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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91화 (591/1,021)

#591.

“어? 회장님이 웬일입니까?”

갑자기 나타난 최용욱 회장.

최민혁은 어이가 없었다.

최용욱 회장 역시 그런 최민혁의 태도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네가 한 일을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해라!”

“네?”

최민혁은 뒤쪽에서 몰래 부모에게 고자질한 아이처럼 서 있는 장승일 실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장승일 실장은 슬쩍 최민혁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도 할 말은 많은데, 막상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자 아예 침묵한 것이다.

최민혁은 장승일 실장이 그저 뒤에서 조용히 서 있기만 하자 다시 최용욱 회장을 쳐다보았다.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의 시선에도 그냥 소파에 풀썩 앉았다.

“다 네놈이 까칠하게 굴어서잖아. 오죽하면 장승일 실장도 이제 네놈에게 겁을 집어 먹냐?”

“아…….”

최민혁은 그제야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최문경 부회장을 견제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한 행동을 떠올린 것이었다.

사실 다른 기업과는 달리 KM 그룹은 최민혁 자신에게 겁을 집어 먹을 만했다.

그게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은 몰랐지만.

최용욱 회장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색다른 눈으로 최민혁을 살폈다.

이제 이십 대 초반의 나이.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전에 자신이 알던 그 모습과 달랐다.

어느 사이엔가 위엄을 내보이고 있었다.

‘장 실장이 부담을 느낄 만하구나.’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 최민혁 실장의 카리스마는 전혀 달라졌다.

이제는 최민혁 자신이 뭘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까지 그가 해놓은 일들의 영향력 덕분에 존재감 자체가 커진 것이다.

최용욱 회장은 그래서 더 착잡했다. 그는 장남 최문경 부회장이 최민혁처럼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일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는 원래 최민혁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다.

특히 힘을 가진 후에 너무 이리저리 칼자루를 휘두르는 건 좋지 않다고 경고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손자 최민혁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민혁이 오직 목표로 한 일은 최문경 부회장을 끌어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배터리 때문에 왔다.”

“아, 소식 들었습니까?”

“그래, 재계에 소문이 파다하더라. 배터리 관련 특허만 무려 3,000건을 출원했다면서?”

“…네.”

최민혁은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설마 최용욱 회장에게서 특허 출원 숫자를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특허청 애들이 정보를 흘렸겠지. 하여간에 이놈의 나라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니까.’

“뭐, 그렇게 꽁할 이유는 없다. 네 녀석도 이미 짐작한 사실 아니더냐?”

“압니다. 다만 KM 그룹이 LC 그룹과 같이 정보를 얻을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KM 그룹도 바보는 아니다. 뭐 그렇다면 말하기도 편하겠구나. 너도 알다시피 IP 시티폰에 배터리가 필요하다.”

최민혁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자신이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것을 알리기 전에 이렇게 찾아와서 물량을 요구할 줄은 몰랐다.

굳이 배터리 영업이나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최민혁 자신이 신뢰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위성 사업부 덕분에 오성 전자는 경영권 승계 문제에서 재미를 단단히 봤다.

그 과정에서 최민혁 실장의 능력을 다들 믿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만, 메드 드로닉은 괜한 짓을 한 것 아냐?’

“…아직 시제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네 녀석 솜씨라면 틀림없이 양질의 시제품이 나오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 쪽에 가장 먼저 공급을 해줬으면 하는구나.”

최민혁은 200% 신뢰가 가득한 최용욱 회장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할아버지도 제가 우리 부회장님을 싫어한다는 것은 잘 아시죠?”

“그래, 나도 안다. 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너에게도 안정적인 공급처가 생긴다면 나쁘지 않을 것 아니냐?”

사실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공짜로는 곤란합니다. 알다시피 우리 배터리를 원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입니다. 선점하겠다면 그만한 것을 내놓으셔야 합니다.”

최용욱 회장도 손자 최민혁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설마 KM 산업 지분을 원하는 거냐?”

“일전 거래에서 2%를 주기로 약속했으니, 그것까지 포함해서 4%를 주십시오.”

“…나도 4% 지분을 넘길 만큼 넉넉한 상황은 아니다.”

“최두진 사장님 지분이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꼭 KM 산업 지분이어야 하느냐?”

“물론입니다. 솔직히 우리 부회장님이 하는 경영은 걱정이 너무 됩니다. 제가 사사건건 경영에 간섭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 부회장님이 큰 사고를 치도록 둘 수는 없습니다.”

“…….”

최용욱 회장은 잠깐 고민했다. 4% 지분을 넘기면, 최민혁은 KM 산업 지분만 무려 16%를 가지고 된다. 최영란 본부장 지분까지 합치면 30%에 가깝다. 그 정도 물량이라면 최문경 부회장을 상당히 압박할 수 있었다.

‘만약 문경이 그놈이 실수라도 해서 다른 주주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면, 최악에는 경영권을 빼앗길 수도 있어.’

사실 자신과 최두진 사장의 지분, 그리고 차명 지분이라면 손자 최민혁을 최대한 견제할 수도 있다.

문제는 자신이 그러기 싫다는 거다.

싱글거리는 손자 최민혁의 얼굴은 자신의 내심을 이미 다 파악한 것 같았다.

“민혁아, 꼭 그렇게 문경이를 미워해야겠느냐?”

“그건 정확히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우리 부회장님이 과연 절 두고만 볼 것 같습니까?”

“…….”

최용욱 회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누구보다 최문경 부회장의 집착과 욕망을 잘 알았다. 회사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쁘지 않다.

문제는 상대가 바로 초벌집의 주인공인 손자 최민혁이란 점이다.

괜히 최민혁을 건드려 봐야 결국 다치는 것은 최문경 부회장 자신이다.

‘문제는 그놈이 현실을 모른다는 거야. 아니, 알아도 포기할 수가 없는 걸까.’

그는 뒤늦게야 자신이 어떻게 손을 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난 누구 편도 들어줄 생각이 없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저도 할아버지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전 할아버지가 괜히 끼어들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할아버지가 ATI 대주주라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건 네 아비가 거둔 결실이었다.”

“압니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휴우.”

최용욱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손자 최민혁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다만 그 역시 한 가지 사실은 궁금했다.

“그런데 서울 중앙 병원 일은 뭐냐?”

“아, 배터리 광고를 좀 하려고 한 일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알겠다.”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이 뭔가 음모를 꾸민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굳이 자세한 부분은 질문하지 않았다. 이 일은 자신이 알아보면 되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또 무슨 꿍꿍이가 있구나.’

최민혁은 물론 난감했다. 그는 심장 세동 제거기 사건을 여기서 종결시킬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그는 솔직히 최용욱 회장의 제안을 듣고 나서 자신의 대외적인 신용도가 생각보다는 괜찮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건 그 자신도 전혀 생각을 못 한 부분이었다.

‘뭐,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기획한 일은 끝내야겠지.’

* * *

최용욱 회장은 새삼 달라진 손자 최민혁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그는 KM 전자 본사 통로를 천천히 걸으면서 건물 내부를 쳐다보았다.

“장 실장.”

“네, 회장님.”

“자네 생각은 어때?”

“최민혁 실장님 말입니까? 굳이 제가 판단할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늘 집안 문제에 대해서 소심한 장승일 실장 행동에 피식 웃고 말았다.

“에플 주가가 8달러를 넘어서서 그래?”

“그게 다가 아닙니다.”

장승일 실장이 슬쩍 말을 돌리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을 시인했다. 에플 주가 8달러 돌파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최민혁 실장을 높이 평가한 것은 다른 점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최 실장님이 한 일들의 성과를 본다면 결코 실패한 것이 없습니다. 비록 패턴은 비슷하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최민혁 실장님은 원하던 바를 다 이루었습니다.”

“그렇지. 그런 점을 무시하기 힘들지. 내가 이 자리에 와 있는 것도 그런 것이니까. LC 전자가 이미 접촉했다고 했지? 아마 그쪽도 다르지 않을 거야.”

“그건 최문경 부회장님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최민혁 실장님을 비난해도 막상 최민혁 실장이 한 성과를 어떻게 해서라도 강탈하려고 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하긴.”

최용욱 회장은 장남 일을 떠올리다가 문득 이미 에플 주식을 1달러 초반 가격으로 꽤 사들인 사실을 떠올렸다.

이미 단단히 재미를 봤다. 새삼 사고로 죽은 최병문을 떠올렸다.

‘피는 속일 수가 없다고 하더니.’

최민혁의 투자 성과는 최병문하고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최병문이 나름 놀라운 성과를 보였음에도 말이다.

최용욱 회장은 때문에 KM 전자 본사 건물을 걸어가면서 문득 KM 전자의 사내 분위기가 어떤가 싶었다.

“장 실장은 요즘 KM 전자 내부에 대해서 잘 알지?”

장승일 실장이 모를 수가 없었다.

“일부는 압니다.”

“한번 안내해 봐. 과연 사내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힐끗, 최용욱 회장의 눈치를 봤다. 그가 보기에 최용욱 회장은 KM 산업 지분 4%를 최민혁에게 넘길 것이 분명했다.

‘2%는 이미 약속한 지분이니까. 하지만 2%를 더 넘기다니.’

야금야금 늘어난 최민혁이 가진 KM 산업 지분 16%는 이제 무시할 만한 양이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알면 난리가 날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부회장이 조용하단 말이야.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일까?’

* * *

최용욱 회장은 굳이 자신의 행보를 딱히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회장의 행보를 알려고 한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최문경 부회장에게 최용욱 회장의 행보는 좋은 정보는 아니었다.

“장 실장 그 새끼 짓이라고?”

권재홍 비서실장도 잔뜩 흥분한 최문경 부회장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괜히 더 최문경 부회장을 자극하지 않도록 말을 조심했다.

“아무래도 신규 사업 때문에 장승일 실장이 직접 움직인 것 같습니다.”

“갑자기 신규 사업이라니?”

그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IP 시티폰 사업 매각 계약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또 다른 사업을 진행 중이라니.

권재홍 비서실장은 잔뜩 흥분한 최문경 부회장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배터리 쪽을 살피는 것 같습니다.”

“뚱딴지같은 배터리 사업은 또 뭐야?”

최문경 부회장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신사업을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KM 전자는 메인 아이템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배터리 사업을 추가하는 일은 절대 쉬운 게 아니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자신이 얻은 정보를 알려야 하나 망설였다.

그는 내심 장승일 실장을 원망했다. 비서실이 정보를 얻은 것은 뜻밖에도 기획조정실이 소스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이 이번 일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미래 기술을 인수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미래 기술?”

최문경 부회장은 권재홍 실장이 내민 미래 기술 자료를 확인했다. 그는 미래 기술의 재무제표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이런 구멍가게를 인수해서 뭘 어쩔 생각이지? 우리 조카가 드디어 미쳤구나.”

권재홍 비서실장은 냉큼 반박했다.

“그렇게 보기 힘듭니다. 뒷장에 보면 알겠지만, 전자부품 연구소와 손을 잡아서 새로운 배터리 원천기술을 고안했습니다.”

“배터리 원천기술은 무슨 개소리야. 전자부품 연구소 수준을 알면 그런 소리를 못 해.”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기술은 원래 LC 화학에서 노리던 기술입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님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LC 화학이 꾸미던 일에 훼방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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