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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08화 (608/1,021)

#608.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제대로 판을 벌여 봐야죠. 일본 업체에는 최대한 이익을 봐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부정적인 소리를 들을 테니까.”

“…네.”

조성돈 팀장은 혹시나 최민혁 실장이 어설픈 애국심 때문에 새방 전지를 끌어들였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역시 최 실장님.’

* * *

샐로먼 브러더스 코리아의 제임스 러너 이사는 한국 지사에 온 이후에 재미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간 IP 시티폰 문제를 정리한다고 한국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주로 동남아 전역을 누비면서 각국 정부와 사전 협상을 시작했다.

필요하다면 미국 국무부에 로비해서 각국 정부에 온갖 압력까지 넣었다.

특히 중국 전역에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이미 IP 시티폰은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단하에서 한 일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최민혁이 팔아치운 IP 시티폰 기술은 진짜였으니까.

다만 우려하는 이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좀 나왔다.

[제임스 정말 이래도 괜찮아? 너무 무리하는 것 아냐?!]

하지만 제임스 이사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IP 시티폰 전체 상황 조율에 더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IP 시티폰 단말기의 배터리 관련된 부분은 과소평가했다.

시스템이 중요하지 단말기는 외주를 주면 간단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거기에 배터리 부품 정도야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맞는 이야기였다.

동남아 쪽 생산 설비를 이용하면 간단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차세대 배터리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이 배터리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한국에 여전히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은 데니스 샐로먼 이사 때문이었다.

[제임스 이사, 미친 것 아냐? 지금 한국에서 최민혁 실장이 무슨 짓을 하는지 확인을 해봤어? 당장 한국에 가서 한국 일이나 제대로 해!]

[당신 일이나 제대로 하지?]

그는 태국으로 쫓겨난 패배자 데니스 샐로먼 이사의 말을 무시했다.

하지만 확인은 해보았다.

최문경 부회장 측에 전화해 자세한 상황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때 처음 들은 것이 바로 리튬이온배터리 특허였다.

그다음에 들은 것은 리튬폴리머 특허였다.

최문경 부회장도 약간은 지친 목소리였다.

[솔직히 최 실장 그놈이 리튬폴리머 특허까지 준비했는지는 몰랐네.]

[리튬 폴리머라…….]

제임스 러너 이사는 중국 출장을 정리하고는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배터리 산업 쪽은 잘 몰라서 본사에 있는 킬리언 시몬스 이사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킬리언 시몬스 이사는 역시 아이큐 150의 천재답게 배터리 쪽에 식견이 있었다. 그는 베일런스 쪽을 알아봤다.

그런데 베일런스가 오히려 이 정보를 얻고는 난리가 났다.

[특히 베일런스, 벨코어사 쪽이 이 정보 때문에 시끄러운 것 같아. 우리 쪽에서도 적지 않은 투자를 진행했으니까. 우리 측에 왜 이제야 정보를 주냐고 난리야.]

미국 정부에서 미는 기업이 바로 베일런스, 벨코어사와 같은 기업이다.

정확히는 미국 정부가 배터리 쪽에서 어느 정도 싹이 보일 만한 기업은 다 밀어줬다.

그렇게 지원한 자금 중에는 샐로먼 브러더스의 자금도 있었다.

이 사업 역시 하루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 일이 아니었다.

몇 년에 걸쳐서 차분하게 진행된 일이었다. 이제 막 과시적인 결과가 나온 시점에서 최민혁 실장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셈이었다.

이 중요한 정보를 샐로먼 브러더스는 상황이 다 끝난 마당에 알린 것이었다.

베일런스가 발칵 뒤집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게 무슨 소리야?’

* * *

제임스 러너 이사는 그제야 술에서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조사하고서야 배터리 분야가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에서 진행한 몇 가지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아냈다.

미래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 대상 중의 하나였다.

결코 단말기에 들어가는 외주 기술로 취급되어서는 곤란했다.

물론 배터리 생산 자체는 외주를 줘도 되지만 원천기술은 아니었다.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최문경 부회장을 직접 찾아가서 만났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고 소니를 비롯한 일본 업체는 왜 이 일에 관심을 두는 겁니까?”

소니는 결국 최문경 부회장 자신이 저지른 실수 때문에 생긴 일이라서 그 부분은 무시한 채 그저 돌아가는 상황만 말해주었다.

특히 KM 전자에서 출원한 리튬이온배터리 위주로 말이다.

리튬폴리머 특허까지 포함하면 무려 6,000건이 넘었다.

“…….”

제임스 러너 이사는 최문경 부회장이 조사한 보고서를 살피면서 크게 당황했다. 그는 도대체 일이 어째서 이렇게 흘러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에서 투자한 일조차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투자 손실은 그렇다고 하자.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느린 정보 확인이다.

투자자인 샐로먼 브러더스가 한국 상황을 이제야 파악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실책이었다.

사전에 보고를 올렸다면 본사 차원에서 대응했을 테니 말이다.

“…부회장님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솔직히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우리도 당황하고 있어.”

“아니,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최문경 부회장님은 누가 뭐래도 KM 그룹의 부회장입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조치를 안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실로 당연한 이야기다.

KM 전자는 KM 그룹 계열사 중의 하나다.

부회장이 계열사 중의 하나인 KM 전자의 관리를 못 한다니.

그러면 그건 부회장이 아니지 않은가.

최문경 부회장은 설사 겉으로는 계열 분리가 되었다고 해도 KM 전자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다. 최용욱 회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신은 최민혁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다. 최영란 본부장 때문에 KM 그룹 내의 영향력도 다 잃어버리는 중이었다.

“나도 답답해.”

최문경 부회장은 탄식하고 말았다. 그도 요즘은 지쳤다. 이제까지 만만하게 본 조카 최민혁은 그저 단순한 조카가 아니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파트너인 최문경 부회장이 저래서는 곤란했다. 계속 탐욕을 부려야 하니까.

그는 짜증이 나서 소리쳤다.

“저는 이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최민혁 실장과는 결국 경영권 분쟁 때문에 싸우는 것 아닙니까. 꼭 혼자가 힘들다면 다른 이의 도움을 얻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쉽지 않아.”

“아니, 도대체 뭐가 그리 어렵다는 말입니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부회장님처럼 행동하는 기업가는 없습니다!”

“나도 아네.”

최문경 부회장도 내심 화가 났다. 그런데 그걸 토로하지는 못했다. 이번 일 때문에 샐로먼 브러더스 본사에서 자신에게 직접 연락도 왔다.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소통 문제였다.

배터리 관련 문제를 사전에 언급했다면 본사 측에서 나설 수도 있었다.

그렇게만 되었어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자신이 이번 일의 책임이 뒤집어쓸 것을 염려해서 최문경 부회장을 계속 갈구고, 또 갈구었다.

최문경 부회장 처지에서는 분노할 일이었다.

“제임스 이사, 말 함부로 하지 마!!”

“이 일은 모두 부회장님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최문경 부회장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삿대질까지 했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그제야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습니다. 제가 지나쳤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형제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은 그들의 도움을 얻는 것도 한 방법 아닙니까. 그들 인맥이 있을 테니, 한국 배터리 업체와 손을 잡고 압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형제라…….”

풀썩 자리에 앉은 최문경 부회장은 쓰게 웃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 자신은 경영권 분쟁 중이다. 그래서 이제 와서 그들과 손을 잡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최민혁 그놈만 정리하면 간단하게 끝나는데, 굳이 동생들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둘째야 감옥에 있으니 배제한다고 해도 셋째 최동영 상무는 좀 달랐다.

‘가볍게 볼 수 없는 놈이지.’

매사에 늘 조용하다.

그게 말이 되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얻을 이익이 수천억이 되는데 말이다.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다고 봤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제임스 러너 이사 제안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지금은 차라리 힘을 합치는 것이 나았다.

제임스 러너 이사는 그제야 최문경 부회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부회장님, 지금 이대로 구경만 하다가는 우리 쪽 사업도 타격을 받습니다. 본사에서도 이번 사태 때문에 한국 지사를 부정적으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부회장님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건 또 예상 밖의 일이었다.

샐로먼 브러더스 내에서의 부정적인 시선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제임스 러너 이사를 만나기 전에는 샐로먼 브러더스가 배터리 분야에도 투자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알겠네. 한번 이야기나 해보지.”

“필요하다면 저도 모든 것을 다해서 부회장님을 돕겠습니다.”

“…고맙네.”

최문경 부회장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는 샐로먼 브러더스가 이렇게 열심히 자신을 돕는 것을 진정 고마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샐로먼 브러더스는 글로벌 투자 기업이다. 다루는 자금 규모가 차원이 달랐다. 그런 기업에서 이제 최민혁 실장을 진지하게 지켜본다.

이 모든 사태의 배후에 최민혁 실장이 있으니, 한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하여간에 민혁이 이놈이 물건은 물건이야.’

* * *

최동영 상무와 손을 잡기 위해서는 조사가 필수였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이 과정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사 결과는 그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비서실 소속 팀장을 모두 데려와서 한 보고 때문이다.

“삼보 지질 부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멀쩡한 흑자 기업이 도산하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군.”

삼보 지질은 굴착 분야에서 도급 순위 1위를 달리는 기업이다.

그런데 작년 건설 업체의 연쇄 부도 도산 사태 이후에 은행이 자금을 거둬들이면서 자금 운영난에 빠진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삼보 지질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했다.

정부가 나서서 어려운 중소기업 구제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태의 본질적인 원인은 삼보 지질에게 있다.

과다한 설비 투자가 그 단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나서서 도와줬다면 도산까지는 안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삼보 지질은 잘 알겠어. 이게 동영이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이건 한 예입니다.”

그가 내놓은 것은 위기 상황에 놓인 중견 건설 기업 리스트였다.

대체로 상황이 안 좋은 기업들이다.

정부가 부랴부랴 나서서 이들을 도와준다고 하고 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그 대상 중에는 믿기 어려운 기업도 있었다.

“…우성 건설? 나랑 농담해?”

“상황이 심각합니다.”

우성 건설은 도급 순위 18위의 대형 주택 건설 업체였다.

하청 업체만 무려 3,000개를 넘었다.

권재홍 비서실장도 평소와는 달리 크게 당황한 채 말했다. 그 역시 이런 사태를 조사하기 전에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비서실 가용 인원을 몽땅 최민혁 실장에게 돌린 덕분에 외부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한동안 말을 꺼내지 않았다. 최동영과 손을 잡으려면 그냥 가서 말로만 ‘우리 과거 잊고, 앞으로 잘해보자!’로 끝낼 수는 없다.

최소한 최동영 상무가 손에 쥔 KM 건설의 상황을 알아야 했다.

그런데 조사 결과에서 정작 엉뚱한 문제들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이건 조카 최민혁 실장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서, 설마 KM 건설도 상황이 안 좋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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