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88화 (588/1,021)

#588.

특히 IP 시티폰 사업부 매각 이후에 단연 주목을 받았다.

무려 2,700억의 매각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수치가 나오기 전까지 재무 팀은 최민혁 실장을 대신해서 계속 협상에 협상을 거듭했다.

비록 2,950억에서 250억이 빠진 수치이기는 하지만 2,700억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사실 최민혁 실장이 삼우 통신에 대한 인수 지시를 내려서 큰일을 다 처리하긴 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재무 팀의 역할도 꽤 컸다.

최준형 과장 처지에서는 솔직히 배가 아픈 일이었다.

마케팅 팀은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최주호 부장을 달달 볶아서 최민혁 실장에게 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게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당장 민성일 과장이 재무 팀 대리 2명을 데리고 미국 벨린 소프트로 출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민성일 과장은 재무 팀장 이종진 부장을 비롯한 재무 팀원들에게 환대를 받으며 사무실을 나서고 있었다.

“민 과장님, 선물 잊지 마세요.”

“진짜 미국 출장인데, 그냥 갔다가 오시면 원망할 겁니다!”

“솔직히 큰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기존 미국 계열사 내부 점검과 앞으로 추가적인 인수합병 때문에 가는 거지 않습니까. 우리 선물에 더 신경을 써주십시오!”

“알았어!”

민성일 과장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었다.

IP 시티폰 매각 이후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 출장이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벨린 투자를 시작으로 해서 벨린 소프트, 컬컴, 에플을 둘러보는, 성과에 따른 보상 출장이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 남부를 시작으로 해서 뉴욕까지 다 둘러야 한다.

이 주일이라는 시간 안에 돌기에 일정이 그렇게 만만한 출장은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당장 급하게 일을 해야 할 건수는 없다는 점이다.

‘전화위복일까?’

마케팅 팀에 있을 때는 당장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다.

너무 힘들어서 자살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 중의 하나로 주목받았다.

최근 팀장에게서 차장 승진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정말 최 실장님이 아니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최준형 과장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민성일 과장이 사무실 통로를 당당하게 걷는 모습을 봤다.

그는 다급하게 시선을 돌리다가 민성일 과장과 부딪치자 억지로 웃고 말았다.

“미국 출장 가시나 보죠?”

민성일 과장은 어깨에 힘을 팍팍 줬다.

“이번 IP 시티폰 매각이 잘 끝났잖아. 그 일 때문에 겸사겸사 가는 거야.”

“축하합니다.”

“고마워. 난 마케팅 팀에서 재무 팀으로 이직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어. 어쩌면 최 과장 자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아.”

“…네.”

최준형 과장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속이 쓰린 것은 사실이다. 마케팅 팀에 있을 때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이가 민성일 과장이었다. 그런데 재무 팀으로 보직 이동 한 후에 환골탈태했다.

실상 민성일 과장의 성공은 회사 내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굳이 지금 조직에 꼭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산증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자신이 뜻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팀으로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

물론 받는 쪽의 팀장이 이를 용납해야 하고,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는 경우와는 이야기가 많이 달랐다.

최준형 과장은 솔직히 IP 시티폰 매각과 미국 출장이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추, 출장 잘 갔다 오십시오.”

“어, 고마워. 사실 이번 일은 어떻게 보면 최 대리, 아니, 최 과장 덕분이야. 내가 마케팅 팀에 계속 있었다면 이런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을 거야.”

“아, 네.”

최준형 과장은 배가 아팠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게 꼭 민성일 과장이 일을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워낙에 판을 깔끔하게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최준형 과장은 그런 사실이 마냥 답답하기만 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민 과장님이 열심히 하신 결과 때문입니다.”

“어, 고마워.”

민성일 과장은 몇 번이나 최준형 과장의 양손을 잡고는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그게 꼭 비꼬는 뉘앙스가 다분했다.

민성일 과장은 자신이 최준형 과장에게 밀린 것을 아직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얼마 안 있어 최주호 팀장이 조성돈 팀장과 같이 나타났다.

민성일 과장은 다급하게 최준형 과장에게 인사한 후에 최주호 팀장, 조성돈 팀장에게도 눈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난 이만 가볼게.”

최주호 팀장은 굳은 최준형 과장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봐, 최 과장,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아, 아닙니다. 민성일 과장님이 미국 출장을 떠나서 인사를 했을 뿐입니다.”

“응? 민 과장이 미국으로 출장 가? 아니, 무슨 일로 가는 거야?”

“IP 시티폰 매각 이후에 이를 계기로 계열사에 대한 평가를 다시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계열사에 평가 때문에 미국 출장을 떠난다고 하더군요.”

조성돈 팀장이 다행히 이 일을 알고 있었다.

“아, 신규 사업 검토 때문입니다.”

“…그 일을 민 과장이 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우리 기획 팀에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닙니다. 재무 팀에서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렇군요. 하긴 우리 회사가 워낙 기술적으로 발전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최주호 팀장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당장 이번 문제만 봐도 마케팅 팀이 재무 팀에 밀린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기대 어린 최준형 과장의 눈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미래 기술은 우리가 마케팅 팀이 나서서 마케팅을 진행하기로 했어. 최 실장님이 확정한 것이니, 그렇게 알면 될 거야.”

“저, 정말입니까?!”

“어, 그러니, 다들 회의실에 모이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마케팅 팀은 마치 잔치라도 난 것처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조성돈 팀장은 그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는 팀마다 경쟁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해졌을 줄은 몰랐다.

‘하긴 최 실장님이 독단적으로 일을 막 진행하게 하는 것도 문제야. 어설프게 대응해 가다가는 우리 기획 팀만 욕을 먹겠어.’

* * *

마케팅 팀도 지금까지 배터리 사업과 관련해서 손을 놓고만 있지 않았다.

배터리 사업이 깊이 관련된 분야가 전자와 자동차 산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핸드폰, 노트북, 캠코더와 같은 모바일 기기 성패를 좌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배터리다.

따라서 이 배터리 시장 규모는 90년대 들어와서 급격하게 증가했다.

올해만 해도 2조 5천억 규모.

거기다 5년 안에는 무려 3조 9천억이 넘는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전기자동차 시장까지 합치면 그 수요는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최준형 과장이 조사한 배터리 시장조사 결과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마케팅 팀원들도 다들 살짝 놀란 얼굴로 최준형 과장의 프레젠테이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것을 사전에 안 오성 전관, LC 금속, 대운 전자 역시 배터리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당장 오성 전관만 해도 올해부터 700억씩 투자해서 5년 안에 무려 4,000억까지 대규모 생산 설비를 건설할 계획이다.

최준형 과장은 조성돈 팀장조차 기획 팀에서 미처 간과한 정보까지 발견했다.

[대운 전자가 리튬이온배터리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한 겁니까?]

[물론입니다.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배터리는 단순한 동력원이 아니라 성능이나, 디자인에 있어 핵심적인 기술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동차에 배터리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텐데요?]

최준형 과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금 배터리 기술로 자동차에 적용하기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하지만 차세대 자동차 시장인 만큼 개발을 계속해야 합니다!]

조성돈 팀장은 마케팅 팀의 색다른 시선에 혀를 내둘렀다.

그도 기획 팀 내에서 검토를 거친 터라 익히 다 아는 사실이다.

다만 마케팅 관점에서 이를 다시 듣게 되자 배터리 산업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역시 최 실장님이구나.’

기획 팀은 정작 배터리 사업을 ‘갑자기 웬 배터리 사업이야’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런 미래까지 어느 정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오해다.

최민혁이 배터리 사업에 손을 댄 것은 그저 딱 스마트폰 때문이었다.

그 이상은 그조차 미처 간과했다.

다만 워낙에 배터리 퀄리티에 충실하다 보니 상황이 좀 달라진 것이었다.

그런 내막을 잘 모르는 조성돈 팀장은 힐끗 최주호 팀장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최주호 팀장이 넌지시 나서서 지금 최민혁 실장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하나둘씩 설명했다.

[좋아. 그 정도면 다들 배터리 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을 것 같아. 그러면 지금 당면한 문제부터 알아야 해. 조 팀장님.]

이름이 호명되자 조성돈 팀장이 나서서 최근 최민혁 실장이 하려는 계획을 하나둘씩 꺼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미래 기술을 통해서 진행 중인 차세대 배터리와 관련된 자료입니다.]

[……!!]

처음 접한 자료에 최준형 과장을 비롯한 마케팅 팀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들은 벌써 KM 전자의 배터리 기술이 이렇게 진행됐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미래 기술을 인수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것도 지분 80%를 말이다. 왜 20%를 남기는지는 의아한 일이었다. 다만 거기까지인 이야기였다. 실상 인수한 후에 뭔가 하려고 해도 몇 년은 족히 걸리니까.

그런데 이미 배터리 치킨 게임은 이미 목표 지점에 도달해 가는 중이었다.

“마, 맙소사, 이, 이게 정말입니까?!”

“사실입니다.”

조성돈 팀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차세대 배터리의 가장 큰 과제는 소형화, 경량화, 그리고 충전 시간 단축이었다. 그런데 KMB-01은 이미 세 가지 단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

지금까지 나온 배터리 종류는 무려 10가지가 넘었지만 제대로 사용되는 것은 불과 세 가지에 불과했다.

그런데 오성 전자, LC 전자조차 리튬이온 전지를 사용한 배터리 모델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래 기술이 바로 이 세 대기업의 배터리와는 격이 다른 제품을 이미 개발한 것이다.

“저, 정말 믿기지가 않습니다.”

“뭐, 그럴 겁니다.”

“아니, 그렇게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도대체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미래 기술이 전자부품 연구소를 통해서 이미 어느 정도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최 실장님은 지분 인수를 통해서 그 성과물을 얻은 것뿐입니다.”

“아니, 그건 더 이상합니다. 저도 전자부품 연구소에 있는 친구를 압니다. 걔들이 하는 건 그저 연구를 위한 연구에 불과합니다. 이런 성과물을 낼 수가 없습니다!”

이것 또한 사실이다.

전자부품 연구소는 어디까지 공공연구기관에 불과해서 사기업 연구소와는 질적 수준이 달랐다.

“…이번에는 전자부품 연구소에 운이 따른 것입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으음.”

조성돈 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왠지 최준형 과장의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떠올렸다. 최민혁 실장과 같이 이야기할 때면 늘 가지는 자신의 태도였다.

‘하, 이럴 일도 있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준형 과장은 여전히 조성돈 팀장이 말한 계획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배터리 마케팅이 왜 의료기기 업체와 연관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템이 심장 세동 제거기란 말에 혀를 내둘렀다.

“…의료기기가 들어가는 배터리라. 소형화, 경량화, 충전 시간 문제를 다 검토할 수 있는 대안이군요. 더욱이 세계적인 의료기기를 이용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단순히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메드 드로닉 장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최준형 팀장은 메드 드로닉 기기 검토 명세서를 확인하면서 깜짝 놀랐다.

“조 팀장님, 외람된 이야기인데, 이런 문제를 대체 어떻게 안 것입니까?!”

“최 실장님이 소스를 줬습니다.”

“…아니, 그게 더 이상합니다. 최 실장님이 배터리에도 안목이 있습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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