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04화 (604/1,021)

#604.

이 부분은 공채덕 과장과 김흥준 과장 두 사람에게 일을 동시에 나누어 줬다.

서로 경쟁을 시킨 것이었다.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리튬이온배터리의 안정성 문제를 거론했다.

자연히 나온 것은 그 대안이었다.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라…….”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는 리튬이온배터리와는 달리 고분자 중합체 형태의 전해질을 사용한다.

따라서 폭발 위험성이 없고, 3㎜ 정도로 얇은 소형으로 제작할 수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를 보완하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최민혁 실장이 준 특허 중에는 이와 관련된 부분이 있었다.

다만 리튬이온배터리처럼 다양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리튬 폴리 배터리 관련 특허를 조사했다.

필요하다면 관련 대학 연구소 쪽과도 접촉해서 만났다.

그 과정에서 꽤 괜찮은 특허를 전결 처리해서 사들였다.

이 정도는 최민혁 실장이 권한을 위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확히는 KM 전자 내에 워낙에 현금이 넘쳐나서 별 부담 없이 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학 연구소 쪽에서는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 특허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들에겐 특허 자체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임기석 부장은 이미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쓸모없는 특허라도 쌓이고 쌓이면 그중에 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도 이 일이 무조건 해피 엔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모인 특허는 꽤 많았다.

짜깁기해서 그럴듯한 특허도 있고 말이다.

공채덕 과장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팀이 최민혁 실장님 같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돈을 땅바닥에 퍼붓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을 해봐. 한국 기업 대다수는 차세대 전지 분야에서 미국, 일본에 뒤처지고 있어. 심지어 전량 수입을 하니까.”

“그건 그들이 그만큼 오랜 기간 투자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 역시 투자를 하잖아. 한국 전기 연구소만 해도 틀리지 않아.”

“말이 좋아서 우주 항공 전력 분야에 투자한다고 하지만 결과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차마 쓰레기 특허가 아니냐!’고 말하지는 않았다.

김홍준 과장의 반응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실용화입니다. 일본 애들은 경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손을 잡았습니다. 소니와 닛산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이 공동 연구 팀을 꾸린 것은 그만큼 이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들은 힘을 합쳐서 닛산 자동차에 적용될 전지를 개발 중이었다.

다만 아직 성공한 사례는 없다.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임기석 부장은 혀를 찼다.

“그래서 지금 일이 중요하잖아.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연구에 집중해!”

두 사람을 향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귀를 쫑긋 열고 있는 권우영 사원을 비롯한 신입 사원들에게 간접적으로 한 말이다.

그들이 지금 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선뜻 이 말에 공감하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우격다짐으로 구한 특허가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영 부정적이었다.

‘이거라도 해야지. 언제까지 최 실장님이 떠먹여 주는 밥을 먹을 수만은 없어.’

* * *

임기석 부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한 결과물을 몇 번이나 검토한 끝에 최민혁 실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는 돈이 되지 않는 특허를 보면서도 관심이 있게 쳐다보았다. 오히려 임기석 부장을 격려했다.

“호, 이거 흥미롭군요.”

하지만 임기석 부장은 어느 정도 특허 가치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자신이 하고서야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깔아줬던 특허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았을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봐도 특허 가치가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최민혁은 힐끗 임기석 부장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시키는 일만 하던 그가 아니었다. 물론 실제로 그가 들고 온 특허에 가치는 없다.

‘이대로는 쓰레기지.’

하지만 손을 살짝만 써서 수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민혁은 그 자리에서 그가 가져온 특허에 살을 붙이고, 뼈대를 추가했다.

그는 심지어 리튬 이온 폴리머 전지 제조와 관련해서 의견을 추가했다.

주로 주입된 전해액 때문에 공정상에 생기는 문제가 그 핵심이었다.

전해액 숙성과 같은 부분은 전지 안정화에 꽤 중요했다.

최민혁은 숙성 공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하는지 따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다음 설명은 쉬웠다.

이것과 관련된 특허를 새끼 치듯이 하나씩 만들어가면 되니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해액 숙성에서 실링 공정이 자연스럽게 나오니까. 진공 실링이 가장 기본이 됩니다.”

하지만 숙성과 실링을 타고 나오는 특허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최민혁은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처럼 특허를 하나씩 만들어냈다.

아니, 아예 신바람이 났다.

이제까지는 밑의 사람에게 자신이 아는 지식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한 적이 많아서 자제했다.

그런데 이 경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 이럴 수도 있군요.”

혼자 독백하는 그의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기존 리튬 이온 전지도 무게만 40% 가까이 줄일 수가 있고, 모양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꿈의 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일런스, 벨코어사에서 만든 원천기술이니까.’

최민혁은 필요한 부분을 하나씩 메꾸면서 그들의 원천특허에 감탄했다. 얼핏 봐서는 임기석 부장이 만든 특허를 코어 삼아서 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리고 임기석 부장의 특허 팀이 준비해 온 재료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따라서 수정이 그만큼 더 쉬웠다.

“…….”

하지만 임기석 부장은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비록 나름 최선을 다했다곤 하지만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쓰레기 특허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황금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역대급 연금술사를 보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신바람이 난 최민혁은 흥취에 빠져서 미친 듯이 특허를 찍어내다가 한순간 정신을 차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 이거 괜히 저 혼자만 난리를 친 것 같네요.”

“아, 아닙니다.”

“이번 일은 정말 좋았습니다. 사실 이 폴리머 특허를 연구하는 곳은 많으니까. 아차 했으면 경쟁에서 졌을 겁니다.”

“…놀, 놀랐습니다.”

“뭐, 임 부장님이 아니었으면 저도 몰랐을 겁니다. 혹시 모르니, 베일런스 같은 업체 쪽도 한번 알아보세요.”

“베일런스 말입니까.”

“네. 이미 일본 업체까지 끌어들인 마당 아닙니까? 거기에 미국 업체를 더한다고 해서 나빠질 일은 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최민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임기석 부장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게 볼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큰 그림에서 본다면 배터리 쪽에 우리 첫째 큰아버지가 탐욕을 부리게 하는 것이 좋으니까. 다르게 본다면 미국 업체까지 끌어들여서 최문경 부회장을 견제할 수도 있지.’

세세한 부분에 대한 것을 결정한 최민혁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차세대 배터리에 관한 연구는 미국에서도 꽤 진행 중입니다. 가장 앞선 곳 중의 하나가 베일런스고요. 이미 미국 정부도 차세대 2차 전지 부분에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겁니다.”

“설마 일본을 의식한 겁니까?”

“그렇죠. 아마 우리가 일본 업체와 손을 잡게 되면 견제가 들어올 겁니다. 우리 최문경 부회장님이라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겁니다. 샐로먼 브러더스라는 동반자가 있으니, 더 쉽죠.”

“…알겠습니다.”

임기석 부장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최민혁 실장이 거기까지 생각하는지는 몰랐다. 보면 볼수록 놀랍기만 했다. 자기 나이는 최민혁 실장보다 근 2배나 많은데, 생각은 자신보다 더 깊었기 때문이다.

그는 힐끗, 최민혁이 이 자리에서 수정한 폴리머 특허를 하나씩 살폈다.

물론 아이디어와 간단한 개요만 나온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쳤다.

임기석 부장이라면 그 특허를 이용해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전체를 하나로 묶으면 리튬 폴리머 배터리 특허풀이 완성된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특허 팀이 머리를 싸매고 했는데도, 이렇게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아니,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더 놀랄 거야.’

최민혁은 임기석 부장한테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미리 선수를 쳤다.

“이번에는 특허 팀 도움 덕분에 이 특허를 얻었네요. 특허 팀이 아니었다면 이런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을 겁니다. 훌륭합니다. 정말 최고입니다!”

임기석 부장은 당혹스러워서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 그게…….”

하지만 최민혁 실장은 굳이 임기석 부장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 부장님이 정말 고생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 이런 특허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전 어디까지 특허 팀의 아이디어를 응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핵심은 최민혁 실장님이 손을 써서 만들어진 겁니다.”

“임 부장님 아부 솜씨가 제법입니다. 하지만 전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밑에 직원 공적을 가로채고 싶지도 않습니다.”

“시, 실장님, 그래도…….”

“그만하시죠. 이미 다 아는 사실을 속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최민혁 실장의 단언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일을 계속 특허 팀의 실적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임기석 부장은 한동안 최민혁이 추가한 특허를 확인하고 나서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맞습니다. 우리 특허 팀이 한 결과가 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정확합니다.”

“좋네요. 안 그래도 리튬이온배터리의 취약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 특허라면 그 대안으로 충분할 것 같네요. 바로 정리해서 결과를 보여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오늘 특허 팀은 어수선했다. 그들 역시 마케팅 팀이 이번에 미국 소송에 끼어들어서 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상 마케팅 팀만이 아니라 다른 팀들 역시 이전과는 달리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임기석 부장의 지시에 따라서 보고서를 만들기는 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차에 임기석 부장이 최민혁 실장에게 보고 후에 회의를 소집했다.

공채덕 과장은 이런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영업 팀은 거의 국외로만 돈다고 하던데, 이러다가 우리 팀이 처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흥준 과장 역시 심각하게 고민했다.

“앞으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아요.”

두 사람의 굳은 얼굴 때문에 권우영 사원을 비롯한 고정호 사원은 눈치만 봤다. 그들은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기석 부장이 드디어 굳은 얼굴로 나타나자 다들 그의 입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말없이 최민혁 실장에게 지시받은 보고서 복사본을 나누어 줬다.

바로 리튬이온배터리 관련 추가 특허 목록과 리튬 이온 폴리머 배터리 관련 특허에 관한 것이었다.

그냥 아이디어만 내놓기는 힘든 법.

임기석 부장은 나름 자신이 직접 살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겉으로 봐서는 이전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이 던져 놨던 특허들 같았으니까.

“어!”

다들 크게 놀라지 않았다. 설마 하니 최민혁 실장님이 또 자신들에게 새로운 일을 줬나 싶었다.

하지만 곧이어 다들 찬사를 터뜨리고 말았다.

“헉, 그사이에 최 실장님이 이 특허를 다시 고안한 겁니까?”

“역시 최 실장님입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불가사의합니다.”

“도대체 최 실장님은 이런 특허를 어디서 가져오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최민혁 실장 용비어천가 노래를 들은 임기석 부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꼭 그렇지도 않아. 잘 보면 자네들이 보고한 특허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추가한 것을 알 수가 있을 거야. 거기에 최민혁 실장님이 살을 붙였고, 내가 마무리를 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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