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
“네, 그 친구라면 제가 의도한 바를 잘 이해할 겁니다. 국내에서 MP3라는 폭탄을 터뜨려서 대중의 시선을 끄는 거죠. 여기에 에플의 스티븐이 타이밍을 잘 잡아주면, 한국과 미국 MP3 숲에 초대형 산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가장 이상적이죠. 다만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합니다.”
MP3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KM 전자 쪽에서 준비하는 KMP-02A 역시 그 기류에 편승하면 되고, 에플에서 준비하는 KMP-02B는 스티븐이 손을 댄 덕분에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꽤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아,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어차피 하려고 했던 일입니다. 우리 부회장님을 최대한 이용해서 뽕을 뽑아 먹죠. 그 마케팅 비용도 무시할 게 아니니까요.”
“…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이 원하는 바를 뒤늦게 깨닫고는 몸을 움찔 떨었다.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는 조성돈 팀장에게 자신의 큰 그림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송도연의 데뷔는 자기 그림의 끝자락이기 때문이다.
‘내가 준비한 4곡이 최소한 빌보드 차트 100위권 안에는 올라갈 테니까. 다만 변수라면 도연이가 동양인이라는 점이야. 이건 스티븐의 도움을 받아야지. 그라면 메이저 음반사와 관계도 있으니, 잘할 거야.’
MP3 특허를 사들였던 시작에서 이제 그 과실을 볼 타이밍이다.
그렇다면 일을 굳이 작게 벌일 이유는 없었다.
가능하면 크게 터뜨리는 것이 좋다.
세상이 깜짝 놀랄 정도로.
그는 양손을 펼쳐서 센트럴파크 조망을 끌어안았다.
“어차피 이제 막판 끝내기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준비한 결실을 거둬들이면 됩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성격을 잘 알기에 자기 의견을 버렸다. 그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최주호 마케팅 팀장에게 연락하겠습니다.”
최민혁은 물론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조언했다.
“이번에는 우리 부회장님 귀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그쪽에서도 더 미친 듯이 날뛰지 않겠습니까?”
“…문제없도록 처리하겠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최민혁 실장의 큰 그림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가 보기에 최민혁이 이번 일을 이용해서 최문경 부회장 염장을 완전히 뒤집어엎을 생각이라는 것까지는 알았다.
‘하긴 늘 이래 왔으니.’
* * *
장승일 기획 조정실 실장도 최용욱 회장에게 따로 미래 기술 지분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 바로 지분 확보와 관련된 부분이다.
다만 이번에는 최민혁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몸을 사렸다.
대신에 이런저런 통로로 정보를 모았다.
최민혁 실장 쪽에 최문경 부회장 정보를 흘린 것도 일종의 뇌물이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그런 의미였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 실장이 굳이 미국에 가 있는 이유가 CES 전시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오성 전자를 비롯한 국내 업체 역시 이번 전시회에 대규모로 참석하기에, CES 전시회에 관한 사전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전과는 사뭇 다른 현상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다양한 형태의 차량용 DVD 플레이어 시제품들을 전시한다는 것이다.
“…그쪽 회사들에서도 MP3 로열티 협상을 끝냈다고?”
구길모 차장은 이번 CES 전시회 명단을 구해서 확인한 기획안을 내놓았다. 각 회사에 연락해서 어느 정도 로열티를 냈는지 직접 확인했다.
“고만고만한 회사는 MP3 로열티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만 소니를 비롯한 규모가 꽤 있는 회사는 다 MP3 로열티를 내야 했습니다.”
MP3가 일단 들어가면 죄다 로열티를 내야 했다.
이건 MP3 플레이어 로열티와는 달랐다.
MP3 자체 로열티이기 때문이다.
“브라운호퍼 연구소가 가지고 있던 MP3 관련 원천기술 로열티겠지?”
“네. 그런데 그뿐이 아니라 시즈벨을 비롯해서 MP3 관련 특허를 가진 로열티 역시 다 해당합니다. 최민혁 실장은 이미 보고한 것처럼 그 로열티에 대한 특허료까지 다 받아 챙겼습니다.”
MP3 관련 특허풀에 대부분 포함되기는 하지만 아닌 부분도 있다.
그리고 최근 KM 전자 특허 팀이 계속 내놓은 특허의 일부분이 여기에 걸린다.
이 부분은 따로 추가 협상을 통해서 로열티를 더 내야 했다.
사실 이 MP3 특허가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다들 처음에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상황이 많이 달랐다.
MP3 원천특허도 특허였다.
결국 특허료를 내야 했다.
이건 마치 한강 물을 팔아서 돈을 받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록 특허료 자체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관련 제품 수량이 너무 많았다.
백만 대씩, 천만 대씩 팔리는 제품이라면 설사 특허료가 1,000원이라고 해도 수백억은 족히 넘는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수천억을 넘었다.
전 세계 업체를 다 따지면, 조 단위도 가볍게 넘어간다.
비록 5년, 10년 이런 식으로 계산할 때 이야기지만 말이다.
장승일 실장도 막연한 개념적인 보고서가 아니라 업체 판매 수량을 토대로 한 로열티 산정 금액을 보면서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
“…와아, 진짜 대단하다. 결국, CES에서 첨단 전시회라고 말을 하지만 정작 돈을 챙기는 것은 최 실장님이라는 거네.”
“…특히 MP3 관련 부분은 다 해당됩니다. 심지어 K투스를 비롯한 무선 기술 역시 빼놓기 힘듭니다. 근거리통신망 제품도 꽤 나왔습니다.”
그랬다.
다들 쉬쉬하는 동안에도 K투스가 필요한 업체는 KM 전자를 따로 컨택해서 협상에 들어갔다. 그들이 특허료 협상을 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K투스와 관련해서 놀라운 사실 한 가지가 도 있다.
“핸드폰 업체에서도 따로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협상하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에도 K투스가 필요해?”
“근거리통신망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무선랜이 더 맞지 않아?”
“아, 그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제가 알아본 바로는 IP 시티폰에서 무선랜 특허 부분은 따로 빠졌습니다.”
“…잠깐만, 하면 KD 통신에 무선랜 특허는 넘기지 않았다는 소리야?”
“네, 다만 IP 시티폰에 한해서만큼은 무선랜 특허료는 내지 않는 것으로 최종 결론 났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군.”
장승일 실장도 KD 통신 설립 과정에서 말이 많았다는 것을 들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무선 통신의 가치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당시만 해도 아무도 답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정작 가장 핵심은 다 빠져 있었다. 최민혁 실장이 참으로 꼼꼼하게 다 챙긴 것이다.
“그 부분은 좀 이상하네. 시티폰 관련 특허는 다 매각하고, 정작 무선랜 부분은 빼버렸으니.”
“…그건 기획 조정실에서 따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안 좋아.”
장승일 실장은 KD 통신 부분은 석연치 않다고 느꼈다. KM 그룹 역시 일부를 KD 통신에 투자한 터라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계약은 다 끝난 마당이다.
다만 그가 이 계약 부분을 다시 자꾸 들여다보는 이유가 있었다.
“혹시 최민혁 실장님의 미국행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 부분은 KM 전자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맨날 들여다보기만 하지. 정작 일이 끝난 다음에 보고하잖아. 이번 일도 그래. 딱 냄새가 나잖아. 최 실장님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미국 뉴욕에 장기 투숙 하겠어. 내가 회장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죄송합니다.”
“내가 구 차장 자네를 탓할 문제는 아니지. 다만 이번 일은 좀 과할 정도로 매달려 봐. 이 문제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냐. 최 실장님이 굳이 미국에 초호화 아파트까지 구하는 것을 봐서는 장기적인 포석이 있어.”
“…알겠습니다.”
구길모 차장은 내심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차마 그걸 토로하지 못했다. 실제로 최민혁 실장이 하는 일을 잘 보면, 결국 꼼수가 다 있었다.
겉으론 퍼주는 것 같아도 뒷구멍으로 빼먹지 않고 다 챙기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거야.’
그런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일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 * *
구길모 차장은 곧바로 기획 조정실 인원을 동원해서 KM 전자의 기획실 내부를 살폈다. 그리고 그는 그 과정에서 곧 KM 전자가 생각보다는 많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KM 그룹이 계열사 구조조정으로 말이 많아도 KM 전자는 달랐다.
그들은 마치 KM 그룹과는 다른 회사인 것처럼 움직였다.
대표적인 활동 중의 하나가 바로 사내 복지와 인센티브다.
초호화 요트 휴가는 대표적인 사내 복지 정책 중에 하나가 되었다.
게다가 이 외에 F50 페라리를 대거 매입한 것 역시 빼놓기 어렵다.
사실 F50 페라리를 대량으로 사들였을 때만 해도 KM 전자 임직원들도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회사에 돈이 많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처음에는 소수의 몇 대만 일반 임직원에게 할당되어서 모르는 이는 몰랐다.
하지만 인센티브 측면에서 F50 페라리를 배당하자,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성과에 따라서 이 차량을 주기 때문이다.
그 첫 주자는 메드 드로닉 사태로 이름을 알린 최준형 과장이었다.
그는 F50 페라리를 자기 차로 배당받고 나서는 한동안 충격에 빠졌다. 도저히 회사로 갈 때 이 차를 타고 갈 수 없었다.
그런데 또 그럴 수가 없었다.
사칙으로 배당받은 차량을 타야만 했다.
보험이나 유지비 때문이다.
F50 페라리를 몰고 다녀야 차량 지원비를 받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항공기 엔진 소리인 ‘부아아앙’이 KM 전자 본사 앞을 울리게 됐다.
지나가던 KM 전자 임직원들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다행히 경비원이 나와서 그 차량을 조심스럽게 몰고 갔다.
최준형 과장은 KM 전자 본사 앞으로 가면서도 마치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아서 불편했다. 아니, 사실 이제는 견딜 만했다.
부러우면 진다고 하지만 임직원들은 다들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조금 전의 광경이 사내에서 그 유명한 F50 페라리 인센티브였기 때문이다.
감히 최준형 과장에게 시비를 거는 이들은 없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
“최 과장, 좋겠다.”
“…어, 최 부장님이시군요.”
“그래, 나다. 인마.”
최주호 부장은 평소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표정 변화가 드러난 것은 그만큼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억 소리가 나는 F50 페라리는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난 차보다 기름이나 보험금을 회사에서 다 지원해 준다는 게 부럽다.”
최고급 승용차는 유지비부터가 "억!" 소리가 나서 일반인은 몰기 어렵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지금 KM 전자의 복지 정책은 최고였다.
KM 전자에서 잘 다니기만 하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
실제로 F50 페라리 복지 정책이 도입된 이후에 이직률이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최준형 과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배부른 투정을 늘어놓았다.
“전 눈에 띄는 저런 스포츠카보다는 승진이 좋습니다.”
“대리였을 때가 엊그제인데, 벌써 차장 욕심이 나는 거야?”
“최민혁 실장님의 모토 아닙니까. 야망을 품어라!”
“최 실장님이 언제 그런 소리를 했어?”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듣습니까? 다들 이제 눈치껏 움직이는데요?”
실제로 KM 전자 본사를 오가는 임직원들의 눈빛이 많이 달라졌다.
그들은 욕망에 들떠서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누구 한 사람 느물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최주호 부장은 피식 웃었다.
“잘되었네.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생겼어.”
“무슨 일이죠?”
“왜, 이번에도 해보고 싶어?”
“당연하죠.”
“하지만 다른 팀원들에게도 공평하게 기회를 줘야지.”
“일단 들어보고 싶습니다!”
* * *
마케팅 팀은 갑자기 열린 임시 회의에 참석해서도 다들 황당한 얼굴이었다.
최주호 부장에게 들은 지시가 황당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인 마케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 가서 메드 드로닉 소송까지 해봤던 최준형 과장은 달랐다. 그는 미국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바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