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16화 (616/1,021)

#616.

DL 그룹이 IPS-LCD를 제조하는 오성 전자와 LC 전자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들 기업과는 근본적으로 많이 달랐다.

이 두 회사는 이미 어느 정도 기반이 있기 때문이었다.

KD-LCD는 중견 LCD 업체를 인수해서 그나마 순탄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가 않았다. 시행 착오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 탓이다.

김희찬 부사장은 이 모든 일이 김현탁 사장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결과인 것처럼 그를 쳐다보았다.

결국 이런 문제가 모두 김현탁 사장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김현탁 사장은 억울했다.

“LCD는 일종의 장치 산업이라서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알아. 그래서 다들 쉬쉬하고 있어. 올 한 해만 잘 넘기면 된다고 다들 이야기하니까. 문제는 우성 건설 파산이야.”

“…우성 건설 파산이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김희찬 부사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장은 우리와 관련이 없어. 건설 쪽은 아예 들이밀지 않았으니까. 더욱이 진행하던 부분은 일부 보류했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룹 차원에서 건설 투자를 동결시키라고 얘기가 나왔단 거야.”

DL 그룹은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서 조 단위의 투자를 계획했다.

실제로 KD-LCD, KD 통신 설립은 그 사업 계획의 하나로 진행된 결과였다.

그런데 투자는 이들 두 기업만 해당하지 않았다.

중점인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 역시 중단했다.

“국내 자금 흐름이 좋지 않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너도 조심하는 것이 좋아. 당장 정부에서 말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실무진 선에서는 이미 작업에 들어갔으니까.”

정부가 중소기업 도산 방지를 위한 대출을 대폭 늘린 것이 그 증거였다.

통신부는 자동화 관련 기술 투자를 대폭 늘렸다.

이 자금 규모가 1조에서 2조로 늘어난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런 기업 혜택만으로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김현탁 사장은 한 가지를 들어서 반박했다.

“정부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종금사에 대해서 단기 콜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재정경제원이 금융 시장이 경색되지 않도록 통화를 유연하게 운영한 것은 사실이야. 필요한 자금 지금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이지. 채권 은행이 하도급업체와 납품업체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한 작업도 진행했어. 하지만 이런 것들은 늘 나오던 이야기야. 결국, 희생양을 찾겠지. 이게 더 심각한 문제야. 다들 쉬쉬할 테니까. 우리라고 해서 아니라고는 말 못해.”

김현탁 사장은 가슴 한구석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하필이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뭔가 하려고 할 때 딱 걸림돌이 나타났다.

잠깐의 망설임.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냥 넘어갈 일도 아니었다.

그는 결국 LC 전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미래 기술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아마 김희찬 부사장 역시 한 달 전이었다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또 달랐다.

김희찬 부사장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팠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냐?”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이 뭔가 꼼수를 부리는 것 같아서 KM 그룹 내부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거야 따로 사람을…….”

“아니, 그런 정보 말고, 보다 구체적이면서 내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KM 그룹 차원에서의 구조조정 때문이다.

계열사를 정리하면서 갈려 나간 대부분은 DL 그룹을 비롯한 외부 라인 쪽에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었다.

때문에 김현탁 사장은 도움이 여실히 필요했다.

김희찬 부사장은 처음에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 정도 일은 김현탁 사장이 알아서 처리해도 될 일이다. 굳이 자신에게 찾아와서 도움을 청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최근 KM 그룹에서 일어난 구조조정을 떠올리고서야 혀를 찼다.

“…용만에게 도움을 청하란 말이야?”

“그쪽이 제일 편합니다.”

김희찬 부사장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지만, 곧 정색하고 말았다. 그도 지금은 김현탁 사장의 제안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알겠다. 내가 용만이에게 한번 말을 해볼게. 하지만 마냥 믿지는 마. 최훈열 전무가 구속된 이후에 용만이 상황이 좋지가 않으니까.”

* * *

김용만 전무는 김상구 회장이 불러 의아한 얼굴로 회장실로 찾아갔다가 미리 와 있는 김희찬 부사장을 통해서 한 가지 지시를 받았다.

“아무래도 한 가지 일을 좀 해줘야겠다.”

그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김상구 회장 앞에서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을 드러냈다. 최훈열 전무 구속 이후에 DL 그룹 내에서도 계속 겉돌았기 때문이었다.

“KM 그룹 쪽에서 절 바라보는 시선이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바로 최훈열 전무 구속으로 비롯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네가 직접 뭔가 한 적이 없잖아. 결국, 모든 일은 최훈열 전무가 원인이었으니까.”

“최훈열 전무 수사 과정에서 제가 연루된 부분이 일부 드러났습니다. 당시 피의자로 전환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덮어버린 것도 아닙니다. 최용욱 회장이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따로 조사한 것으로 압니다.”

최용욱 회장이 최훈열 전무 구속 이후에 김용만 전무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완전히 잊은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킵을 해둔 셈이다.

이는 필요한 경우 김용만 전무를 정리할 때 좋은 보험이 된다.

김상구 회장이 그 뜻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이미 김여정에게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가만, 최용욱 회장이 여정이 그 녀석과도 거리를 두었다고 했지.’

다들 쉬쉬해서 그렇지 최훈열 전무 구속 이후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김상구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역시 뒤늦게야 최용욱 회장이 왜 자신과 거리를 둔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집안이 완전히 거리를 두기는 쉽지 않았다.

사업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KD-LCD, KD 통신이 그 대표적인 협력관계였다.

최용욱 회장은 이상할 정도로 자금에 관해서는 보수적이었다.

그의 도움을 최용욱 회장은 거절하지 않았다.

뭐, 최문경 부회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용만 전무는 굳어 있는 김상구 회장을 보자 괜히 자신만 입장이 곤란해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장남인 김희찬 부사장 입장은 좀 달랐다.

“지금 우리 DL 그룹 상황이 안전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니 KM 그룹 내부 상황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어.”

IP 시티폰 사업은 이제 막 시작했으니.

결국 남은 것은 KD-LCD였다.

“…KD-LCD 상황이 그렇게 안 좋습니까?”

“지금 당장은 매출이 나오지 않으니까. 적자가 쌓일 수밖에 없어. 문제는 우성 건설 도산 이후에 채권은행이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한 건설 쪽으로 통화를 신축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그러니 건설을 제외한 다른 사업 쪽은 오히려 위축되었다.

결국 유탄을 맞은 DL 그룹도 자금 사정이 안 좋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상황에서 일본 자금을 더 끌어올 수는 없었다.

이제는 회사 신용도 문제 때문에 금리가 꽤 올라가니까.

“하지만 LC 전자와 오성 전자 역시 LCD 쪽에 투자했지 않습니까?”

“그쪽 회사는 이미 KM 전자 쪽에 소형 LCD를 납품하고 있어. 아직 시제품 개발에 들어가지도 못한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아니, 이미 어느 정도 소형 IPS-LCD 양산 막바지에 들어갔다.

이젠 납품만 하면 된다.

이 부분은 에플과도 관련이 있어서 아직 협상 중이었다.

수량이 얼마가 되느냐에 따라서 납품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KD-LCD는 현재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실무자는 경영진의 독촉에 그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하는 중이다.

그런 중에 터져 나온 우성 건설 도산은 DL 그룹을 긴장하게 하였다.

김용만 전무는 자신의 역할에 참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았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정이도 상황이 좋지가 않습니다. 이전처럼 상황이 쉽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여정이 한 짓이 있다.

그건 KM 전자를 노린 행위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KM 일가가 그녀를 쉽게 수용할 리는 없다.

최문경 부회장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김희찬 부사장의 안색이 좋지가 않았다. 그 역시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냥 이전처럼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다오.”

“…네.”

그는 김상구 회장의 눈빛을 보자 오히려 내심 만족했다.

‘잘하면 이거 기회가 될지 모르겠어. 하지만 일이 잘 풀릴지 모르겠는데. 여정이 히스테리가 장난 아니란 말이야. 설마 괜한 문제를 만들지는 않겠지?’

* * *

김용만 전무는 김희찬 부사장의 요구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곧 얼마지 않아서 이 일의 발단이 모두 최민혁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그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단 김여정을 만나는 것에 집중했다.

그녀를 만나자 다른 소리가 나오기 전에 DL 그룹 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넌지시 던졌다.

“요즘 KM 그룹 분위기는 어때?”

“나도 잘 몰라!”

역시나 김여정 몰골이 좋지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정신병원에서 막 퇴소한 사람 같았다. 아니, 마치 마약중독자 같았다.

김용만 전무는 김여정의 눈치를 계속 봤다.

“너도 우성 건설 도산 이야기는 알잖아. 그러면 아무래도 KM 그룹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김여정은 어이가 없었다.

“KM 그룹이 자금 경색을 걱정할까 봐? 그쪽에 돈이 넘쳐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2차에 걸친 구조조정 말이야?”

“그래. 그것 때문에 회사에는 돈이 넘쳐 나. KM 전자만이 아니라 KM 그룹 역시 마찬가지야. 10개 계열사만 남았지만 전부 다 우량 회사이니까.”

김여정은 푸념 식으로 KM 그룹 이야기를 하나씩 꺼냈다.

그녀의 남편 최훈열 전무가 비록 감옥에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KM 그룹의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아니, 실상은 그 반대다.

최훈열 전무가 KM 전자를 먹은 후에 KM 그룹에 손을 뻗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회사 내의 정보 조직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녀는 이 정보 계통을 통해서 KM 그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았다.

다만 그녀에게 있어 딱히 좋은 정보는 아니었다.

남편인 최훈열 전무가 구속된 이후에 KM 그룹은 잘나가도 너무 잘나갔다.

더욱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친DL 그룹 라인 역시 80% 가까이 갈려 나갔다.

다만 김여정은 KM 그룹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최훈열 전무에 대한 상념을 떨쳐냈다.

“…설마 또 민혁이 그놈 이야기야?!”

“…맞아. 뭐 이미 눈치를 챘으니, 마음이 편하네. 솔직히 그 문제 때문에 아버지도 걱정이 많아. 우성 건설 도산 이후에 건설교통부가 나설 정도로 건설 경기가 좋지가 않은데, 이 과정에서 통화 흐름이 안 좋아서 DL 그룹도 악영향을 주니까.”

김용만 전무는 전부 최민혁 실장으로 말미암은 문제를 일일이 나열했다.

그 리스트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차세대 배터리로 그 끝을 장식했다.

그런데 이 배터리는 기존에 최민혁이 했던 다른 사업과는 성격이 달랐다.

최민혁이 직접 투자까지 진행했기 때문이다.

“나도 조사하면서 정말 많이 놀랐어. 특히 배터리 관련된 부분은 그냥 내버려 두기 좀 그래. 그냥 놔두면 계속 덩치를 키워갈 거야.”

특히 베일런스와 벨코어사 인사가 직접 KM 전자의 조성돈 팀장을 따로 만났다.

이런 부분은 그저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었다.

김여정은 새삼 최민혁에 대한 원한을 떠올리면서 어금니를 뽀드득 갈았다.

그녀도 처음에는 최민혁 실장이라면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어서 듣지 않으려고 했다.

김용만 전무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들은 차세대 배터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민혁 그놈이 또 뭔가 수작을 부리는 것 같은데, 계열사 구조조정 때문에 정보 계통이 다 날아갔어. 그래서 지금 중요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어. 하지만 너라면 KM 그룹 내에는 어느 정도 사정을 알 거야. 그 정보가 필요해.”

“그게 그렇게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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