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38화 (638/1,021)

#638.

최민혁 실장이 그 시기를 대폭 당긴 것이었다.

[무슨 소리야?]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내놓은 것은 세한정보에서 최근 출시한 15만 원짜리 MP3 플레이어다.

웃기는 것은 PC 통신을 통해서 구한 불법 음원 파일을 가지고 플레이시켰다.

그것도 자신의 기획사 가수가 부른 노래를 말이다.

최근 한창 인기를 구가하는 음원이 플레이되자 다들 서로 눈치를 봤다.

곧이어 팀장급 인사들은 저마다 MP3 플레이어를 테이블 위에 올려서 자신이 듣는 음원을 플레이시켜 버렸다.

15~20만 원대 보급형 MP3 플레이어가 시장에 나온 결과였다.

30만 원대 이상의 고가 플레이어는 부담스러워서 지갑을 열지 않던 이들이 마음을 바꾼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들이 듣는 곡의 대다수가 불법 음원 파일이라는 점이다.

그건 서울 프로덕션 직원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

강덕수 실장은 황당했다. 그는 인상을 와락 구긴 채 도경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도경준 과장은 무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슬쩍 자신의 품에서 KMP-01 플레이어를 내놓았다.

그는 자기 의견을 말하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자 그제야 사과했다.

“흠, 죄송합니다. 애들이 하도 사달라고 해서 사줬는데, 저도 하나 챙겼습니다. 이게 정말 가볍고 편합니다. 일본 애들 카세트 플레이어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뭐, 국산 제품 하나 사들이는 게 애국 아닐까요? 하하하. 아, 죄송합니다.”

“…어쩌자는 거야?”

도경준 과장은 살짝 고민했다. 그도 마음속에 꿍쳐둔 의견이 있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회의에 참석한 다른 실무진들을 보자 결국 마음을 굳히고 말았다.

“이런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만 미국 메이저 음반사는 이미 에플과 협상 중입니다. 음원을 MP3 플레이어에 공급하는 거죠.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현상은 우리 쪽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그가 곧 KMP-01을 플레이해서 직접 보여주었다.

최근 업데이트된 OS 덕분에 음원을 바로 결제할 수 있는 모습을 말이다.

다만 KMP-01 프로그램에는 음원들이 그다지 많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

아직은 음원 저작권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였다.

아니, 정확히는 국내 음반사에서 보이콧한 결과였다. 원래는 몇몇 한국 메이저 음반사가 음원 공급을 검토했는데 저작권협회의 압박에 못 이겨서 손을 뗐다.

지금 당장은 한풀 꺾이긴 했어도 이건 국내의 다른 MP3 플레이어 업체들이 기기만 판매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강덕수 실장이 안색을 굳혔다.

“…이게 뭐야?”

도경준 과장은 한숨을 내쉰 채 천천히 KMP-01에 있는 음원 판매 툴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해주었다.

이것까지는 잘 모르는 이들은 다들 우르르 몰려와서 KMP-01을 구경했다.

뒤늦게야 다들 입을 딱 벌렸다.

이 판매 시스템이라면 굳이 앨범을 사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헉, 버, 벌써 이런 게 나왔습니까?”

도경준 과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나왔습니다. 우리 쪽에 대한 협상 카드일 겁니다. 다만 제대로 홍보가 안 된 거죠. 아니, 어쩌면 최민혁 실장도 시기적으로 무리라는 것을 알자 입을 다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다 보니, 지나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힐끗 회의실 참석자를 쳐다본 후에 입을 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제는 최민혁 실장이 이미 암묵적으로 내놓은 이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맙소사!”

“얼핏 봐서는 최민혁 실장이 당시 소극적으로 일한 것도 우리 쪽 반응을 안 것 때문이겠죠.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그가 눈짓으로 가리킨 것은 회의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다양한 MP3 플레이어다. 아니, 정확히는 인식의 변화다.

이제는 MP3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게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그제야 다들 안색을 굳히고 말았다. 자신들도 불법 음원 파일을 받기는 했지만 이런 온라인 판매 음원 시스템이 이미 만들어졌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다들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 미처 몰랐기에 일어난 일이다.

다만 이 방식에 대해서는 선뜻 어떤 이야기를 하기 힘들었다.

만약 이 음원 시장이 열리면 당장 앨범 판매량에 직격타를 주기 때문이다.

강덕수 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일을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업계에서 왕따를 당하니까.

‘더욱이 이건 우리 힘으로 해결하기도 힘들어.’

“오늘 회의는 이 정도로 하지. 다만 이 문제를 한번 고민해 봐.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회의 참석자들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도 쉬쉬했지만, 이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자신들의 밥그릇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역시 문제는 존재했다.

설사 협상을 한다고 해도 주도권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쟁점이 되기 때문이다.

음원 수익 배분부터 시작해서 산적한 문제는 엄청나게 많았다.

강덕수 실장은 그제야 스티븐이 왜 메이저 음반사를 만나서 협상을 나누는지 이해했다. 심지어 권재홍 비서실장이 왜 굳이 자신을 만나서 특별한 제안을 한 것인지도 말이다.

‘하, 이거 큰일이잖아.’

* * *

권재홍 비서실장은 나름 고민을 했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게 풀려가지 않았다.

서울 프로덕션의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MP3 음원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상황이 이전과는 달랐다.

세계적인 메이저 음반 업체들도 에플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냅스트 소송은 소송대로 계속 진행되고는 있지만, 상황이 이전과는 많이 바뀐 셈이다.

강덕수 실장은 결국 서울 프로덕션이 단독으로 최민혁 실장에게 대드는 것은 겁이 나서 저작권협회장 오광수를 찾아가서 이 문제를 상의했다.

그런데 오광수 협회장은 딱히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이었다.

다만 KM 전자와 직접 계약해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기존 음반사에서 서울 프로덕션의 행보를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강덕수 실장 역시 KM 전자의 온라인 판매 방식은 슬쩍 떠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일단 좀 더 지켜봅시다.”

“아니, 지금 당장 결정을 해야 하는데, 불구경하듯이 지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어요. 이 부분에 관한 이야기가 이전 회의에서도 나왔지만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최소한 가이드라인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오광수 협회장은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있습니까?”

“협회장님! 이 문제는 우리 기획사들에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 당장 손을 쓰면 가래로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일이 지나면 손을 대기 어렵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아직 KMP-01에 올라간 음원 파일이 딱히 없어요. 이건 다들 그만큼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강덕수 실장은 미치고 환장할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다른 기획사와 같이 오겠습니다. 그때는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허, 참.”

오광수 협회장은 난색을 표했다. 그는 괜히 이런 일로 긁어서 부스럼을 내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도 과거, 이 일로 최민혁 실장과 협상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최민혁 실장은 KM 전자 스스로 음원 시장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최민혁 실장이 그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니었으니, 그렇게 말했다면 그런 것일 터였다.

그는 고민한 끝에 KM 전자 측에 넌지시 이와 관련된 문의를 해보았다.

‘최 실장은 내가 듣기로 합리적인 사람이야. 일방적으로 이 일을 밀어붙이지는 않을 거야.’

* * *

“서울 프로덕션이라…….”

최민혁 실장은 한국에 있는 박상기 차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듣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오광수 협회장 말로는 서울 프로덕션에서 제안했다고 한다.

사실 지금쯤이면 말이 나올 만한 문제긴 했다.

‘MP3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숙할 시기이니까. 생각보다는 기간이 많이 당겨졌어.’

1차 MP3 시장은 자신이 만들었다.

하지만 2차 MP3 시장은 자신이 아니라 한국 MP3 플레이어 업체가 만들었다.

이제 이 MP3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숙하면, MP3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단순히 10만 대, 20만 대 시장이 아니라 백만 대, 천만 대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다만 그 대상이 서울 프로덕션일지는 몰랐다.

이런 MP3 시장의 흐름까지는 모르는 조성돈 팀장은 한국에 있는 박상기 차장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미 MP3 음원 문제로 국내 음반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미 몇 차례 싸움도 했고, 이미 소소한 소송도 걸려 있었다.

다만 워낙에 상식을 벗어난 소송이라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뿐이다.

하지만 이번 KMP-01은 기존의 음반 시장을 대체할 만한 툴이 내장되어 있어서 더 문제다.

이건 다른 MP3 플레이어 업체와는 차별화된 서비스였다.

“이번 일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은 순순히 수긍했다.

“맞아요. 이제는 중요한 일이죠. 이 일 때문에 이제까지 몸을 사렸으니까.”

“네?”

“아니, 그러면 제가 왜 KMP-01 플레이어의 마케팅이나 홍보에 소극적이었는지 몰랐습니까? 당시는 이게 너무 잘되어도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콕 집어서 말하자면 음원 저작권과 관련된 소송 때문이다.

불법 MP3 파일의 확산은, MP3 플레이어 판매에 도움이 된다.

자칫 저작권협회나 음반사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소송에 들어가면, 솔직히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최민혁 혼자 총대를 멜 이유는 없었다.

‘미국 냅스트 소송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지 않지만 한국의 사정은 좀 다르니까.’

최민혁은 굳이 그런 문제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MP3 플레이어 시장이 처음 만들어지는 시점에서는 시장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이 시점에서 소송당하면 수익을 얻기는커녕 손해만 보고,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나빠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KMP-01 판매가 백만 대가 넘었다고 하지만 이런저런 걸림돌은 존재했다.

“…이런 문제가 터질 줄 이미 예상하셨습니까?”

“조 팀장님이라면 처지를 바꿔서 자기 밥상을 엎으려고 하는 인간을 그냥 두겠습니까?”

“그거하고는…….”

“아뇨, 똑같습니다. 이 MP3 플레이어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입니다. 그런 면에서 좀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습니다.”

“하긴…….”

그렇게 말하는 최민혁의 눈빛도 이전과는 달랐다. 그는 기획 팀에서 최근 조사해서 정리한 기획서의 한 부분을 쿡 찍어서 보여주었다.

MP3 관련 특허 풀을 사들인 회사들이 최근 내놓은 MP3 플레이어 목차와 사진이었다.

“여기 제품 숫자를 보세요. 시장에 나온 물량만 벌써 30가지가 넘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전과는 많이 다르죠. 우리 KM 전자 혼자 나선 것이 아니니까.”

“…저작권협회에서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꼭 저작권협회만을 지적한 것은 아니에요. 솔직히 한국 음반사 직원조차 불법 음원 파일을 내려받아서 쓰지 않을까요? 그런데 콕 찍어서 우리 KM 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군요.”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최민혁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왜 MP3 원천특허를 챙긴 후에도 MP3 플레이어 생산에 대해서 그렇게 미적거렸는지 이제야 안 것이다.

MP3 음원 파일에 대한 인식이 바뀔 시간이 필요했다.

괜히 KM 전자 홀로 나서서 설쳤다가는 나가리 될 확률이 높았으니까.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다만 그가 이상하게 생각한 부분은 바로 냅스트였다. 최민혁은 마치 냅스트 소송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건 좀 이상했지. 설마 이 일의 배후에 최 실장님이 있다는 말일까?’

조성돈 팀장도 그건 정말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최민혁 실장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민혁은 계속 피식 웃었다.

“우리 권재홍 비서실장이 직접 움직였다는 소리가 있는데, 이미 좀 늦었죠. 그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지금 제가 여기 와 있는 것이 그 증거죠.”

“하면 에플을 내세운 것도.…….”

“빙고, 맞습니다. 에플이 메이저 음반사와 정식으로 협상해서 KMP-02B를 시장에 내놓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는 한국 음반사도 생각을 좀 달리해야 할 겁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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