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23화 (623/1,021)

#623.

다만 그 역시 주변 시선을 의식했다.

대학 졸업 동창회 모임에 가서도 딱히 KM 전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실 조금만 이리저리 알아보면 알 사실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동창은 이런 그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내 친구 이야기로 제우 정보가 도산한다고 할 때는 그냥 그랬는데, 소프트 라인과 상운 역시 도산했다고 하더라.”

“그 회사에 재식이 합격했다고 하지 않았어?”

“안 그래도 재식이 잘렸다고 하더라.”

“와, 어렵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게 남의 일이 아니구나.”

“용산 시장도 안 좋다는 소리가 있었잖아. 결국, 도산하는 유통업체가 나올 수밖에.”

“세진컴퓨터 때문일 거야. 가격 파괴 내세워서 헐값에 막 팔아 치웠잖아. 그러니 수익률이 줄어드니, 어려워질 수밖에.”

“하긴 작년에 컴퓨터를 한창 헐값에 판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

최승진 사원은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오성 전자, LC 전자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안정적인 회사에 입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입을 다물고 있는 한 친구 최승진에게 대화의 화살이 돌아갔다.

“야, 승진아, 넌 어때?”

“아, 그게 오성, LC, HY 줄줄이 낙방했어. 지금은 KM 전자 기획 팀에 있어.”

“뭐 어디?!”

깜짝 놀란 친구들.

최승진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KM 그룹 계열사로 있는 KM 전자야. 뭐 그렇게 대단한 회사는…….”

하지만 친구들은 KM 전자에 대해서 너무도 자세히 알았다.

“가, 가만, 설마 최민혁 기획실장이 있는 그 KM 전자를 말하는 거야?”

“어, 그, 그래.”

“맙소사!”

다들 입을 딱 벌렸다.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세한 정보에 들어간 명준이 알지? 그 녀석이 이야기하던데, 이제 막 MP3를 출시해서 정신이 없대. 그런데 정작 KM 전자에 MP3 로열티로 대당 무려 2만 원을 내야 한다고 하더라. 이거 죽 쒀서 개 주는 꼴이라고 불만이 많아!”

실제로 최민혁이 MP3 특허풀을 교통 정리 한 이후에 MP3 제품이 시장에 쏟아졌다.

이들 제품은 KMB-01과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무장했다.

이 부분은 얼핏 봐서는 KM 전자에 손해가 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나오면서 MP3 시장이 더 커졌다.

결국 KM 전자의 KMP-01은 명품 모델로 자리 잡아 꾸준하게 판매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MP3 로열티 이야기가 나오자 KM 전자가 기존에 어떤 식으로 특허를 사들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KM 전자가 앉아서 기업 등에 빨대에 꽂아서 빨아먹는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물론 다들 부러워서 하는 이야기다.

“아, 그거 나도 봤다. KM 전자가 MP3 특허풀을 다른 기업에 공개했다면서?”

“공개는 무슨, 다 로열티 받고 뿌린 거지.”

“가만, 그러면 내가 최근에 구입한 이 MP3도 KM 전자에 로열티를 내야 하는 거야?”

모인 이들은 각자 최근에 구한 저가 MP3를 하나씩 내놓았다.

최민혁이 MP3 특허풀을 공개한 이후에 드디어 국내 중 기업, 중견 기업, 대기업이 MP3를 시장에 출시한 결과물이었다.

실제로 국내 MP3 판매는 경기 불황과는 별개로 대박을 쳤다.

그런데 각자 하나씩 구입한 MP3의 수익 중 일정 금액을 KM 전자에 줘야 한다는 말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니 최승진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맙소사, 그러면 지금 MP3 만든 회사는 전부 KM 전자에 특허료를 상납해야 한다는 이야기잖아?”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일이야!”

“야, 승진아, 말 좀 해봐!”

최승진은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냐. 당장 특허료가 큰 것은 아니잖아.”

당연하다. 지금은 이제 MP3 시장이 성숙하는 단계이니까. 다만 해를 더해갈수록 MP3 시장의 판매량은 가파르게 올라간다.

그때가 되면 특허료가 가볍다고 말할 수준이 안 된다.

적어도 수천억대가 되니까.

“이게 대단한 일이 아니면 뭐야? 너희 회사는 그냥 아무런 일도 안 하고 놀아도 MP3 로열티가 적립되잖아.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해서 쌓여갈 것 아냐. 그러면 직원들 인센티브도 나올 거잖아?!”

최승진은 최근 월급 통장에 무려 500만 원이나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괜히 친구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

그제야 다들 술을 한 잔씩 돌렸다.

중소 조립업체와 유통업체는 줄폐업에 제 살 깎기 경쟁을 계속 벌이는 중이다. 심지어 MP3 생산 업체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오성 전자나 LC 전자도 MP3 출시한다고 하지 않았나? 설마 거기도 로열티를 내야하는 거야?”

“그거 예외 없다고 하더라. 국내만이 아니라 외국 기업도 마찬가지야. 들어보니, 에플 쪽에도 로열티를 받는다는 소리가 있으니까.”

“지, 진짜야? 그러면 도대체 로열티 수익이 얼마나 되는 거야?”

“그거야 승진이가 잘 알겠지.”

최승진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다른 신입 사원과는 달리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대학 다니면서 공부만 했고, 워낙에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게 나도 잘…….”

그런데 최승진의 친구 중에는 지난 일을 제법 아는 이가 있었다.

최승진 역시 나름 안산 공장에서 죽어라고 생산만 할 때 갈등을 많이 할 때 푸념을 털어놓았다.

“가만, 너 안산 공장에 있어서 KM 전자를 그만둔다고 술주정을 많이 했잖아?”

최승진은 민망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흑역사를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버틴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와, 이게 진짜 전화위복이잖아!”

“…나도 잘 몰라.”

그는 친구들의 칭찬과 격려에 거저 주는 술만 냉큼 받아 마셨다.

솔직히 이런 상황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정신을 못 차리겠네.’

최승진의 친구들은 뒤늦게야 그의 사정을 알고서는 축하해 주었다.

그들이라면 KM 전자의 황당한 지시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 그런데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당시 KM 전자를 둘러싸고 말이 많았잖아. 에플 인수에, 퀄컴 인수, ARN도 인수했으니까. 그러니 다들 버티기 한 거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

최승진은 그제야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당시의 어려운 사정은 말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그 고비를 견디고 난 다음엔 진짜 자기 앞에 천국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 * *

최민혁 역시 최근 국내 업체에서 MP3를 시장에 출시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가 아는 인생 1회 차보다는 무려 몇 년을 앞선 일이었다.

“결국 나왔군.”

세한 정보가 MP3를 출시한 후에 겪어야 할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MP3 특허를 최민혁 자신에게 탈탈 털렸으니까.

그리고 그건 다른 업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와, 깔끔한 기능 버튼이 갖춰진 제품이다. 지금의 젊은 시대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심지어 리모컨을 옵션으로 사용해서 원격에서 제어할 수도 있었다.

“정말 잘 만들었네요.”

기획팀원들 역시 테이블에 위에 올라와 있는 각종 MP3 모델을 보면서 감탄했다.

“디자인이 참 각양각색입니다.”

“한국 엔지니어들의 능력이 대단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요.”

박상기 차장이 조용히 MP3를 감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최 실장님이 왜 굳이 일을 이렇게 번거롭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 회사가 이 제품을 다 양산하려고 했다면, 정말 답이 없었을 겁니다.”

조성돈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공급이죠. 아마 공장을 증설하고, 다른 모바일 업체를 인수해서 생산한다고 해도 수율이 높지는 않았을 겁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 뽑아야 할 직원 수였다.

MP3 산업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된다면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게 또 그렇지도 않았다.

그런 번거로운 문제가 이제 다 필요가 없다.

이게 얼핏 봐서는 KM 전자에게 손해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KMP-01은 오성 전자에게서의 부품 수급을 통해서 저렴하게 공급을 받아 어느 정도 가격 경쟁을 하면서 명품 브랜드를 내세웠다.

다른 중소기업에서 MP3를 마구잡이로 찍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민혁은 자신에 대한 뜨거운 칭찬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제 겨우 한 고비 넘겼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덕분에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오성 전자를 비롯한 국내 업체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세요.”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물론 이제 서서히 콜린스 사업부 매각에 시동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충분히 미끼를 던져 놓았기 때문이다.

‘일단 에플의 신제품 발표 반응부터 기다려야겠지. 아마 그 결과를 보면 오성 전자도 지금처럼 소극적일 수는 없을 거야.’

* * *

실제로 KM 그룹 내부가 최민혁 때문에 시끄러운 동안에 국내 기업이 MP3 저가 제품을 에플보다 먼저 출시했다.

아무래도 에플은 몇 가지 수정 작업과 아이컴과의 연동을 고려하면서 개발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에플에서 진행하는 MP3 OS는 일반적인 펌웨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반면 국내 제품은 단순한 MP3 기능만 탑재하여 출시했기에 더 빨랐다.

물론 가장 빨리 시장에 MP3를 먼저 출시한 것은 역시나 세한 정보였다.

실제로 이 제품은 KMP-01보다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나왔다.

그 덕분에 불티나게 팔렸다.

한 달 만에 무려 30만 대가 팔려 나갔으니까.

이것만 봐도 MP3 시장이 이제 초기 단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MP3란 산업 자체가 서서히 성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세한 정보에 연이은 다른 중소기업들 역시 다양한 디자인의 MP3를 국내 시장에 출시했다.

15~25만 원의 이 제품군은 특히 고등학교, 대학생의 관심을 끌었다.

이런 변화를 지켜본 권태성 실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특히 KM 전자와 MP3 특허 협상 과정에서 재미를 별로 보지 못했다.

중소기업은 어느 정도 물량까지 로열티가 0에 수렴하는 것과는 달리 오성 전자는 정해진 수수료를 내야 했다.

그는 겉으로야 최민혁 쪽과는 거리를 두는 것 같았지만, 실상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철저하게 감시했다.

이 MP3에 들어가는 배터리 역시 벤치마킹 과정에서 늘 문제가 되었기에 당연히 주시 대상이었다.

차세대 배터리와 관련이 있는 미래 기술도 당연히 감시 대상이었다.

오히려 오성 그룹 윗선보다 따로 이 미래 기술 감시에 인력을 배당했다.

다만 그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몇 번 당한 경험이 있어서 다른 중소기업을 겁박할 때와는 달리 신중하게 처리했다.

뒤늦게 이 정보를 안 오성 그룹 윗선에서는 권태성 기획 실장의 소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연일 그를 압박했다.

“정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그쪽에서 하세요.”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 김진석 이사가 쪼르르 달려왔다.

“권 실장님, 지금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죠?”

“압니다. 그래서 전략 기획실에서 직접 처리해 줬으면 합니다.”

“하,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아니, 그러면 무슨 뜻으로 한 말입니까? 제가 무슨 개입니까? 이리 뛰어 그러면 이리 뛰고, 저리 가 그러면 저쪽으로 가야 합니까?!”

김진석 이사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도 권태성 기획실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의 악명 때문에 직접 상대하게 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의 악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전략 기획실에서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건 안재운과도 관련이 있다.

최민혁 실장이 밀어준 오큘러스 프로젝트 성과 때문에 안재운의 인기는 계속해서 올랐다.

이제는 오성 그룹 낙하산이 아니라 후계자 소리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였다.

전략 기획실에서도 괜히 다른 사업을 건드려서 문제를 만들기보다는 위성 사업에 집중했다.

e오성에 슬쩍 이를 넣어서 청사진을 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조, 좋습니다. 하지만 콜린스 사업부 인수는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최근 들어온 정보로는 에플에서 진행하는 차세대 제품에 콜린스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하니까요.”

“그, 그게 사실이었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