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600화 (600/1,021)

#600.

[…….]

최문경 부회장은 황당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양승준 전무의 내심까지는 몰랐다.

양승준 전무는 이미 최용욱 회장이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차세대 배터리 공급 계약을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최문경 부회장을 걸고넘어졌다.

다만 그 내막을 모르는 최문경 부회장은 이를 악물었다.

[양 이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양승준 전무는 느긋했다.

[네, 저를 지지하는 주주가 꽤 있습니다. 그들을 대변해서 질문하는 겁니다. 부회장님 한 사람 때문에 우리 회사가 타격을 받도록 둘 수는 없습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너무 분노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뭐 어쩌자는 거야? 날 보고 이사회에서 물러나기라도 하란 거야?!]

하지만 양승준 전무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부회장님은 실제로 KD 통신과 관련이 없습니다. 아, 그 부분은 넘어가죠.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부회장님이 KD 통신에서 손을 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란 겁니다. 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압니다. 대신 괜히 최 부회장님이 나서서 상황을 어렵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 협박하는 건가?!]

양승준 전무는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최문경 부회장의 태도에도 양손을 펼쳐서 임원 회의에 참석한 이들을 가리켰다.

[전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임원들 표정을 보세요. 솔직히 오늘 최 부회장님이 이사회에 참석한 것도 잘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최 부회장님은 KD 통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습니까?]

정확히는 최문경 부회장이 박아놓은 주광진 상무가 KD 통신과 관련이 있었다.

이 사이에 샐로먼 브러더스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의 배후는 당연히 최문경 부회장이었다.

다만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이 요즘 너무 벼랑 끝으로 몰려서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었다.

최문경 부회장 자신이 KD 통신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문제는 지금 임원 회의의 분위기였다.

차세대 배터리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임원 회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최문경 부회장을 미는 쪽에서도 눈치를 봤다.

특히 오성 전자가 배후인 김광헌 이사는 손익계산을 한 후에 양승준 전무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아한 이는 한부 그룹이 배후인 이필영 전무였는데, 그도 암묵적으로 양승준 전무 쪽을 지지했다.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어금니를 으드득 갈면서 이 자리에 참석한 임원들을 쳐다보았다.

그중에는 김현탁 사장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물론 최문경 부회장의 시선을 바로 피하고 말았다.

그는 한동안 양승준 전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배후가 최용욱 회장인 것도 문제였다. 과거 장승일 실장 사수로서 많은 실적을 쌓았던 것도 있어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양 전무, 이번 일은 기억해 두겠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전 KD 통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회장님이 나서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모욕감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임원 회의실을 나가고 말았다.

[…….]

김현탁 사장은 혀를 내두른 채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그는 새삼 자신이 바지 사장이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

‘골 때리네. 그런데 양승준 전무가 대단하네. 최용욱 회장 라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설마 면전에서 최문경 부회장을 대놓고 박아버리다니.’

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양승준 전무의 태도만 봐서는 최용욱 회장이 최문경 부회장을 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임원 회의 분위기는 서로의 눈치를 보기에만 급급했다.

양승준 전무는 그제야 자신이 나서서 이사회 분위기를 주도했다.

[자, 대충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았으니, 일단 차세대 배터리 공급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제가 알아서 책임을 지겠습니다.]

뜻밖의 이야기에 다들 귀를 쫑긋했다. 그들 역시 최민혁 실장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덕분에 임원 회의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 * *

최문경 부회장은 KD 통신 이사회 회의 중에 나와 KM 그룹 내의 부회장실에 돌아와서야 자신의 감정을 터뜨렸다.

“으아아악!”

그의 분노는 당연했다.

“…….”

권재홍 비서실장은 다급하게 부회장실을 나가서 비서를 다독거렸다.

그는 최문경 부회장이 골프채를 휘두르며 미친놈처럼 날뛰는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설마 메드 드로닉 사태가 KD 통신으로까지 불똥이 튈 줄은 몰랐다.

길길이 날뛰던 최문경 부회장은 뒤늦게야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이미 부회장실은 난장판이었다.

책상 위의 서류는 쓰레기처럼 늘렸다.

서재에 있는 책은 곳곳이 찢긴 채 폐지처럼 사무실 바닥을 굴러다녔다.

다행히 비서실에서 눈치껏 들어와서 부회장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이 사태가 메드 드로닉 문제로 시작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일단 다른 일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해도 국내에서 메드 드로닉 관련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제 와서? 지금 와서 손을 쓴다고 무슨 효과가 있어?!”

하지만 권재홍 비서실장도 이전처럼 오락가락하지 않았다.

“미국 소송 일은 국내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태는 금방 가라앉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국내 언론이 계속 사태를 키우면, 이 상황이 오래갈 겁니다. 그게 최 실장이 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설마 민혁이 그놈이 미국 메드 드로닉 소송을 노이즈마케팅으로 활용한다는 소리야?”

“그렇지 않고서야 KM 전자 마케팅 팀이 미국까지 찾아가서 직접 그 소송에 끼어들 이유가 없습니다.”

“끙.”

최문경 부회장은 지금 일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권재홍 비서실장 말대로 이대로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좋아. 다만 일본 업체가 민혁이 그놈을 찾아간 것처럼 사태를 악화시키지는 마.”

“…알겠습니다.”

* * *

권재홍 비서실장은 메드 드로닉 코리아에 가서 페트로 김과 같이 협상을 진행했다.

페드로 김 입장에서도 메드 드로닉 미국 소송 일에 국내에 계속 퍼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소송과는 별개로 영업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대형 언론사 지인을 직접 가서 만났다.

그리고 광고를 비롯한 다양한 당근을 내밀었다.

비록 손실이 만만치 않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이었다.

물론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고집을 피우는 한국 언론사를 상대로 협박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상황은 나빠지지 않았다. 메드 드로닉 소송이 한국에서 잠깐 소개되기는 했지만, 일파만파로 퍼지지 않은 것이다.

[아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할 시에 법적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런데 이 엄포가 엄포는 아니었다.

실제로 아직은 소송 중이라서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물론 이런 메드 드로닉의 대응에 피식 웃고 말았다.

“어째 이상하게 조용하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조성돈 팀장 역시 메드 드로닉 관련 자료를 보고했다.

“지난주까지는 소송이 메드 드로닉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그런데 최준형 과장이 끼어든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메드 드로닉이 재판에서 이기기는 어려울 겁니다.”

“원인이 명확하게 검증이 된 겁니까?”

“어제 환자를 상대로 임상시험을 했는데, 문제가 확인되었습니다. 최악의 경우 환자가 사망하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최민혁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비록 국내 언론은 입을 다물었지만, 미국 내의 사정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메드 드로닉을 물고 늘어지면서 살인 기계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미국 언론사가 언급한 것은 미래 기술의 ‘KMB-01' 배터리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미래 기술은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제대로 된 광고 효과를 누린 셈이다.

“아, 그러면 수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단 중지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다행이군요.”

조성돈 팀장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보수적인 병원이나 의사라고 해도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데, 수술할 수는 없을 겁니다.”

최민혁은 마케팅이 꽤 성공적이라는 것을 확신한 후에 일본 업체에 대한 문제를 꺼냈다.

“조 팀장님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솔직히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시간이 넉넉한 편이니, 성급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래 기술을 밑바닥부터 차분하게 키우자는 말입니까?”

“아니, 그런 뜻은 아닙니다. 일본 업체와 협상하는 것도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최민혁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조성돈 팀장 발언을 인상 깊게 봤다.

“두 가지 다 검토할 만한 일이란 말씀입니까?”

“네.”

최민혁은 자신이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었지만, 최준형 과장을 떠올렸다. 그래서 이번 결정도 기획 팀 역량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니, 솔직히 기획 팀이 다시 검토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그게 알고 싶었다.

“좋습니다. 기획 팀이 한번 최종적으로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 * *

기획 팀은 조성돈 팀장의 지시하에 이번 일을 본격적으로 검토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이영란 대리가 슬그머니 한 가지 의견을 냈다.

“다 좋은데요.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우리 회사, 미래 기술, 그리고 일본 업체뿐이지 않습니까. 국내 다른 배터리 업체에 타격이 될 것 같은데, 차후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당연히 문제가 된다.

일본 앞잡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아니, 최문경 부회장님이라면 사태를 그렇게 몰아가겠지.’

그리고 최민혁에게 반감을 품은 이들이 결집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실상 한일 관계는 단순히 이론적으로 결론 내리기 어려웠다.

지난 과거사 때문에 얼마든지 마녀사냥이 가능했다.

대안은 일본 업체에 대응되는 세력이다.

그게 바로 국내 배터리 업체였다.

조성돈 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굳이 국내 배터리 업체까지 생각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눈치를 보던 임웅 대리 역시 슬그머니 이영란 대리 의견에 공조했다.

“그나마 LC 화학 같은 대기업이 이익을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굳이 일본 업체와 손을 잡는 것은 부정적입니다.”

조성돈 팀장은 일축했다.

“물론 나도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냐. 하지만 배터리 원천기술을 보유한 곳은 일본 업체야. 그래서 그들과 협상을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국내 업체도 그만한 특허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조성돈 팀장은 미팅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남은 팀원들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대다수가 일본 업체와 손을 잡는 것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그도 이 일을 최민혁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했다.

“좋아. 일단 한번 몇몇 국내 배터리 업체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 뭐, 우리야 배터리 수급만 좋으면 되니까.”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방향이 정해지자 기획 팀은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을 조사했다.

다만 그들은 지금 하는 일에 이 새로운 배터리일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도 이번 일은 나름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국내 배터리 업체 중에도 괜찮은 업체가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새방 전지였다.

축전지 분야에서 명성이 높아서 10대 기업에 꼽히는 기업이었다.

이 새방 전지의 전신인 진해전지는 출발 자체가 해군기술 연구소에서 출발했다.

새방 전지가 이 진해전지를 인수해서 지금의 새방 전지로 만든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새방 전지는 새방 그룹 산하 계열사였다.

축전지 원천기술에 대한 기본이 탄탄해서 꽤 많은 원천 특허를 보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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