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36화 (636/1,021)

#636.

권재홍 비서실장이 나름 머리를 굴리기는 했다.

그에게 보고를 받은 최문경 부회장조차 권재홍 비서실장의 기획을 치하했다.

“이거지, 이거야, 권 실장, 이제야 좀 제대로 일하네!”

“…죄송합니다.”

“물론 민혁이 그놈이 검찰 동원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조심해야지. 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으면 곤란하잖아.”

“…….”

권재홍 비서실장은 순순히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그는 자기 책임을 부인하는 그런 이는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나름 애를 태웠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그의 가장 측근이었다. 자신이 밑바닥에서부터 업무를 배워 갈 때도 늘 자신의 옆에 있었으니까.

실제로 그의 업무 능력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최민혁 실장을 상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잘나갔으니까.

다만 상대가 최민혁 실장이 되자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도 그에 대해선 나름 불만이 있었지만, 굳이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았던 것이다.

‘민혁이 이 새끼 능력은 인정해 줘야 해.’

솔직히 지금 와서 보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최민혁 실장에게 늘 호구처럼 당하는 오성 전자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권태성 기획실장이 눈치만 보다가 부랴부랴 최민혁 실장에게 미팅을 잡았을 때는 이미 최민혁 실장이 미국으로 튀고 난 다음이다.

‘눈치는 또 어찌나 빠른지.’

오성 전자라면 불법적인 수단을 쓰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혹시라도 최민혁 실장에게 뒤통수를 맞을까 염려한 것이었다.

‘하긴 국세청 고위직 인사까지 갈아 치울 정도였으니.’

최문경 부회장은 차라리 권재홍 비서실장이 지금처럼 문제가 없도록 행동한 것에 오히려 만족했다. 비록 실질적으로 뭔가 한 것은 없다고 해도 최악의 상황으로 끌고 가지는 않았으니까.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나름 최문경 부회장의 눈치를 봤다.

두 사람이 몰라서 편법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검찰을 동원해서 한 짓을 염려했다.

그들도 최민혁 실장이 도대체 어떤 라인을 통해서 고급 정보를 얻는지 두려워한 것이었다.

두 사람 딴에는 자기들 계획이 잘 풀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판단은 좀 느린 감이 있었다.

아니, 사실 많이 늦었다.

이미 최민혁 실장이 짜놓은 큰 시나리오는 마치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당장 과거 최민혁 실장을 편하게 생각했던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에게 만나자는 요청을 듣고도 곧바로 최민혁을 만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고심의 늪에 빠졌다.

최민혁 실장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그냥 최민혁 실장이 만나자고 한다고 만나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당장 최민혁 실장과 관련해서 산적한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이번에 국무부로 같이 이동한 파르빈 라미네즈를 비롯한 실무진들을 불러 모았다.

모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최민혁 실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이 투자한 에플 지분 같은 일 하나만 해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현재 에플의 주가는 7~9달러 선을 지키고 있지만 KMP-02B와 아이컴 판매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확률이 높습니다.]

역시나 국무부답게 에플의 돌아가는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았다.

사실 미국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얻은 정보 따위가 아니었다.

에플 내에 있는 주주를 통해서 얻은 정보였다.

정확히는 월가 쪽에서 로비하는 중에 정보를 입수했고, 이후 미국 정부가 나서서 손을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었다.

실제로 몇몇 권력자가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그들의 제안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월가 쪽의 이 새끼들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어.’

에플 회사의 가치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중요했다.

사실 에플이 망한다고 할 때 미국 여론이 아주 안 좋았다.

미국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음에도 사실 뾰쪽한 대안이 없었다.

그때 흑기사로 나선 이가 최민혁 실장이었다.

이 당시에 에플이 망해가는 회사가 아니었다면 최민혁 실장을 제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그러지 못했다.

때문에 오히려 최민혁 실장을 밀어줬다.

최민혁 실장은 스티븐을 다시 에플에 복귀시킨 후에 에플의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정확히는 스티븐이 한 구조조정이지만 그 배후는 최민혁 실장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정부는 크게 당황했다. 그들도 최민혁 실장을 흑기사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기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에플의 가치가 달라지자 다들 태도를 바꾸어서 슬쩍 숟가락을 올리려고 했다.

에플을 둘러싼 로비가 시작된 것이었다.

결국 에플 관련 일은 미국 국무부 관할로 넘어가 버렸다.

최민혁 실장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미국 정부가 온갖 법률을 다 위반하면서까지 최민혁 실장에게 미국 시민권을 떠넘긴 이유였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미국 시민권을 받지 않았다면 그때는 미국 정부가 나서서 압력을 가했을 텐데, 최민혁 실장은 순순히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문제가 아주아주 복잡해졌다.

최민혁 실장의 성향이 어떤가에 따라서 미국이 챙길 수 있는 이익도 달라질 테니까.

뭐, 조시 로버트가 미국 국무부 아태 차관보로 자리를 옮긴 것도 그런 이유였다.

‘사실 최민혁 실장 일은 애매하기는 애매해. 원칙적으로는 최민혁 실장 일은 국무부 관할이라고 하기는 힘드니까.’

계륵.

최민혁 실장은 미국 정부에 있어서 쉬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존재였다.

이번에 국무부로 자리를 옮긴 후에 국장으로 승진한 파르빈이 슬쩍 나섰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 에플 차기 제품의 평이 나쁘지 않습니다. 시장에서 실패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성공할 것이라 보는 거야?]

[…네.]

다만 그 성공 여부가 어느 정도인지까지는 이 시점에서 알기는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스티븐이 자꾸 메이저 음반사를 뒤집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또 말이 나왔다.

실제로 이들 회의 자리에 나온 사진은 바로 KMP-02B, 아이컴 자료였다.

다만 이 자료는 몇 달 전에 얻은 것이라서 최종 버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번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도 에플의 몰락을 안타까워했다. 이 제품이라면 에플 부활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파르빈 라미네즈 국장은 한 가지를 근거로 들었다.

[그건 에플의 주가 변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월가 쪽에서 장난을 쳐서 에플 주가는 조정장이 몇 번 있었지만 6달러 선이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불법은 없겠지?]

[불법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뭐, 자기들 주식을 파는 것이니까. 다만 그 과정에서 개인 물량이 꽤 쏟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몇 번에 걸친 월가의 장난.

실제로 에플의 주가가 다시 무너지면서 에플의 파산이 임박했다는 허무맹랑한 루머도 돌았다.

그 과정에서 이익을 얻은 투자자는 물량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파르빈 라미네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과정에서 벨린 투자 측이 물량을 받아서 차익을 실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번 수익만 5억 달러가 넘습니다.]

5억 달러는 물론 각종 비용을 포함한 금액이었다. 실제 수익은 그것과는 좀 달랐다.

다만 월가 쪽도 그렇게 손실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5달러 선에서 에플 주식을 최대한 확보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 물량을 털었던 이들은 1달러에 들어왔던 외국인 세력이 태반이었다. 그들 처지에서는 600% 이익이었으니, 차익 매물을 내놓을 만했다.

최용욱 회장이 최민혁에게 넌지시 에플 주식에 대해 자문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물론 그는 최민혁 실장의 조언에 따라서 물량을 처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에플 CES 전시회를 앞두고 나온 소문 때문에 에플 주가는 다시 요동을 치면서 10달러를 한 번 터치했다.

차익 매물이 흘러나오면서 다시 8달러 선으로 밀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솔직히 이것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에플 주가가 마치 한국 작전주처럼 요동을 치니까요. SEC에 대한 불만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SEC(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도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에플 주가가 좀 심하게 요동치기는 하지만 불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티븐이 나서서 온갖 언론플레이를 한 후에 침묵한 것과 에플 주가 변동이 서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배경에는 근거가 없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에플의 차기 제품에 대한 기대가 정점에 달한 것이다.

실상 이번 CES가 뜨겁게 주목을 받은 것도 이 에플의 행보와 관련이 있었다.

결국 에플 주식이 주의할 대상이 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에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퀄컴의 주가 역시 심각한 상황입니다.]

신기한 사실은 퀄컴의 주가 역시 오르기 시작하더니 에플 주가와 비슷한 등락폭을 보였다. 심지어 두 회사의 주가는 쌍둥이처럼 똑같아졌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달랑 두 회사만 적용된 것이 아니었다.

ARN을 비롯한 소위 말하는 ‘최민혁 실장’ 관련주는 다 비슷했다.

한 회사가 요동치면 다른 회사 주가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파르빈 라미네즈 국장은 이에 대해 우려를 보였다.

[이 문제 때문에 다른 부서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두통약을 입에 털어놓고는 툴툴거렸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장 차세대 배터리 특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 그거. 그게 그렇게 큰 문제야?]

[네. 차세대 배터리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당장 전기 자동차에도 필수적인 부품이니까요. 이것 때문에 상원이나 하원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 정부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벨코어사가 일본 특허에 비해서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배터리 결승선에서 갑자기 미래 기술이 갑툭튀로 등장해서 우승을 가로챘다.

이 배터리 쪽에 투자했던 미국 담당 부서 입장에서는 마냥 황당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이 지금까지 미국 상원이나 하원 쪽에 로비했던 것들이 죄다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휴우, 창피하지도 않아.]

파르빈 국장 역시 딱히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이 일과 관련된 내막의 일부를 알고 있었다.

[샐로먼 브러더스의 제프리 세퍼 부회장이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 그 샐로먼 브러더스? 하지만 그쪽에는 다들 부정적이잖아.]

미국 정부가 가지는 샐로먼 브러더스에 대한 시선은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아니, 실상 아주 나빴다. 샐로먼 브러더스가 과거 저질렀던 불법 때문이다.

[네. 그래서 그나마 흐지부지되기는 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만약 다른 이권 단체가 뛰어들었다면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골치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최민혁 실장에 대한 영향력이 과거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솔직히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최 실장 측에는 일이 있어서 당장 미팅은 어렵다고 전해. 일단 윗선의 입장을 확인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파르빈 국장을 비롯한 회의에 참석한 국무부 직원들은 다들 굳은 안색으로 최민혁 실장의 프로필을 확인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일은 이제 가볍게 생각할 수준이 아니었다.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는 이번 CES 전시회에 이전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변화가 생긴다면 그건 곧 자신의 일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뜻했다.

당장 최민혁 실장의 영향력은 당장 한국을 넘어서 동아시아로 뻗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CES 전시회가 분기점이 될지도 모르겠어. 이걸 어떤 식으로 보고해야 할까.’

* * *

최민혁은 조시 로버트 아태 차관보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사실 조시 로버트를 굳이 만나고 싶어서 만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계속 소통해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저작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리 손을 써놓는 것이 좋으니까.’

조성돈 팀장 역시 가벼운 미팅 요청에도 예민한 조시 로버트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할까요?”

“뭐, 문제가 좀 있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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