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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97화 (597/1,021)

#597.

권재홍 비서실장은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저도 압니다. 저도 답답합니다. 솔직히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당장 일본 배터리 업체조차 KMB-01 기술을 보고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그런데 그도 곧 수긍하고 말았다. 의료기기에 들어가는 배터리 산업에 대해 모를 수가 없다. 배터리 납품 담당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아는 사실도 있다.

당장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휴대폰 쟁탈전이다. 이 기술 경쟁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배터리이니까.

권재홍 비서실장은 페트로 김의 표정을 보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 말이 일단 먹힌 것 같아.’

다만 그는 페트로 김과 작별을 고하면서도 뒤늦게 탄식하고 말았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 때문이었다.

지금 봐서는 괜히 일본 업체를 자극한 것 같았다.

일본 업체가 한국 사정을 몰랐다면 최민혁 실장을 찾아가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의 말대로다. 지금은 일단 하는 데까지 해봐야 했다.

‘뭐, 이번 일은 갈 때까지 가봐야겠어.’

* * *

페트로 김은 이번 사건의 배후가 KM 전자라는 것을 알자 고민했다. 그는 다시 메드 드로닉 본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곤 최민혁 실장을 직접 찾아가서 이 문제를 확인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본사의 반응이 이상했다.

[모든 일을 중지하고, 지시를 기다릴 것!]

뜻밖의 대답이 왔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민혁 실장을 직접 만나서 이 문제를 다시 협상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역시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최민혁 실장을 만나지 말 것.]

‘이게 무슨 소리야?’

페트로 김은 본사의 반응에 의아했다. 혹시 자신이 이번 일에 관한 책임을 져야 하나 싶었다. 황당하지만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수술 때문일까?’

결국 서울 중앙 병원의 박태호 교수에게 전화했다.

박태호 교수는 버럭 화부터 냈다.

[도대체 왜 자꾸 이런 식으로 전화하는 겁니까? 혹시 심장 세동 제거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있다면 사전에 말씀해 주세요. 만약 일이 잘못되면 절대로 그냥 있지 않을 겁니다!]

박태호 교수가 분노한 건 역시나 한영 일보 기자들이 자꾸 찾아와서 아픈 곳을 찔러대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야 웃고 말았지만 그게 계속되니, 불안한 것이었다.

페트로 김은 결국 긴장했다. 그는 도저히 이 일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미국 대학 동창 중에 본사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반응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심장 세동 제거기 관련 사안은 일단 입을 다물고 있어.]

[아니, 이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라도 터진 거야?]

[나도 내막을 말해줄 수는 없어. 그러니 일단 자네는 침묵하는 것이 좋아.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내지 않는 게 좋겠어.]

[아니, 그러니까. 그러면 최소한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확인해야 할 것 아냐? 사전에 문제를 차단해야지.]

[자네 마음은 알아. 나도 말을 해주고 싶은데, 윗선에서 입을 다물라고 지시가 내려왔어. 그러니 자네가 할 일은 아예 대응하지 않는 거야.]

페트로 김은 이제 도저히 이 일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러면 지금 서울 중앙 병원에서 예약된 수술은 어떻게 해?]

[수술도 일단 중지해. 곧 통보가 내려갈 테니까.]

[정말 무슨 일이 있구나. 가만, 혹시 이 일이 내 책임이란 거야?]

[아, 정말 답답한 친구네. 그냥 일단 지켜만 보라고 하잖아.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낼 생각은 마. 자칫하다가 정말 자네 큰일 나!]

[…알았어.]

페드로 김은 황당했다. 그는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심장 세동 제거기 장비 관련 자료를 꺼내서 확인해 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는 못했다.

그는 고민한 끝에 한영 일보 범용구 기자에게 전화했다.

이전과는 달리 세세하게 질문했다.

통화 내용은 일전에 만나서 한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로서는 본사의 대응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범용구 기자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대답해 주기는 했다.

[정말 황당하군요. 아니, 그렇게 나 몰라라 하던 곳에서 갑자기 뭘 알고 싶기에 이렇게 전화를 해서 꼼꼼하게 묻는 겁니까?]

[지난 일은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언론사에서 나올 기사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직 기사는 내보내지 않을 겁니다. 다만 그쪽에 좋은 일은 아니죠. 심장 세동 제거기 자체의 문제이니까.]

아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이제야 심각하게 이 문제를 고민하자 최악의 상황을 곧 떠올렸다.

‘가만, 의료 장비에 문제가 생긴다면, 설마 사망할 수도 있다는 건가?’

페트로 김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그는 다시 자료를 찾으면서 동시에 미국에 아는 지인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설마 아니겠지.’

* * *

최준형 과장은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했지만, 이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최민혁 실장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진행된다고 해도 다른 대안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답을 쉽게 찾지 못했다.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완벽하게 만족할 만한 대안이 필요했다.

그렇게 자료를 찾고 또 찾았다.

아무리 메드 드로닉이 세계적인 의료기기 회사라고 해도 틈은 있을 것이라 봤다.

그의 이런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 중에 범용구 기자에게서 메드 드로닉 코리아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만, 얘들도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건가?’

최준형 과장은 그제야 진지하게 이 문제에 다시 접근했다.

문제는 심장병 급사 방지 수술은 아직 국내에서 진행되지 않았다.

즉 심장 세동 제거기 의료 사고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면 모를 수도 있지.’

그런데 국외는 좀 달랐다.

특히 미국에서는 뜻밖에 이 장비 수술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미처 생각도 못 한 일이 있었다.

이 수술을 받은 사람 40대 중년인 남성이 사망한 것이었다.

아니, 사망 자체는 큰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 남자의 아내가 이 안건을 가지고 메드 드로닉을 고소했다.

남편의 사망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더욱이 일반인인 그녀가 심장 세동 제거기의 문제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 소송은 당연히 메드 드로닉에게 유리하게 진행 중이었다.

최준형 과장은 일단 자신이 아는 모든 지인을 다 동원해서 미국 내의 모든 정보를 얻었고, 최주호 부장에게 보고했다.

“…이미 사망자가 있었구나.”

“그 원인이 배터리가 틀림없습니다.”

“하, 최 과장, 정말 대단해!”

“아닙니다.”

최준형 과장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은 정말이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찾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조성돈 팀장을 찾아가서 이 안건을 말했다.

조성돈 팀장은 헛웃음을 짓은 채 결국 최민혁 실장을 두 사람과 같이 찾아갔다.

* * *

사실 최민혁이 굳이 메드 드로닉 문제를 두고 본 것은 밑에 직원이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자신이 먼저 떡밥을 던져두었고, 그들은 여기에 따라서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래서는 곤란했다.

특히 최문경 부회장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앞둔 시점에서 지휘관의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자기 관점에서야 시간 낭비일 수도 있지만, 최준형 과장은 달랐다.

다만 그도 성과가 제대로 나올 것이라 확신하지는 못했다.

‘예상도 못 했네.’

“…소송이라.”

최준형 과장은 침을 튀겨 가면서 이 사실을 말했다.

“이게 의료 소송입니다. 만약 메드 드로닉이 지면 타격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래요?”

“저도 메드 드로닉 코리아의 반응이 수상해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최근 그들은 오히려 한영 일보 측에 전화해서 정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건 메드 드로닉 본사에 무슨 일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즉 큰 소송이 걸려 있다면 말이 됩니다!”

소송 성격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최준형 과장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최민혁은 국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았다.

‘하긴 국내에 사망자가 생겼으니, 미국에도 이미 있어야겠지.’

최민혁 자신조차 인생 1회 차에서 미국에서 생긴 사망자는 몰랐다. 그의 인식 밖의 일이었다. 그가 아는 미래 지식은 꽤 제한적이었다.

그는 이번 일을 통해서 새삼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깨달았다.

또한 해결책도 말이다.

그 답은 자신이 아니라 밑의 임직원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열정이 가득한 최준형 과장의 모습에 혀를 차고 말았다.

‘대단한 친구네.’

자신이 미래 지식을 이용하면서도 미처 간과한 부분이다.

또한 자신이 고쳐 나가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자신이 아는 지식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그러니 임직원들을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덩치를 더 키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냥 덮어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사망 원인이 배터리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건 오후에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걸 보고 다시 이야기하죠.”

* * *

최준형 과장이 오후에 직접 데려온 사람은 뜻밖에도 요즘 스마트폰 관련된 ARN 설계 때문에 정신이 없는 조창호 차장이었다.

“…제가 설명할 것은 이 심장 세동 제거기만 하면 되나요?”

“조 차장님, 가능하면 쉽게 설명 부탁합니다.”

“네.”

조창호 차장은 심장 세동 제거기와 오실로스코프를 가져왔다.

그는 이런 일이 늘 일상인 것처럼 세팅하기 시작했다.

“으음, 전혀 모르는 기기를 개발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리버서 엔지니어링입니다.”

리버서 엔지니어링은 쉽게 말해서 외부 특성을 거꾸로 추적해서 그 시스템을 거꾸로 베끼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베끼지는 못한다.

기본적인 형태를 기준으로 해서 나머지는 채워 나가야 한다.

그건 심장 세동 제거기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내부 동작은 매뉴얼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는 있다.

이를 토대로 해서 내부 신호를 측정해서 어느 정도 동작 확인이 가능했다.

매뉴얼상에 이를 체크하는 방법도 명시되어 있어서 더 쉽다.

실험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일정 수치만큼 소모된 배터리를 연결한 채 동작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평소 환자의 심장 박동을 모니터링 하는 중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전기 충격이 가해진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기기가 오동작한 것이었다.

조창호 차장은 오실로스코프상에서 전압 변화가 급격히 나타난 부분을 손끝으로 직접 찍어서 최민혁 실장에게 보여주었다.

“보셨죠?”

이전 초기 조사 결과와는 달랐다. 오동작이 일어나는 환경 자체를 명확하게 찾아냈다. 심지어 의료기기 역시 멈추는 것을 보여주었다.

조창호 부장이 다음에 한 것은 완충된 배터리로 다시 실험하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전기 충격이 팍하고 나타났다.

정상적으로 동작했다.

그다음에는 KMB-01 배터리로 실험했다.

놀랍게도 이 배터리로 한 실험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렸다.

“제가 이 심장 세동 제거기 특성을 잘 모르겠지만, 설령 전기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다고 해도 환자가 사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딱 문제가 생길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마 이런 문제 때문에 사망자가 나와도 그 원인이 쉽게 밝혀지지 않았을 겁니다.”

최민혁은 감탄했다.

“놀랍네요. 하면 이 장비를 착용한 환자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네. 특히 부정맥과 같은 심장 질환이 심한 환자는 심각할 겁니다.”

“하면 왜 그런 문제가 생긴 거죠?”

“아무래도 심장 세동 제거기가 가진 전기 충격을 주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요. 갑작스러운 파워 소모를 배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거죠.”

“배터리 안정성, 아니면 배터리 에너지 밀도 때문입니까?”

“한 가지 원인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유사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다시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압니다.”

그는 실제로 KMB-01을 사용해서 다시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서 이를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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