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85화 (585/1,021)

#585.

“하하하, 그러게요. 오성 그룹은 아직 KMB-01에 대해서 모를 테니까요. 다른 10대 대기업도 같이 움직이겠죠.”

이전과는 사뭇 다른 최민혁의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그저 주변 눈치만 살피던 그 최민혁 실장이 아니었다.

알 테면 알아라.

그런데 차세대 배터리 관련된 부분은 지금 와서 그 정보를 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미 핵심 특허 출원은 끝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제품 생산까지 진행 중이다.

이 시점에서 설사 오성 전자가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방해할 방법이 없었다.

자금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베껴서 할 것인가.

그 어떤 방법도 미래 기술에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IPS-LCD 기술은 장치 산업으로, 많은 자본과 전문 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배터리의 경우는 좀 다르다.

굳이 LCD만큼 많은 초기 비용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하긴 이제 최 실장님이 남의 눈치를 볼 레벨은 아니지.’

조성돈 팀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KMB-01은 지금 한창 개발 중인 KM 전자나 그 계열사의 차세대 제품과는 달리 독단적으로 팔 수 있는 제품이니까.

“이대로 미래 기술을 그냥 두실 생각입니까?”

그도 순순히 인정했다. LC 전자가 끼어든 상황이다. 이제 이 정보를 얻은 오성 전자 역시 차세대 배터리 일에 끼어들 것이다.

그러면 소문은 급격히 퍼져 나갈 것이다. 이제까지 눈치만 보고 있던 다른 10대 대기업 역시 차세대 배터리 사업에 한 숟가락 올리려고 할 것이다.

‘독과점으로 시작할까?’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솔직히 독과점으로 공격하면, 받아칠 방법은 많았다. 정 안 되면 배터리 사업을 일시에 접어버리면 된다.

그러고 나서 다른 기업이 배터리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걸면 그뿐이다.

‘한국 사법부를 믿을 수 없다면 해외 법정에서 소송을 걸면 되니까.’

그는 아쉬운 것이 없었다.

다만 최민혁은 굳이 한국 10대 대기업과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최문경 부회장을 파묻어버리는 것뿐이니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네요. 그렇다면 굳이 기존 전략을 고수할 이유는 없겠죠.”

“하면…….”

최민혁도 장고에 들어갔다. 그도 배터리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KMP-01, 02의 단점을 극복할 수단으로 삼았다.

그런데 KMB-01의 완성도가 커진 만큼 굳이 계획대로 밀어붙일 이유는 없다.

그는 차라리 이 KMB-01 이슈를 자신이 나서서 좀 더 키우면 어떨까 생각했다.

물론 일장일단은 있었다.

당장 최문경 부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꼭 아닐 수도 있어. 당장에 돈이 되는 KMB-01이 더 폭발적으로 주목을 받는다면, IP 시티폰 역시 비슷한 대우를 받을 테니까. 그러면 IP 시티폰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겠지.’

사실 KD 통신의 김현탁 사장조차 IP 시티폰에 대해서 긴가민가했다.

그런 시기에 KMB-01 배터리가 핫이슈로 떠오른다면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전에 선수를 쳐야겠어요.”

“네?”

“그냥 마케팅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하수예요. 좀 더 이 배터리 사업에 대한 시선을 끌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첫째 큰아버지도 IP 시티폰 사업에 더 집착할 겁니다.”

조성돈 팀장은 그놈의 IP 시티폰이 결국 최문경 부회장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딱히 최문경 부회장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제품 기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지니까.

최민혁은 마침 인생 1회 차 기억 중에서 이 배터리 사업을 띄울 대안을 떠올렸다.

“병원 쪽에 한번 연락해 보세요. 특히 심장 세동 제거기에 사용된 배터리 쪽을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의료 기기 배터리에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충분한 용량과 안정성이거든요.”

“…딱 KMB-01에 맞는 제품이군요.”

“그렇죠.”

최민혁은 구체적으로 그 병원이 어디인지는 말하지 않으려다가 슬쩍 생각을 바꾸었다.

“제가 아는 의료 업체 중에 메드 드로닉이란 업체가 있어요. 그쪽에서 심장 세동 제거기를 만들 겁니다. 그런데 제가 들은 정보로는 이쪽 제품에 문제가 꽤 있다고 들었어요. 아마 한국에서도 이 회사 제품을 검토하고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메드 드로닉을 어떻게 아는지 의아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의심하지 않았다.

‘뭐,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니까.’

* * *

리튬이온배터리는 의료 기기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점이 많다.

안정성, 작은 사이즈와 같은 것들이 그중 하나다.

특히 에너지 밀도가 높아서 다른 쉘 배터리보다 낫다.

작은 내부저항, 안정된 방전, 작은 전류 역시 빼놓기 어렵다.

물론 이런 점은 충전, 방전 테스트, 온도 테스트와 같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병원은 좀 다르다.

의사는 배터리의 기술적인 문제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많이 검증된 제품을 사용할 뿐이다.

서울중앙병원의 박태호 교수 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KM 전자의 조성돈 기획 팀장 이야기를 무시하지는 못했다. 그가 내민 자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조 팀장님은 메드 드로닉에서 사용되는 기기에서 배터리 안정성이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까?”

“장비 자체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방전이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생기는 기기 오작동이 문제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입니다.”

“저희 역시 테스트해 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는 차세대 배터리 안정성 실험 테스트에서 의료기기를 우연히 채용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운이 참 좋으시네요. 우연히 테스트했는데, 문제점을 찾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제 올해 운은 다 쓴 것 같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자신이 대답하면서도 이 이야기를 어디선가 많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최민혁 실장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었다.

‘하, 설마 내가 이런 말을 쓰게 되다니.’

그런데 박태호 교수의 태도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참 익숙했다.

그는 덕분에 여유로운 태도로 실제 메드 드로닉에서 만든 심장 세동 제거기를 내놓았다.

“자, 이건 실험 환경입니다. 그리고 제가 준 자료는 이 실험을 통해서 확인한 겁니다.”

“…….”

박태호 교수는 굳은 얼굴을 한 채 침묵했다. 그가 아무리 기술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조성돈 팀장이 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거 정말 버그라면 심각한 상황이잖아.’

하지만 그는 바보는 아니다. 조성돈 팀장이 갑자기 찾아온 이 상황 자체가 상당히 의아했다.

“그 말씀도 황당하지만, 저희 팀에서 심장 세동 제거기 삽입 수술을 한다는 정보는 어떻게 얻은 겁니까?”

“그건 언론 기사만 잘 분석해도 나옵니다.”

“그렇습니까.”

박태호 교수는 그제야 자신이 기자에게 인터뷰한 적이 있던가 자문했다. 그 와중에도 조성돈 팀장의 명함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그는 당연히 KM 전자를 모르지 않았다. 아니, 한국인이라면 이 회사를 모를 수가 없었다.

최근 IP 시티폰과 관련해서 최민혁 실장이 보인 감성 드라마는 황당 그 자체였다.

여론에 떠밀려서 자신이 개발한 IP 시티폰 기술을 포기한 것 말이다.

그런데 가끔 나오는 지금 뉴스는 또 달랐다.

‘IP 시티폰 사업부를 2,950억에 매각한다고?’

정확히는 2,700억이다.

기사가 워낙에 많이 나와서 아직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솔직히 이번 일에 최민혁 실장이 정말 피해자인지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최민혁 실장의 능력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그 유명한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쓴 배터리 기술이라면 무시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의 최측근 조성돈 팀장이 나서서 이렇게 설명하지 않는가.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왜 메드 드로닉에 먼저 이야기하지 않은 겁니까?”

“그쪽에 이야기해 봐야 바로 반응하지 않을 겁니다. 외국계 의료 업체가 얼마나 국내 병원에 보수적인지는 선생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전 사람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선생님을 먼저 찾은 겁니다.”

“좋습니다. 이 기기에 문제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쪽 미래 기술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미래 기술을 인수해서 만든 차세대 배터리라고 했는데, 아직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안정성은 이미 충분히 검토를 거쳤습니다.”

조성돈 팀장이 동행한 정성근 대리에게서 받은 서류를 하나씩 내밀었다.

기존 미래 기술이 진행한 시제품 배터리의 신뢰성 결과물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안에 적용된 기술이 바로 KMP-01에서 사용된 전원 칩과 같았다.

“이 KMP-01과 동일한 배터리 관리 기술은 이미 충분한 안정성이 검증된 상황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배터리 때문이 아니라 백업 배터리를 보완했기 때문이다.

메인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면 백업 배터리가 동작한다.

그 기간은 무려 1주일이 넘었다.

따라서 이 신호를 처리하면, 설사 심장 세동 제거기에 문제가 생겨도 알림 신호를 보내게 할 수 있다.

자칫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바로 배터리 그 자체에 있었다.

다만 박태호 교수는 성급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건 메드 드로닉과 다시 이야기해 봐야 합니다.”

“당연히 하셔야 할 일입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조성돈 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렇게 나서서 지적해 준 것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 * *

자동형 심장 세동 제거기 삽입 수술은 국내에서도 처음이었다.

박태호 교수도 이번 수술을 앞두고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언론과의 인터뷰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 정보가 이미 알음알음 알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때문에 조성돈 팀장의 조언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의료 기기 책임자에게 확인 요청을 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앞에 나타난 이는 이번 수술에 같이 참여하기로 한 신영민 부교수였다.

“교, 교수님, 설마 메드 드로닉 기기를 바꿀 생각입니까?!”

박태호 교수는 신영민 부교수가 업체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딱히 그를 타박하지는 않았다. 문제가 없으면 되니까.

“이봐, 신 교수, 너무 앞서간 것 아냐. 난 확인을 하고 싶을 뿐이야.”

“휴우, 전 정말 놀랐습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신영민 부교수였다.

“메드 드로닉은 믿을 만한 회사입니다!”

미네소타주에 본사를 둔 메드 드로닉은 꽤 유명한 의료기기 회사였다.

그들 제품의 완성도 역시 이미 알려진 상황이고 말이다.

따라서 메드 드로닉의 영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신영민 부교수는 그런 제반 상황을 잘 아는 터라 메드 드로닉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로비를 받은 것 역시 다들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도 미래 기술이란 회사…….”

박태호 교수는 신영민 부교수가 오해할 것을 염려해서 몇 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정확히는 KM 전자의 자회사야. 지분 80%를 인수했다고 하더군. 아, 벨린 투자 통해서 인수했긴 했지만 그게 그거겠지.”

“네?”

“미래 기술이라면 무시할 만하지. 그런데 그 배후는 KM 전자의 그 최민혁 실장이야!”

“최민혁 실장이라면 설마 IP 시티폰의 주인공인 그 최민혁 실장님 말입니까?”

“자네도 잘 아네.”

“아니, 최민혁 실장을 모르면 간첩이죠. 요즘 와서 최민혁 실장이 정말 KD 통신에 당했느냐고 의심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2,700억 매각 대금 때문이다.

KM 전자의 IP 시티폰 개발에 대해서는 말이 너무 많이 돌았다.

이유는 KM 전자 내에서도 IP 시티폰 개발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허 팀이 갑자기 IP 시티폰 기술을 찍어내나 싶더니, 삼우 통신을 인수해서 덩치를 키웠다.

그게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그 사업부 가치가 2,700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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