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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17화 (617/1,021)

#617.

“민혁이 그놈이 자기 쌈짓돈으로 미래 기술 지분 80%를 인수했다. 이건 그놈이 뭔가 노림수가 있다는 뜻이야.”

“그래?”

김여정은 별생각 없이 대답한 후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가 최민혁 그놈을 그냥 둘 수 없다고 그렇게 주장한 지가 한참 되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최민혁 그놈 타령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용만 전무도 무안해서 김여정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래. 이번 일은 아버지도 관심이 있는 일이야. 이번 사건에 도움을 준다면, 추후 네 부탁 정도는 들어주실 거다.”

“나중에 가서 또 뒤통수치려고?”

“그건 절대로 아냐.”

“…알았어.”

김여정은 이 자리에서 지난 일로 할 말이 많기는 하지만 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도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김용만 전무는 자신이 꼭 정보 브로커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결과에는 만족했다.

‘여정이가 잘할지 모르겠어. 아니, 잘하겠지. 따지고 보면 KM 전자에 대한 작업도 여정이가 큰 역할을 했으니까.’

하지만 이후 과정이 문제였다.

특히 최민혁 실장이 KM 전자 기획실장이 된 이후 말이다.

‘떠먹여 줘도 못 먹는 최 전무가 정말 멍청한 놈이었어.’

* * *

일반인과 재벌 집안 제사는 조금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이유는 재벌 집안 결혼이 정계와 재계를 잇는 혼맥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사 기간이 다가오면 사전에 먼저 연락해서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

김여정은 이 일을 빌미 삼아서 김이경이나 조희정을 직접 찾아갔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간과 쓸개를 다 빼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제사 이야기가 아니라 최훈열 전무를 어떻게 해서라도 감옥에서 빼내야 한다고 말이다.

두 사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다만 항소심이 문제였다.

거기에 상고 역시 빼놓기 어려웠다.

그래서 서둘러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

항소와 상고를 통해서 형량을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가 바로 미래 기술과 관련된 부분이다.

김여정이 넌지시 이야기를 흘렸지만 두 사람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최문경 부회장의 처 김이경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최민혁에 대해서 최문경 부회장 몰래 따로 조사를 해봤다.

최민혁은 KM 가문 제사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첫째 큰어머니인 김이경 여사가 찾아오자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제사에 참석할 겁니다.”

“고맙구나.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너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어.”

“…지금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건 그이가 널 오해해서 해서 그런 거야. 내가 나서서 오해를 풀어주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민혁은 코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가 보기에 김이경 여사의 말과 행동은 연민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실상은 악어의 눈물이나 다름없는 것 같았다.

다만 그 역시 김이경 여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김이경 여사는 오늘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이 자리에 나타났다.

“우리 그이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안다. 그래도 가족이란 사실은 변치 않아.”

“남보다 못한 가족이겠죠.”

“하, 아직 감정이 응어리져 있구나. 큰 엄마로서 참 못할 짓을 했어.”

눈물마저 글썽이는 김이경 여사.

“…….”

최민혁은 힐끗 차를 가져온 오혜정 비서의 표정을 보고는 내심 혀를 찼다.

제삼자가 봐서는 자신이 꼭 큰어머니를 상대로 갑질을 일삼는 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이 생길까 싶어 애초에 그녀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기획실장실로 직접 찾아올지는 몰랐다.

자존심을 버린 김이경 여사는 만만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도대체 꿍꿍이가 뭐지? 설마 배터리 사업에 숟가락을 얹고 싶은 걸까?’

그럴 수도 있다.

김이경 여사는 단 한 치의 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서 눈가를 닦았다. 정말 눈물 한 토막이 보였다.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

그가 인생 1회 차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진심인가 생각할 정도였다.

김이경 여사는 슬그머니 최민혁이 과거 그렇게 원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 어머니는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 제사부터는 동서들이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할 거니까.”

물론 며느리가 직접 제사상을 차린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용인이 일을 다 하니까.

다만 관리 감독 하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최민혁이 인생 1회 차에서 떠올린 기억으로는 어머니 정미선은 KM 일가 내에서 왕따를 당했다. 구박을 많이 받은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그랬으니까.’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선친 최병문은 정미선을 대변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욕설까지 들은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대놓고 갈구었다.

정미선이 이 때문에 정신병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정미선 가슴에 한이 쌓인 이유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된 셈이다.

“뭐,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래, 민혁아, 지난 일은 내가 다시 한번 사과하마.”

구구절절한 김이경 여사의 모습은 확연히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신종 악어일까?’

* * *

교대로 찾아온 셋째 큰어머니 조희정 역시 정미선과 같은 이야기를 꺼낸 후에 자신이 어머니를 돌봐주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그녀는 실제로 촬영장에 찾아가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일은 최동영 상무 자신도 이 문제를 조희정에게 모두 맡겼다는 것이다.

최민혁은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일단 정미선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들은 것으로 만족했다.

‘어차피 믿을 수가 없는 일이지만 형식적으로 나쁠 것은 없지.’

다만 최민혁은 제사를 앞두고 두 사람이 한 행동에 기가 막혔다. 물론 좋게 보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첫째와 셋째 큰어머니가 직접 찾아온 것이 신기했다.

그는 고민한 끝에 이 일이 단순히 우성 건설 도산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미래 기술이 있구나.’

더욱이 미래 기술은 KM 전자가 인수한 것이 아니라 벨린 투자를 통해서 자신이 직접 인수한 기업이었다.

자신이 KM 산업 지분을 노리는 것처럼 가족 역시 얼마든지 미래 기술의 지분을 노릴 수가 있다.

그도 딱히 원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 기술에 시선이 집중되자 의아했다.

자신이 미래 기술을 인수한 것은 어디까지나 값싼 고품질 배터리를 공급할 의도였을 뿐이다.

결국 조성돈 팀장을 불러 이 문제를 넌지시 한번 떠보았다.

“미래 기술에 왜들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요?”

조성돈 팀장은 어이가 없어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의 가치를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물론 저도 압니다. 베일런스나 소니가 그럴 수는 있어요. 다만 굳이 우리 집안에서 유독 난리를 치는 것 같아서요. 아니, 사과 몇 마디로 제가 그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피식 웃고 말았다.

“뭐 짚이는 것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얼마 전에 KM 그룹 계열사를 10개만 남겨 두고 정리하지 않았습니까? 우성 건설 인수합병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자금은 충분히 챙긴 셈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 관심을 둘 상황입니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배터리 사업이라면 나쁜 선택이 아니죠.”

더욱이 지난 최민혁의 행보가 문제였다.

최민혁은 사업부 매각 과정에서 무려 수천억을 벌어들였다.

그가 이제까지 손을 대서 실패한 사업은 아예 없었다.

“아, 제가 하는 사업은 다 대박 친다고 생각하나 보군요. 그래서 유독 미래 기술에 눈독을 들이는 거고요.”

“그렇습니다. 단순히 KM 그룹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기업은 다들 미래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당장 일본 업체부터 난리인데, 국내 대기업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다면, 실장님에게 선을 대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한테는 직접 연락이 없던데요?”

“기획 팀 쪽으로는 미친 듯이 연락이 오는 중입니다. 그쪽을 만나서 일단 협상을 하고는 있는데,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요.”

특히 미래 기술 지분 매각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다들 관심이 너무 뜨거웠다.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이 자주 연락을 하는 상황입니다. 뭐 실장님에게는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하고요.”

조성돈 팀장은 굳이 권태성 기획실장의 자존심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이게 차라리 최민혁 실장에게도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연출된 것은 단순히 미래 기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권태성 기획실장 역시 최민혁 실장을 상대로 많은 협상을 했는데, 이제까지 제대로 이익을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최민혁의 성격이 너무 까칠한 것이 진짜 문제였다.

“다만 영업 팀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덕분에 자신들의 외부 평판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이미지였습니까?”

“…네. 그런데 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적으로 우리 임직원을 대할 때는 그러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조성돈 팀장이 최민혁 실장에게 이와 관련된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은 교통 정리가 덜 끝나서다. 특히 지분 인수와 관련된 금액이 워낙에 커서 그 가치 평가를 두고, 기획 팀 내에서도 말이 너무 많았다.

결국 수차례 반복해서 미래 기술의 가치 평가를 진행해야 했다.

일테면 1,000억과 1,300억의 경우에 무려 300억의 차이가 난다.

협상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게 다 손실이 된다.

그러니 배터리 관련된 조사부터 시작해서 각 기업과도 다 일일이 협상을 해야 했다.

물론 그게 쉬울 리가 없다.

결국 미래 기술에 대한 기술 평가가 사전에 진행되어야 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보안 문제 때문에 KM 전자가 제대로 된 기업 정보를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

최민혁은 자신이 지시한 일을 떠올리고는 그제야 혀를 찼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LC 그룹, 오성 그룹만 해도 지금 난리였다.

KM 그룹이 차세대 배터리 사업을 그냥 두고만 볼 리는 없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해당 사업을 미래 기술 혼자 독자적으로 다 먹기는 어렵다는 점이었다.

일단 곧 닥칠 IMF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최민혁은 굳이 배터리 사업에 집착할 생각이 없었다.

‘하긴 배터리 공급과는 별개의 문제이겠어.’

최민혁은 그제야 피식 웃고 말았다.

“어째 작년 제사 분위기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았는데, 그 이유가 있었군요.”

“아마 회장님도 관심을 보일 겁니다. 장승일 실장 이야기로는 우성 건설 도산 이후에 국내 경기가 나빠서 차라리 미래 기술에 직접 투자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곰곰이 고민하다가 이것도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특히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둘째 큰어머니 김여정의 태도 때문이다.

‘우리 최훈열 전무 구속 때문에 나에게 원한이 많겠지. 어쩌면 둘째 큰어머니를 잘 활용해서 우리 최문경 부회장을 다시 한번 자극할 수 있을 것 같아.’

특히 이 배터리 사업이 초대박을 친다고 가정해 보자.

KD 통신이 IP 시티폰 사업에 속도를 올릴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되게 하여야 해. 벌써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어쩌면 IP 시티폰 성공을 확신해서 더 무리수를 둘 수도 있겠어.’

그 와중에 엮인 DL 그룹 역시 불똥이 튈 확률이 높았다.

‘아니, 내가 불을 질러야지.’

그야말로 일타쌍피가 아닌가.

DL 그룹에 대한 복수극으로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자신이 몰래 진행하던 스마트폰 사업에는 아예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이다.

‘재미있네.’

“…….”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의 얼굴에 떠오른 흉악한 미소를 보자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그는 최민혁이 저런 얼굴일 때 항상 큰 사고가 난다는 것을 잘 알았던 것이었다.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저러시는 걸까?’

* * *

김여정은 친오빠 김용만 전무를 만나는 자리에서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최민혁 실장의 미래 기술 이야기를 듣자 피가 거꾸로 솟았다. 배가 아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곰곰이 고민을 거듭했다.

기회를 노리는 중에 마침 떠올린 것은 역시 제사였다.

보통 KM 그룹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면 바쁜 이들은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달랐다.

감옥에 가 있는 최훈열 전무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참석했다.

심지어 최용욱 회장의 손자까지 모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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