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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94화 (594/1,021)

#594.

시가 마사아키 박사는 안경을 다시 낀 채 배터리 특허출원 서류를 확인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 역시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두고 보면, 정말 히타치 쪽에는 큰 타격이 될 겁니다.”

시가 마사아키 박사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

정확히는 히타치만이 아니라 일본 배터리 사업 쪽에 직격타가 될 내용이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그제야 슬그머니 일어나서 작별을 고했다.

“더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이게 진짜입니까?”

“네, 불과 몇 주 전에 한국 특허청에 올라간 특허입니다.”

“맙소사.”

“이 정도면 충분한 도움이 되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시가 마사아키 박사는 권재홍 비서실장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곧 배터리 특허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특허를 보면서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언제 이런 배터리 기술을 연구한 거야??!’

* *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배터리 사업 전쟁은 전 세계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 중이었다.

고성능, 초소형, 초경량 배터리 경쟁은 단순히 기업 차원에서 끝나지 않았다.

각국 정부에서도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위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었다.

미국, 일본이 배터리 전쟁을 시작했지만, 유럽 역시 안주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 배터리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은 나라가 다름 아닌 일본이라는 점이다.

무려 80% 이상을 일본 배터리 대기업이 독식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최근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사실 배터리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휴대용 모바일 기기가 급증한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IP 시티폰이 좋은 예다.

자본이 배터리 사업에 몰리면서 상황이 다시 달라진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을 받은 제품은 역시 니켈-카드뮴 전지였다.

500회 이상의 재충전이 가능하다는 점, 단지 이것 하나만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카드뮴 오염 문제 때문에 니켈-수소 전지가 차세대 배터리 주자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니켈-수소 전지는 4,000회 이상 충전할 수 있는 강점에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아직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마츠시타의 배터리 사업부 부장인 마츠타 고지 박사는 때문에 시가 마사아키 박사의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나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비록 대학 동창이기는 하지만 서로 아는 정도에 불과했다.

“자네가 웬일로 날 찾은 거야?”

“할 말이 있네.”

“히타치 공작소 쪽에서 있었던 일은 소문을 들었어. 한국 기업에 된통 당했다면서?”

“그 일은 그만 꺼내게.”

“난 그 일을 가지고 자네를 비웃은 적은 없어.”

“됐다니까.”

시가 마사아키 박사가 대뜸 찾아와서 보여준 리튬배터리 특허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는 시가 마사아키 박사가 최민혁 실장에게 원한이 있다는 말에서 그가 왜 자신을 만나자고 한 것인지 바로 이해했다.

이후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배터리 사업부 실무진은 배터리 특허를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전해질의 비점과 발열 피크 특성에 따라서 차이가 나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산화물계 고체 전해질에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도 충격입니다. 설마 개략적인 구조도에 관련된 특허까지 나오다니.]

[석류석 구조 가넷을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렇게 될 거로 생각했지만, 이건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 연구보다는 이미 몇 단계 앞선 기술입니다.]

[리튬 금속과 함께 사용할 경우에 이온 전도도가 달라진다니, 도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한 것일까? 이 수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자리에 모인 마츠시타 연구진은 오히려 감탄과 탄식을 터뜨리기에 바빴다.

KM 전자에서 내놓은 특허는 그들에게도 충격 그 자체였다.

마츠시타 고지 박사는 버럭 분노했다.

[야, 지금 장난해? 대안을 찾으라고 하잖아. 그런데 상대 기술에 감탄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다들 각자 앞에 놓인 특허를 확인했지만 대응할 방법은 전혀 찾지도 못했다.

아니, 그들은 자신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파기에 급급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마츠타 고지 박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아직 이 자리에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기술입니다. 당장 대응되는 기술은 찾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우회 특허를 막아놓은 특허가 적지 않습니다.]

그는 핵심 특허와 관련된 방어 특허를 주섬주섬 옆에 펼쳤다.

특히 분리막과 관련된 구조, 제조와 관련된 부분을 따로 정리했다.

이 특허들은 아예 작정하고, 후발 주자를 막기 위해서 정리한 것이었다.

그가 시작이었다.

다른 이들 역시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특허를 하나씩 정리했다.

그들은 새로운 배터리 특허를 고안할 정도의 천재적인 엔지니어였다.

때문에 이미 자기 눈앞에 놓인 특허의 의미 정도는 단번에 파악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하면 상대를 억누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마츠시타의 상황은 좀 달랐다.

그들은 항거할 수 없는 적을 앞에 두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심지어 다른 의견을 내놓은 이가 있었다.

“차라리 KM 전자 측과 손을 잡는 것이 어떨까요? 여기 나와 있는 특허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출원한 특허와 손을 잡으면 배터리의 완성도가 더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80년, 90년대에 출원한 마츠시타 배터리 특허 중에는 꽤 중요한 기술이 적지 않았다. 그 특허는 최민혁 실장도 무시하기 힘든 것이다.

“…….”

마츠타 고지 박사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런 특허를 상대가 가졌는지 몰랐다면 KM 전자를 죽이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대응할 수 없는 적이라는 것을 알자 다들 꼬리를 만 것이었다.

“…하아, 정말 이대로 위에 보고하란 말인가?”

“단순히 그 선에서 끝내서는 곤란합니다. 히타치, 소니 측과 공동으로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쪽이라고 해서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서로 갈등하고 대립했지만, 이 특허에 대응하려면 그들 힘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KM전자 측과 사전에 조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우리가 얻을 이익은 더 줄어들 겁니다.”

“…알겠네.”

마츠타 고지 박사는 황당했지만, 실무진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KM 전자는 단순히 듣보잡 회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에플, 퀄캄, ARN 지분을 가진 강력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히타치 공작소를 이미 밟아버린 적이 있는 상대였다.

그들의 오너이기도 한 최민혁 실장은 이제 무시할 만한 인사가 아니었다.

‘이것 참 창피스럽네.’

* * *

마츠시타 그룹은 갑자기 올라온 KMB-01 기술 때문에 난리가 났다.

이 특허 때문에 배터리 사업부 매출이 얼마나 추락할지 짐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츠시타 경영진은 이 사태에 헛웃음을 짓기 바빴다.

다행이라면 이미 히타치 공작소가 된통 당했다는 것에 위안을 얻을 수 있단 것이다.

어차피 히타치 공작소마저 박살이 났는데, 자신이 다음 타자가 된다고 해서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당장 대응책을 세워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마츠타 고지 박사가 소니, 히타치 공작소과 힘을 합치자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마츠시타가 KMB-01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정작 한국은 이 상황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IPS-LCD 원천기술에 대한 것은 뜻밖에도 한국인들은 그 의미를 잘 몰랐다.

오히려 히타치 공작소 덕분에 소니를 비롯한 일본 업체가 더 KM 전자가 가진 원천기술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이들은 이미 KM 전자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었다.

다만 이들은 한국 대기업처럼 국내 특허청에 직접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KM 전자도 아닌 미래 기술이 갑자기 고안한 리튬이온배터리 기술을 알 방법이 없었다.

특히 배터리 원천기술을 쥐고 있는 일본 업체는 더 절박했다.

자칫하면 배터리 시장을 통째로 KM 전자에 내놓을 상황에 놓인 셈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일이었다.

일본 공원 기술원이 무려 3,000억이 넘는 지원을 받아서 진행한 연구 성과가 최민혁 실장이 취미 삼아서 만든 기술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최민혁 실장의 능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았다.

일테면 최민혁 실장은 일본 내에서도 존경을 받는 인사였다.

그들은 결국 마츠타 고지 박사를 한국에 보내서 타협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츠타 고지 박사는 어처구니없이 마츠시타 특사로서 최민혁 실장을 찾아갔다.

그는 다행히 시가 마사아키 박사와는 달리 최민혁을 제대로 조사했다. 물론 최민혁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그저 기가 막혔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인간이긴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니 한국인에 대한 선입견 따위는 다 접었다.

나이도 잊었다.

그는 최민혁을 만난 자리에서 마치 일본 총리를 만나는 것처럼 정중하게 대했다.

“마츠타 고지 박사입니다.”

마츠타 고지 박사는 꼭 조선 선비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부드러운 인물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는 인물이다.

간혹 한국인을 무시하는 일본인과는 많이 다른 인물이었다.

최민혁은 다행히 인생 1회 차에서 일본어를 제법 배운 적이 있기에 소통에는 지장이 없었다. 다만 그로서도 130도 폴더 인사를 하는 마츠타 고지 박사가 당황스러웠다.

‘약을 잘못 먹은 건가?’

“최민혁 실장입니다.”

마츠타 고지 박사는 정중한 어조로 최민혁 실장을 찾아온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배터리 때문에 온 겁니까?”

“네, 귀사에서 출원한 배터리 특허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요?”

“귀사에서 고안한 리튬이온배터리 기술은 우리 마츠시타보다 한 단계, 아니, 몇 단계 더 발전된 기술이라는 것을 압니다.”

“너무 솔직하시네요.”

최민혁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인생 1회 차에서 마츠타 고지 박사란 인물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다만 마츠시타 배터리 사업이 잘나갔다는 것은 잘 알았다.

마츠타 고지 박사는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지금은 최 실장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특허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닐 텐데요?”

“물론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 압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넘볼 수준은 또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배터리 특허는 무리수를 둬서 만들었다.

비록 큰 틀에서 중요한 특허를 다 메꾸기는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꽤 있었다.

기술적인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 기술을 동원해서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는 있지만 연구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었다.

더 큰 문제는 마츠시타가 먼저 얻은 아주 기초적인 특허가 부족했다.

최민혁도 필요하면 이 특허를 추후 사들일 생각마저 했다.

그런데 이미 상대가 이렇게 먼저 눈치를 챈 이상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진짜 아쉽네. 각개격파 하기 딱 좋았는데, 벌써 소니나 히타치 공작소마저 정보를 얻었다니. 그 방법은 이제 어렵게 됐네. 하긴 MP3 특허처럼 날로 먹기는 어렵겠지.’

뒤늦게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나타난 조성돈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역시 마츠시타의 마츠타 고지 박사가 직접 이렇게 찾아왔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최민혁은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자사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게 궁금했다.

“누가 그쪽에 정보를 흘렸습니까?”

마츠타 고지 박사는 단 한 치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찾아와서 저에게 특허 정보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첫째 큰아버지 솜씨군요.”

‘…최 부회장님 짓이구나.’

최민혁 역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심 이를 갈았다. 그도 설마 최문경 부회장이 일본 대기업까지 끌어들일지는 상상도 못 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그로서는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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