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86화 (586/1,021)

#586.

이제 최민혁 실장은 그야말로 기술의 신이라고 추앙받는 중이었다.

“설마 그 유명한 최 실장이 끼어들었는데, 대충 할 것 같지는 않아.”

“…KM 전자는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미래 기술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원래 안테나 제품을 생산하던 업체입니다. 배터리 쪽은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그 회사 제품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최민혁 실장이 그 회사를 인수해도 말인가?”

“…아, 저도 그 점은 인정합니다. 6개월만 지나도 뭔가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 아직 인수 협상 뉴스도 못 들었습니다.”

“그러면 어제 했나 보지.”

“하, 그게 말이 됩니까?!”

박태호 교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대충 들었으니,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게. 중요한 것은 이번 수술이야. 문제가 있는 제품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잖아. 그러니 한번 확인을 해봐야 해.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

“…알겠습니다.”

신영민 부교수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최민혁 실장’ 이름을 다시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고야 말았다.

솔직히 최민혁 실장이 손을 썼다면 금 배터리가 나왔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을 것 같았다.

‘설마 최민혁 실장도 사람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

* * *

신영민 부교수는 내심 박태호 교수 욕을 하면서도 지시를 따랐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KM 그룹의 조성돈 실장이 직접 와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메드 드로닉 코리아 영업 이사인 페트로 김을 호출했다.

페트로 김은 갑작스러운 연락에 또 돈 달라는 소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신영민 부교수가 내놓은 것은 뜻밖에도 자사 심장 세동 제거기와 관련된 자료였다.

“…이게 뭡니까?”

신영민 부교수는 교만한 어조로 툴툴거렸다.

“아니, 미래 기술이란 듣보잡 회사에서 귀사의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서류가 바로 근거 자료랍니다!”

사실 공학적인 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뭐, 그 지식 자체가 워낙에 이질적이어서 일반인은 알기 어려울 수도 있다.

기기 데이터 중에서 약 6~7초간의 멈춘 표시가 있었다.

전체적인 데이터 중에서 아주 일부분이라서 표가 잘 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대충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의 심장이 그러냐 하면 그건 좀 다른 문제였다.

7초 동안 멈추면 환자가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배터리 안정성에 있었다.

“……!”

페트로 김은 경악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자료의 심장 세동 제거기는 글로벌로 꽤 팔려 나갔다. 만약 정말 기기 동작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물량을 전량 리콜해야 할 사항이었다.

신영민 부교수는 의아했다.

“아니,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그냥 특이한 자료라서 제가 잠깐 착각한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일단 문제없다는 공문만 하나 작성해서 주세요. 그러면 우리 박 교수님도 더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아, 그래도 한 번 확인은 해봐야겠습니다.”

“메드 드로닉은 확실히 뭔가 틀리군요. 미래 기술 같은 듣보잡 회사에서 지적한 문제조차 이렇게 신중하게 검토하고 말입니다.”

“그, 그렇습니다.”

전혀 아니었다.

본사에서 한국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모르모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국 병원에서 많은 이슈를 제기해도 본사는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황당한 것은 미국 내의 병원에서 이슈를 제기하면 본사가 즉각 움직인다는 점이다.

그런 내막을 아는 페트로 김은 굳이 더 이상 대화하지 않은 채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칫하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 큰일이 났다.’

* * *

메드 드로닉 코리아에서 받은 자료를 본 메드 드로닉 본사는 난리가 났다.

생각보다 더 큰 문제였다.

왜냐하면 한국은 이제 최초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이미 환자에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장비 기기값이 워낙에 고가라서 환자의 대다수가 제법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만약 이 환자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소송을 고민해야 할 일이다.

심지어 미국 법원에서 소송이 걸린다면 천문학적인 배상을 토해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의료기기에 사용된 배터리는 소니 제품이었다.

그들은 소니 배터리이기에 신뢰했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다행이라면 서류에서 언급한 현상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환자들에게서 의료기기를 다시 끄집어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메드 드로닉 본사 임원들은 식은땀을 흘린 채 일단 VIP 위주로 다급하게 연락했다.

물론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심장 세동 제거기에 들어간 배터리는 소니가 맞춤형으로 제작한 것이다.

일반적인 배터리와는 많이 달랐다.

소니 측에서는 새로 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결국 메드 드로닉사는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들은 곧 글로벌시장을 장악한 배터리 업체를 불러 미팅을 시작했다.

물론 메드 드로닉 코리아 쪽에는 그저 검토 중이라는 연락만 보냈다.

사실 의료기기에 문제가 있으면 리콜을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메드 드로닉이 우성 병원을 상대로 리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 * *

‘서면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고?’

페트로 김 영업 이사조차 본사의 답변에 크게 당황했다.

당장 그가 따로 문서를 만들어 처리할 수는 있었다.

다만 그랬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그때는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 써야 한다.

단 한 사람의 환자에게서 문제가 발생해도 상황이 아주 심각해질 수가 있었다.

‘아, 아니지. 아직 한국에서 지금까지 수술한 환자는 없었잖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동일한 배터리가 사용된 의료기기가 제법 있었다.

그것들은 이미 환자에게 적용되었다.

페트로 김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더 가관인 건 본사 측의 대응이다. 이들은 국내 환자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아는 지인을 통해서 다시 몇 가지 테스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다른 문제가 없기를 빌자.’

불행히도 결과는 그렇지가 못했다. 6~7초 사이의 짧은 시간이지만 동일한 환경 아래에서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크, 큰일이다!’

* * *

메드 드로닉 코리아는 온통 난리가 났다.

불행히도 서울 중앙 병원은 이 상황을 알지 못했다.

조성돈 팀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충분한 자료를 주면 서울 중앙 병원에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그의 착각이었다.

성울 중앙 병원은 그저 검토 중이다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의료기기 시장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잘 보여주는 지표였다.

뒤늦게 마케팅 팀장 최주호 부장이 연락을 받고 조성돈 팀장을 찾아서 이 문제를 상의했다.

“이대로 그냥 두고만 보실 겁니까? 사전에 우리 쪽에 정보를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사과했다.

“너무 급하게 정해진 일이라서 마케팅 쪽에 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 일은 기획 팀이 아니라 우리 마케팅이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안건은 애매한 경우였다.

조성돈 팀장 역시 미래 기술과 관련돼 있어서 선뜻 마케팅 쪽에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마케팅 팀 입장에서는 미래 기술 배터리도 결국 자회사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 아닙니까. KMP-01이나 KMB-01이나 한 글자 차이입니다. 미래 기술과 KM 전자를 분리하는 게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조성돈 팀장도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그가 보기엔 너무 속이 보이는 말 같았다. 한편으로 최민혁 실장이 원망스러웠다. 이번 배터리 사업은 굳이 미래 기술이 아니라 KM 전자에서 인수해서 진행했어도 문제의 소지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최민혁 실장님은 KM 전자가 추구하는 사업에만 집중하려고 하시는 듯합니다. KM 전자가 추구한 사업을 벗어나는 사업은 외주를 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에서 벗어나니까요.”

“그거야 돈이 안 되는 사업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배터리 사업도 그렇지 않을까요?”

“배터리 사업이 돈이 안 된다니, 그게 기획 팀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입니까?”

“흠흠.”

조성돈 팀장은 무안해서 헛기침하고 말았다.

이에 최주호 부장이 다다다 쏘아붙였다.

“아무리 그래도 돈이 되는 배터리 사업을 이런 식으로 다른 외주 기업에 주는 건 전 반대입니다. 솔직히 KMP-01만 해도 그렇습니다. 특허를 공개해서 다른 국내 기업에도 길을 열어주고, 심지어 에플에는 아예 제품을 통째로 넘기지 않았습니까?”

“아, 하지만 다 특허료를 받습니다. 특히 에플의 경우에는 그 이익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 회사가 만든 제품이 아닌데요?”

“하지만…….”

“아, 회사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회사에 일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대로 가면 우리 KM 전자 직원들의 가치가 있습니까?!”

원론적인 문제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런 불만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했다.

최민혁 실장이 추구하는 것이 고부가가치 사업 위주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직원 업무의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KM 전자는 아직 과도기 단계였다.

그러니 최주호 부장이 반발하는 것이다. 그는 아직 KM 전자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불안한 것이었다.

조성돈 팀장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우리 KM 전자 직원들은 핵심 업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아, 핵심 기술도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세요. 과연 그런가. 말로만 중요한 기술이라고 이야기는 하는데, 정작 우리가 직접 만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기획 팀은 요즘 일이 너무 살인적이라서 분위기가 참 좋죠?”

“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 팀은 다들 죽으려고 해요.”

“압니다. 특허 팀 역시 다들 피를 토하면서 일하더라고요. 그게 얼마나 즐거운 건지 모르시는 겁니까?”

“…네.”

‘하긴 일이 없는 부서라면 불안할 거야.’

최주호 부장은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이번 배터리 기술만 해도 그래요. 제가 알아본 바로 이 배터리 시장이 어마어마하더군요. 아니, 이런 사업을 미래 기술이란 회사에 다 넘기는 것이 말이 됩니까?!!!”

사실 배터리 사업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요즘 들어와서 핫하게 주목을 받았다.

그 시발점은 다름 아닌 IP 시티폰이다.

IP 시티폰에 들어가는 단말기 수요가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KD 통신에서 한창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쪽에 영업하면서 이를 이용해서 IP 시티폰을 부각시키면서 배터리 이슈가 나왔다.

기존의 배터리는 안정성, 사용 시간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KMP-01 사용자들은 이 이슈에 대해서 더 심각했다.

KMP-01 시스템이 나름 배터리를 최적화해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이런 문제를 해결할 차세대 배터리 양산은 미래 기술이 가져갔으니.

조성돈 팀장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핑계 같지만 그 부분은 최 실장님도 미처 간과한 것 같습니다.”

최주호 부장은 버럭 소리쳤다.

“아니, 지금 기획 팀장으로서 그게 말입니까, 방귀입니까! 도대체 기획 팀장님이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합니까. 사전에 배터리 시장을 먼저 조사해서 검토해야 할 분이 기획 팀장님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진짜 답답해서 미치겠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은 큰 결정을 하셔야 하니 그럴 수가 있어요. 하지만 조성돈 팀장님이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최 실장님에게 말해서 바로 조처를 하겠습니다.”

“아뇨, 같이 갑시다. 저도 최 실장님에게 이번 일만큼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