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10화 (610/1,021)

#610.

조성돈 팀장이 장승일 실장에게 들은 내용을 말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는 에플 쪽에 꽤 투자하신 것으로 압니다.”

최민혁 자신이 모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에플 대주주였으니까. 심지어 최용욱 회장에게 넌지시 에플 투자를 권하기도 했다.

‘설마 그 말을 믿은 건가?’

“에플요?”

“네. 심지어 국내 부동산마저 다 정리해서 그 돈을 에플 지분 사들이는데, 퍼부었습니다.”

“하.”

최민혁은 황당해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최용욱 회장이 에플 지분을 인수했다면, 초창기였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1달러 정도에 사들였다면, 적어도 천억 이상은 투자했을 거야. 설마 지금 에플 지분 가치가 1조를 넘는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지금 에플 주가는 등락을 거듭하고는 있지만 7달러 선에서 주춤했다.

단기에 너무 많이 올라서 조정 국면을 계속 반복하는 중이었다.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이 에플 주가를 이용해서 단타로 재미를 꽤 봤다.

그 수익금만 해도 벌써 2천억이 넘었다.

차세대 제품 공개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에플 주가가 더 가파르게 올라갈 것을 노린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부자 거래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KMP-02B과 아이컴의 성공을 외부에서 확신하기는 어려웠으니, 내부자 거래로 몰기에는 좀 뭐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스티븐의 능력을 잘 안다. 이미 스티븐이 KMP-02B와 아이컴에 손을 대서 변화를 줬다는 점도 말이다.

‘스티븐이라면 잘하겠지.’

이런 상황이니.

에플 가치는 다른 KM 전자 계열사에도 영향을 줘서 전체적인 주가를 끌어올렸다.

다만 에플 주가가 10달러 선을 향해서 가다가 계속 조정 국면을 거치면서 밑으로 내려앉고 있는 이유는 아직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시간이 해결하겠지.’

실상 스마트폰에 대한 것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주가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올랐다.

조성돈 팀장 역시 최민혁의 눈치를 계속 봤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끙.”

최민혁 실장은 자신이 나선다고 해도 손을 쓸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용욱 회장도 당장 자신의 지갑이 두둑한데, 손자가 하는 잔소리가 고깝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우리 일이나 집중하죠. 배터리 업체 쪽과 긴밀하게 계속 협상을 해보세요. 필요하면 지분 매각에 대해서도 알리고요.”

“그래도 뭔가… 아, 아닙니다.”

“뭐, 그렇게 불편하면, 조 팀장님이 대신 우리 첫째 큰아버지와 할아버지 움직임을 잘 지켜보세요. 솔직히 좀 불안하긴 하니까.”

‘특히 최용욱 회장이 사고를 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란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네.”

조성돈 팀장도 그제야 최용욱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이 꽤 짭짤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솔직히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최용욱 회장을 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게 모두 최 실장님 덕분이야. 그래서 회장님도 실장님 눈치를 보기는 해.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야. 과연 회장님이 실장님과 부딪치지는 않을지.’

사람 마음이 그렇다.

이전에는 최용욱 회장도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에플 투자를 통해서 막대한 자금을 챙겼다.

그렇다면 이전처럼 최용욱 회장이 소극적으로 나갈 이유는 없다.

문제는 최용욱 회장이 이 일에 대해서 자신을 너무 과신해서 과욕을 부릴 때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최민혁도 뒤늦게야 최용욱 회장이 사고 치지 않을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 * *

우성 건설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우성 건설 경영진은 우선 채권 은행을 찾아다니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딱 여기서 끝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인맥을 총동원해서 다른 회사에도 도움을 청했다.

오성 그룹, HY 그룹을 비롯해 돈이 많은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필요하다면 사돈의 팔촌까지 다 찾아다녔다.

게다가 우성 건설 허원진 부회장은 다른 누구도 아닌 최용욱 회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는 바둑에 심취한 최용욱 회장 옆에 무릎까지 꿇고 말았다.

“회장님,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눈물마저 글썽이는 허원진 부회장의 태도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선 사람 같았다.

멀쩡한 우성 건설이 망해 버리니, 길바닥으로 내몰릴 판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우성 건설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KM 그룹의 과도한 구조조정을 맹비난한 곳 중의 하나란 점이다.

“…….”

가자미눈을 한 채 허원진 부회장을 쳐다보는 최용욱 회장 처지에서는 이 상황이 황당했다.

전경련 모임에 가면 늘 자신을 둘러싸고 나온 이야기 중의 하나가 자신보고 치매가 왔다는 거였다.

사실 당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주워섬기는 이들 중에는 특히 중견 그룹이 많았다.

이들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최용욱 회장을 마구잡이로 비웃었다.

그런 이들 중에 한 사람이 허원진 부회장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의 맞상대가 된 최동영 상무는 이 상황에 그저 침묵하기만 했다.

결국 참다못한 허원진 부회장이 지난 일을 슬며시 꺼냈다.

“회장님이 어려울 때 우리가 도와준 것을 벌써 잊었다는 말입니까?”

실제로 그러했다.

KM 그룹이 작년만 해도 힘든 자금 압박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성 건설이 KM 그룹에 백억 규모의 자본을 빌려주었다.

물론 지금은 그 돈이 최용욱 회장에게 푼돈에 불과했지만.

최용욱 회장은 탄식하고 말았다.

“허,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당시 자네는 우리 본사 건물을 담보로 잡았지. 그런데 지금은 경우가 좀 다르지 않나?”

우성 건설은 방만한 투자를 집행하는 바람에 이미 담보로 잡을 물건이 없다.

건물이나 부동산 대부분이 이미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하, 하지만…….”

“이 친구가 참. 서로 친할수록 계산은 분명하게 해둬야 할 것 아닌가.”

“우리 회사 규모를 잘 알지 않습니까. 많은 돈을 빌려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고작 100억이면 충분합니다.”

“100억이 적은 돈인 것처럼 말하는군. 결코 적은 돈이 아닐세. 그리고 아니, 내가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나한테 그러나. 우리 KM 그룹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매한가지야. 계속 계열사를 팔아치우고 있다는 것은 기사를 보면 알잖아.”

실제로 KM 그룹은 KM 산업을 포함한 핵심 계열사 10개만 남겨두고 모든 계열사를 죄다 팔아치운 상태였다.

하지만 실상 다른 기업들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아니, 국내 어떤 다른 대기업과도 경우가 달랐다. KM 그룹 내에는 기업 매각 현금이 산처럼 쌓여 있으니까.

허원진 부회장이 최용욱 회장을 찾아와서 납작 엎드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회장님, 이번에 매각한 기업 대금이 제가 아는 것만 해도 4천억이 넘습니다!”

다시 바둑을 두던 최용욱 회장은 동작은 멈춘 채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허 부회장, 그 말은 좀 심하네. 우리 계열사 매각 대금이 자네 쌈짓돈이라도 되는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KM 그룹은 여유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그런 자네는 왜 여윳돈을 만들지 않았나?”

“네?”

“자네들이 기업을 방만하게 운영해서 다 탕진했잖아. 그때도 주변에서 조심하라고 했을 텐데, 그 말은 왜 듣지 않았어?”

“그것은 저희 실수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만 넘기면…….”

“글쎄, 내 생각은 달라. 이번 일도 자네들이 큰 실수를 하는 것 같으니까.”

“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지금 위기는 단순한 일이 아닐세. 주채권은행이 왜 자네에게 대출을 더 해주지 않겠나? 그들 역시 자금경색을 겪고 있어.”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굳이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골치 아파서 결국 화제를 돌렸다.

“다시 말하지만, 솔직히 우리가 아니라 차라리 오성 그룹, LC 그룹, HY 그룹 쪽을 가보게. 그쪽이 더 덩치가 크잖아.”

“그런데 그쪽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사업 규모를 키우면서 대출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KM 그룹만이 여유가 넘칩니다.”

실제로 그러했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이 일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니까.

그전까지만 해도 다른 대기업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 이는 없었다.

결국 같은 말이 계속 뱅뱅 돌기만 했다.

최용욱 회장은 결국 본심을 드러냈다.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자네 기업 경영에 간섭하기는 좀 그러니까. 솔직히 아파트 건설은 좋아. 그런데 부실 콘도는 또 뭔가. 백화점 사업은 또 뭐고, 심지어 골프장 사업까지 하려고 했다면서?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어야 그걸 다 감당할 수가 있어? 고작 100억을 빌려서 메꿀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 하고 있잖은가!”

“그, 그건…….”

최용욱 회장은 우성 건설이 무리하게 확장한 사업 건을 하나둘씩 구체적으로 다 예를 들었다. 그중에 가장 문제가 심각한 것은 부실 콘도 사업이었다.

이건 막말로 돈 먹는 하마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좀 심한 것 아냐. 우리는 말이야. 알토란 같은 사업부를 노조 반대에도 밀어붙여서 다 정리했어. 그 과정에서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는지 아는가. 지금 내 집 앞을 봐. 아직도 그놈의 노조가 와서 시위를 벌이니까.”

실제로 KM 그룹 2차 구조조정은 멀쩡한 계열사를 정리하면서까지 단행되었다.

대체로 고용 승계 문제 협상이 진행되어서 좋게 끝나기는 했다.

그런데 아닌 계열사도 있었다.

독자 생존 하기 어려운 계열사들의 경우에는 상황이 좋지가 않았다.

인수한 업체가 기존 직원의 50% 이상을 구조조정 하면서 임직원들이 길바닥으로 내쫓겼다.

이미 계열사를 팔아치운 최용욱 회장도 안타깝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최용욱 회장 자택에 몰려와서 계속 시위를 벌였다.

KM 그룹은 두 번에 걸친 구조조정 덕분에 안정적인 기반을 얻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이 좋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임직원을 희생한 덕분에 생긴 것이 사내에 쌓인 현금이지. 자네들은 막장 돈 잔치를 벌여놓고 문제가 생긴 돈을 우리의 피 같은 돈으로 메꾸자는 거야? 그걸 우리 임직원이 알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회, 회장님, 하, 하지만 이번 한 번만…….”

“자네는 내가 우리 KM 그룹이 구조조정을 할 때 비웃던 친구 중의 하나지?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이러면 안 되지?!”

“…….”

허원진 부회장은 어깨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는 무슨 말을 해도 최용욱 회장의 도움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실 최용욱 회장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KM 그룹이 구조조정을 통해서 얻은 게 지금의 KM 그룹 사내 유보금이니까.

그걸 자신이 빌려달라고 할 권리는 없었다.

사실 우성 건설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선제 구조조정을 했다면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최용욱 회장은 바로 이 점을 걸고 넘어갔다.

“잘나갈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겠지. 은행에 300억, 400억 막 빌려서 자금을 탕진했을 거야. 그거 다 탐욕이잖아. 그때는 우리 KM 그룹 하는 짓이 미친 짓으로 보였겠지. 이봐, 허 부회장님,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최소한 양심이 있다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최용욱 회장 말처럼 당시 우성 건설은 사장단 회의를 하면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다.

그는 결국 몸을 돌려서 최용욱 회장의 서재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 * *

최용욱 회장도 허원진 부회장이 떠나자 기분이 좋지 않아서 최동영 상무를 내보냈다. 그의 심사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편으로는 통쾌했다.

지금은 자신을 비웃던 이들에게 제대로 복수를 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을 돌아보면 최용욱 회장의 머릿속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당시 KM 그룹 구조조정을 2차에 걸쳐 진행하면서 말이 많았다.

전경련에서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노조들에게서는 계속해서 임직원을 갈취했다고 욕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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