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93화 (593/1,021)

#593.

그는 오히려 특이한 그의 얼굴에 피식 웃고 말았다.

‘오징어같이 생겼군.’

권우영이 다급하게 나섰다.

“회, 회장님, 죄, 죄송합니다.”

“아, 괜한 소리 말고, 이야기나 좀 하지. 그 재정경제원 관료 건은 뭔가?”

“그건…….”

오기동은 오히려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자 냉큼 끼어들었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미 사내에서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 그 짝은 설사 회사에 용건이 있어도 따로 조용히 만날 텐데…….”

“회사 달러 보유액이 이미 15억 달러를 넘었다는 소리가 파다합니다.”

“응? 최근에 인수합병 하면서 돈을 좀 쓰지 않았어? 아, IP 시티폰 사업을 매각하면서 2,700억을 받았다고 했지. 거기에 최근 콜린스과 KMP 매출도 계속 늘어났으니. 설마, 그렇게 번 돈을 전부 다 달러로 바꾼 건가?”

장승일 실장이 슬쩍 귓속말로 속삭였다.

“제가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여유가 되는 현금은 전부 달러로 다 바꾸었다고 합니다. 다만 당장 현금을 쓸 때는 다시 원화로 바꿉니다. 그리고 다시 들어오는 돈은 달러로 받습니다. 기준은 달러인데, 원화를 계속 바꿔서 씁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 환율에 영향을 줄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중간에 인수합병 과정에서 가지고 있던 달러를 다시 원화로 바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들인 현금을 다시 달러로 바꾸어서 달러 보유량을 계속 늘렸다.

지금 KM 전자가 가진 달러 보유량은 기존 보유량을 넘어섰다.

그냥 달러 성애자처럼 무조건 달러를 사들인 것이었다.

이게 실상 황당한 일이었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왜 그렇게 사내에 달러를 쌓아두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재정경제원 역시 대놓고 경고하기는 좀 그랬다. 때문에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알기 위해서 계속 사람을 보낸 것이었다.

다만 최민혁은 재정경제원 인사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KM 전자 내에서도 이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이는 없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마케팅 팀이 미래 기술 인수에 민감하게 대응한 것이었다.

사내에 달러로 현금을 쌓아놓고, 정작 기업 인수는 최민혁 실장의 개인 쌈짓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최용욱 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최민혁이 왜 이러는지 모르지 않았다. X 리포트에 따르면 금융 위기가 온다고 했으니 말이다.

‘민혁이 이 녀석이 정말 X 리포트를 믿고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상념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일은 따로 재정경제원 쪽에 알아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는 권우영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회사 생활이 어때?”

“좋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긴장한 채 서 있는 두 사람에게 손짓해서 옆에 앉게 손짓했다.

“단순히 그렇게만 말하면 이 늙은이가 어떻게 알겠나?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아?”

권우영은 딱히 자기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저는 특허 팀 소속인데, 일단 미래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합니다. 더욱이 회사에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얻도록 사내에 변리사 강의까지 만들었습니다.”

“설마 직원보고 변리사 자격증을 따라고 강요하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모든 것은 개인 선택입니다. 다만 비싼 강의를 공짜로 들을 수 있다는 점과 자신이 노력만 한다면 변리사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는 점이 좋습니다.”

실제로 사내 변리사 강연진은 꽤 유명한 이들이다.

특허 팀뿐만 아니라 자기 계발에 관심이 있는 조직은 다 이 강연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휴게실.

직원 복지를 위한 최민혁 실장의 노력은 한국 대기업은 상상조차도 못 한 수준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권우영의 설명을 들으면서 힐끗힐끗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얼굴.

그 모습은 KM 그룹 본사에서는 절대로 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아니 다른 10대 대기업 직원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아.’

그는 새삼 손자 최민혁 실장의 능력에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단순히 기술적인 면만이 아니었다.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놓고 봐도 최민혁은 감히 자신도 두 손을 다 들 정도였다.

최문경 부회장은 도저히 인사 문제에 한해서도 최민혁과 비교하기 어려웠다.

그는 권우영과 헤어진 후에 장승일 실장에게 한 가지 지시를 내렸다.

“민혁이 녀석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사람을 더 추가해서 확인해 봐. 아, 그리고 문경이 그놈 행적도 유심히 확인하고, 또 무슨 짓을 저질러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문경이 그놈이 민혁이에게 수작 부려서 또 민혁이 그놈 심사가 폭발하면 최악에 우리 KD 통신은 배터리를 공급받을 수 없을지도 몰라!”

“…철저하게 확인하겠습니다.”

솔직히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보다 최문경 부회장이 더 걱정이었다. 괜히 최민혁을 건드려서 엉뚱한 사태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발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 * *

최용욱 회장의 걱정처럼 최문경 부회장은 이전과는 달리 크게 흥분해 있었다.

물론 단순히 차세대 배터리 때문은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이 직접 나서서 최민혁에게 부탁을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겉으로 봐서는 최용욱 회장이 그렇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는 최용욱 회장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도저히 이 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켜만 보기로 했는데, 그 결심이 불과 며칠을 채 넘기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어.”

권재홍 비서실장은 걱정스러워하며 나섰다.

“하지만 이번 일은 회장님이 이미 관여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엉뚱한 문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 때문이 아냐. 이대로 손 놓고 볼 수만은 없다는 이야기야.”

“하면…….”

다만 최문경 부회장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그는 솔직히 갈등했다.

가야 하냐, 말아야 하나 말이다.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최민혁 그놈에게 명분을 줘서 또 어떤 수모를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더 분했다.

“내가 왜 민혁이 이놈 눈치를 봐야 하는 거야!!!”

부회장실을 울린 쩌렁쩌렁한 목소리.

비서가 다급하게 들어왔다가 권재홍 비서실장의 손짓에 허겁지겁 나가고 말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절부절못한 채 왔다 갔다 했다.

그는 뇌가 터질 정도로 굴리고 또 굴렸다.

반드시 대안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분명히 방법이 있어. 하늘이 무너져도 도망갈 구멍이 있다고 하잖아.’

그리고 실제로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이제이, 그래 이이제이야, 우리가 힘들면 다른 놈들을 이용하면 되는 거야!”

권재홍 비서실장도 마냥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설마 오성 전자나 DL 그룹을 이용해서 최민혁 실장을 견제하실 생각입니까?”

“아니, 오성 전자도 힘들어. 그놈들은 아직도 콜린스 사업부에 눈독을 들이고 있잖아. 지금 하는 짓을 봐. 민혁이 발바닥이라도 핥을 자세잖아!”

“아, 하긴.”

권재홍 비서실장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IP 시티폰 사업부 매각 후에 어쩌면 콜린스 사업부 매각도 실제로 진행될지 모른다는 찌라시가 다시 돌았다.

그게 오성 전자가 낸 소문인지, 아니면 최민혁 실장이 의도적으로 뿌린 것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이유는 없었다.

덕분에 오성 전자가 이상할 정도로 저자세로 태도를 바꾸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를 갈았다.

“오성 그룹 그놈들도 이제는 믿을 수가 없어. 오히려 민혁이 그놈을 싸고돌잖아. 이게 모두 안재운 그놈의 후계 구도 때문이야!”

안재운은 실제로 오큘러스 프로젝트 성과 이후에 어느 정도 경영 성과를 인정받았다. 덕분에 그는 일본 유학을 가지 않고 오성 전자에 그대로 살아남았다.

심지어 이 오큘러스 프로젝트 성과 때문에 e오성의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오성 그룹의 황태자로서 이제 겨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재운이 최민혁 실장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제가 듣기로 오성 그룹이 딱히 최민혁 실장과 사이가 좋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오성 그룹의 일에 방해를 놓는 사람 중의 하나가 최민혁 실장이니까요.”

최문경 부회장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래도 이대로 놔둘 수는 없어. 그놈들이 민혁을 칠 명분을 만들어야 해. 따라서 오성이 안 된다면 다른 애들을 내세우면 되니까.”

“…배터리로 최민혁 실장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라면, 설마 소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소니지. 아니, 소니 외에도 일본 배터리 업체에 정보를 흘리는 것이 중요해. 그놈들이 이 KMB-01 정보를 얻으면 가만히 있겠어? 뭔가 대안을 찾을 거야!”

최문경 부회장의 안은 현실성이 없지는 않았다.

IPS-LCD 특허 싸움 이후에 다들 최민혁에 대한 감정이 꽤 나빴다.

“…알겠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딱히 내키는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차마 최문경 부회장 의견에 반대할 수는 없었다.

최민혁 실장보다는 차라리 일본이 그나마 나은 상대이니까.

* * *

권재홍 비서실장은 바로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그가 일본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만난 업체는 소니가 아니었다. 이보다는 최민혁 실장에게 원한을 가진 히타치 공작소의 시가 마사아키 박사였다.

시가 마사아키 박사는 최민혁에게 IPS-LCD 원천기술을 되치기당한 후에 너무 원통하고 분해서 한동안 병원에 있다가 시골에 내려가서 한동안 쉬었다.

그가 권재홍 비서실장의 방문을 맞이한 것은 마침 업무에 복귀한 이후였다.

그로서는 KM 그룹의 권재홍 비서실장이란 인물이 자신을 찾아온 것에 의아해했다.

“누, 누구신지?”

“KM 전자를 계열사로 둔 KM 그룹의 최문경 부회장님의 비서실장인 권재홍이라고 합니다.”

“KM 전자라…….”

시가 마사아키 박사는 처음에 KM 전자가 어떤 회사인지 몰랐다. 하지만 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안색이 곧 차갑게 바뀌었다.

“…설마 IPS-LCD 특허를 강탈한 KM 전자 모그룹인 KM 그룹입니까?”

권재홍 비서실장은 분개한 시가 마사아키 박사의 표정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내심은 쾌재를 불렀다.

‘하긴 분노하지 않으면 그게 사람이 아니지.’

그 역시 뒤늦게야 IPS-LCD 사태를 분석했는데, 알고 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히타치 공작소는 이미 IPS-LCD 특허 마무리 단계였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바로 결성 전 막바지 단계에서 승리를 가로챘다는 걸 알았다.

“정확히는 IPS-LCD 특허를 도둑질한 최민혁 실장과는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저는 최문경 부회장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흠.”

시가 마사아키 박사는 분노하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대기업 경영권 분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늘 있는 일이었다.

KM 그룹이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날 이용하려는 건가?’

그는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석 잔을 마신 후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분노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상대가 노리는 것은 바로 자신이 이를 갈고 있는 최민혁 실장이니까.

정말 할 말은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의아했다.

“…무슨 용건입니까?”

권재홍 비서실장은 상대의 태도에 꽤 만족했다. 자신이 핵심만 전한 말에 자신이 온 의도를 상대가 짐작했다고 느꼈다.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저희는 최민혁 실장을 제거하고 싶은 쪽입니다. 용건은 당연히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최근 리튬이온배터리 관련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시가 마사아키 박사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IPS-LCD는 최민혁 실장 쪽에서 미리 선수를 쳤다고 하자.

그런데 그게 배터리 분야로 확장될 일은 아니었다.

분야가 다르니까.

“나이를 떠나서 최민혁 실장이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LCD와 배터리 분야는 전혀 다릅니다. 그쪽은 저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무슨 재주로…….”

권재홍 비서실장은 마치 이런 시가 박사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KM 전자에서 최근 내놓은 리튬이온배터리 관련 특허 서류를 내놓았다.

“이걸 보시죠.”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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