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37화 (637/1,021)

#637.

“역시 에플의 주가 때문일까요?”

“그렇죠. 비록 월가 쪽에서 주식 가지고 장난을 쳤다고 해도 문제의 본질은 저에게 있으니까.”

조성돈 팀장도 뒤늦게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에게 들은 단기 차익 수익을 떠올렸다. 바로 4억 달러가 넘는 시세 차익 말이다. 다만 국내 주식 시장에서는 잘 모르는 정보였기에 별 소란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일은 결국 월가 쪽에서 무리수를 둔 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래서 SEC에서도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거죠. 아니었다면 SEC에서 태도가 달랐을 겁니다. FBI까지 동원했을지 모르죠.”

최민혁도 나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수익률이 커지면서 이제는 이 일을 가볍게 생각할 수만은 없었다.

이해관계 당사자가 탐욕에 미쳐서 날뛰는 바람에 최민혁 실장 자신이 더 주목을 받았다.

물론 이건 그가 지시했던 것과는 방향이 좀 다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익 자체는 큰 그림에서 본다면 내가 그린 그림에서 벗어나지 않아.’

조성돈 팀장도 이제는 분위기를 읽었다.

“하면 미국 정부도 부정적으로 사태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사실 깽판을 치려고 마음먹으면, IMF를 막을 수도 있었다.

‘굳이 그럴 이유는 없지.’

인간의 탐욕.

지금 한국의 경제 사정은 그 탐욕이 과도하게 가열되어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굳이 자신이 나서서 그 광기를 제어할 이유는 없었다.

“그게 애매할 겁니다. 제가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 판단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태도가 오락가락한 것이군요.”

“그렇죠. 그래서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당장 퀄컴의 표준만 봐도 도움을 준 것 같은데, 아닌 점도 있어요.”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역시 에플 주식을 둘러싼 달러 규모다.

절대 가벼이 무시할 수 없는 규모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이 에플 주식을 마구잡이로 팔지 않아도 시세 차익만으로도 돈을 벌 수가 있었다.

실제로 벨린 투자는 그런 방식으로 4억 달러 이상 이익을 봤다.

“혹시 그 말씀은 이번 CES 전시회와도 관련이 있습니까?”

최민혁은 그제야 히죽 웃었다.

“상황이 달라지면, 반응을 달리해야죠. 제 입지도 이제는 이전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달라진 위상에 대한 대우를 해줘야겠죠. 그러니 조시 아태 차관보도 고민이 많을 겁니다. 윗선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데, 그게 아직 명확하지 않을 테니까.”

“그 일이 쉽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가능하면 미국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해 두세요. 아직은 그자들과 척을 질 상황은 아니니까. 아니, 굳이 그들과 갈등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적은 샐로먼 브러더스 하나인데, 애들은 어차피 미국 정부가 노리는 과녁이니까.”

“…유념하겠습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이미 작년부터 이번 일을 기획했다. 그 큰 그림에서 위기를 넘어서 절정 단계에 온 셈이다.

이제는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조시 아태 차관보가 그렇다면 일단 기다려 봅시다. 뭐, 급한 일은 아니니까.”

“하면 권태성 실장의 미팅 요청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그쪽에는 바쁘다고 그러세요. 이번 CES 전시회 이후에 차세대 배터리 가치 역시 다른 평가를 받을 테니까요. 어차피 5% 지분을 500억에 처분하는 것보다는 가치가 더 올라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새삼 최민혁 실장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와 권태성 기획실장을 쥐어짜는 모습이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녔으니. 하지만 과연 어떤 결과를 기대하기에 최 실장님이 이런 식으로 상황을 풀어가는 걸까? 일단 CES 전시회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어.’

솔직히 그 역시 최민혁 실장 옆에서 있으면서 많이 배우기는 했지만, 아직 어떻게 결론이 날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 * *

이번 CES 전시회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홍보가 장난 아니었다.

스티븐이 기조연설을 하는 것부터가 그 하나였다.

그다음은 역시 CES 전시회에 나오는 색다른 제품들이었다.

[VCR, LDP는 시장에서 사라진다!]

[DVD의 시대가 성큼 열렸다!]

미국 CES 전시회에 앞서 나오기 시작한 이 기사는 가볍지 않은 변화를 의미했다.

DVD 표준이 드디어 양면 녹화 방식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도시바와 소니의 갈등으로 이어지던 DVD 표준이 대중화를 위한 기반을 만든 셈이다.

CES 전시회에서는 특히 이 DVD 표준을 주목했다.

이번 전시회 소개 자료에서도 이 부분을 잘 언급돼 있었다.

DVD 표준은 무려 4.7GB 용량이 가능하다.

당연히 음악 CD처럼 음악 DVD가 나오게 마련이었다.

비디오, 오디오 콘텐츠의 기반을 제공한 셈이었다.

냅스트를 둘러싸고 일어난 소송 역시 MP3 음원에 큰 변화를 줬는데, DVD 표준은 이런 변화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었다.

이런 시대 변화가 성큼 다가온 것에 대해 그저 지나가는 한 현상이라고 가볍게 보는 이는 없었다.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이 공언한 것처럼 이제 디지털 시대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DVD 매체입니다. 이런 변화는 LCD를 거쳐서 새로운 디지털 세상을 열 것입니다.]

이와 함께 언급된 것은 역시 KM 전자의 MP3 특허 풀에 관한 것이다. 물론 특허 수수료로 번 돈은 말할 것도 없다.

시민의 인터뷰 내용도 흥미로웠다.

[돈은 이렇게 벌어야 한다는 것을 KM 전자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솔직히 저도 최민혁 실장이란 사람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저 감탄만 나올 뿐입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회사 법인 통장에 MP3 특허 수수료만 매달 수백억씩 꽂히는 것 아닙니까?]

[말이 좋아 억이지, 한번 돈 벌어보세요. 이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이란 분에게 정말 놀랐습니다.]

변화는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을 아는 이들은 이미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시민도 이번 일을 통해서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알게 된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든 중장년층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뭔가 물건을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쉽게 돈을 벌 방법이 있는지를 이제야 알았다.

원천기술에 관한 관심은 수직으로 치솟았다.

뉴스를 돌리기만 하면 ‘최민혁 실장’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그의 사진도 말이다.

이제 최민혁 실장의 인기가 국한된 한 부분만이 아니라 일반 한국 시민 전체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냥 앉아서 수백억씩, 아니, 수천억씩 버는 셈이니까.

“…….”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조사하던 강덕수 실장은 TV 뉴스를 통해서 접한 소식을 확인하고는 안색을 굳히고 말았다.

그는 굳이 최민혁 실장을 세세하게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언론사에서 알아서 과거 최민혁 실장의 실적을 다 공개했으니까.

그는 기획사를 통해서 조사한 송도연에 대한 세세한 프로필을 확인하면서 이마를 짚었다.

뒤늦게야 송도연의 이전 소속사의 조성우 실장이 감방에 갔다는 것도 확인했다.

‘아, 맞다. 이 일이 있었지. 이걸 왜 깜빡한 것일까?’

뒤늦게야 미래 기획사의 일을 떠올렸다.

사실 당시만 해도 너무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서 미처 간과하고 말았다.

어어 하고 봤을 때는 검찰이 전광석화처럼 일을 밀어붙인 뒤였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증거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미래 기획사를 도와주려는 이들조차 화들짝 놀라서 손을 뗐다.

자칫하면 자신도 검찰 수사의 칼날에 당할 수가 있었다.

그때는 이미 언론사가 미래 기획사를 마녀 사냥 중이었다.

다들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 일이 왜 갑자기 일어났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저 음모론만 떠돌았다.

설마 그게 송도연 한 사람을 노리고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런데 송도연의 이력을 확인하고서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아니겠지. 최 실장이 송도연을 얻으려고 그 난리를 벌였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결과는 그렇지가 못했다.

최민혁 실장은 미래 기획사를 산산조각 낸 후에 송도연을 챙겼기 때문이다.

심장병 환자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소름을 느꼈다.

최민혁 실장이 자신의 눈밖에 벗어난 애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락시킨 증거를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러면 송도연은 왜 미국으로 데려간 거지?’

이게 의아한 일이었다.

도경준 과장은 송도연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정말 최민혁 실장이 송도연을 미국에는 왜 데려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국내 데뷔가 정해져 있다면 미국에 갈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미경이 말대로 조건 만남일까요?”

강덕수 실장은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확신하자 크게 당황했다.

“최민혁 실장이 뭐가 아쉬워서 조건 만남을 해?!”

“하긴.”

도경준 과장은 최근 최민혁 실장이 나온 인터뷰 기사를 살피면서 혀를 찼다. 다른 재벌 3세와는 달리 이미 독자적인 길을 걷는 이가 바로 최민혁 실장이다.

그가 굳이 돈 주고 여자랑 만날 이유는 없었다.

손만 벌리면 달려들 여자는 수천 명이 넘으니 말이다.

“오성 그룹 막내딸 안지연도 걷어찼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조건 만남은 말이 안 되겠죠.”

“그건 어디서 들은 소리야?”

“뭐, 이쪽저쪽 카더라 소리입니다만 근거가 있습니다.”

“안지연이라면 외모도 괜찮지 않아?”

“미인이죠. 자산도 수천억이 넘으니까. 어지간한 재벌 3세는 명함도 못 내밀어요.”

강덕수 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대단한 인간이네. 이런 여자를 걷어찰 수가 있다니.”

“최민혁 실장은 단순히 재벌 3세 수준으로 보기는 힘들죠. 최민혁 실장이 소유한 지분 가치가 한국 최고 재벌가를 뛰어넘었다는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최근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순위에 꼽힌 이가 바로 최민혁 실장이기도 했다.

강덕수 실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찜찜해.”

도경준 과장 역시 이번 일에는 부정적이었다.

“네? 하긴 좀 걸리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의 기록을 조사해 보면, 최문경 부회장 쪽보다는 차라리 최민혁 실장 쪽에 붙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MP3 산업에 관한 미래 기사를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게 맞지. 그런데 최민혁 실장과 우리는 물과 기름 사이야. 우리가 손을 내민다고 해도 최민혁 실장이 손을 잡아줄 것 같지 않다는 게 걸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이미지가 너무 안 좋습니다. 더욱이 지금 KM 그룹 쪽 지인을 통해서 확인해 본 바로는 그가 최민혁 실장에게 계속 밀린다고 하니까요.”

“뭐, 우리라고 해서 좋지는 않잖아. 그놈의 표절 시비 때문에 말이야.”

도경준 과장도 최민혁 실장이 부담스러운지 계속 ‘최민혁 실장’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걱정하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최민혁 실장이 훨씬 나은 선택이 아닐까요?”

“야, 도 과장, 그런 식으로 말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놔 봐!”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휴우, 그러면 각 팀장을 다 불러봐. 일단 한번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자.”

* * *

서울 프로젝션 팀장급 인물들은 대다수가 최민혁 실장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모인 회의에서 최민혁 실장 관련 안건이 나오자 입을 쿡 다물었다.

처음에는 다들 쉬쉬했지만, 최문경 부회장 이야기가 나오자 경영권 갈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여기에 MP3 음원이 결합하였다는 것도 말이다.

만약 MP3 특허풀 이야기나 에플의 차세대 제품 이야기가 나오기 전이었다면 상황이 좀 달라졌을 것이다. 그들 자신의 밥그릇이 관련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강 실장님, 이런 말 해서 좀 그런데, 이제는 MP3 음원에 대해서 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와서 우리가 MP3 음원을 반대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MP3 음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수긍했다.

냅스트 소송이 계속 길어지면서 인식의 전환이 자연히 일어났다.

사실 최민혁 인생 1회 차 기준으로 보면 7~8년 후에나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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