“…알겠어요.”

안재운 전무는 권태성 기획실장이 한 제안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번 일 역시 지난 위성 사업부 인수의 연장선으로 생각했다.

‘최 실장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차라리 이번에 지연이를 데려갈까? 아니다. 괜한 문제를 만들어봐야 골치가 아파. 그 친구가 소문과는 달리 여자에게 의외로 강해.’

* * *

권태성 실장은 안재운 전무의 허락을 얻자 넌지시 KM 전자 기획실에 이 정보를 흘렸다.

KM 전자 박상기 차장은 미국에 가 있는 조성돈 팀장에게 보고했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에게서 연락을 기다리던 최민혁 실장은 오랜만에 미국 뉴욕에서 휴가를 즐겼다. 그동안 한국에 있을 때는 최문경 부회장과의 갈등 때문에 제대로 쉴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야 제대로 쉰 셈이다.

다만 안재운 전무가 자신을 곧 찾아올 것이라는 말에 혀를 내둘렀다.

“뜻밖이군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고민 중이에요.”

그는 단순히 생각만 하지 않았다. 조성돈 팀장이 내놓은 오성 그룹 현황을 살폈다. 최소한 오성 그룹 분위기를 알아야 협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제 서서히 콜린스를 정리할 타이밍이지.’

에플에서 이번 차기작을 내놓는 시점에서 굳이 콜린스에 집착할 이유는 없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 1~2년은 시간이 남기는 하지만 그냥 처분해 버리고 다른 쪽으로 사업을 넓히면 되니까.

‘IT 사업이 괜찮지.’

시기적으로 본다면 딱 IMF를 앞둔 시점이다.

지금이 콜린스 사업부를 정리하기에는 가장 이상적이었다.

게다가 더 좋은 점도 있다.

오성 전자는 세계화 경영 전략의 목적으로 미국, 유럽 쪽에 현지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즉, 현금도 많다는 말이야.’

최민혁은 호구 오성 그룹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를 지금 고민 중이었다. 그가 굳이 안재운 전무를 따로 불러 만날 이유는 없었다.

“텍사스에 D램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군요.”

“2,000년까지 4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으로 압니다. 미국을 시작으로 동남, 유럽에도 D램 공장 신설이 예정 중입니다.”

“글로벌 생산 거점을 6곳으로 늘릴 생각인가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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